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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비 과학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7-06-07 08:46
조회
436

오늘의 폭로 도서들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에 관한 도서 2권외 의 몇몇의 도서들이고 폭로 서한문은 이를 평론한 로쟈의 서한문인데 무엇보다 현 시기까지 수요 중심의 정책이 이미 신자유주의를 초래한 사실은 알려져 있습니다. 일단 로쟈가 취급한 평론 대상의 도서들은 서두에서 언급한대로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에 관한 도서 2권 ‘거대한 불평등’과 ‘불평등의 대가’와 독일 언론인 2인의 저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에드윈 카메론의 ‘헌법의 약속’, 개빈 뉴섬의 ‘투명 정부’, 한 윤형의 ‘매체/미디어 시민의 탄생’ 인데 처음 언급했고 그리고 이들 도서들 중 한 권의 제목을 서한문의 제목으로 삼은 조치프 스티글리츠의 2권의 불평등에 관한 도서는 서한문의 해설에서 전작에서 했던 언사들을 그대로 사용했고 이는 여전하게 과거의 개량주의 논리의 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중에서 핵심은 ‘공급 중심 정책’보다 ‘수용 중심 정책’을 언급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이미 실패한 역사이자 역전당한 역사인데 작금에도 반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너무나 많이 변화한 시기인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불평등’이라는 문제의식은 좋지만 이 현실에서의 불평등의 문제의식의 도달장소는 너무나도 협소한 현존 체제 내라는 것인데 이 점은 사고의 협착이자 좌, 우파, 중간파 누구에게도 현존 체제라는 (초 또는 극) 상수의 사고에 스스로 포박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의 도서는 제법 긴 제목의 도서로 제목은 상단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인데 일단 이 도서에 대해서는 21세기 후반의 인구증가를 가정하고 식량의 부족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 도서는 다른 한 편에서도 경이롭다고도 볼 수 있는데 오늘 날 대부분의 문명사회에서 출산율의 저하를 걱정한 것과 인구절벽을 예측한 것에 비하면 오히려 반대의 예측을 하고 있어 이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인구도 언제까지 절벽 상황에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고 언제나 이러한 예측은 맞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채로운 예측 역시 맞는다고 볼 근거를 현재에서는 찾을 수가 없는데 일단 이 예측과는 별개로도 오히려 식량 자체도 경작지의 감소 등의 현상이 존재하는 데 인구는 증가한다고 한 예측의 근거가 무엇인지도 흥미롭겠습니다. 이 도서는 과거의 맬더스의 잔영을 볼 수 있는데 이미 그 분께서 맬더스를 비판한 점을 감안하면 더욱 이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식량의 문제 당연하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 도서 역시 현존체제를 상수로 보고 저술한 도서입니다. 서한문은 물론 인류의 경작형태와 현재의 경작형태를 극복한 미래 식량 확보를 위한 다양한 대안에 관한 것으로 기술했습니다. 그러나 이 다양한 대안은 이제까지 다른 다원적인 대안 등에서도 확인해 본 것처럼 현존체제를 상수로 전제하고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측은 새로울지 몰라도 이 신선함(??)은 대안(들)의 진부함에 봉쇄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헌법의 약속’은 부제가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이고 이는 역으로 오 찬호의 저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역으로 연상하는 제목이기까지 한데 일단 이 명제는 너무나 당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 또한 ‘누구의 약속’ 그리고 ‘어떤 지향의 약속’인지를 확인할 필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지막의 정부와 시민에 관한 도서들 ‘투명정부’와 ‘매체/미디어 시민의 탄생’은 ‘유능한 정부’ 그리고 현 시기의 소위 투쟁에 관한 도서인데 특히 전자는 그야말로 ‘어떤 계급’을 미리 전제하는 지부터 진술해야 할 도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앞 서 이 로쟈의 서한문이 소개하는 도서들 모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겨우 참고 내지는 수용할 것이라곤 작금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부인 상황인데 무엇보다 문제의식이 도달할 지향에 대한 내용들이 부재하거나 현 사회의 귀의라고 할 수 있는 대목들입니다. 말미에 서한문은 ‘매체/미디어 시민의 탄생’ 도서를 인용해 ‘적극적인 매체/미디어 실천을 하는 이들’을 언급했는데 이 점은 지속적인 비판대상인 바로 축적주의, 점진주의의 대표적인 발아 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폭로대상인 로쟈의 서한문에 소개한 도서들은 모두 비 과학의 향연을 목도한 셈인데 겨우 참고라도 할 것은 ‘문제의식’이 전부이고 무엇보다 문제의식은 체제의 유리벽인지 천장인지를 이탈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즉 그 분께서 그렇게도 경계했던 체제 내 도달일 뿐인 결론들뿐입니다. 이럴 내용이라면 같은 물론 당연히 같지 않은 비 과학일지라도 현재 한국의 당 건설 준비 세력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이행이나 최대 점이 출발대상인 곳들이 그 나마는 낫겠지요? 이런 현상을 발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전항에서 언급한 당 건설 준비 세력들을 포함한 변혁진영에서 현실 내에 존재하는 문제의식들을 적극적으로 의제로 삼지 않기 때문인데 이 점들에서도 이러한 소위 개량, 수정의 위험하기 까지 한 비 과학들의 재생산은 지속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로쟈의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에 관한 도서 2권외 의 몇몇의 도서들에 대한 서한문의 주소는 제시 주소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미 수요 중심의 사고가 초래한 것이 신자유주의인 사실은 강 신준에 대한 비판 문서에서 확인한 바와 같습니다.

 

http://blog.aladin.co.kr/mramor/9364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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