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은 관리자 임의로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혁이만 흑새/헤르만 베버 저작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9-01-09 06:47
조회
493

오늘 소개도서는 만 1/5세기(20년)전의 발행도서인 혁이만 흑새/헤르만 베버의 저작의 ‘열령/레닌’과 ‘욕조 속의 세 사람’ 등 이고 폭로 및 제시 문서들은 이의 서평 서한문들과 장 정일의 다자적 비 독점적 연애 즉 폴리아모리에 대한 시사인의 기사문인데 장 정일의 기사문은 열령/레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하고 있고 이미 ‘제국주의(론)’이 존 홉슨(1858. 7. 6 ~ 1940. 4. 1)의 저작을 참고하면서 이의 명칭을 사용한 것처럼 니고랍 가부리약유기 차이니설부사기/니콜라이 가브릴로비치 체르니셰프[솁]스키(1828. 7. 24 ~ 89. 10. 29)의 저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일독한 후 자신의 저서명에도 이를 사용한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열령/레닌에 있어서는 이미 나맥특 약한 필유사/로버트 서비스(1947. 10. 29 ~ )와 토니 클리프(1917. 5. 20 ~ 2000. 5. 9)의 저서들이 존재하지만 전자의 저서는 유산 진영적인 저서이고 후자의 저서는 청산주의, 국가 자본주의 론 적 저서인데 반해서 이 저서는 열령/레닌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저서이고 동시에 다른 형태의 가족 형태 또는 탈 가족을 사고할 수 있어 작금의 상황에 대한 새로운 활력을 예고한 도서입니다. 이 도서가 1/5세기(20년)나 재출간을 하지 못한 현 상황에서 더욱 이를 요청하는 형국인데 장 정일의 기사문에서는 또 다른 도서 ‘욕조 속의 세 사람’에서는 또 다른 전기 작가 로버트 페인의 ‘열령/레닌’을 기술한 사실을 제시했습니다. 이 정도면 애초의 정신들(비록 과학에 미달 했을 지라도요!)의 엄청난 차단과 은폐, 엄폐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유산 진영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고 열령/레닌의 전기, 평전이 유산 진영의 것이거나 이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작품인 점은 이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 시기에 일부일처를 극복하는 사안은 시기상조일 수 있지만 새로운 시각은 상당부분이상에서 고려대상인데 무엇보다 이 또한 이행을 전제로 하는 선에서만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문서는 혁이만 흑새/헤르만 베버의 저서에 대한 서평문으로 열령/레닌의 보라/바울(사도 바울로스) 비유를 한 서한문인데 이 점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고 서한문은 대중적인 사고에 있어서 보라/바울로 비유하는 점을 제시했습니다. 다만 보라/바울을 로쟈의 서한옥/사랑방/블로그에서 찾으면 24건의 서한문들을 찾을 수 있는데 알랑 바디우라는 극복대상의 저서 ‘사도 바울’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서한문은 다만 서두와는 달리 혁명가와 창조자로서의 모습들을 기술했습니다. 이 점은 현존체제 자본주의하에서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혁명 후 사회의 생애를 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서한문은 창조자의 면에서는 실패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창조자의 면이 혁명가의 면보다 더욱 논의하기 어렵다고 볼 수 도 있는 내용인데 일종의 2중 이상의 장벽의 문제로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두 번째 문서는 첫 번째 서평 대상 도서의 발췌문인데 열령/레닌의 투쟁 과정들을 발췌해 기술했습니다. 다만 이 서한문 역시도 괴리와 같은 부정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주의를 요하는 문서입니다. 대부분 대중적인 인식에서는 이처럼 마극사 - 은격사/마르크스 - 엥겔스 시기의 자유경쟁 자본주의와 열령/레닌시기의 독점 자본주의의 구분을 인식하지 않고 괴리 등등의 부정적인 언사들을 언급하는 경향을 볼 수 있는데 무엇보다 청산주의로만 인한 것으로는 볼 수 없고 피지배, 피억압하의 심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문서는 ‘욕조 속의 세 사람’에 대한 서평 서한문으로 도서가 다소 건조한 보고서의 성격을 지닌 점을 기술하면서 시작해 자신의 애정(사랑)이 보편적인 사회 정서와 맞지 않은 사람들에게 권유했고 이 점은 누군가(지난 만 2년 전 작고한 마 광수 교수와 같은)의 지적처럼 이러한 보편적인 정서를 헌법 등의 명문으로 규정하는 한 압박을 감지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한문은 도서가 3명의 공저임을 기술했고 실제 이 3명이 현존체제에서의 적합화한 연애 양식이 아닌 다른 연애 양식으로 생활한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다만 형이상학을 기술한 점은 서한문이나 도서나 극복을 요하는 부분인데 이는 차후의 고려를 요하는 부분입니다. 서한문은 문단과 주제를 교체해 삼각연애에 대해서 기술했고 여기에는 혁명가의 성명 중엔 은격사/엥겔스와 열령/레닌을 기술했습니다. 이후는 도서의 발췌내용들로 역시나 파격적인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문서는 역시 도서의 서평이자 현존의 일부일처제를 주제로 한 문서인데 다만 핵심적으로 현존체제에서 자본주의에서의 대안적인 연애 양식의 불용의 문제까지는 도달하지 않은 문서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생활의 축적으로 당연하게 전환할 수 없지만 사고를 도출할 수는 있는데 무엇보다 역량을 지닌 실현 체(혁명 정당)를 지니지 못한 상황을 경과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문서는 장 정일의 시사인의 기사문으로 두 권의 도서를 포함한 전항에서 기술한대로 폴리아모리에 결부한 문서인데 역시 전항에서 기술한대로 ‘제국주의(론)’처럼 ‘무엇을 할 것인가’의 저서의 탄생의 과정을 기술했습니다. 이 두 권은 한 동안 거대한 퇴조기에 존재했던 열령/레닌의 저서들이었는데 이러한 과정들을 지닌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현 시기의 야만은 너무나 전 방위적인데 이는 연애 양식에서도 예외는 아니고 무엇보다 우리들과 같은 초과착취지대에서는 더욱 극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양식은 좀처럼 부상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이들 도서들은 꽤 신산한 감각을 확인할 수 있고 이행 후의 사회의 지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장 정일의 기사문에서는 실존주의 하의 상황도 기술해 주의를 요하는 점도 존재하는데 소시민적인 도서를 소개한 점은 이의 예입니다.
두 권의 도서에 대한 서평들과 장 정일의 기사문의 주소들은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또한 몇 몇의 사항의 주소들 또한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주소목록은 첨부파일 참조

전체 0

연구소 일정

3월

4월 2024

5월
31
1
2
3
4
5
6
4월 일정

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3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6

일정이 없습니다
7
8
9
10
11
12
13
4월 일정

7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0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3

일정이 없습니다
14
15
16
17
18
19
20
4월 일정

1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6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7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0

일정이 없습니다
21
22
23
24
25
26
27
4월 일정

2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3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6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7

일정이 없습니다
28
29
30
1
2
3
4
4월 일정

2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30

일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