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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철학자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9-01-06 06:47
조회
6

오늘 소개문서는 IDC의 ‘야만적인 철학자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라는 제목의 문서로 일전에 지 불랑새와 리[이]오탑/장 프랑소아 리오타르의 ‘탈근대/포스트모더니즘의[적] 조건’도서와 이 도서에 대한 로쟈의 서평 서한문을 폭로하면서 일부 폭로한 철학자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에 대한 폭로문서입니다. 이미 이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에 대한 한국어 백과의 항목들은 제시 드린 바 있습니다만 반 탁락자[차]기/트로츠키주의의 전력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반 마극사/마르크스주의로 진행한 인물인데 이의 주의의 20세기 중반에서부터의 발현은 작금에 보듯이 극단적인 수세의 상황을 경유하게 한 바 있고 일부에서 반격의 성과를 쟁취한 바 있지만 온전한 국가단위에서의 전환까지는 성취하지 못한 점은 너무나 많은 이의 해악을 사고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1997년 12월 26일은 그가 조직하고 지도하던 단체명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와는 달리 이 야만적인 철학자가 사망한 일자인데 하필이면 이 12월 26일은 모 택동/마오 쩌둥의 탄생일과 동시에 이를 기념해서 창립한 CPP(비율빈/필리핀 공산당)의 창건일인 일자이기도 해 더욱 만감의 교차시기이기도 한 일자 였습니다. 이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는 문서에도 존재하는 대로 희랍 - 토이기/그리스 - 터키의 영토교환시기에 탄생해 다소 혼란스러운 국적을 지니다가 불란서/프랑스로 건너가 활동을 했는데 역시나 국가자본주의론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인물로 문서에서도 폭로한대로 ELM-ELAS의 활동에도 적대적인 견해를 발설한 바 있습니다. 일전에 제시했던 한글 문서에는 1950년 이후 반 마극사/마르크스주의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와 같이 1940년대 중반에 더 이른 시기부터 구체적인 투쟁을 반대, 비난하면서 이탈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는 현 시기까지 우리들이 체험하고 있는 퇴행의 기원인 점을 감안할 때 신랄, 준열한 비난과 폭로를 요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일전에 폭로했고 이와 같은 단체에서 활동했던 지 불랑새와 리[이]오탑/장 프로아소아 리오타르 역시도 아이급/알제리 독립운동지지 정도만 긍정적일 뿐 나머지가 부정적인 것은 동일합니다. 문서는 지난 12월 26일이 철학자겸 경제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의 사망일임을 기술하면서 시작해 지난 1922년 이사단포(이)/이스탄불(다만 당시는 전항에서 기술한 영토교환시기여서 군사단정보/콘스탄티노플[폴리스]의 명칭도 동시 사용했습니다.)에서 탄생한 사실을 기술했고 현 시기에 기술하는 ‘자유 사회주의’에 대해서 폭로했습니다. 또한 문서는 이에 연결해서 1960 ~ 80년대의 불란서/프랑스의 중요한 지식인의 반열에 등극한 것을 폭로했는데 이 점은 현 시기에 역시 문제적인 불란서/프랑스 철학과의 관련성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문서는 문단을 교체해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의 (광범위한) 철학 - 과학적 연구를 비판하고 분석하는 것은 하지 않지만 소위 사망 기념일의 의미를 폭로했고 생애와 활동의 측면을 기술, 폭로한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문서는 문단을 교체해 이 급진적 사상가의 이력을 기술했고 1937년의 OKNE(희랍/그리스 청년 공산동맹)의 단체원이었던 사실과 1941년 KKE의 당원이었던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이후 1943년 아기스 스티나스(1900 ~ 87)의 지도하에 탁락자[차]기 주의단체로 이동했고 이로 인해서 ELM-ELAS의 활동에 적대적인 태도를 지닌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이미 반 마극사/마르크스주의로 넘어갔는데 문서는 문단을 교체해 1944년 12월 이미 그가 반공적인 견해를 제시한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문서는 상세하게 이의 내용들을 기술, 폭로했고 스티나스와 함께 이를 기술한 사실을 연속해서 폭로했습니다. 문서는 이후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의 궤적을 폭로했고 이의 주장을 현 시기의 ‘황금 여명 당’의 주장과 비교해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는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전항에서 그리고 일전에 폭로했던 지 불랑새와 리[이]오탑/장 프랑소아 리오타르의 궤적도 이와 유사한데 역시나 영향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고 이 철학자만이 이러한 것은 아니었지만 희랍/그리스의 혁명의 실패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만 30여 년 전의 거대한 후퇴의 맹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서는 이후 1948년 너무나 유명한 성명의 단체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를 설립한 사실을 기술했고 이후 구주/유럽 경제 협력기구 EPCO와 우리들도 가입 여부로 만 12년 전에 진통을 경험했던 OECD의 학자를 역임한 사실들을 폭로했습니다. 문서역시도 이들을 제국주의의 기구로 지칭했고 이의 기구 원을 지낸 이력의 혁명적 집단의 지도자의 양면성에 대해서 흥미로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문서는 재차 문단을 교체해 1950년대와 60년대에 이미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가 반혁명적인 견해를 발전하면서 마극사/마르크스주의로부터 이탈한 사실을 폭로했고 ML주의 세계관과 분리하고 번복할 수 없는 이탈을 한 사실까지 폭로했습니다. 문서는 이를 표현한 언사로 ‘정치적 급진주의’를 폭로했고 만 반 세기 여 전 1968년 5월 68혁명 국면의 단니이 공 본적/다니엘 콘 벤티트와 같은 인물의 필연적인 등장까지 폭로했습니다. 문서는 말미로 이동하면서 1980년대의 정치적 사고에 대한 퇴행의 신 면모를 폭로했고 소위 퇴행주의적 이론을 건설한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문서는 최 말미에 사망 1/5세기(20년; 참고로 2019년은 만 1/45.세기(22주년), 2022년은 1/4세기를 맞이합니다. 물론 2022년은 탄생도 만 1세기를 맞이합니다.) 이상을 경과한 현 시기에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가 사회주의를 설교했지만 실제로는 야만의 편을 들었고 사망 시점에서는 유산 진영 언론들이 격찬을 한 사실과 르 몽드의 지면할애의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지난 1940년대 세계 제 2차 대전 기는 희랍/그리스처럼 한 편에서는 저항 대/레지스탕스를 육성하면서 투쟁했지만 동시에는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처럼 퇴행의 사상도 맹아를 한 시기인데 장기적인 퇴행을 획책하고 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도 아기스 스티나스와 같은 인물의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지 불랑새와 리[이]오탑/장 프랑소아 리오타르와 같은 인물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퇴행적인 자신의 사조, 조류를 전파했는데 이의 해악은 고무적인 시기에도 여전하게 존재하는 사실을 확인할 때 너무나 거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문서에서 폭로했던 ‘거대한 불균형’의 실제 비존재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컸던 역시나 해악적인 사실도 확인할 수 있는데 혁명의 가면을 쓴 야만의 존재를 생생하게 실감했던 역사들이었습니다.
IDC의 ‘야만적인 철학자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라는 제목의 문서의 주소는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이외의 영문 위키백과 항목의 주소들 또한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IDC이외의 문서들은 첨부파일 참조


IDC


http://www.idcommunism.com/2018/12/cornelius-castoriadis-a-philosopher-who-preached-socialism-but-sided-with-barbarit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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