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동지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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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진

 

지난 주에 행정소송 1심 판결이 있었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그동안 재판에 많은 배려를 해준 최상철 동지와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동지들께 감사드립니다.

선고 재판이 있던 날 저는 법정에 출석하지 못했습니다. 전주교도소에서 법정 출석을 막아서 벌어진 일입니다. 전주교도소는 법원에서 법원 출석을 요구하는 공문이 접수되지 않아서 법원 출석을 하지 못하게 했다는 입장입니다. 이것은 변호인 접견을 불허한 문제와 또 다른 재소자 재판권을 제약하는 일이에요.

현재 민사소송과 행정소송 재판은 법정에서 재판기일을 판사가 직접 알려주고 별도로 재판기일을 공문으로 송달하지 않습니다. 사실이 이런데도 법원에서 공문을 보내지 않아서 법원에 출석할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요.

이런 사실을 이광열 동지께도 말씀드렸습니다. 답변을 듣고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여 수용자들의 재판권 보장을 받아야겠습니다.

 

1심 판결문을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전주소에서 항소하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지 박재홍 변호사님께 자문을 받아 미리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최상철 동지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아직 확정 판결 전이지만, 만약 확정 판결까지 승리하면, 이후 발송불허된 원고의 출판과 손해배상 등에 관해서도 고민해주세요.

공안정국이 조성된 요즘, 재판에서 이겨 다행이에요. 저 자신도 자신감이 생기고 이와 같은 작은 성과들을 쌓아 전진한다는 게 기쁩니다. ≪정세와 노동≫ 10월호에 채만수 소장님의 글에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한 발 앞이 낭떠러지다!” 그러나 “비약의 계기이기도 하다” 바로 현재 저의 상황이기도 합니다. 감옥에까지 떨어졌는데, 제가 더 이상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생존을 위해서는 싸우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각오와 정신으로 재판투쟁에 임하였습니다. 그런 의지와 밖의 동지들의 연대의 힘으로 이번 재판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감옥 안에서도 이러할진데, 밖의 동지들께서도 용기를 내서 연대의 힘을 키워 현 정세를 도약의 기회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인도 독립 투쟁의 역사≫ 연재가 다시 시작되어서 감사드려요. 최상철 동지께서 늘 시간에 쫓기며 바쁜 일상 속에서도 꼼꼼하게 편집까지 해주시고 배려해 주셔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매주 2개 절씩 번역하여 보내려고 해요. 이번 번역글은 참 좋았어요. 특히, 편집자주가 인상적입니다. 남부드리파드의 ≪인도 독립 투쟁의 역사≫ 번역을 통해서 인도의 근현대사까지 깊이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아요. 아마 일반 독자님들도 인도의 근현대사와 정치 전반을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입니다.

우리를 ‘종북’이네 ‘빨갱이’네 공격하는 우익 꼴통들의 공격을 방어하고 더 나아가 반격하려면, 과학적인 사상과 이론의 진지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떠한 정세 아래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싸워갈 수 있으니까요. 인도의 정세가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우리를 고립시키려는 우익 꼴통들의 공격을 분산시키고 반격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제공한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더욱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현재 우리가 번역하는 글만으로도 하나의 튼튼한 기초를 만든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민보≫ 상황이 심각합니다. 내일(10월 28일) 폐간을 결정하는 청문회가 열린다네요. 결과에 따라 인터넷이 차단될 텐데 걱정이에요. 통일운동 진영에 대한 탄압이 무지막지하군요. 이미 박근혜 정권도 남북관계는 포기한 것 같아요. 앞으로 한반도 정세가 대결과 긴장으로 치달을 것 같아 염려스럽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권이 서서히 노동자 진영도 공격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전교조의 싸움이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따라서, 노동자들이 반격의 교두보를 확보할지, 아니면 더 후퇴할지 판명나겠지요. 이번 만큼은 노동계급이 뭉치고 싸울 발판을 만들면 좋겠어요. 만약 전교조까지 밀리면 노동계급진영의 토대 자체가 흔드리고 밀리지 않겠습니까! 다들 나만 살고 보자는 이기심을 버리고 함께 뭉치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절박함과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계획대로 10월 30일에 전화드릴께요. 그럼 전화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병진 올림

2013년 10월 27일

 

 

(최상철 동지의)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으시군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제 이야기만 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어머님의 건강이 빨리 좋아지시길 기원하고 바랍니다. 여러 가지로 힘들고 어려우실 텐데 힘내세요.

전화 통화 후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선고 재판때 전주교도소의 잘못으로 법정에 가지 못한 일을 구두로 ‘사과’ 받고 끝낸 일에 대해서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건 제 개인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억압기구로부터 폭력에 짓밟히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인데, 제가 경솔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에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나는 역관계에서 불리하고 고립되어 있다보니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회유와, 압박으로 항상 쉽게 무너진다는 것이죠. 작고 사소한 일에서 빈틈을 보이면 쉽게 그 약한 부분을 공격해 들어온다는 것.

그 상황에서 “출정담당 직원을 징계하겠다. 그런데도 계속 문제제기를 하겠느냐?” 라는 출정계장의 말은 엄밀히 따지면 저를 압박하는 말이므로 단호하게 선을 긋고 제 입장을 유지했어야 했습니다. 아무 고민과 준비도 없는데, 갑자기 찾아와서 출정과에서 실수를 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인간적으로 부탁하니까 아무 고민없이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최상철 동지의 비판과 문제제기가 정당하고 동의합니다. 이곳에 혼자 지내다보면 고립되어 지내는 상황이다보니 직원들의 회유와 압박을 단칼에 뿌리치기가 힘들어요. 표시나지 않게 하면서, 교묘하고 야비하게 불이익을 주고, 교육기회나 활동들을 배제하지요. 날카롭게 대립되어 사사건건 대립하여 지내다보면 제 자신을 추스르기가 힘들 만큼 온갖 문제들과 모순이 수십년 쌓여 있는 곳이 감옥입니다.

그동안 저는, 교정행정의 큰 틀과 구조적 모순에 대해서만 강력하게 싸우고, 아주 작고 사소한 일, 의도적인 게 아닌 단순 실수나 착오에 의한 일은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태도와 자세를 버리고 무조건 당당하게 그리고 직원이 책임을 지게끔 분명한 태도를 밝히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동안, 며칠 동안 최상철 동지의 비판을 곱씹으면서 확고하게 세운 의지입니다.

사실 제 처지와 상황은 누굴 봐주고 배려할 처지가 아니에요. 오히려 감옥에서 오랜 기간 갇혀지내는 나에게, 직원들을 배려해주고 이해해달라는 것은 형식은 부탁이지만, 본질은 또 다른 형식의 탄압이자 폭력입니다. 저는 거기에 굴복한 것이지 제가 인간적인 배려를 한 게 아니지요. 그런 권력관계의 본질을 잠시 놓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지내려면, 정신적으로 더 고립감을 느끼고 고독하겠지만 그걸 극복하지 못한다면 객관성과 냉철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냉정하고 단호해지겠습니다.

 

아직 재판판결문을 보지 못했고 변호사님의 의견을 듣지 못했는데, 만약 전주교도소에서 항소하면 손해배상 청구를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 책임을 분명하게 따질 것입니다.

지난 주에 아주 희한한 일이 있었어요. ≪노동자 정치신문≫ 10월호가 훼손된 상태로 왔습니다. 제가 기고한 부분이 사라졌습니다. ○○○ 동지에게 확인했더니 정상적으로 발간한 신문을 보냈다는 답신이 왔어요. 사회복귀과는 훼손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복귀과장 면담 요청을 한 상태입니다.

11월부터 전화는 화요일에 합니다. 최상철 동지께는 19일(화요일)에 신청했어요. 12일에는 장창원 목사님께 전화드릴 생각입니다.

11월 10일에 열리는 노동자 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나길 기대합니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병진 드림

2013. 11. 3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Nov 10th, 2013 | By | Category: 2013년 11월호 제95호, 독자편지 | 조회수: 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