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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구 체제인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7-11-14 07:59
조회
8

오늘 폭로문서는 로쟈의 ‘구주/유럽 최후의 남자’라는 제목의 서한문으로 역시 한 편으로는 노서아/러시아 변혁 만 1세기를 기념했으면서도 동시에 조지 오웰과 같은 반 변혁을 초대하고 있고 이의 초대로 인해서 더욱 아직도 건재한 찬가라는 감정과 접합니다. 그리고 로쟈의 서한문들이 모두 신간도서를 발행할 시 마다 기술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여전하게 ‘조지 오웰’을 번역, 출간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변혁진영도 일단은 그 분의 저작 전집을 번역, 출간하는 것을 필두로 한 과학 변혁의 고전들을 출간하는 상황이지만 여전하게 반 변혁의 서적들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더 많은 노정을 하면서 출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한문은 청라 국제 도서관의 ‘조지 오웰 다시 읽기’의 강좌의 최종 일정으로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1984’를 보고 뒤풀이 강의를 한 사실을 기술하면서 시작해 이번 주에 개정판으로 발행한 박 홍규 교수의 ‘조지 오웰’을 일독한 사실과 이 재판본이 초판본보다 30면 이상 증보한 판본인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이어서 서한문은 오웰이 ‘1984’를 1946년 8월부터 집필하기 시작해 이듬해 10월 초고를 완성한 사실을 기술했고 초고의 제목이 ‘구주/유럽 최후의 남자’임을 진술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주인공(문서의 ‘주인고’는 오타로 볼 수 있음) 윈스턴 스미스를 지칭하는 제목임을 기술했고 제목의 전환은 이로부터 만 2년 후인 1948년 7월 제 2고를 작성하면서 부터의 일로 기술했고 원고는 11월 완성하고 이후 12월 만 1개월 동안 무리하게 타자를 해서 출판사에 넘긴 사실 등을 상세하게 언급, 기술했습니다. 그야말로 청산해야 할 대상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인데 제목을 ‘구주/유럽 최후의 남자’로 했으면 달랐을 것이라고 기술했습니다. 더구나 집필연도인 1948년이 끝나기 무섭게 넘긴 사실 등에서 의도를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서는 연결해서 ‘1984’를 집필한 장소를 서격란/스코틀랜드의 서편 해안의 주라 섬으로 소개했고 이곳의 반할의 저택에서 초고와 2고를 모두 저작한 사실들을 기술했습니다. 이어서 문서는 ‘1984’를 1949년 6월에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간행했다고 기술(착오사실의 교정)했고 이해 추계에 오웰의 건강 악화의 사실을 연이어 기술했습니다. 물론 소냐 브라우웰과 두 번째 그것도 만 15세 차이의 결혼을 한 사실 등을 추가로 기술했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나 ‘1984’의 주인공 줄리아의 모델이라는 점인데 이는 소설 내용의 현실의 강력한 투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다른 작품 ‘가태란/카탈로니아/카탈루냐 찬가(이하 찬가)’를 이전에 폭로한바 잇는데 이 작품이 영화화 한 작품이라면 오늘의 ‘1984’는 연극화 한 작품으로 상당한 생명력을 자랑하면서 오늘날까지도 상상력을 억압하는 도구로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문서는 이상에서 ‘1984’의 탄생 과정들을 정리했고 이 작품은 어떤 지원과 기획으로 탄생한 작품으로 볼 수 있는데 역시나 문화적인 냉전과도 관련을 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서에는 이 오웰이 저작을 위해서 체류한 곳을 문학 여행 등으로도 기술했는데 정말 냉전의 내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문서는 말미의 문장에 오웰이 3개월 후 인 1950년 1월 21일 사망한 사실을 박 홍규의 번역도서의 오류(사망일자 오류 1950년 1월 25일 등의 몇 몇 가지 이상의 오류들을 범했습니다.) 등을 지적하면서 종결했는데 이전의 ‘찬가’가 투쟁을 왜곡했다면 ‘1984’는 변혁 체제를 왜곡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날에 도달하면서 무엇보다 그 국가와 동구의 붕괴로 인한 일말의 종자로서 비밀해제 문서들을 참조해 진실을 찾은 끝에 어느 정도의 반격의 근거를 구비한 점은 있습니다만 너무나 많은 혹독한 환경과 투쟁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극복대상들을 조우하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미 누군가들의 피력 주장대로 변혁의 미래에의 상을 제시하고 있는 점을 일단 다행으로 포함할 수 있고 이 점에서도 투쟁의 도구는 일단 증가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하게 극복대상들은 내부든 외부든 일단의 현존체제의 지원마저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너무나 비과학적인 그것도 외면부터 이미 비과학적인 존재들 같은 상대적으로 쉬운 존재들부터 변혁을 자칭하고 진정한 세계를 주장하지만 실내용이 조지 오웰과 같은 반 변혁적인 너무나 막강하게 은닉한 존재들도 있습니다.
도서 ‘문화적 냉전’을 참조하면 이 정신적인 영역에서의 ‘냉전’은 은밀함과 공공연함 모두를 이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비 가시 및 가시 영역에서 치열하고 집요하고 은밀하게 탄생했는데 조지 오웰은 이의 탄생을 너무나 극명하게 확인한 장면입니다. 그리고 역시 다른 이와 같은 극복대상들과 함께 오늘날의 재강조이유는 이번의 현존체제의 이면과 이후를 봉쇄하는 효과에서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20세기 변혁들의 허언들을 폭로한 상황에서도 여전하게 인식의 지체 현상을 발견한다면 이와 같은 정신영역에서의 냉전의 효과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쟈의 ‘구주/유럽 최후의 남자’라는 제목의 서한문의 주소는 제시 주소와 같습니다.

 


http://blog.aladin.co.kr/mramor/9678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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