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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카페에서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8-01-11 07:29
조회
7

오늘 폭로문서들은 로쟈의 2제의 서한문들이고 제목은 각기 ‘실존주의 카페에서’와 ‘모든 사람은 혼자다’이고 폭로도서들은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외 소위 탈근대 주의의 몇 몇의 저작들로 후설의 현상학을 위시한 소위 비과학 그리고 반 변혁의 총아들을 확인, 목도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올해(문서는 비록 지난해의 것들입니다만 이것은 역시 올해의 68변혁 만 반세기를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68변혁 자체는 모 사상/마오주의적인 자장을 지니고 있지만 무엇보다 너무나 비과학적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시까지 20세기 전반과 중반의 변혁 21세기 새 천년이후부터는 20세기 변혁에 대해서 적대적입니다.) 68변혁 반세기를 의식해서 내 놓은 도서들로 볼 수 있는데 올해는 마극사/마르크스의 탄생 만 반세기와 두파의사/두 보이스 탄생 만 1세기 반과 독일변혁 만 1세기를 맞이하는 시점입니다. 무엇보다 지난해가 노서아/러시아에서의 변혁의 승리를 기념했고 또 불란서/프랑스의 제 2변혁 2(1/4)세기의 승리역시 작게(나마) 기념했다면 올해는 패배의 변혁을 기념하는 상황인데 전자의 경우도 세계 제 2차 대전을 승리하면서 일부나마 전환한 정도에 머물렀고 후자의 상황은 그다지 많은 경우에서 이후에도 전환의 여부는 불투명한 채로 맞이했습니다.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의 주요 내용은 소위 실존주의 철학자들에 관한 내용들로 로쟈의 후자의 문서를 의거해 살특/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레몽 아롱이 1932 ~ 3 년 초에 파리 몽파르나스 거리의 한 바에서 살구 칵테일을 마시던 순간을 지목했다고 기술했습니다. 이 시기는 소위 법서사주의/파시즘의 음영을 드리우던 시기인데 이들은 다소는 한가할 수도 있는 논의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27년을 경과하면서 변혁의 물결에서 다소 거리를 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공황기로 접어들면서 식민지들에서마저도 열기가 잦아든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로쟈의 첫 번째 서한문 ‘실존주의 카페에서’는 사라 베이크웰의 신작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을 신간 후보들 중에서 가장 심정적으로 선 도달한 도서라고 언명하면서 시작해 선 소개했던 ‘어떻게 살 것인가’의 동일용도에서의 기대와 저자에 대한 신뢰를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도서의 원제를 기술하면서 이 도서의 원제가 ‘실존주의 카페에서’라는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이야기임을 기술했습니다. 로쟈는 이 도서에 대해 기술하면서 살특/사르트르와 하이데거를 추가 기술했고 무엇보다 특히 후자가 너무도 유명한 납쇄주의/나치즘에 투항한 사실을 감안하면 너무나도 퇴행적인 상황을 담고 있겠습니다. 물론 어디에선가 실존마저도 버거울지 모르는 세상이라면 이것도 진보적인(??) 내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손에 들어야 하는 필연을 주장, 피력하면서 1963년생 저자가 살특/사르트르의 아동/키드임을 기술했고 철학 전공자라는 점으로 살특/사르트르와 그의 일군의 집단에 대한 편찬을 이해한다고 기술했습니다. 그야말로 최소한 비 과학의 편찬인데 저자의 탄생 연도를 보아서 역시 두 번째의 하강기를 대표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서한문의 말미는 거의 1년여를 카페 입구에서 대기한 후 이제 입장했다고 기술했고 살구 칵테일 외 다른 것을 추구하면서 종결했지만 시대적인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철학자들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거의 비판조차 하지 않은 점은 역시나 중첩 확인한 장애에 해당합니다. 로쟈의 두 번째 서한문 ‘모든 사람은 혼자다.’는 선 폭로도서를 일독하다가 보부아르의 도서를 검색한 사실을 기술했고 전항에서 기술한대로 살특/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레몽 아롱의 1932 ~ 3년의 조우에 대해서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연속해서 레몽 아롱이 소위 현상학에 대해서 한창 열을 올리고 소개했고 살특/사르트르가 경악스러운 시선으로 쳐다 본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보부아르는 살특/사르트르가 창백해 졌다고 묘사했고 서한문은 연결해서 신 철학에 흥분했고 친구에게 낙오한 자존심을 구긴 상황이었다고 추가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추가로 당시의 불란서/프랑스에 소개한 현상학의 도서는 레비나스의 ‘후설의 현상학에서의 직관이론’뿐이었던 사실을 기술했고 역시 만족할 수 없었던 살특/사르트르가 아롱의 소개로 독일로 유학을 간 사실까지 기술했습니다. 이 시기는 전항에서 언급한대로 바로 납쇄주의/나치즘의 발흥기인데 문서가 연속해서 기술한대로 후설의 현상학을 위한 유학이자 자신의 식대로 현상학을 소화하고 현대 실존주의의 창시자가 된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이 정도면 현대 실존주의의 위상도 확인할 수 있겠습니다. 문서는 연결해서 보부아르의 저작들(주로 국내 번역의)을 소개하면서 종결했습니다.
현 시기를 형성한 것은 바로 올해 만 1세기를 기념하는 세계 제 1차 대전의 종전과 이 무렵의 독일 변혁인데 이는 1924년 초 까지 이동하다가 실패하고 이 해에서도 겨우 몽골 정도 까지에서만 변혁을 전파하고 차후의 변혁은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에서나 전파했습니다. 이의 방해는 너무나 많은 인사들 우측에서는 에리히 루덴도르프를 위시한 소위 군국주의자들과 납쇄/나치주의자들이 존재하지만 좌측에서는 프리드리히 에베르트(한국의 항거자들이 이 분의 성명을 딴 수상을 했습니다만 사회주의자의 폭로처럼 악영향을 준 것 만큼은 사실과 같습니다.)와 같은 인사들이 존재하는 데 바로 이 좌측의 인사들의 방해로 인해서도 나쁜 상황을 맞이한 것이 현 시기까지의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그리고 소위 실존주의를 위시한 승리의 소실로 인한 결과들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생성한 것인데 너무나 많은 극복대상을 유리해지는 환경과 함께 동시에 목도하고 있습니다.
로쟈의 2제의 폭로대상 서한문들의 주소들은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실존주의 카페에서

http://blog.aladin.co.kr/mramor/9786625

모든 사람은 혼자다

http://blog.aladin.co.kr/mramor/980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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