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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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호|회원

 

아름다움은 삶의 존재 양태의 하나이며 창조성이 본질이다.

 

우리 시대의 아름다움은 자본에 종속되어 있는 노동을 일깨우는 해방의 과정이며,

노동 속에 내재된 과정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만을 생각하고 바라보려고 하지만

자본의 더러움이라는 상대성 속에서 아름다움은 더 화려하게 피어난다.

 

결국 자본주의하에서 자본의 더러운 속성과 병폐라는 추함의 극치가 드러날 때

아름다움은 두드러져 보이며 질긴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자본주의하에서의 예술은 바로 노동자 계급의 생활과 노동 속에서

그 뜨거운 혁명성을 이끌어 내어가는 과정으로써 해방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 실천이며, 자본을 타도하는 길의 선봉의 과정이기도 하다.

 

노동자 계급의 예술에는 당파성, 과학성, 계급성

바로 자본주의하에서 추구해야 될 예술의 내용성이

포함되어져야 함은 당연한 사실이다.

 

예술은 대중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예술을 소수의 전업적인 예술가의 전유물로 만들어버린 것은

민중의 의식과 정서를 마비시키려는 자본의 예술에 대한 지배에 다름 아니며,

민중이 자신의 억압된 삶을 예술로써 표현해내고 싶어 하는 것,

바로 그것이 민중예술, 아니 진정한 예술이다.

 

민중예술은 바로 민중을 예술의 생산자로 혹은 예술의 소비자로 만들기 때문에,

자본은 이 민중예술을 주도하여 자기네들의 채널,

바로 이윤으로 끌고 들어가기를 원하며, 민중예술을 지배하고자 한다,

이것이 곧 민중예술이 상업성을 띄게 되는 단초가 되는 것이다.

 

자본은 민중예술을 지배하여 노동자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키려

별의별 술책을 다 동원하고 있으며

민중은 교묘한 그들의 간계에 빠져 들어왔음이 사실이다.

 

민중의 의식마비를 위해 동원되는 한 형태가 순수라는 단어를 들먹거리며

예술 그 자체를 논하자고 주장하는 순수예술인데,

민중의 계급성을 차단하고자, 민중의 혁명성을 죽이고자 만든

지배이데올로기의 다른 이름일 뿐이며,

영화, 연극, 미술, 음악 등 모든 장르의 예술 속에서 발악을 하고 있다.

 

오늘날 순수예술의 모습 역시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어

왜곡된 사회의 실체, 왜곡된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민중을 지배하려는 음모 속에서, 바로 자본의 그 더러운 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순수예술이며 지배이데올로기의 가증스러운 가면인 것이다.

 

순수예술의 존재 가치는 바로 왜곡된 민중예술의 절정이며,

민중예술을 지배하려는 자본의 처절한 몸부림이자 최후의 발악인 것이다.

 

그래서 예술 역시 자본이 지배하는 한 아니 계급이 존재하는 한

순수예술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자본과 사적 소유가 철폐된, 계급이 사라진 해방의 공간에서,

새로운 의식 속에서, 참된 예술이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노사과연>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Nov 10th, 2013 | By | Category: 2013년 11월호 제95호, 회원마당 | 조회수: 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