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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으로는 당연하게 불충분하다!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8-05-04 07:57
조회
500

오늘 폭로문서는 로쟈의 서한문 ‘노NO로는 충분하지 않다’로 이 서한문은 역시 로쟈의 서평 서한문인데 제목으로 발췌한 ‘쇼크 독트린’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의 근간 ‘노NO로는 충분하지 않다’와 마이클 무어의 영화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사랑/애정 이야기)’를 연상할 수 있는 제목의 아룬다티 로이의 근간 도서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 등의 도서들은 폭로의 도서들인데 도서를 통해서보면 저자가 작금에 현존체제를 반대하는 상황에까지 도달한 점을 일단 확인할 수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제시 도서들에서는 아직도 비 과학의 영역을 완전하게 탈출하지는 못했기에 폭로의 대상들로 제시했습니다. 로쟈는 노암 촘스키의 도서를 위시한 현존의 집권자에 대한 도서 3권을 소개했는데 촘스키의 저서는 고무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는 없는 상황입니다. 나오미 클라인의 도서는 아룬다티 로이가 추천사를 작성한 이유로 하단에 아룬다티 로이를 소개했는데 이들의 한계 지점은 현 시기에 고무적인 분위기에는 도달했으나 아직 세력관계에서 이의 분위기를 대표할 세력의 부재 내지는 부족에서의 문제를 거의 취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현 시기에 걸리미 학[과]이빈/제레미 코빈과 같이 당연하게 한계와 장애를 두고 있는 문제적인 상황의 세력을 볼 수 있지만 진정으로 새로운 생산양식의 사회를 열 수 있는 세력에서 있어서는 여전하게 부재와 부족을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소개 도서들의 일부에서는 희망적인 전망을 강조한 상황도 존재합니다만 이의 희망에서는 아직 문제의 근원인 현존체제의 철폐라는 점은 강조했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물론 분명하게도 전항에서 기술한 것처럼 아룬다티 로이의 근간 도서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는 마이클 무어의 영화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사랑/애정 이야기)’를 연상할 수 있는 제목에서 만이 아닌 어느 정도의 극복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과학에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도서의 출판사 서평 역시도 부정적인 내용의 기술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민중운동으로 바로 잡는 점에서 한계를 볼 수 있기까지 한데 이런 식이라면 점진적으로 오류의 부분들을 교정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 시기에 절실한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산자의 세상을 개창하는 일인데 이 점은 도서의 구체적인 주장을 보더라도 개량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로쟈의 서한문은 ‘이 주의 저자’로 나오미 클라인과 아룬다티 로이를 1차로 선정하고 연속해서는 노암 촘스키를 위시한 현존의 10분지 1 경국의 집권자에 대한 분석을 담은 도서들을 모두 3권 소개했습니다. 서한문은 먼저 클라인의 도서에 대해서 우리 내의 ‘집권자’에 대해서 기술한 것을 기술했고 마치 우리들도 이미 경험했던 것을 기술하면서 누군가의 분석(정확히 장정일)을 연상하는 영화 ‘쇼생크 탈출(비슷한 시기에 압살[솔]롬 탈출도 개봉한 바 있습니다.)’을 기대해도 무방한 방향으로 묘사했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지난 반세기 동안(물론 올해는 68변혁의 만 반세기를 기념하는 연도입니다!)의 가장 위험하고 최악인 조류에 직면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한문에서도 이를 그대로 기술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반세기 전 호황기 속에서의 쇠퇴기를 감지해 변혁을 일으켰지만 과학 사상, 주의의 부재 내지는 부족 상황으로 변혁으로 핵심을 치지 못하면서 확대한 문제는 너무나 큰 비용을 청구했는데 바로 현 시기의 집권자의 돌출은 이의 말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한문은 문단을 교체해 현 시기의 집권자에 대한 노암 촘스키를 위시한 다른 도서들을 추가로 3권을 소개했고 이들 중에서 마이클 월프의 저서 ‘화염과 분노’를 올해의 화제작으로 기술했습니다. 그러나 절망이라는 점은 다소 과정을 발견할 수 있고 희망에서는 여전하게 과학 변혁을 발견할 수 없는데 이 점들은 문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희망은 희망이지 않고 절망은 과잉 반응한 셈입니다. 서한문은 역시 문단을 교체해 아룬다티 로이의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를 제시하면서 이 도서가 보고 성격(르포르타주)의 도서인 점을 강조, 기술했고 로이의 일련의 저작들과 연속선상의 도서라고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로이가 전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오도의 방향으로 향했다고 기술했는데 이의 원전은 오도와 정도의 기준을 명확하게 노동계급중심으로 명기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로쟈의 서한문에서도 여기까지는 기술하지 않았는데 다소 이상에 거대한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연속해서는 이의 오도의 방향을 민중운동을 통해서 잡아야 한다고 기술했고 이 점도 전항과 마찬가지로 변혁을 전제로 한 것 까지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본문을 확실하게 보아야 하지만 이 주장만을 해석하면 개량주의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출판사 서평을 참고하면 더는 대중들이 인내하는 것을 거부한 점을 강조했습니다. 다만 이의 서평 역시도 새로운 사회의 상상이지만 이의 주도 동력까지 기술한 것은 아닌 점을 볼 때 개량에게도 어느 정도 문호를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제는 바로 과학 변혁의 사상, 주의를 강조하는 것인데 도서들에서는 이들을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노암 촘스키와 같은 저자는 이미 과학 변혁을 비판한 과거도 존재합니다.
폭로도서들 중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의 출판사 서평에서처럼 대중들도 이제는 더 이상 인내하지 않는다는 점은 현재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의 소재는 한국 영화에서도 일부 확인할 수 있는데 연 상호 감독의 ‘염력’과 같은 환상 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의 분노의 분출을 수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증폭할 수 있는 과학 변혁의 사상, 주의의 충분하지 못한 조직력으로 확실하게 현존 체제를 종식할 결과물에 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로쟈의 로쟈의 서한문 ‘노NO로는 충분하지 않다’의 주소는 제시 주소와 같습니다.

 

 

http://blog.aladin.co.kr/mramor/1004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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