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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과학 정치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8-05-13 07:59
조회
22

오늘 폭로도서들은 ‘데리다를 읽는다./바울을 생각한다.(이하 데리다 바울)’외의 2권의 도서들로 소위 비과학적인 소시민주의의 데리다와 과거 나마/로마에 투항했던 바울에 대한 도서들과 야소/예수에 대한 동성애의 성격을 규명한 도서들인데 최 후자의 도서는 작금에 경험할 수 있는 동성애 혐오 등의 소수자 혐오들을 고려하면 일면 타당성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는 저자의 이후의 바울로의 전화한 행보를 고려하면 과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경우도 이번과 저번이 처음이라고는 볼 수 없고 조금은 오래 지난 것인데 과거 소위 효과적인 선교 즉 오늘 날에 있어서는 대중화를 위해서 정신을 이탈한 장면으로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이를 강조하는 일군의 좌파들은 대중화 주의로 이동하는 속류화의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 바울을 취급한 도서에는 알랑 바디우의 ‘사도 바울’ 이 있었는데 이들 2권의 폭로도서들도 이의 연장선상의 도서들로 볼 수 있습니다. 폭로 서한문인 이들 도서들을 소개한 로쟈의 서한문에서도 도서 소개에서 전재한 부분을 의거하면 전항에서 기 언급한 알랑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조르주 아감벤, 자크 데리다, 아코프 타우베스 등의 다수의 소시민의 사상, 주의의 학자들을 통해서 바울에게서 사유한 계기를 찾았는데 무엇보다 현 시기의 비 과학과 바울의 로마로의 투상에서 공통점을 볼 수 있겠습니다. 도서 ‘데리다 바울’엔 목차에 니채/니체를 발견할 수 있는데 니채/니체가 이미 예전에 폭로한 대로 변혁 모두의 가능성과 잠재성의 소멸을 기도한 사실조차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노정했고 심지어 배반(물론 우리들의 공간이 이렇듯이 특정의 왕조들이 장기적인 존속기간을 경과한 점으로 인해서 전향, 변절의 불성립은 당연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 경우는 순치, 적응의 경우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저서를 변혁 진영의 교재로 보자는 의견도 지니고 있습니다. 로쟈의 서한문은 ‘이 주의 발견’으로 성서학자이자 퀴어 신학자 테드 제닝스의 ‘무법적 정의’를 기술하면서 시작해 이전에 ‘예수가 사랑한 남자’와 ‘데리다 바울’을 저작한 사실을 기술했고 이번의 도서가 바울의 정치신학을 로마서 읽기를 통해서 반추하는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문단을 교체해 도서 소개의 일부를 원용했고 이의 원용에는 전항에서 기술, 폭로한대로 다수의 소시민의 사상, 주의의 학자들을 통해서 바울에게서 사유한 계기를 찾은 사실과 이들이 바울에게서 주목하는 것으로 ‘로마서’를 제시했는데 무엇보다 비 과학을 넘어 퇴행의 모습마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용한 말미의 부분은 로마서의 재독을 결론으로 제시했는데 역시 ML(M)주의의 고전이 아닌 로마서와 같은 적응과 투항의 모습을 노정한 도서이고 비 과학의 도서를 대안으로 제시한 셈입니다. 물론 너무나 잘 알려진대로 이들 중 슬라보예 지젝이 모/마오의 ‘실천론/모순론’을 요설적인 해제로 채운 바 있습니다. 서한문의 말미는 바울신학과 급진적인 정치철학의 조우를 지젝 덕에 관심을 둔 것으로 기술했고 연장선상에서 일독할 수 있다고 기술했습니다. 이의 잔영은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데 바로 엠 허스트 학파와 같은 곳에서 마극사/마르크스와 스피노자의 결합을 추구하는 것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하물며 종교의 전파를 위한 타협, 투항을 오늘 날의 변혁과 결합하는 모습은 퇴행적이기까지 합니다. 도서는 최근 간행부터 폭로하면 ‘무법적 정의’는 원용한 도서의 소개의 문구들을 기술하면서 시작해 현대의 정치철학에 영감을 주는 원천을 로마서에서 판독해 낸다고 기술했고 이 도서가 로마서 재독임을 규명하고 있습니다. 문서는 문단을 교체해 바울에 대한 이론신학적 저작으로 도서를 묘사했고 바울의 정치적 관점의 해석의 조류를 기술했는데 ML(M)주의의 고전을 일독해도 부족할 시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나 황당한 사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판사 서평에서는 보다 더 장문으로 로마서에 대해 기술했고 겸재(재갈을 물림)의 상황에 있던 바울의 회복, 복권을 기술하고 있습니다만 이 점은 역시 지난 20세기의 변혁 사에 대해서 직시하는 것을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서에는 소위 ‘정의로운 공동체 등의 가능성’과 ‘새로운 정치적 사유 등’을 기술했지만 이는 변혁 특히 과학 변혁의 사상, 주의의 거세와 회피를 기술한 것들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정의’와 ‘공동체’가 누구들의 것인지는 불명확하지만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무산자의 것들은 아닌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도서 ‘데리다 바울’은 도서 소개를 의거하면 역시나 역행적인 면을 확인할 수 있는데 전항에서 기술한대로 목차에 ‘니채/니체’를 포함하고 있어 더욱 이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시 도서 소개에서 ‘정의의 추구’를 기술했는데 이 부분 역시도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무산자의 것들이라고 볼 수 없는 내용입니다. 출판사 서평에는 철학과 신학 모두를 풍부화 한다고 기술했는데 분명 오늘날에는 진보의 내용이 아니지만 바로 ‘인본’, ‘인도’적인 지향 자체는 절실한 상황을 너무나 확연하게 체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도서는 ‘예수가 사랑한 남자’로 도서의 소개를 보면 ‘동성애 혐오’와 ‘이성애 중심’적 성서 해석에 의문을 제기한 점등을 제시해 이들 도서들 중에는 가장 적은 폭로의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성서의 해석을 중심으로 한 도서여서 과학 변혁의 사상, 주의의 종교관을 입각한 도서와 함께 보아야 하는 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겐 아직 고무적인 분위기의 미도래 등의 다수 이유들로 인해서 소위 신학을 강조하기까지 한 도서들을 다수 간행(분명 출판의 자유도 존재합니다만 이의 자유를 과학 변혁이 아닌 신학 류 를 위시한 과거 지향적 도서들에 너무나 많이 사용하는 환경의 문제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한 상황인데 이는 여전하게 과학 변혁을 위시한 변혁 관련의 사유의 청산적인 분위기의 봉착 현실을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청산주의의 내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반영했고 학문에 있어서 변혁의 역량의 취약함을 또한 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분위기를 조기에 도래하도록 해야 하고 사상, 주의적 혼란을 경감해야 할 과제를 지니고 있는 것을 확인한 셈입니다.
로쟈의 폭로대상 서한문 ‘바울의 메시아 정치’의 주소는 제시 주소와 같습니다.

 

 

http://blog.aladin.co.kr/mramor/1006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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