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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의 흑격이와 마극사/예나의 헤겔과 마르크스
오늘 폭로문서는 로쟈의 서한문 ‘야나의 흑격이와 마극사/예나의 헤겔과 마르크스’로 독일 여행 중의 문서입니다만 마극사/마르크스를 기술했고 흑격이/헤겔을 함께 기술한 점은 변증법의 발전에서의 비중을 고려해 폭로한 문서입니다. 서한문의 제시도서는 흑격이/헤겔 관련의 도서 2권과 마극사/마르크스 관련의 도서 1권을 소개했는데 최 후자의 마극사/마르크스 관련의 도서는 마극사/마르크스의 저서 ‘덕모극리특과 이벽구로/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이하 “자연철학”)’라는 도서로 ML(M)주의의 고전들 중 한권이지만 올해로 발행 만 17년 전의 도서여서 시급하기 재발행을 요하는 도서들 중 한 권이기도 합니다. 흑격이/헤겔 관련 도서들은 무산 철학, 사상, 주의로 오기 전 까지 의 유산 철학, 사상, 주의를 반영하는 다수 저서들 중 한 권들이지만 이들은 변증법의 형성과 관련해서 보면 좋은 도서들로 오늘 날 사상, 주의의 부흥을 임무로 수행해야 하는 시점에서 어느 정도 참고 이상을 할 수 있는 도서들입니다. 올해가 또한 마극사/마르크스 탄생 만 2세기를 맞이한 연도여서 마극사/마르크스의 저서 ‘자연철학’의 재발행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 도서 역시 그 분의 도서처럼 일부 소실 상황에 반세기 전의 한 주장의 제기로 그 국가에서 발간한 은격사/엥겔스의 ‘초기 저작집’에서의 여섯 번째 기록(노트)에서 다섯 번째 기록으로 이동 처리한 바 있습니다. 도서는 물론 이 이동처리를 근거로 번역한 도서라고 하고 이 점은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도서의 정확한 위치를 탐색한다면 이를 기초로 정하는 것은 당연한데 작금까지도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 도서와 그 분의 저서 ‘진정한 민중의 친구(올해 6월 아고라에서도 발행한 바 있습니다.)’에 대한 저서의 원본의 복원은 또한 사상, 주의의 부흥 운동의 일환이기도 해 중요한 고전을 원본 그대로 조우하는 정도를 넘어서 사상, 주의의 전면 부활의 기초도 마련하는 셈입니다. 서한문은 독일문학기행의 마지막을 남겨 놓은 상황을 기술하면서 시작해 최종일정(탁마사/토마스 만의 고향이자 소설 ‘포등발락가족/부덴부르크가의 사람들’이 배경지인 여패극/뤼벡 방문)을 기술했고 위마 에서 한보/바이마르에서 함부르크로 향하면서 야/예나를 방문한 여정을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이 도시가 대학도시로 인구는 총 13만에 2만 여명이 대학생이어서 1/6.5이 대학생인 비율의 도시인 사실도 기술했는데 대학 교정/캠퍼스가 또한 별도로 존재하지 않은 특징도 함께 기술했고 다수의 대학 건물들을 관람하면서 내포니차/라이프니츠, 흑격이/헤겔, 마극사/마르크스와 야/예나 대학과의 인연을 기술한 현판을 현수한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이 점은 일종의 학술적인 측면에서도 현 국가에서 추방경험을 지닌 변혁 운동가를 볼 수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이를 통해서도 과학 사상, 주의의 부흥의 임무의 실행의 의지를 다질 수 있습니다. 서한문은 문단을 교체해 야/예나대학의 역사적 상황을 기술하면서 우선해 연상할 수 있는 인물로 흑격이/헤겔을 지목했습니다. 서한문은 여기에 마극사/마르크스를 얹을 수 있는 점을 기술했는데 이 점은 마극사/마르크스 이전에 중심을 둔 기술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서한문은 연속해서 둘의 박사학위 수여 사실을 기술하면서 우리식으로 이를 동문으로 호명하는 점 까지 기술해 변증법의 전환 단계의 두 사람을 함께 기술했습니다. 서한문은 흑격이/헤겔이 야/예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하고 1801 ~ 6 년 까지 강의하면서 주저서인 ‘정신현상학’을 집필 그리고 이듬해 1807년 출간한 사실을 강조, 기술했습니다. 이 ‘정신현상학’은 이후 소위 탈 근대주의 시대의 ‘현상학’류 와는 다른 도서로 제목에 ‘현상학’을 포함하는 도서임에도 변증법의 발전과정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한문은 연결해서 이를 철학사가 ‘흑격이/헤겔의 시대’로 호명하는 시대의 개막으로 기술했고 강의의 마지막 연도인 1806년의 나팔륜/나폴레옹의 기마 상황을 보고 기술한 언사를 강조, 기술했습니다. 흑격이/헤겔은 이를 ‘기마 상황의 세계정신이 지나가는 상황’으로 기술했고 서한문은 다시 이를 흑격이/헤겔의 철학이 그 시대정신의 철학임을 재차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말미로 접어들면서 비로소 만 2세기 전에 탄생한 마극사/마르크스에 대해서 기술했고 이 야/예나대학으로 이동해 1841년 ‘자연철학’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고 이 논문을 통해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마극사/마르크스를 철학자로 본다면 바로 이의 계기를 통해서 가능한데 다만 ‘관조하는 태도의 철학자’와 같은 일군의 소위 ‘철학자’들의 문제는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한문은 학위 수여 후 라인신문의 편집장을 한 사실과 강제페간 후 불란서/프랑스로 이동했고 이후 1883년 영국에서 생애를 마감한 추방 자이자 망명가의 생애를 살아간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서한문은 최 말미에서 흑격이와 마극사/헤겔과 마르크스의 족적(발자취)을 남긴 대학건물 복도에서 잠시 독일철학과 정신의 의의를 잠시 강의하는 것으로 야/예나에서의 일정을 종결한다고 기술했습니다. 현 시점에서 마극사/마르크스와 변증법의 궤적을 찾을 수 있는 야/예나대학에서의 일정은 과학 변혁의 철학이라면 가장 큰 의의를 둘 수 있습니다만 분명하게 이는 이러한 의의는 찾을 수 없습니다. 이 점은 애초의 문학 여행의 한계로 볼 수 있습니다.
고전을 통한 사상, 주의의 고취 또한 필수의 임무인데 ‘자연철학’에서 ‘과학철학’의 태동은 ‘거대한 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이 ‘거대한 태동’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단위의 부재 내지는 부족 상황을 경험하고 있고 이 경험이 비록 (최) 말기에 하는 것이어도 경험은 경험은 상황입니다. 도서 ‘자연철학’과 관련해서는 만 반 세기전과 1953년 15년 간격으로 다른 견해들을 제출한 상황인데 이의 해결 또한 우리들의 과제로 볼 수 있습니다.
로쟈의 서한문 ‘야나의 흑격이와 마극사/예나의 헤겔과 마르크스’의 주소는 제시주소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