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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기피 하는가?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7-08-17 08:20
조회
871

오늘 폭로문서는 한 석호의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이율배반’으로 이 칼럼에서 기피언어를 폭로했는데 여기에는 기피언어는 존재하지만 기피실천은 존재하지 않는 즉 실천과 언어의 괴리 내지는 배반 현상은 언급조차 하지 않은 문서입니다. 문서는 자본의 본성(물론 매체에 당연히 ‘노동’ 명칭을 포함하므로!)도 폭로해 노동 편 인 것처럼 작성했지만 당연하게 과학은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누군가처럼 반 과학적이기까지 합니다. 문서의 초두는 한국 노동운동의 기피 단어 3종을 제시하면서 시작해 이들 3단어 ‘개량’, ‘양보’, ‘타협’이 이와 같은 기피단어로 제시한 환경의 연원을 1980년대의 변혁주의에서 찾았고 특히 ‘개량’이라는 단어는 사용양태까지 폭로했습니다. 이어서 자본과 정부의 책임을 지속해서 물었는데 이 점은 특별히 더 심한 상황이긴 해도 이미 마극사/마르크스로부터의 과학의 연원을 상기한다면 준 상수적인 존재라고 사고할 수 있는 것을 정책으로만 보는 시각입니다. 이어서 문서는 운동노선도 중첩의 책임을 진 존재라고 기술했는데 그야말로 이 자의 너무나 뻔한 본성을 노정하는 순간입니다. 이미 자신 역시도 자본과 정부의 원인을 언급했으면서도 저런 개량적인 상황을 존재, 존속하기를 원하는 이율배반의 위선을 행하고 있습니다. 문서의 다음은 더 어이없기까지 한데 물론 대부분의 현상이긴 하지만 희랍/그리스의 PAME와 같은 변혁적 조직노동자들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사실에도 어긋난 발언을 기술했습니다. 오히려 작금까지 이와 같은 현존 체제 하에서의 존속 상황 동안 현존 체제를 이유로 한 (자기) 배반적인 실천이야말로 너무나 큰 문제를 노정했고 오늘 날까지 온 주범들 중 하나인데 역시 이 체계를 신봉하는 이의 문서는 이렇듯 너무나 확연한 상황을 노정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경제주의적인 투쟁을 투쟁의 최종목표로 삼고 투쟁의 기본 목표 역시 개량의 확장을 주문하는 너무나 어이없는 행태를 일삼고 있는데 연결해서 타협과 협조로 고착화한 원인의 파악도 참 어이가 없습니다. 이 원인을 두 가지의 투쟁을 들었지만 올해 노서아/러시아 변혁 만 1세기와 동구권 붕괴 만 1/4세기 전의 승패의 교차에서처럼 후자의 패배의 연속으로 인한 사실을 두 가지의 투쟁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이유와 현상에 대한 단락 역시도 (초 & 극) 표피적인 현상에 심취해 사실을 왜곡했는데 그야말로 너무나 모순적인 순결한 변혁을 유도라도 하듯 언급한 장면입니다. 문서는 다음에서는 산별과 기업별 조직형태를 비교하는 듯하면서 역시 산별만능주의로 침윤해갔고 산별 개량 만능과 절대 선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문서는 말미로 향하면서 역시나 본색을 노정하기 시작해 ‘어떤 양보’와 ‘어떤 타협’의 문제를 질의했고 이를 위한 사회과학까지 언급했지만 이는 상당한 곡학아세마저 준비한 셈입니다. 최말미의 부분은 거의 투항을 위한 설교라고까지 볼 수 있는데 승리의 전망을 상실한 그러나 아직 회복하지는 못한 상황에서 저항 위주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 문제라는 점을 고의적으로 은폐한 것입니다. 물론 ‘연대임금’이 ‘연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반 노동적인 사실은 이미 다수의 문서들에서 충분하게 폭로, 주장한 바 있습니다.
현 시기에 도달하기 까지 절대 다수의 운동들에서 문제는 많은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이 문제의 상황은 그때까지의 물질 환경의 결과물이기도 한데 문서에서는 이 결과물로서의 운동 대신 이기심으로서의 운동과 같은 (고도의) 속물적인 이유로서의 운동을 지적하면서 매체는 물론 노동 등의 단어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 시기의 다수 세계에서의 노동운동의 투쟁을 포함한 투쟁들이 수세적, 저항적인 것은 특정의 변혁 사상, 사조, 조류, 주의, 이념의 부재내지는 (과)부족의 현상에서 유래한 것인데 지면제한을 고려해야하는 칼럼 종류의 문서임을 고려하더라도 이 부분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또 한 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저와 같은 류의 사고의 부유 역시 이를 반증하는 증거이고 구주/유럽에서 개량을 확보했던 또는 한 이유도 엉터리인데 이것은 세계 제 2차 대전을 위시해 이 전후로 과학 변혁의 주의와도 결합한 투쟁을 일으킨 탓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존재하는 운동도 특히 더 수세적인 것 또한 이유가 너무나 명백한데 바로 노동에 극도로 불리한 역사적인 환경의 존재로 이러합니다. 물론 이 부분의 이야기는 너무나 복잡하니 분량 상 맞지 않는 점은 있지만 왜곡과 생략이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문서는 노동운동에 너무나 많은 부분의 기대를 하고 있지만 이 노동운동에도 활력을 넣는 것은 변혁 정당이지 조직 노동 자체는 아닙니다. 이미 이 점은 19세기의 마극사/마르크스와 은격사/엥겔스도 절감한 바 있는 경험인데 역시 이런 경험으로부터 유래한 점을 찾을 수 없고 간신히 있는 역사는 1980년대의 변혁 주의적인 역사 그것도 탓을 하기 위한 역사만이 존재하는 문서입니다. 작금의 시기 극단적으로 까지 야만적인 역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만 이는 변혁세력의 성장속도에 비해서 내외부의 야만의 역사의 발전의 속도가 빠른 탓이었습니다. 이 점은 정당도 형성하기도 전에 붕괴한 변혁 운동에서 발견할 수 있고 이후의 진보정당들은 그나마 운동의 상승을 전제로만 거의 존재하는 듯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의 이유가 가장 큽니다. 작금의 노동운동의 문제는 오히려 변혁정당을 위시한 친화적인 이론의 부재로 인한 것입니다.
한 석호의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이율배반’의 주소는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볼 수 있는 한겨레의 박 노자 칼럼도 비교로 소개드립니다. 후자를 수용하는 것도 일부분 이상은 문제가 있지만 현 시기 까지 이어진 수세의 근본적 기원을 알 수 있는 문서입니다.

 

한 석호

 

http://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6116

 

 

박 노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8&aid=0002375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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