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노동 3권 쟁취 투쟁으로 법외노조를 넘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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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숙|전교조 서울지부 관악동작지회 남성중학교 분회원

 

박근혜정권은 고작 공문 2쪽으로 ‘전교조를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함으로서 합법 15년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다. 법률적 근거도 없는, 사문화된 시행령만으로 ‘노조 설립 취소’를 강행함으로서 ‘내 맘대로 통치’라는 박근혜정권의 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노동부를 통해 박근혜정권이 전교조의 법외노조화를 명백히 한 것은 지난 9월 23일이었다. 노동부 국장이 친히 전교조 사무실을 방문하여 ‘해고자를 배제하는 내용으로 규약 개정’ ‘해고자가 실질적으로 조합원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입증 자료 제출’을 요구하였고, 10월 23일까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된다고 통보하였다. 이에 전교조는 9월 28일 전국대의원대회를 열어 총력투쟁을 결의하는 한편, 노동부 요구 수용 여부는 조합원 총투표를 통하여 결정하기로 하였다. 대대 후 약 2주 만에 조합원 총투표가 진행되었고 ‘조합원의 2/3 이상의 압도적 수용 거부’로 총투표는 마감되었다. 누구는 이런 결과를 두고 ‘전교조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였다고 하고, 누구는 ‘지도부(집행부)가 떠넘긴 사안을 조합원들이 현명하게 처리했다’라고도 한다. 조합원 총투표 부의 자체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평가는 이 투쟁이 승리로 마감한 후에 냉철히 하기로 하고, 현재로서는 총투표 결과가 이후 투쟁의 근거를 분명히 하였다는 정도로 평가하고자 한다.

문제는 어렵게 총투표로 한 고비를 넘긴 지금, 법외노조 현실화 국면에서, ‘해고자 배제 없는 전교조 사수’라는 조합원들의 입장을 어떻게 투쟁으로 조직해야 하는가, 또한 이 시기 요구되는 투쟁의 전략적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해고자 배제 문제는, 단순히 해고된 동료(교사)를 두 번 죽일 수 없다는 감성적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해고자는 투쟁의 선봉에 서다 정권과 (사학)자본에 의해 교단에서 배제된 조합원으로, 노조의 역사이며 투쟁의 상징이다. 따라서 해고자 배제는 이미 해고된 자들에 대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해고될(?) 조합원들에 대한 문제이다. 해고가 정권과 자본에 의한 일상적인 탄압 수단이 되어 버린 지 오래된 마당에, 해고자 배제란 투쟁성에 대한 거세를 의미한다. 해서 규약 개정은 투쟁하지 않는 식물노조로 가는 길임을 누누이 강조해왔던 것이다.

아무튼 전교조 조합원들은 해고자 배제 없는 전교조 사수를 선택하였고, 이에 박근혜정권은 숱한 외교적, 법률적 부담을 안고서라도 전교조 법외노조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이제 다시 전교조는 법외노조 국면에서 어떻게, 무엇을 목표로 투쟁할 것인지 더욱 중요한 선택의 시점에 놓여 있다. 이는 전교조가 원해서가 아니라 이 정권이, 이 시대가 피할 수 없는 싸움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권의 전교조 탄압은 2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며 하나는 전교조라는 특수한 조직, 특수한 활동-내용에 대한 탄압이다.

전자는 박근혜정권의 민주노조 죽이기, 민중 생존권 탄압, 초법적/몰역사적 통치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쌍차 국정조사 외면, 밀양 송전탑 건설 폭력적 강행, 살인교살자 김석기 공항공사 사장 임명, 국가기관의 사유화, 박정희군사정권에 대한 미화 등등 박근혜정권의 무소불위의 통치가 강행되고 있는 국면이다. 노동자의 생존권도 노동기본권도 민중 생존권도 철저히 짓밟는 국가폭력의 맨얼굴을 경험하고 있다. 공무원노조의 설립 반려와 함께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이런 국면에서 드러난 하나의 사건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전교조라는 교사집단의 활동이 갖는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박정권의 전교조 탄압을 바라봐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전교조는 일반 노조와는 다른 활동을 기본으로 할 수밖에 없는 교사집단의 노조이다. 학교는 국가와 자본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관철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사들의 ‘일상의 저항’이 항상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교사들이 내일의 노동자들을 어떻게 길러내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1998년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와 전교조 합법화를 맞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지난 수년간 전교조가 교육공공성 투쟁에서나, 노동-인권-생태 등 대안적 가치를 가르침의 일상에 반영하는 면에서나 온전히 그 역할을 다 하지는 못하였다는 것이 내 개인적 판단이다. 그러나 분명 신자유주의 교육체제 재편에 맞서 나름 저항의 끈을 놓지 않아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전교조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매일 수백만의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전국의 초중고교가 약 1만 1천여개이며, 전교조 분회원이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하는 학교는 약 8천여개에 이른다. 실핏줄처럼 전국 곳곳에 퍼져 있는 지회-분회는 간과할 수 없는 전교조의 힘이며, 자라나는 아동-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지대하다. 따라서 어떤 입장에서 어떤 교육을 지향하느냐, 잘못된 권력과 통치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저항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일이며, 그 중요성 만큼이나 정권은 전교조 탄압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전교조의 싸움은 하여 노조로서의 싸움과 더불어 가치 전쟁, 역사 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며, 하여 전교조는 이 싸움에서 물러날 수 없는 강고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전교조의 투쟁이 중요하다면 다시 지금 전교조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닌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고민이 모여진다.

마오는 ‘공세기에는 맹동주의를 경계하고 수세기에는 보수주의를 경계하라’고 했다. 지금 전교조가 놓여 있는 지점은 분명 합법성을 부정당하고 있는 수세기이다. 승리를 안아온 마오의 지략대로라면 지금 전교조는 보수주의-신중한 대응을 경계하여야 한다. 지금 신중론은 자칫 투쟁의 적기를 놓치는 우를 범하는 행위일 수 있다.

 

하여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투쟁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다. 조직적/지속적 활동으로서의 한계가 분명한 촛불집회나 그 한계가 더욱 뚜렷한 법적 다툼(위헌 소송, 법외노조 통보 효력정지 가처분․취소 소송 등)에 투쟁을 가두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무엇보다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것에 대한 조합원들의 분노가 높고, 전교조가 민주노조 사수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상황에서 연대투쟁의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에서 전교조의 신중론은 자칫 투쟁회피와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법적 다툼, 국내외 연대 조직, 촛불집회, 거리선전전 등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흔들리는 현장에 대한 우려 속에서 조합원들의 cms 동의서 조직, 투쟁기금 모금 등에 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는 일상적으로 전개해야 할 대응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전교조 투쟁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전교조는 전교조가 선택할 수 있는 저항 수단에 대하여 스스로 포기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면 노동자들은 준법과 위법을 넘나들면 투쟁으로 권리를 쟁취해왔고 역사를 새로 써왔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권리가 투쟁 없이 애초에 주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준법과 위법을 넘나들며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저항을 구사하겠다는 의지이며, 정권에게 실제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강고한 전술의 구사이다.

전교조는 그동안 2001년, 2003년, 2005년 연가투쟁을 전개한 바 있다. 파업권이 없는 전교조가 ‘집단적 연가권 행사’라는 준법 투쟁을 전개했던 것이다. 2001년과 2003년과는 다르게 2005년의 연가투쟁은 징계국면으로 이어졌고 그 이후 전교조는 연가투쟁 전술을 채택한 바 없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신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연가투쟁 전술을 구사해야 할 때이다. 전교조가 전문직단체가 아닌 노동조합을 택한 이유, 노조가 부정당하는 시점에서 교사도 노동자임을 다시 천명하며 최소한 연가투쟁을 조직하는 것, 그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행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결단이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누구는 파업권도 없는 전교조가 기껏해야 1일에 불과할지라도 연가권을 행사하는 것은 준파업으로 명백한 위법이라며 연가투쟁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냉정히 바라봤으면 한다. 대한민국에서 일반 노조라고 파업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파업을 시작하면 모두 불법이며, 파업은 곧 지도부(집행부)의 구속, 징계, 해고로 이어지는 것이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노동 동지들은 필요한 길이라면 그 길을 간다. 그렇게 현실과 악법에 온 몸으로 맞서 싸워왔고 싸우고 있으며 그렇게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전교조의 연가투쟁 전술의 구사는 한걸음 더 나아가 ‘교사(공무원)의 노동 3권’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를 통하여 우리의 전략적 목표를 보다 분명히 하는 과정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무늬만 노동조합이었지 파업권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단체교섭조차 체결할 수 없었던 교원노조특별법 안에서의 전교조를 기꺼이 벗어던지는 일, 지난 15년간 합법 전교조가 결코 투쟁의 목표로 삼지 못했던 노동 3권 쟁취, 이제 박근혜정권이 조성해 놓은 법외노조라는 국면에서 오히려 제대로 제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20만명이 참여한 스페인 교사-학생 총파업 외신을 들으니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20만명이 교원 수 감축, 경쟁교육 등에 항의하며 한목소리로 ‘교육의 공공성 쟁취’를 외치는 것. 그 자체가 뿜어내는 열기와 힘, 직접 듣고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힘! 나는 전교조 투쟁에서 한번 느껴보고 싶다. 아동-청소년들이 매순간 죽음으로 항거하는 이 거지같은 교육현실에 맞설 강력한 무기인 파업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 이제는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과정엔 물론 수많은 희생(징계, 투옥, 해직….)이 필요할 것이며 험난한 가시밭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이 옳다면, 가야 할 길이라면 가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진보시키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정말 무엇보다, 전교조 ―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국민 여론이라든지 법적 측면에서든지 투쟁의 호조건을 가지고 있는 ― 가 전교조의 싸움을 ‘법적 테두리’나 ‘시민들의 촛불’에만 가두는 것은 마냥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해서 내가 전교조이지만 자꾸 전교조에게 요구하게 된다.

‘전교조여, 희생과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투쟁으로 이 국면을 돌파하자!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이다. 피할 수 없기에 단호하게! 승리를 향하여 당당히 걸어 나가자!’ <노사과연>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Nov 9th, 2013 | By | Category: 2013년 11월호 제95호, 현장 | 조회수: 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