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주년 세계 노동절 유인물] 노동자계급 해방의 기치 하에 계급적 단결 이룩하자!

공유하기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 심화

 

2007년 금융위기, 즉 세계 대공황의 발발 이후 자본주의 세계는 미국의 양적 완화와 중국의 건설 투자 등으로 겉으로는 그 영향을 극복하는 듯했으나, 이렇다 할 호황도 보여 주지 못한 채 최근 다시금 깊은 침체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경기하강으로 미국은 금리인상 중단 등의 경기대책에 나서고 있고,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 속에서 생산과 투자, 수출 등의 하강을 막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유럽 경제의 기관차라는 독일까지도 경기침체가 역력하며, 영국은 특히 유럽연합(EU) 탈퇴 과정을 밟고 있는 가운데 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남유럽의 대표 국가 이딸리아는, 미국의 강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G7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중국과 일대일로(一帶一路) 협정에 나서는 등, 경기침체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와 같이 주요 국가들이 경기침체에 접어들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순환적 양상이 아니라, 2007년 가을 이후의 장기불황이 다시금 공황으로의 재격화의 도정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과 그에 조응하지 못하는 생산관계의 모순이 공황으로, 즉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의 위기로 나타난다는 맑스의 명제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상품의 수출과 수입뿐 아니라 그 금융ㆍ자본 시장조차도 대외의존도가 엄청나게 높아서,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부침에 직접적이고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특히 중국과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 그 양국 경제가 하강곡선으로 접어들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한국 경제 또한 생산과 투자, 소비, 수출 등 경제 전반에 걸쳐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그동안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라던 반도체 수출마저 경기하강과 경쟁의 격화로 줄어들면서, 그 대표주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이윤이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상태가 되었다.

 

한국 자본주의는 이미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그 생산력이 이미 미국ㆍ독일ㆍ일본 등에 뒤이어 선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8년을 기점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호언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자본주의는, 재벌 중심의 성장구조, 수출 중심의 성장구조로서, 100대 재벌도 아니고, 심지어 10대 재벌도 아닌, 서너 개의 재벌이 국가경제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극도로 독점화되고, 극도로 불균등ㆍ불평등한 사회ㆍ경제다. 오죽하면, 삼성공화국이라고까지 부르겠는가? 민중이 탄생시킨 이른바 촛불 정권임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권이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우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극도의 불평등과 빈곤, 전망 부재 앞에서 헬조선이라고까지 자조하는 대중을 위무(?)ㆍ기만하기 위한 순전한 구두선인 것이다.

 

실제로,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우는 문재인 정권의 재벌, 즉 독점자본 위주의 정책과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예컨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라는 자본의 거대한 집중이 대규모 구조조정, 즉 노동자들의 대량해고를 수반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문재인 정권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는,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의 일자리 만들기로서, 명백히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대공장 정규직 조직노동자들 일반에 대한 공격이다. 최저임금제ㆍ탄력근로제의 개악 등, 근로조건의 악화를 위한 법률적 제도 정비도 밀어붙이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경제위기의 재격화와 그에 따른 자본과 국가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 강화는, 노동자계급에게 투쟁하지 않을 수 없도록 그 투쟁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은 연대와 단결을 강화하면서 총자본에 맞서는 전선, 경제주의를 넘어서 총자본에 정치적ㆍ혁명적으로 맞서는 전선을 구축하고, 강화해 가야 한다.

 

 

한(조선)반도 평화의 길은 무엇인가

 

지난 2월 말 북미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후, 한(조선)반도의 평화의 전망은 다시금 가늠하기 어려운 혼돈 속에 빠져 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는 원인은 북ㆍ미 두 당사국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즉, 북의 경우 핵을 지렛대로 한(조선)반도의 평화의 문제를 실현하려 하고 있고, 미 제국주의의 경우 북의 핵 포기를 강요, 북의 무장을 사실상 해제시키려는 전략, 소위 리비아 모델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본성을 익히 알고 있을 터이고, 특히 리비아가 핵을 포기한 순간 미 제국주의의 침략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처참하게 유린당하는 것을 목도한 북의 입장에서 어떻게 핵 포기를 수용할 수 있겠는가?

 

북ㆍ미 간의 대립 속에서 문재인 정권은, 운전자론이니, 중재자론이니, 촉진자론이니 하면서, 커다란 역할이라도 할 듯이 자임하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예컨대, 운전자론? 한(조선)반도에서의 정치 정세의 전개, 그와 관련한 국제 정세ㆍ제국주의의 전개를 사실에 입각해서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명백한 바이지만, 미제의 고용운전자라면 모를까, 자주적 의사ㆍ의지로 나아가는 운전자론은 실제로는 가당치도 않은 얘기다. 이른바 중재자론촉진자론도 마찬가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른바 한-미 동맹에 묶여 있는 한국 정부, 구체적으로 문재인 정권은 북과 미 간의 대립에서 결코 제3자적 입장에 설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권의 움직임은 미제의 하위 동맹자로서의 움직임, 바로 그것 아닌가?

 

사실 한-미 동맹은 우선 한(조선)반도와 동아시아에서 미 제국주의의 패권과 이익을 관철시키는 제국주의 동맹이다. 한(조선)반도에서 한-미 동맹은 민중을 억압하는 전쟁 동맹이고, 그리하여 남북의 인민은 미 제국주의의 끊임없는 전쟁위협에 시달려 왔던 것이다. 그리고 한-미 동맹은 미 제국주의가 주도하는 한-미-일 동맹의 한 고리, 즉, 미 제국주의가 중국과 러시아에 대응하는 태평양 전략의 일환이다. 이러한 제국주의 전쟁 동맹을 기초로 한(조선)반도의 평화를 도모한다는 것이 문재인 정권의 전략인바, 이러한 전략의 성격과 한계, 오류는 그 자체로서 명백하다.

 

한(조선)반도의 평화는, 자본에게는 시장 확대의 문제이지만, 노동자ㆍ민중에게는 전쟁위협 소멸의 문제이고, 한(조선)반도의 자주적 발전의 문제이다. 특히 냉전적 분단구조에 기댄 한국 지배계급의 노동자ㆍ인민에 대한 억압을 분쇄하는 문제, 즉 국가보안법 등을 무기로 한 반민주적 정책과 억압을 극복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조선)반도 평화의 문제는, 한국 사회에 똬리를 틀고 앉아 반민중적 억압 체제를 후견ㆍ보장하고 있는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적 지배를 극복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북ㆍ미 대립관계의 전개와 관련하여, 노동자ㆍ민중은 정상회담의 성사나 그 결과만을 바라보면서 거기에 무언가를 기대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미제에 대한 신식민지적 예속을 전제로 하는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의 계급적 한계를 인식ㆍ폭로하면서, 남-북의 민중이 연대하여, 그리고 노동자 국제주의에 입각하여 주요하게는 미국과 일본의 노동자계급과 함께 미 제국주의 및 그 앞잡이들과 맞서야 한다. 그리하여, 신식민지 지배도구인 한-미 동맹을 분쇄하고, 미 제국주의를 극복할 때, 비로소 한(조선)반도에 평화의 전망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럴 때에만 한(조선)반도의 평화, 한(조선)반도의 진정한 봄이 찾아올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성과 헤게모니

 

문재인 정권은 노동자ㆍ민중의 촛불 시위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정권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수많은 노동자ㆍ민중의 순진한 기대와는 반대로, 재벌과 미 제국주의의 이익을 충실히 관철하는 자본가 정권임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권은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의 사실상 노골적인 폭압적 지배와는 달리 민중의 동의를 기초로 하는 전략을 구사하지만, 즉 이른바 동의와 폭력을 적절히 배합하는 헤게모니적 지배를 구사하지만, 관철되고 있는 것은 당연히 독점자본과 제국주의의 이익이다. 특히 국가보안법 체제 하에서 독점자본의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지배가 강고한 반면에, 노동자계급은 정치적 무기력ㆍ무장해제를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독점자본의 이러한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지배는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 즉 소부르주아 진보 이데올로그들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반동적인 이데올로기적 영향력도 그중 하나고, 그 영향도 있고 하여 노동자계급 내부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노사협조주의도 그 하나다.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협조를 의미하는 계급협조의 노선은 민주노총의 지난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가의 부결로 일정하게 타격을 받았는데, 경사노위 참가는, 단순한 교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 계급 대 계급으로서 타협한다는 것, 즉 계급협조주의 체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경사노위 참여 문제가 밑으로부터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사실, 경사노위 참가 혹은 계급협조 노선은, 작게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팔아넘기는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의식의 형성을 가로막고 계급적 단결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분쇄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가 거부는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을 위한 최소한의 지반이 아래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하는바, 선진 노동자들은 그 단결을 목적의식적으로 조직하고, 정치화하며, 강화하는 것을 그 임무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임무가 진지하게 수행되어 일정하게 결실을 맺을 때에야 노동자계급은, 촛불 시위를 포함하여 지난 수십 년 동안 거듭해 왔던 한계, 즉 대중투쟁의 정치적 성과를 독점자본의 좌파인 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 넘겨주는 경험을 반복하지 않게 될 것이다.

 

현 시기 핵심 과제는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 하에서 총자본에 맞서는 총노동의 전선 구축이다. 특히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 내부에 그어 놓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을 시급히 극복하고,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전망하는 독자적 계급으로 서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의 한 분파인 자유주의 세력과, 그리고 그들의 아류에 불과한 소부르주아들의 이른바 진보적 시민단체들과 이데올로기적으로ㆍ정치적으로 절연하고,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실현하면서 저들의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 해방의 기치를 확고히 드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계급 해방의 기치를 확고히 들 때에만, 경제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자본가계급과의 전선을 명확히 할 수 있으며, 노동자계급의 단결의 구심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에야 비로소 노동자계급은 전 민중의 선두에 서서 착취 없는 새로운 사회를 향해 투쟁해 나아가는, 민중의 현실적인 전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위기의 한국 자본주의와 투쟁하는 총노동의 전선을 시급히 구축하자!

― 노동자계급 해방의 기치 하에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이룩하자!

― 한-미 동맹에 기초한 평화는 기만이다.

     남ㆍ북 민중의 반제투쟁으로 한(조선)반도 평화 쟁취하자!

― 제국주의 동맹, 전쟁 동맹, 한-미 동맹 분쇄하자!

―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단결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 철폐하자!

 

2019년 5월 1일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운영위원회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5월 1st, 2019 | By | Category: 연구소 소식 | 조회수: 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