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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변혁의 ML 주의적 이해를 위하여!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7-08-05 07:40
조회
896

오늘 폭로문서는 김 갑수의 변혁에서 습득해야 할 교훈에 대한 문서로 현 이섭의 중국지와 관련한 동양사 강의에 대한 문서인데 당시의 ML 주의자들에 대한 논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 50강의 강좌는 최근에는 3권으로 분간한 중국지에서 출원한 강좌로 중국 변혁사의 핵심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문서는 이를 소개하면서 이윽고 만 1년에서 2 ~ 3일을 더한 시간동안의 대장정에 대해서 진술했고 내부의 우 편향과 좌편향과의 투쟁을 기술했습니다. 일단 우 편향 즉 우경투항에 대해서는 너무나 명백한 반대 대상인데 이 우 편향의 중심인물 장국도/장궈타오에 대해서 장개석/장제스에게 투항하고 당시 영국령의 항향/홍콩에서 생을 마친 것을 기술했습니다. 물론 이의 행적이 나쁜 그야말로 최근까지 철폐를 주장했던 그리고 만 반 세기 여 전의 68변혁에서 폐지 내지는 약화했던 학벌에 대한 행적을 포함해 악행을 폭로했는데 이것은 일단 ML(M) 주의적 관점으로도 역시 척결대상인 점은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서는 다음의 소위 좌편향에 대한 내용에 있어서는 강력한 반대를 주장하는 데 이 좌편향의 중심인물로 왕명/왕밍을 지목했고 이어서 역시 너무나 유명한 28인의 포이십유기/볼셰비키(이하 28인단)에 대해서 진술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현재까지 다수의 ML(M) 주의자들도 소속진영에 따라서 이들 진영 내에서의 강온여부에 따라서 엇갈릴 것으로 예상하는 데 너무나 부정적인 서술을 하고 있어 진상확인을 요하는 부분을 다소 반 ML 주의적인 차원에서 기술했습니다. 일단 여기에는 28인단을 창설한 왕명/왕밍에 대한 부분이고 이어 연안/옌안에 도달한 모/마오를 기술했는데 여기서 협북/산베이성의 25군의 반 만/5000명의 우군과 조우한 장면을 진술했습니다. 물론 왕명/왕밍이 ML 주의 정통을 주창한 사실도 함께 기술했습니다. 이즈음에서는 당시의 국제적인 환경에 대한 이해도 필요한데  1927년까지 노서아/러시아 변혁 성립 후 최대 만 10년 동안 다수 세계로 변혁을 전파할 듯한 기세는 일단 중단하게 된 시기이고 중국에 마극사/마르크스주의를 구성하기 시작한지 겨우 8년을 경과한 무렵이었습니다. 이런 시기가 되면서 주의 자체도 선진국을 위시한 당시까지의 독립국가라는 (준; 이를 추가한 이유는 오늘날까지도 존재하는 소위 신식민지나 구식민지이지만 총독을 현지 선출하는 준 독자적인 자치형태와의 구분을 위해서입니다.) 정상국가들에서 (반; 이 폭로문서에서 기술하고 있는 중국과 이란 등 일부) 식민지로 이동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일단은 변혁을 진행할 물리적 환경의 전환을 마주한 상황인데 여기에서 이견이 발생한 것이 첫 번째입니다. 문서는 비록 지면제한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이러한 환경적으로 (이 편에 호의적으로도) 정체, 침체기로 접어든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 또한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이전 1920 ~ 30년대의 진상조사를 요하는 상황은 작금에 그 국가를 위시해서 문서들의 비밀해제로 인해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는 환경과도 너무나 동떨어진 현상입니다. 덧붙여 오히려 이 점은 유산 진영 일각이 좀 더 발 빠른 견해 수정을 할 정도입니다. 연결해서 문서는 이들 지도자 3인(문서에는 유 지단/류즈단, 서 자장/셰 쯔창, 습 중원/쉬 중신 - 습 근평/시 진핑의 부친)들 중 유 지단/류 즈단을 모/마오가 주은래/저우언라이를 파견했지만 만나지 못하고 다이지징이 유 지단/류 즈단을 체포한 사실을 확인한 사실을 기술했는데 역시 제법 복잡, 다단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주은래/저우언라이의 언사도 따로 문제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데 역시 많은 부분을 생략한 거두절미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으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과정은 이후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수정주의가 완연해지고 난 후 더 강력하게 부상한 진영의 분할과정 그리고 그 국가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기 시작한 첫 번째 과정으로 볼 수도 있겠는데 역시 연구를 요하는 사상, 사조, 조류, 주의, 이념의 부활에서의 불가피한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문서는 다소 중요한 부분 이상을 생략하면서 정통 과학변혁에 대한 불신을 전파하는 것으로 비치는 이상입니다. 이후 문서는 왕명/왕밍이 모[막]사과/모스크바에서 연안/옌안으로 귀환한 이후의 과정과 모/마오의 행동을 기술했고 이전의 유 지단/류 즈단을 치하한 행동과 함께 왕명/왕밍이 그 국가로 재 후퇴하고 난 이후의 사망 과정을 언급하고 내부 변혁을 망치는 존재로 교조적인 ML 주의자들을 지목했는데  이는 현 시기에도 존재하는 희랍/그리스 등지에서도 ML(M) 주의의 소속진영에 따른 논란을 연상하는 대목입니다.
문서의 내용들은 일부는 진상조사를 요하는 내용이 있고 다른 부분은 해석의 주의를 요하는 대목이 있는데 무엇보다 내재적인 기술에 주안점을 둔 결과로 인해서 제법 날카로운 대립을 재연하는 듯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만 현재는 이미 반 수정주의 국제 당 ICOR의 시도도 있는 상황에서 국제적인 환경의 변화마저 누락한 느낌이어서 반 과학의 문제를 불식시키는 과제도 동시에 부여받은 상황입니다. 이 분 역시도 민족주의 진영을 위시한 역사적 문제의 종식을 주장하는 진영에 대한 압박에 대해서는 보위를 하고 있지만 지나친 옥시덴탈리즘의 문제를 동시에 앉고 있어 이의 투쟁 중심이 될 마극사/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거부하고 있는 결정적인 단점을 노정하고 있습니다.
김 갑수의 변혁에서 습득해야 할 교훈에 대한 문서의 주소는 제시 주소와 같습니다.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4&uid=484&table=c_booking&PHPSESSID=caaa752b1d865dcf27f7e68f6ee3b9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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