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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이어야 한다.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7-08-11 07:54
조회
971

오늘 폭로문서는 김 갑수의 일련의 연속물 ‘낙망의 시간에 희망을 보다’의 두 번째 문서로 첫 번째는 구 해산정당에 관한 문서이고 세 번째는 두 번째의 연속으로 구체적인 상을 표명한 것인데 세 번째는 언급한 연속이자 일부는 너무나 구전의 시간에 머무른 것이어서 첫 번째와 함께 폭로에서는 제외하는 문서입니다. 세 번째는 간략하게 결론으로 공익 공유주의를 주창하고 있지만 이 만큼 비과학적일 수는 없다고 볼 수 있고 이는 현존체제와 변혁체제의 중간만큼이나 그 규정은 제법 모호합니다. 또 한 가지 세 번째는 신민족주의를 함께 언급했는데 이는 현(대) 사회의 계급분할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하지 않은 인식 자체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나머지 규정들은 이미 새로운 사회를 규정한 구도에는 전혀 맞지 않은 구 국가의 건국일을 위시한 어이없는 규정이고 이 보다는 다른 단체의 ‘전승 절’ 규정이 더 좋아 보이기까지 합니다.(물론 이 역시 지지대상은 아니지만 이 만큼 옥시덴탈리즘은 짙지 않다는 반증을 위해 제시했습니다.) 폭로대상인 두 번째의 문서는 이미 이전부터 반복했던 광범위한 ‘의존주의’의 예증(…)으로부터 시작해 소위 봉건제론과 역사 발전 법칙론을 기술하면서 전개 했습니다. 이것들은 이전부터 언급해 온 대로 구성체에 대한 논쟁들 중 하나인데 재규정을 요구한다고는 해도 일단의 전근대인 점은 유효합니다. 식민주의의 도괴의 문제 이 중에서도 의식에서의 도괴의 문제는 너무나 중요하지만 이 논객의 문서들은 이들 식민주의나 ‘모양주의’의 범위가 지극히 광범위하고 ‘국가자본주의론’, ‘제 3 지대론’만큼이나 일방적인 규정들입니다.(다만 후자의 둘이 이미 변혁에 성공한 국가를 방어하는 문제를 기권한다면 전자의 둘은 이 문제에서는 일단 자유롭습니다.) 물론 특정단계의 부재(??)를 이유로 하는 발전론과 같은 도식 론은 당연한 문제를 지니고 있고 발견 즉시의 극복대상입니다만 논쟁적인 문제를 너무나 쉽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일방 규정하는 문제도 극복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단락에서 역시 한 교수의 언사를 등재했는데 이 점은 도식의 극복 정도를 해석하면 맞을 정도를 과장 해석을 보위하는 데 사용한 점이 있습니다.) 이어서 유명한 모택동/마오쩌둥의 언사를 인용했고 여기서는 일단 역사와 변혁의 조우의 과정의 구체화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언사 이후의 해석은 그야말로 수정주의자들보다 더 과감한데 마극사/마르크스주의는 언사의 원 발언자의 다른 언사에서는 저 단계를 극복한 종료시점까지 유지, 발전해야 한다고 한 명언과는 너무나 배치하는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몇 몇의 언사들을 언급하다가 다음에는 우리에 대해서 기술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일단의 현존체제의 심화라는 올바른 언사를 제시하면서도 여실하게 사상, 주의적인 비과학성과 파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급투쟁은 작금에도 언제든지 관찰 가능한데 이 정도면 20세기의 반식민지 상황에서의 중국이나 다른 식민 치하에서의 변혁을 진행한 국가들이라도 제대로 파악해야 할 텐데 이 점은 없고 앞에서는 발전을 언급하면서 계급 내 분할마저도 진술하면도 뒤에서는 민족주의 사관을 주장하는 불일치마저 노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ML파를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데 후의 비판적 지지는 도대체 누구 진영을 의미하는지도 모호하기까지 한 명예 훼손적인 언사이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왜 절실하기까지 한 중국에서는 성립하기까지 한 과정이 왜 이 땅에서는 성립하지 못한 탓일까요? 문서의 말미에는 심지어 불파불립을 언급하는데 건립한 것조차 모호, 부재한 땅에서 이것은 무엇을 지칭하는 언사일까요? 이유는 바로 일시적인 역사들(가령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 892 년 ~ 918 년 정도 조금 더 추가해도 936년 까지)을 제외 하고는 대부분의 역사들은 최소 반 천년에서 최대 천 년 가까이까지 장기간의 왕조들이 3 ~ 7 ~ 8(8은 고조선 포함 시) 왕조가 존재하는 등 사상, 주의를 형성할 환경을 조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서 일제강점기마저도 상당한 세기를 지낼 것이라고까지 사고한 것이지요.
현 시기에 대한 전환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니 물론 옥시덴탈리즘적인 ‘신민족주의’까지 선언했겠지만 이것은 과학 변혁의 사상, 주의를 재건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물론 서양 일변도를 위시한 다른 곳 환경만을 고려한 것은 큰 문제이나 이들은 과학의 기본에 속합니다. 이 역사가 복잡해진 탓도 이와 같은 비 과학의 존재의 이유인데 20세기 초는 겨우 초반에 유입한 사상, 주의가 잇 단의 을사 늑약(1907)과 경술국치(;; 1910)등의 긴박한 역사 속에서 유실되고 20세기 후반은 그 동안의 상실과 부재의 역사를 극복하는 과정이 그 국가와 동구권의 붕괴로 역시 그 시간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서 오늘 날에까지 도달한 결과입니다. 이러니 다소의 시간을 소요하는 것 내지는 다수의 해외 지역의 영향을 받거나 적극적으로는 참가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상 필연적인 수순이지요.
사상, 주의는 과학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세기 가까이 내지는 이상 늦게라도 중국이 1919 ~ 37년 까지 했던 형성과정을 거치는 것은 필연입니다. 다만 시간을 저 만큼(18년) 많이 걸리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김 갑수의 ‘낙망의 시간에 희망을 보다’의 두 번째 문서의 주소는 제시 주소와 같습니다.

 

 

김 갑수

 

http://www.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4&uid=486&table=c_booking

 

전체 3

  • 2017-08-19 18:36

    최근 노동당을 지지하는 노동단체인 좌파노동자회가 평등노동자회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름으로 본다면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그렇지만 그 단체의 전신이었던 전국노동자회 활동가들이 내걸었던 노동운동 단결슬로건이 얼마나 비계급적이었는가를 바로 안다면 시급히 단결슬로건에 대해서 논쟁을 넘어 정치노선으로까지 혁명적 변신이 필요합니다. '좌파노동자회'의 전신인 '전국노동자회'가 내걸었던 슬로건은 두가지 입니다. 가장 첫 구호는 '노동자는 하나이다'이고 다른 구호를 이 구호를 변경한 '우리 노동자는 하나이다' 물론 이 깃발이 노동운동 뿌리조차 말라버린 신식민지 남한에서 고난의 세월을 걸어야 했던 노동운동의 구호였으며 오늘날의 촛불을 이끈 전역사적인 노동운동의 슬로건 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밖에 못했습니다. '노동자는 하나다'는 구호는 현실의 전제조건으로 '노동자는 하나로 단결하지 못했다'를 자생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거기에서 어떻게 조직 노선을 결정할 지가 담겨있지 않는다. 물론 분열되어 있다는 전제조건은 맞습니다.노동운동의 목적을 상실했습니다. 노동운동의 목적은 단결이고 투쟁입니다. 노동자들이 비노동계급적 정당인 진보정당의 입김으로 분열되어 있다면 현실의 운동의 전진을 위하여 단결을 재촉해야 합니다. 노동자가 수구파쇼 세력에 의해서 분열되었기 때문에 하나의 정치적 슬로건아래 단결해야 한다는 점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는 하나다'는 자생적 노동운동이 정치운동에 참여하라는 호소하는데서 멈춰버립니다. 노동자계급당을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소부르주아적 입김이 강한 진보정당에서 어긋난 혁명을 배우라는 결론으로 빠집니다. 두번째로 '노동자는 하나다'는 오래를 불러 일으키고 파시즘과 구별이 안되는 메아리입니다. 당시 노무현정부이후에 전개된 노동운동에서 학출들이 노동운동에 투신을 했는데 당시는 비정규직 노동운동과 조합주의 노동운동이 혁명적 노동운동의 질적 변화를 막고 있었습니다. 이 구호는 이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노동운동의 분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더 과학적인 슬로건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조합주의 타협주의 정규직 노동운동의 사상적 뿌리는 사회타협주의입니다. 더많은 임금을 받아내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부르주아들이 하는 정치를 흉내냈었고 노동자들의 무기인 파엽을 버리고 타협을 선택했고 제국주의 반대 깃발을 내걸지 못했습니다. 좌파노동자회는 과정에서 투쟁전술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규직을 향하여 과학적인 비판보다 하나의 조직을 요구했습니다. 하나의 조직인 민주노총에서 다수의 정파가 단결자주권과 정치세력화를 나눠먹기 하는데도 좌파노동자들은 과학의 부재로 개량을 폭로하지 못하고 울먹이며 하나를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고로 이 슬로건은 가장 치명적인 약점인 국가주의와 혼동을 일으킵니다. 국가주의의 근원은 파시즘 군사주의인데 에비역더러 하나로 단결하라고 하면 군사주의로 경도되어 여성활동가들이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즉 단결지향점은 있었지만 과학적 노선의 부재로 제국주의 전쟁을 부채질하는 사회애국주의에 대해서 비판의 날을 잃게 됩니다. 우리 운동의 깃발은 노동해방입니다. 이 목표를 상실했기에 좌파 노동운동은 패배를 해야 했습니다. 다음으로 '노동자는 하나다'다음으로 나온 것이 '우리 노동자는 하나다'입니다. 현대차그룹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과 파업을 하면서 '노동자는 하나다'에서 '우리 노동자는 하나다'로 질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결자주권의 주체가 소부르주아 활동가에서 현장 노동자로 이동하게 된 것입니다. 혁명적인 발전입니다. '우리노동자들이 하나로 단결하였다'를 내건 최초의 노동자혁명입니다. 그러나 단결의 주체가 되는 현장 노동자들이 역사적 투쟁을 시작한 것은 혁명이지만 무슨 깃발로 '하나다'인지 제시하지 못합니다. 단결투쟁이 경제적인 요구를 위한 투쟁인지 정치적인 요구를 위한 투쟁인지를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시행착오는 지금에서야 어느 정도 풀리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좌파 노동자가 '급진적 노동자'라는 표상을 버리고 '평등노동자'라고 개칭은 통해 혁명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아직 확인할 수 없는 것이 평등한 노동자로 단결하려면 어떤 단결의 조건이 선행되어야 하는지가 불분명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경제주의와 선을 확 긋지 않고 있습니다. 이 투쟁을 견인한 진보정당의 계급적 성격이 한계입니다. 현실에서 노동자들은 하나가 아닙니다. 종교가 다르고 학력이 다르고 업종이 다르고 성별과 국적이 다르고 다른 지역에서 살아갑니다. 이들을 하나의 깃발아래 묶어 세우려면 하나의 조직이 필요한 게 아니라 하나의 지도이념과 그 이념을 세워가는 하나의 깃발이 필요합니다. 즉 소부르주아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노동운동을 노동자사회주의로 바꾸려면 더 치열한 노선투쟁과 학습투쟁 그리고 정치투쟁이 필요합니다. 조합주의의 기반인 노동조합에서 어떻게 단결자주권을 세우고 실현할 것인가는 바로 이런 역사적 과정속에서 과학적 사상에 얼마나 근거했는가로 밝혀집니다. 우리의 깃발은 노동해방이고 단결투쟁입니다. 형식적 평등을 넘어서기 위해서 소부르주아적 잔재를 깨뜨리려면 내적인 계급투쟁이 절실합니다. 노동자는 하나는 아니지만 다가오는 노동해방 사회를 실현하려면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이것이 관철되려면 맑스레닌주의 역사와 그 실천을 이어가는 단결의 깃발이 절실합니다. 평등노동자회는 노동단체를 넘어서려는 투쟁을 시작하십시오! 당장 남한의 혁명적 노동운동의 당면 임무는 평등노동자회에서 더 나아가서 노동자소비에트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 투쟁을 회피한다면 촛불혁명은 완전히 꺼지고 말 것입니다. 개혁정당 민주당과 손잡고 자한당을 무너뜨립시오. 그런 다음에 신식민지 반대 노동해방 혁명을 이어갈 촛불을 모으십시오. 한반도 평화는 반제국주의 깃발 아래서만 가능합니다.


  • 2017-08-15 19:46

    오늘날 남한 신자유주의 신식민지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신분제와 신분차별로 받아들이는데 비정규직 문제는 결코 신분제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토대가 되는 자본주의가 봉건제로부터 신분제 그 잔재가 완전히 철폐되지 않고 남아있어서 우리의 의식중에서도 신분제로 받아들입니다. 문재인정부가 당선직후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하여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약속하자 눈물을 흘리며 신분상승의 꿈을 이루었다고 자유주의 환상에 빠져서 길길이 축복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결코 현실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순응입니다. 지난 14년간 남한 파쇼정권에 자유와 권리를 빼앗기고 노예생활을 한 비정규직으로 그 감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지만 비정규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독점자본이 어떻게 노동계급을 분할하고 통치하여 왔는가를 알고 그 신분제적 자유주의에 맞서 10년이상을 거리에서 농성투쟁을 벌이며 싸워온 비정규직 투사들의 곤경과 처지 그리고 투혼을 바로 안다면 노동귀족과 근로종족으로 갈리워진 노동계급이 나아갈 바가 분명해집니다. 물론 이 신분제적 차별에 대해서 여성주의도 한 몫 했습니다. 공무원급으로 대우받는 정규직에게 추파를 던졌고 파쇼의 노예로서 밤낮으로 일하고도 사회진보의 기초인 노동을 영위하는 계급인 비정규직에 대해서 지배자편에서 박절했습니다. 사회를 바꾸는 계급인 노동계급의 본성을 강탈당하고 저임금에 시달려온 기나긴 고난을 생각한다면 마땅히 혁명적 분출은 일시적으로라도 불가피합니다. 이명박근혜 9년간의 극우파시즘 치하에서 잉여가치를 강탈당하고 제국주의 신식민지 체제의 생산의 직접적 담당자로서 그 어떠한 배려도 없이 노동에 치여 살아왔다면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폭로하는 투쟁에 열정적으로 결합한 전위적 투사가 없었다는 것은 크나큰 불행이었습니다. 이를 분석하자면 파시즘의 공포정치 속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 지배를 파업투쟁으로 뛰어넘지 못하고 국가 폭력앞에서 체념하고 혁명의 투혼을 사르지 못한 노동계급의 선진투사들의 역량부족으로 삼기에는 너무도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우리나라가 신식민지라면 그 최상위 포식자는 미일유럽 제국주의의 군사주의와 금융독점입니다. 그들이 개도국과 신흥국에 자본을 수출하고 군사력 점거를 통하여 시장을 분할 통치하면서 식민지 초과이윤을 착취해온 금융블럭과 군국주의적 행보에 대해서 타격을 가하고 총파업 투쟁에 적극 결합하여서 제국주의-신식민지-구식민지 위계적 지배체계에 파열구를 내고 노동해방의 장엄한 투쟁과 전진이라는 혁명 깃발을 들어었야 했습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대해서 신분차별을 받은 이유는 이것이외에도 신자유주의와 타협한 개량주의 정권인 김대중-노무현정부의 반-비 노동정치에서 유래합니다. 노동조합의 자주적 투쟁을 억누르는 국가보안법과 노동악법을 앞세워 노동자계급의 정당을 발본색원하고 그나마 진보적이었던 민족주의 정치가들마저 노동해방을 외면하고 노동계급의 해방투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신자유주의 정권에 타협했습니다, 공안악법을 앞세워 그들의 정치투쟁을 자주정부 전진이라는 역사적 투쟁의 무대에서 끌어내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계급문제는 비단 북미간의 미사일갈등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상용직이 아니라서 노동에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2등급 노동자로서 살아야하는 근로대중을 투쟁으로 혁명의 주체세력으로 세워내야 합니다. 그러나 자주적인 투쟁인 파업대오를 침탈당하고 단결금지법과 파업금지법으로 짓밟혀 신자유주의 자본의 노예로 굴종해온 역사는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정치적 계급의식의 부재에 가장 큰 원인이 있습니다. 노동자와 근로자가 다르게 정의되는 것처럼 민중해방과 노동해방은 다르게 규정됩니다. 노동계급이라면 당연히 노동계급의 당으로 단결해야 하고 민족주의적 해방에 대해서 원칙적 관점에서 비판의 시각을 견지하고 노동해방을 쟁취할 수 있는 물질적 근거로서 노동조합과 전위당을 지도세력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노동계급은 단결투쟁을 통해서 자주정부를 향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전위당의 깃발아래 단결하고 파업을 마다않는 투쟁전술의 전개로 혁명의 주체세력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제국주의 대 사회배외주의 간의 패권전쟁에 맞서서 평화협정의 체결을 요구하고 국제적으로 단결해야 합니다. 그 기반적인 힘으로서 전위당 깃발과 노동해방 선봉대 깃발은 불가피합니다, 단결하는 계급으로서의 만천하에 위용을 드러내야 합니다. 촛불은 노동자혁명입니다. 노동자들이 파시즘에 맞서서 일어난 위대한 한반도 혁명이고 전진입니다. 이 노동자혁명이 성공하려면 계급적 본성이 단결인 노동계급이 선봉의 투사, 사회주의투사를 지도자로 삼아 자주적 조직을 건설해야 합니다. 노동계급의 단결자주권은 오로지 가두투쟁과 현장투쟁 그리고 이 투쟁이 뒷받침하는 파업투쟁을 통해서 관철됩니다, 파업을 통해서 독점자본가와 그들의 진영주체인 제국주의에 타격을 가할 때만이 노동해방은 쟁취될 수 있고 신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전쟁반대 평화쟁취 기치아래 제국주의 식민주의 전쟁반대의 깃발을 들고 투쟁해야 합니다. 노동해방 새로운 세계로 향하여 굳세게 단결하여 나갑시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지도아래 혁명을 학습합시다.


  • 2017-08-20 08:49

    최근 노동당을 지지하는 노동단체인 좌파노동자회가 평등노동자회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름으로 본다면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그렇지만 그 단체의 전신이었던 전국노동자회 활동가들이 내걸었던 노동운동 단결 슬로건이 얼마나 비계급적이었는가를 안다면 시급히 단결을 부르는 슬로건에 대해서 논쟁을 넘어 정치노선으로까지 확장시켜야 합니다. 혁명적 변신이 필요합니다. '좌파노동자회'의 전신인 '전국노동자회'가 내걸었던 슬로건은 두가지 입니다. 가장 첫 구호는 '노동자는 하나이다'이고 그 뒤를 이은 다른 구호는 이 구호를 변경한 '우리 노동자는 하나다'입니다. 그렇지만 단결은 없었습니다. 물론 이 구호가 노동운동 뿌리조차 말라버린 신식민지 남한에서 고난의 세월을 걸어야 했던 노동자에게나 사회주의에 목말랐던 인텔리에게 다가선 혁명적 노동운동의 구호였으며 오늘날의 촛불을 이끈 전역사적인 노동운동에서 소수파적인 행동으로서 단결을 부르는 슬로건 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밖에 못했습니다. '노동자는 하나다'는 구호는 현실의 전제조건으로부터 도출되었습니다. '노동자는 하나로 단결하지 못했다'를 자생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거기에서 어떻게 단결투쟁이라는 조직 노선을 결정할 지가 담겨있지 않습니다. 물론 민주노총이 분열되어 있다는 전제조건은 맞습니다.노동운동은 목적 의식도 상실했습니다. 민주노총은 '혁명'과 '의회주의 개량'으로 분열되어 있습니다. 혁명적 노동운동의 당면한 목적의식은 계급적 단결이고 투쟁입니다. 노동자들이 비노동계급적 정당인 타 진보정당의 입김으로 분열되어 있다면 현실속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전진을 위하여 단결을 재촉해야 옳습니다. 그러나 노동자가 수구파쇼 세력에 의해서 분열되었기 때문에 하나의 정치적 슬로건아래 단결해야 한다는 점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는 하나다'는 자생적 노동운동이 정치운동에 참여하라는 호소를 공장안에서 소리치는 데서 멈춰버립니다. 선봉에선 우리는 노동자에게 단결을 조직하라고 가두에 나오라고 호통쳐야 합니다. 이러한 깃발이 없다면 노동자계급당을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소부르주아적 입김이 강한 노동당에서 대의에 어긋난 혁명을 배우라는 결론으로 빠져듭니다. 두번째로 '노동자는 하나다'는 미조직 노동자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조직노선이 파시즘과 구별이 안되는 메아리입니다. 당시 노무현 정부 이후에 전개된 노동운동의 변곡점에서 일부 학출들이 노동운동에 투신을 했는데 당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운동을 벌이고 있었고 이른바 정규직은 조합주의 노동운동에 경사되고 있었습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발적인 파업투쟁, 이것이 부르는 혁명적 노동운동의 질적 변화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이 구호는 이들의 관심조차도 받지 못했습니다. 노동운동의 분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더 과학적인 슬로건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규직 노동운동의 조합주의이고 타협주의 노동운동이 주장하는 정치세력화라는 합법주의 노동운동의 사상적 뿌리는 사회협력주의입니다. 더많은 임금을 받아내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부르주아들이 하는 정치를 흉내냈었고 노동자들의 무기인 파업을 버리고 타협을 선택했었고 제국주의 반대 깃발조차 내걸지 못했습니다. 좌파노동자회는 과정으로서 명제인 투쟁전술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규직을 향하여 과학적인 비판보다 하나의 조직만을 요구했습니다. 제국주의 반대가 없는 구호 '노동자는 하나다'는 하나의 조직으로 귀결되는 소수 종파적 노선으로 추락입니다. 하나의 조직을 넘어서는 민주노총에서 다수의 정파가 단결자주권을 팔아 정치세력화를 나눠먹기 하고 있는데도 좌파노동자들은 과학의 부재로 민주노총과 정파들의 개량을 폭로하지 못하고 단결을 재촉하지도 못했습니다. 생태를 울먹이며 노동자조직 하나로 통일하자는 써클주의를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슬로건은 가장 치명적인 약점인 국가주의와도 혼동을 일으킵니다. 국가주의의 근원은 파시즘 군사주의인데 에비역더러 하나로 단결하라고 하면 군사주의로 경도되고 기초조직인 급진적 노동단체를 버립니다. 여성활동가들이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즉 단결의 지향점은 가지고 있었지만 과학적 노선의 부재로 단결의 깃발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써클주의적 깃발은 제국주의 전쟁을 부채질하는 사회애국주의에 대해서 비판의 날을 잃고 맙니다. 우리 운동의 깃발은 단결투쟁이고 노동해방입니다. 부르주아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게 제일 먼저 난관으로 봉착한 지금의 투쟁 목표입니다. 써클적 운동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 목표를 상실했기에 좌파 노동운동은 가두에서 패배를 해야 했습니다. 다음으로 '노동자는 하나다'구호 다음으로 나온 슬로건이 '우리 노동자는 하나다'입니다. 현대차그룹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과 파업을 하면서 '노동자는 하나다'에서 구호를 변경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농성투쟁을 하면서 쟁취한 '우리 노동자는 하나다'로 질적인 발전을 겪게 되었습니다. 단결자주권의 주체가 소부르주아 활동가에서 현장 노동자로 이동하게 된 것입니다.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우리노동자들이 하나로 단결하였다'를 전세계에 내건 남한 비정규직 최초의 노동자 파업 슬로건입니다. 그러나 단결의 주체가 되는 현장 노동자들은 역사적 투쟁을 시작하고도 무슨 깃발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지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결투쟁이 경제적인 요구를 위한 투쟁인지 정치적인 요구를 위한 투쟁인지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시행착오는 지금에서야 어느 정도 풀리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좌파 노동자가 '급진적 노동자'라는 표상을 넘어서서 '평등노동자회'라고 개칭을 통해 평등사회로 가는 혁명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아직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평등한 노동자로 단결하려면 어떤 단결의 조건이 선행되어야 하는지가 발표문조차 없어 불분명합니다. 직감적으로 말해 경제주의와 선을 확 긋지 않고 있습니다. 이 투쟁을 견인한 진보정당의 계급적 성격이 한계라고 밝히고 있지도 않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노동자들은 하나가 아닙니다. 종교가 다르고 학력이 다르고 업종이 다르고 성별과 국적이 다르고 다른 지역에서 살아갑니다. 사회적 지위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집니다. 이들을 하나의 깃발아래 묶어 세우려면 하나의 조직이 필요한 게 아니라 하나의 지도 이념과 그 이념을 세워가는 여러 명의 혁명가와 하나를 넘어서려는 단결의 깃발이 필요합니다. 즉 소부르주아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노동운동을 노동자사회주의로 바꾸려면 더 치열한 노선투쟁과 학습투쟁 그리고 가두에서 촛불을 드는 실천으로서의 정치투쟁이 필요합니다. 조합주의의 기반인 노동조합에서 어떻게 단결자주권을 세우고 사회정의를 실현할 것인가는 바로 이런 역사적 실천 과정속에서 촛불처럼 녹아나야 합니다. 촛불이 노동자편인지는 그 투쟁이 과학적 사상에 얼마나 근거했는가로 밝혀집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는 하나다'는 자생성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깃발은 노동해방이고 평등사회로 나아가는 단결투쟁입니다. 형식적 평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혁명적 실천이 필요합니다. 소부르주아적 잔재를 깨뜨리려면 내적인 계급투쟁이 절실합니다. 노동자는 아직 하나는 아니지만 다가오는 노동해방 사회를 실현하려면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이것이 관철되려면 평등세상의 등대지기 노동자 촛불처럼 하나로 나아갈 사상이 필요합니다, 맑스레닌주의라는 과학적 투쟁의 역사와 그 실천을 이어가는 단결의 깃발과 하나의 조직노선이 절실합니다. 평등노동자회는 하나의 울타리를 고집하는 노동단체를 넘어서려는 투쟁을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의 조직을 넘어 민주노총에 다가가야 합니다. 남한에서 혁명적 노동운동의 당면 임무는 통일이 먼저라기보다 자주적 평화가 먼저입니다. 자주적 평화를 앞당기는 단결투쟁입니다. 이제 좌파적 노동자들은 노동자는'하나다'라는 말대신 스스로 개칭한대로 '우리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단결의식으로 뭉쳐야 하고 '노동자는 평등하다'라는 단결의 깃발을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분열된 노동운동을 묶어세우려면 '평등'의 기치아래 민족적통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좌파노동자들은 하나의 조직 평등노동자회에서 더 나아가서 위대한 혁명 조직 노동자평의회, 노동자소비에트를 건설하는 것을 당면 임무로 삼아야 합니다. 이 역사적인 투쟁을 회피한다면 촛불혁명은 완전히 꺼지고 민주주의 혁명은 사그라지고 말 것입니다. 개혁정당 민주당과 비판적으로 손잡고 자한당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자한당이 무너진 자리에 평등의 깃발을 든 촛불혁명가 정당을 세워내야 합니다. 이런 현실적 토대위에다 신식민지 반대 깃발을 든 노동해방 혁명을 이어갈 노동자촛불을 모아나가야 합니다. 한반도 자주적 평화는 반제국주의 전쟁반대 깃발 아래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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