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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서한 폭로 3제 두 번째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8-02-02 07:26
조회
431

오늘 폭로문서들은 로쟈의 서한 폭로 3제 두 번째로 지난번에 연속한 소시민적 사조, 조류들과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포래희특/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생존자의 비애)에 대한 신 번역에 대한 비판입니다. 작금의 시기의 고무적인 분위기는 비록 일면 반가운 점을 내포했고 이의 영향력도 극히 일부에서는 확인하고 있지만 여전하게도 소시민적 사조, 조류는 지속적인 재생산을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소시민적 지식인들의 역할은 꽤 중요하고 이의 폭로를 한 순간도 나태(비록 보라 납법극/폴 라파르그의 나태 권은 당연하게 지지하지만 투쟁과 폭로는 언제나 열심이어야 하는 점이 있습니다. 먼 고대의 시기의 열심(젤롯)(당) 역시도 이의 열심 은 성격에서는 나태의 다른 표현이었을지는 모를 일입니다.)할 수 없는 너무나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당연하게 이러한 소시민적 사상, 주의의 물질적인 생성요인은 당연하게 제국주의인데 현 시기에 그 분의 도서들을 2종을 신규 발행했고 이전에 발행했던 2종의 도서들 중 1종의 재발행 예정에도 불구하고 이의 폭로, 비판 대상이었던 주의의 존재로 인해서도 끊임없이 재생산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의 영향은 유명한 변혁 운동 진영의 시 마저도 선명성을 희석한 번역으로 발현한 점도 존재합니다. 첫 번째 서한문 살아남은 자의 슬픔(생존자의 비애)은 이전 번역을 제목으로 한 서한문인데 일단 제목까지는 서한문에서도 기술한 그대로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서한문은 신 & 구의 번역을 비교한 문서로 포래희특/브레히트의 시집이 새로운 제목 ‘나, 살아남았지’로 발간한 사실을 기술하면서 시작했는데 이의 감정은 사뭇 다른 것은 필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한문은 과거의 번역 구 ‘살아남은 자의 슬픔(생존자의 비애)’와 비교를 했고 이 점은 어느 정도 적절할 수 있습니다만 감정의 상이점까지는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연속해서 신 & 구의 번역 구 번역본을 김 광규 시인의 번역본으로 올바르게 기술하면서 비교, 제시했고 이를 마친 후 새로운 번역이 늘 더 좋은 번역은 아닌 점을 상기하는 예로 기술했습니다. 다소는 아니 핵심 감정을 생략한 기술이자 비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신 번역본의 제목은 생존한(살아남은) 다행을 연상할 수 있는 부분으로도 개방한 상황입니다. 최 말미에는 처음으로 포래희특/브레히트의 작품 ‘서 푼짜리 오페라’를 일독할 계획임을 기술하면서 종결했지만 무엇보다 서한문에서 종료 직전에 기술한 부분의 강의에서 포래희특/브레히트의 희곡을 그다지 취급을 하지 않은 사실은 현 시기까지의 환경을 제시한 시 만큼이나 밝지 않은 점을 재 확인한 셈입니다. 두 번째 서한문은 ‘철학과 반 철학’이라는 제목의 서한문으로 마치 후설의 ‘현상학’을 보는 듯 한 감정에 ‘철학(물론 이 역시도 슬라보예 지젝과 알랑 바디우 등의 내한에서 보듯 비과학 철학이지만요!!!)’에 대한 종말이라도 선언하는 듯 한 것으로 보더라도 무리는 아닙니다. 물론 철학 역시 ‘지혜를 사랑하는 자’의 의미인 필로 소피에서 유래한 말로 ‘지혜로운 자’라는 의미의 소피스트의 척결이라는 임무를 수행한 바 있습니다만 반 철학은 이의 철학의 소멸의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한문은 독일과 10분지 1 경국에서 활동하는 노서아/러시아 출신의 보리스 그로이스의 저서들을 연속해서 출간한 사실을 기술하면서 시작해 ‘반 철학 입문’이라는 저서를 출간한 사실을 기술했고 이 도서의 목차엔 소시민 철학의 일부를 망라한 상황임도 추가로 연속 기술했습니다. 여기에는 하이데거와 데리다를 기술했고 여타의 작가들과 비평가들을 추가한 상황임을 기술, 소개했습니다. 일종의 소시민 주의의 선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작가 보리스 그로이스가 작가의 소개에서 지난 80년대 초 소위 서방 생활을 한 사실과 도서소개에서 그 국가에 대한 이 도서의 소개 철학자들을 위시한 노서아/러시아 지식인들이 비과학적인 신화적 해석을 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해석에 니채/니체를 포함한 사실은 역시 누구의 주의인지를 또한 여실하게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도서소개를 일독하면 역시 노서아/러시아 출신의 불란서/프랑스 철학자 알렉산드르 코제브가 근대국가의 탄생과 함께 역사의 종언을 주장한 사실을 확인했는데 누군가 다니엘 벨의 종언과도 일맥상통하는 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한문은 진리추구에 대한 무용성을 연결해서 설파했고 이것을 서두로 기술한 사실을 진술했습니다. 이 정도면 너무나 명백한 종말이 아닐 수 없는 내용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서한문은 ‘사회민주주의자 웹 부부의 생각’이라는 제목의 서한문으로 이의 사회민주주의는 과거의 그 분도 속했던 시기인 1920년대 초반까지가 아닌 이 이후부터 현 시기까지의 것임을 알 수 있는데 3권의 분량의 저서 ‘산업민주주의’가 그 유명한 대다수 사민주의 국가들의 지향 체였다는 점을 확인하면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문서는 목록의 문서여서 소개를 한 문서들보다도 더 간략한 데 최근 간인 ‘복지국가의 탄생’을 소개하면서 역자의 해제를 원용, 기술했습니다. 역자의 언사는 너무나 비과학적인데 이제까지 다른 여러 가지에서 비판, 폭로한 내용들의 접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상, 주의의 재건은 현 시기의 난국을 탈출하기 위한 (초 & 극) 최우선의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를 위해서는 이의 지식층을 요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의 층은 너무나도 큰 무리로 감각할 만큼 세계의 이질 도는 너무나 큰 편인데 일부의 지식인들은 존재하지만 적극적인 학파와 같은 층위의 생성에는 그 도달의 정도가 극히 낮은 편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소시민적인 사조, 조류들의 재생산에 맞서기에도 이편의 지식인들의 수는 중과부적인 상황입니다.
로쟈의 서한 폭로 3제 두 번째의 문서의 주소들은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생존자의 비애)

http://blog.aladin.co.kr/mramor/9849976

철학과 반 철학

 

http://blog.aladin.co.kr/mramor/9850982

사회민주주의자 웹 부부의 생각

 

http://blog.aladin.co.kr/mramor/985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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