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임금피크제, 상여금 월 쪼개기, 노동유연화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대응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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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 연구위원

 

 

 

문제 제기

 

문재인 정권은 출범 이후 노동관계법을 두 차례 개정하고 곧이어 또 한 차례 개정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첫 번째가 지난 2018년 2월 휴일ㆍ야간근로 할증제의 폐지를 주 내용으로 하는,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을 담은 근로기준법의 개정이었다. 휴일ㆍ야간근로 할증제도를 폐지하는 형태로 임금을 삭감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여하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40시간과 over time이라 불리는 법정 노동시간 외 노동시간 12시간을 포함해 주 52시간 노동제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내용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한 것이다.

이어 두 번째로는 주 52시간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약 3개월 뒤인 2018년 5월 산입범위 확대를 주 내용으로 최저임금법을 개정한 것이었다. 최저임금법에서 최저임금의 기준이 되는 기본급에, 식대 및 상여금1)을 포함하는 것으로 산입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최저임금법을 개정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 추진되고 있는 법 개정은, 2019년 상반기에 탄력근로제 관련한 법안의 개정을 위하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합의 포장과 국회 입법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아직까지는 탄력적근로제 단위시간을 확대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탄력근로제 개정이 입법화되지는 못했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무난히(?) 입법화될 것으로 보인다.

종합해 보면, 촛불항쟁의 결과로 등장했다고 자부하는 문재인 정권이 집권 3년을 맞이하면서 지금까지 노동자계급을 상대로 한 법 개정은, 노동시간 단축을 빙자한 할증제 폐지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통한 최저임금 인상 효과 무력화 그리고 현재 추진 중에 있는 노동시간의 탄력적 운영을 위한 탄력근로제 개정이라는 것이다.

위와 같이 문재인 정권의 노동시간과 임금 등에 대한 탄력적 운용을 위한 법 개정은, 국민국가 수준에서 국가권력을 앞세운 총자본의 노동탄압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빙자한 임금삭감과 최저임금 무력화 및 노동시간의 탄력적 운용을 위한 법제도화는, 국가권력 수준에서 행해지는 노동유연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자본은 노동이 생산하는 이윤을 전취하기 위해, 즉 전취율을 높이기 위해 흔히 노동의 유연화를 단행한다. 자본이 취하는 이윤량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동의 유연화는, 임금 체계를 보다 탄력화하는 임금의 유연화, 정규직을 맘대로 해고하고 비정규직 비중을 늘리며, 일감을 외주화하는 수량적 유연화, 그리고 흔히 다기능화라 불리는 기능적 유연화로 구분이 될 수 있다.

국민국가 수준에서는 국가권력을 중심으로 한 법제도화를 통해, 단위 사업장에서는 노사 간 체결하는 단체협약 및 관행과 관습으로 치부되는 현장통제를 통해 진행되는 노동유연화의 목적은, 자본이 전취하는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자본의 집적 방식이자 자본의 생존을 위한 방식인 셈이다. 국가권력 수준에서의 노동법 개정과 단위 사업장에서의 현장통제 방식은, 즉 노동의 유연화는, 자본도 살고 노동도 사는 그러한 윈윈 게임(win-win game)이 결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자본이 살면 노동이 죽고, 역으로 노동이 살면 자본이 죽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인 것이다. 전국적 수준에서 국가권력을 동원한 노동법 개정과 단위 사업장 수준에서 개별 자본을 통한 단체협약 무력화 공세는, 노동유연화가 국가와 단위 사업장 수준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총체적 노동탄압임을 보여 주고 있다.

노동법 개악을 중심으로 한 국가 수준에서의 노동유연화 공세를 흔히 공중전이라 부른다면, 단위 사업장에서 단협 개악의 형태로 나타나는 노동유연화 공세는 지상전이라 할 수 있다. 총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는 이러한 공중전지상전이라는 입체적 방식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총자본의 공세―즉, 노동유연화를 위한 공중전과 지상전―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응이, 총자본의 공세에 비해 매우 수세적이면서 분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흔히 공중전이라 불리는 문재인 정권을 중심으로 한 노동법 개정 중심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해 부족하지만 민주노총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 투쟁을 전개해 왔다. 물론 필자는 민주노총의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이 힘 있게 전개되어 왔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문건을 통해, 제출한 바 있다.

본고의 문제의식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보다는, 단위 사업장에서 전개되는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한 수세적이고도 분산적인 대응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면, 단위 사업장에서 개별 자본의 의해 제기되고 있는 임금피크제나 상여금 월할 지급 요구에 대해 일부 단위 사업장 투쟁 주체들이 아무런 저항 없이 수용하고 있는 모습 등이다.

임금피크제는 정년 연장과 맞물려 전개된 노동유연화의 전형적인 공세이다. 지난 2013년 고용상 연령 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2016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그리고 2017년부터 전 사업장에서 시행된 60세 정년제는 정년 연장을 통해 노인 노동력을 활용하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개별 자본의 입장에서 노인 노동력을 활용하지만, 연공제 임금 체계에서 추가되는 자본의 비용 부담을 어떻게 줄이느냐는 것이었다. 정년 60세 법제화 이후 자본의 고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방안으로 단위 사업장에서 개별 자본으로부터 제기된 방안이 바로 임금피크제였다.

한국 대부분의 사업장의 임금 체계가 연공제 임금 체계이기 때문에, 정년의 연장은 곧바로 자본의 입장에서는 고임금 지급이라는 비용의 문제로 나타난다. 이러한 자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법제화된, 즉 5년2)에 대한 비용을 기존의 연공제 임금 체계의 적용을 받지 않게 한 임금피크제 도입은, 철저하게 노인 노동력을 싼 임금에 사용하겠다는 총자본의 요구이며, 노동유연화의 한 형태였다.

그런데 개별 사업장에서 전개된 정년 60세 법제화와 임금피크제는, 민주노총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또는 단위 사업장 투쟁 주체들의 자발적 동의(?)로,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도입되었다. 임금피크제는 법제도화되어 있는 공중전 수준에서의 노동유연화 공세는 아니다. 물론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의 경우, 노동부를 통한 지원이라는 점에서는 공중전 수준에서의 의미를 가질 수는 있으나, 법제도화를 통한 강제조항이 아니라는 점에서, 단위 사업장 수준에서 개별 자본의 요구라는 점과 단위 사업장 투쟁 주체들에 의해 적용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상전으로 규정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개별 자본의 임금피크제 공세는 노동부를 동원한 자금 지원 공세뿐 아니라 지난 2014년 11월 경총 명예퇴직 제도 운영지침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55세 명예퇴직 이후 임금피크제가 적용된 삭감된 임금으로 재입사하는 방식으로, 명예퇴직 제도와 함께 운영되기도 했다.

결국 임금피크제는 국가권력의 정년 60세 법제도화와 함께, 단위 사업장에서 노사합의라는 형태로 개별자본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노동유연화의 전형적 형태인 데도 불구하고, 일부 단위 사업장 투쟁 주체들의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동의를 통해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임금피크제뿐 아니라 개별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해 단위 투쟁 주체들이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의 대표적 행태로는, 상여금 월할 지급 건을 들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은 지난 18년 5월 최저임금법 산입범위에 식대 및 월할 지급되는 상여금을 포함시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국민국가 수준에서 무력화하는 법제화를 단행했다. 이렇게 전국적 수준에서의 최저임금제 법제화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시켰고, 단위 사업장에서는 상여금 월할 지급 등을 최저임금 기준 범위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노사합의(또는 협의)로 수용함으로써 최저임금 인상 효과 무력화를 완성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단위 사업장에서는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이 합의하는 단체협약의 효력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까지 적용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는 정규직 중심의 노동자들이 합의한 상여금 월할 지급은 곧바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별도의 임금인상 없이 기준상으로만 최저임금이 인상됨으로써, 최저임금 인상 자체가 무력화되는 효과를 낳는다. 문제는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에서의 단체협약 체결이, 개별 자본에 의한 상여금 월할 지급 요구를 정규직 중심의 임금인상이나 또 다른 복지 확대와 맞바꾸는 형태로,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공공연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단위 사업장에서 개별 자본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임금피크제나 상여금 월할 지급 요구는, 단위 노동조합의 아무런 저항 없이 아니 오히려 자발적 동의 형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공중전이라 할 수 있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자행되는 노동법 개악과 지상전이라 할 수 있는 단위 사업장에서 개별 자본에 의해 자행되는 노동유연화 공세가 전혀 다른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위 사업장에서의 투쟁 주체들의 특별한 고민 없이 혹은 자발적 동의하에 노동유연화가 적용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다.

물론 국가권력이 자행하는 노동법 개정 형태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해서 당연하게 전국적ㆍ계급적 대응 투쟁이 요구된다. 하지만 본고는 이 문제, 즉 소위 공중전이라 할 수 있는 문재인 정권을 중심으로 한 노동법 개정 형태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한 노동자계급 운동 진영의 대응을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 본고의 문제의식은 오히려 단위 사업장에서 개별 자본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한 것이며, 왜 단위 사업장 투쟁 주체들이 저항 없이 노동유연화 공세를 받아들이고 있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단위 사업장에서 개별 자본에 의해 자행되는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해, 단위 사업장 투쟁 주체들이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불철저한 인식으로 인해 단체교섭 테이블에서 개별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를 쉽게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판단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 본고는 우선적으로 1장에서 노동의 유연화 공세가 어떠한 내용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한 개념과 내용을 우선적으로 정리하겠다. 그리고 2장에서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의 유연화 공세와 어떻게 맞물려 전개되었는지에 대해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겠다. 3장에서는 1997년 IMF 경제위기ㆍ공황 이후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해 주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고찰을 전개하면서, 현재의 문재인 정권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겠다.

 

 

1. 노동유연화란

 

자본은 일상적으로 노동이 생산하는 잉여가치를 전취하기 위한 다양한 자본의 집적 과정을 단행한다. 노동력 사용의 대가로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을 직접적으로 줄이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든지, 아니면 자본이 입장에서 비용으로 치부되는 임금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 수를 줄이는 방법, 또는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방법으로 임금을 줄이는 방법, 일감을 외주로 돌려 임금 비용을 줄이는 방법, 정규 노동시간 대신 정규 노동시간 외 노동시간을 늘이는 방법, 여러 명의 노동자가 할 일을 한 명의 노동자가 할 수 있도록 기능을 다양화하는 다기능화 방법 등, 임금과 노동시간 그리고 고용형태 등 전방위적인 방면에서 임금을 줄이기 위해 그리고 노동자가 생산하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이러하듯 자본이 전취하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ㆍ방식ㆍ체계 등을 노동의 유연화라 한다. 노동의 유연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임금 체계를 보다 유연화해서 임금 삭감을 하는 임금의 유연화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정리해고제나 비정규직의 확대 및 일감의 외주화 등 수량적 유연화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 노동자의 일을 한 사람이 할 수 있도록 체계화하는 다기능화 등 기능적 유연화이다.

이 중 수량적 유연화를 외부 수량적 유연화, 외부화, 내부 수량적 유연화로 구분해서, 노동의 유연화를 5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때 외부 수량적 유연화는 노동자 수에 대한 유연화로 정리해고와 파견근로, 파트타임, 임시ㆍ일용직, 계약직 확대 등을 들 수 있으며, 노동시간의 유연화라 할 수 있는 내부 수량적 유연화로는 변형근로제나 탄력적근로제 도입과 연장근로 규제 완화나 휴업ㆍ휴일 대체 등을 들 수 있다.

정리해 보면, 노동유연화는 노동이 생산하는 잉여가치의 전취율을 높이기 위한 자본의 생존 법칙으로, 임금의 유연화와 노동자 수 유연화, 외주화라는 일감의 유연화, 노동시간의 유연화, 다기능이라는 기능의 유연화 등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그림1] 참조).

 

[그림1] 노동유연화

 

 

 

1) 임금의 유연화

임금 유연화(wage flexibility of financial flexibility)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집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개개의 노동자에 따라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각기 다른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임금 체계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소위 짬밥순이라 표현하는 근속년수에 따른 호봉제의 임금 형태인 연공제에서 성과 능력급제 중심의 연봉제로 변경하는 것이, 대표적인 임금의 유연화 과정이다. 임금 유연화 수단으로는 성과변동제와 인사고과에 따른 임금인상 차등제가 있다.

 

2) 외부 수량적 유연화

외부 수량적 유연화(external numerical flexibility)는 자본 간의 경쟁에서 노동이 생산하는 잉여가치 전취율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의 수를 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 수량적 유연화는 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의 활용과 같은 고용형태를 통해 달성된다. 임금 절감이나 관리비용 절감, 노동력에 대한 거래비용 절감 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자본의 집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외부 수량적 유연화는 외주ㆍ하청 등 외부화와는 달리 직접적인 고용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기업 내부에서 기간제 등 비정규직 고용과 같이 고용 및 해고가 용이한 고용형태를 의미한다.

 

3) 외부화

외부화(distancing)는 간접적인 고용형태로, 기업 내 노동계약을 일감 중심의 상업계약으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화는 기존에 기업 내부에서 노동했던 일감을 외부에 하청을 주어 비용을 절감하거나 기업 내부의 노사관계에 따른 노무관리 비용을 외부의 다른 기업으로 전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외부화는 자본의 집적에서 직접적 비용 절감이라는 효과를 낸다. 외부화는 동일한 공장 내에서 함께 일을 하더라도 사업체가 다르게 되는 사내하청을 포함해서 일용근로, 파견근로, 용역근로, 도급근로 및 재택ㆍ가내근로 등이 있다.

 

4) 내부 수량적 유연화

내부 수량적 유연화(internal numerical flexibility)는 노동시간의 유연화로 불리기도 한다. 내부 수량적 유연화는 노동자의 업무 일정을 조정하거나, 업무 시간을 조정하여 노동유연화를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 수량적 유연화나 내부 수량적 유연화는 노동력의 양적 조정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나, 외부 수량적 유연화는 노동력의 소유자인 노동자의 수를 조정한다면, 내부 수량적 유연화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의 조정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내부 수량적 유연화는 자본의 집적, 즉 이윤을 전취하는 데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내부 수량적 유연화는 초과 노동이 대부분이며, 이외 선택적 노동시간제나 탄력적 노동시간제 등이 있다.

 

5) 기능적 유연화

기능적 유연화(functional flexibility)는 노동력의 양적 조정을 뜻하는 내ㆍ외부 수량적 유연화와 달리 노동력의 질적 조정을 의미한다. 즉, 교육을 통해 다기능성을 지닌 노동자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는 한 명의 노동자가 자신의 직무 이외에도 다른 노동자의 직무 또한 수행하는 것, 즉 일인 다역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능적 유연화는 제조업ㆍ비제조업 구분 없이 전 산업에 걸쳐 추진되고 있다. 자본의 집적에 대한 영향은 간접적 영향으로 나타난다.

 

 

2.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의 유연화

 

1) 8시간 쉬고, 8시간 자고, 8시간 노동하는, 8시간 노동제

자본주의 생산의 핵심은 자본가계급이 전취하는 이윤만을 위한 생산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윤을 생산하는 유일한 요소가 살아 있는 인간의 노동력이라는 점이며, 이러한 이유로 인해 자본주의 생산에서는 이윤을 생산하는 유일한 요소인 인간의 노동력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이 되어 왔고, 자본주의 사회가 존속하는 이상 이러한 생산 방식은 유지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윤만을 위한 생산을 위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안의 생산을 위한, 노동의 유연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계급이 사활을 걸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추진하는 방법ㆍ방식ㆍ체계를 의미한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노동시간을 둘러싸고 자본가계급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은 아래 [그림2]와 같다.

 

[그림2] 노동시간을 둘러싼 이윤 극대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시간은 임금으로 지불되는 가치를 생산하는 지불노동시간과 자본가계급이 전취해 가져가는 이윤을 생산하는 부불노동시간으로 구성된다. 이때 자본가계급이 전취하는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는, 임금으로 지불되는 가치를 생산하는 지불노동을 줄이는 방식과 자본가계급이 전취하는 이윤을 생산하는 부불노동을 늘리는 방식이 있다. 그러나 지불노동을 줄이는 방법이건 부불노동을 늘이는 방법이건, 노동자의 건강권과 노동자의 시간 등의 문제로 노동자의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이러한 노동시간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대립은 자본주의 역사와 함께 성장했으며 발전해 가고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자 하는 노동자계급과 노동시간을 최대한 늘리려고 하는 자본가계급 간의 대립은, 노자 간의 계급적 대립이자 계급 간 투쟁의 역사를 이뤄 왔다.

그런데 사회적 통념상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했던 계급이 노동자계급일 것 같은데, 역사상 꼭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최초로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했던 것뿐 아니라, 주요한 매 시기마다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했던 계급은,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이었기 때문이다.

로버트 오웬은 1817년 자신의 공장에서 8시간의 노동과 8시간의 자유, 8시간의 수면 시간이라는 취지 아래, 8시간 노동제를 최초로 도입했다. 로버트 오웬의 8시간 노동제는, 노동시간 단축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추진되었다. 이러한 오웬의 생각은 비록 당시 주 6일 70-80 노동시간이라는 노동조건을 개선한다는 의미는 있으나, 협동조합 운동이나 노동자 자주경영, 대안 공동체(화폐) 운동으로 발전하면서, 로버트 오웬의 노동시간 단축 운동은 한계를 보였다.

여하튼 자본가 신분으로 전개된 로버트 오웬의 8시간 노동제를 시작으로 발전한 노동시간 단축 운동은, 이후 1930-40년대 영국에서 진행된 차티스트 운동과 맞물려 노동자들의 정치 권리를 행사할 시간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 운동으로 이어졌다. 차티스트 운동과 맞물려 전개된 노동시간 단축 운동은, 자본가계급이 전취하는 이윤량을 축소하고자 하는 직접적 노동시간 단축 투쟁과는 달리, 노동자의 정치 활동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 운동이라는 간접적 노동시간 단축의 한계를 보였다.

이후 영국은 1848년 아동과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제한한다는 공장법을 제정하면서, 최초로 법정 노동시간을 국민국가 수준에서 제시하였다. 이러한 영국의 공장법 제정은 비록 그 대상이 아동과 여성이라는 한계를 보였지만, 기존에 단위 사업장 노사관계에서 제기되었던 노동시간을 둘러싼 계급투쟁이 국민국가 수준으로 확장되었다는 의미를 가지며, 또한 노자 간의 계급대립에 있어 국가권력의 직접적 개입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영국의 공장법 제정 등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는 노동자계급의 노동시간 단축 투쟁에 대해, 맑스를 중심으로 한 제1 인터내셔널은 1866년 열린 스위스 제네바 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노동시간에 관련하여 인터내셔널이 추구해야 할 기본 사항을 결정하였다.

 

우리는 노동시간 제한을 위한 투쟁이 노동자 삶의 향상과 해방을 위한 다른 모든 노력들을 성공적으로 이끌 전제 조건임을 공표한다. 노동시간 제한은 노동계급, 말하자면 모든 국가의 민중의 건강과 육체적 에네르기를 다시 생성하기 위하여 그리고 노동계급에게 정신적 발전, 사회적 교통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활동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 우리는 8시간 노동을 법적인 한계로 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8시간 노동시간 제한은 미합중국 노동자들에 의하여 이미 일반적으로 요구되었고, 회의의 결정은 이러한 요구가 전 세계 노동계급의 일반적 요구로 끌어올리는 것이다.3)

 

이러한 제1 인터내셔널 결정 사항은, 제2 인터내셔널에서도 재확인되었으며, 1890년 이후로는 세계 노동절 대회에서 8시간 노동제 쟁취가 주요 요구로 자리 잡았다. 세계 노동절의 기원이 된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의 파업 투쟁은, 8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장시간 노동에 항의하며,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이날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경찰과 군대의 발포로, 결국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1889년 빠리에서 열린 제2 인터내셔널 창립 대회에서는, 이날을 기억하며 1890년 5월 1일,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국제적 시위를 조직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렇게 미국 노동자들의 8시간 쟁취 투쟁은 이후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시작점이 되었다.

 

2) 노동유연화와 함께 가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

― 노동시간 단축은 자본가계급의 요구다?

1890년 미국의 산업 기술자인 프레더릭 테일러는 생산과정의 기술적 과학화로, 자본가계급의 소득분인 이윤과 노동자계급의 소득분인 임금의 동반 상승이 가능하다는 사고로부터 생산현장에 대한 기술적 분석을 시작했다. 이후 생산과정에서 노동자의 노동시간에 대한 기술적 연구는 소위 과학적 경영 또는 테일러주의로 칭해졌다. 1890년 생산공장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실험을 통해 테일러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이러한 장시간의 노동은 노동자의 피로를 누적시켜 생산력을 감소시킨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이러한 실험 결과를 근거로, 당시 10시간 30분 정도 되는 하루 노동시간을 8시간 30분으로 단축할 것을 제안했다.

이러한 테일러주의는 비록 당시에는 전체 자본가들에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일부 자본가들을 중심으로 생산성 향상을 위해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후 테일러주의 중심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 운동은, 노동자 상호 간의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성과급 제도와 노동강도의 상호 작용 등을 통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노동유연화의 형태로 확산되었다. 즉, 1890년 테일러주의라는 이름으로 생산성 향상을 위해 성과급제와 함께 제기되었던 노동시간 단축은 자본가계급의 요구였다.

테일러주의 이후 자동차 회사를 운영했던 자본가인 헨리 포드에 의해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이 보다 구체화되었다. 장시간 노동보다 적정한 노동시간이 생산력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포드는, 1914년 자신의 공장에서 실행되고 있었던 9시간 교대 근무를 8시간 3교대 근무로 전환했다. 동시에 임금 또한 2.3달러에서 5달러로 인상하면서 향상성을 꾀했고, 이후 공장에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할 조건을 만들었다.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새로운 생산방식을 동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둘의 차이는, 1890년 테일러의 노동유연화는 노동자의 이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노동자와의 치밀한 공유가 필요했다면, 1914년 이후 컨베이어 벨트를 중심으로 한 포드주의는 노동자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노동자가 종속된다는 것이다.

 

3) 노동시간 단축 요구를 위한 다양한 요소

테일러와 포드처럼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뿐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 요구의 원인은 다양했다. 신기술의 도입으로 인한 실업에 대한 두려움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구체화되었다. 유럽을 중심으로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이 광범위하게 도입된 1930년대의 경우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줄일 것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요구가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주 40시간 요구는 1950년대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여가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 5일 근무제4)로 이어졌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총자본의 요구에 의해 노동시간이 법적 표준시간으로 법제화되면서 단위 사업장에서는 공장 가동 시간이 제한받기 시작했다. 공장 가동 시간이 제약을 받으면서 개별 자본의 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대표적 연구는 바로 8시간 2교대 작업 방식 등, 2교대를 중심으로 한 노동시간 단축5)으로의 전환이었다.

포드주의 방식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과 2교대 방식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은 철저하게 총자본의 생산성 향상이라는 요구에 맞춰 진행된 시간 단축이었다. 이러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본가계급의 노동시간 단축은, 1960년대 초 미국의 자본가들로부터 주 4일 노동제로 구체화되었다. 미국 자본가들에 의해 제기된 주 4일 노동제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주 4일 주 40시간 노동제였다. 요즘 말로 하자면 변형된 노동제로 1주일에 4일만 노동하되, 1주 전체 노동시간은 40시간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즉, 하루 10시간씩 4일 노동하면 1주 40시간이 될 수 있으며, 다른 형태로 특정한 하루, 예를 들어 월요일과 화요일은 15시간씩 30시간 노동하고, 수요일과 목요일을 각각 5시간씩 노동해도 되는 형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1주 40시간 노동은 1주 35시간 노동으로 발전하기까지 했다.

자본가계급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과 변형근로제는 노동자계급의 1일 8시간 1주 40시간 노동시간 단축 요구와 대립되면서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대립이 구체화되었다.

1960년 자동화와 관련한 부르주아 계급의 연구자인 존 디볼트는 자신의 책 ≪자동화―자동화된 공장의 도래≫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면서, 노동유연화를 중심으로 한 노동시간 단축의 도래를 이야기했다.

 

오늘날 건설되고 있는 경영조직은 특별한 생산공정의 기계화가 노동의 전문화를 결과한 첫 번째 산업혁명의 유산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경영조직의 노동분업적 구조를 관통하고 그리고 이를 앞지르는 정보 씨스템을 건설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4) 노동유연화의 시작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노동유연화는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많은 자본들이 노동유연화를 중심으로 한 노동시간 도입을 통해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의 전취율을 높이기 위한 고민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노동자계급에 의한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공장 가동 시간이 줄어듦과 동시에 노동자 자신을 위한 시간이 늘어남을 의미한다.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자본가계급에게 새로운 생산방식의 도입을 강제했으며, 한정된 노동시간에 최대한의 잉여가치를 전취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었고, 이러한 자본의 고민이 노동의 유연화로 구체화되었다. 노동자계급의 노동시간 단축 투쟁과 새로운 기술개발이 노동시간을 둘러싸고 새로운 생산방식, 즉 노동의 유연화를 구체화하는 물적 토대가 된 것이다.

 

 

3. 한국에서의 노동유연화

 

1) 한국 자본주의의 노동유연화 공중전의 시작

한국에서 노동유연화는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1998년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가 법제화되면서 시작되었다.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의 법제화는 제도적으로 정규직의 해고를 보장하고 노동자의 고용 보호 제도를 부분적으로 완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정규직 노동자의 합법적 해고와 파견근로제 확대는 경제위기ㆍ공황기 개별 자본의 생존을 위한 국가권력의 자본 보호 장치였다. 당시 김대중 정권으로부터 제기된 4대 부문(노동, 금융, 공공, 재벌)에 대한 개혁은, 모두 노동시장 유연화로 귀결되었다. 4대 부문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30대 재벌기업과 공기업 및 금융기업의 노동자 변동 현황을 보면, 1997년 10월 현재 4대 부문 대상 기업 노동자의 수가 156만1천여 명에서 2001년 4월 구조조정 이후 124만8천여 명으로, 즉 20%의 인원이 감축되었다. 이를 보면, 김대중 정권의 4대 부문 개혁이 무엇을 노리고 있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명목상 인원 감축의 문제만이 아니라, 채용과 이직의 절대 수가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가 도입된 이후 절대적으로 증가함으로써, 자본 입장에서 자유로운 노동력 이동이 수월해졌음을 알 수 있다. 채용과 이직률을 확인할 수 있는 채용률(채용 건수/노동자 수)과 이직률(이직 건수/노동자 수)의 합으로 계산되는 노동이동률이, 1995년 10월-1996년 10월 19.1%에서, 1997년 10월-1998년 10월 36%, 1998년 10월-1999년 10월 54.9%, 1999년 10월-2000년 10월 48.7%로 증가하면서, 1997년 IMF 경제위기 이전보다 약 50% 이상으로 자본의 입맛에 맞게 노동유연화가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인원 감축과 채용된 노동력에 대한 자유로운 노동 이동보다 더 큰 문제는, 지금까지 없었던 임시ㆍ일용직 등 다양한 고용형태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노동시장에 출현했다는 점이다.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급속하게 증대한 비정규 노동자의 수는 2019년 현재 한국 노동시장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 노동조합 운동에 있어서도 가장 커다란 현안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정리해고제 도입과 함께 확산된 파견근로제는 1998년 합법화되기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한국 노동시장에서 확대되어 왔었다. 1994년 등록된 인력공급업체가 961개 업체 1만9천여 명 수준에서, 1999년 현재 1,529개 업체에 5만5천여 명으로 증가했고, 이러한 인력공급업체와 파견노동자의 수는 지금도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파견노동자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 노동자들의 수 또한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2)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신경영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노동유연화의 지상전

정규직에 대한 해고 및 비정규직의 확산을 꾀했던 파견근로제 법제화라는 노동유연화의 공중전은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김대중 정권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단위 사업장에서 소위 지상전 수준으로 전개된 노동유연화의 공세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구체화되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한국 노동운동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던 계기점이었다. 1987년 7월 5일 울산의 현대엔진으로부터 시작된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이 형성된 이래 최대 규모의 대중적 투쟁이었고, 6월 항쟁에 의해 쟁취된 절차상 민주주의에 이어 경제적 민주주의 그리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쟁취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투쟁이었다.

1987년 7월 5일부터 시작된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8월 28일 이석규 열사의 장례식 투쟁과 9월 1일 서울 택시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 9월 3일 현대중공업, 9월 4일 부평의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까지 약 3개월에 걸쳐 진행된 노동자 투쟁을 말한다. 3개월 동안 노동자 투쟁이 진행되면서, 총 3,241건의 쟁의행위와 하루 평균 44건의 파업이 전개되었으며,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기 전인 1987년 6월 말 당시의 노조 수는 2,742개, 조합원 수는 105만 명으로, 조직률은 15.7%였는데,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조합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노조 수와 조합원 수가 급증해, 1989년에는 노조 수 7,883개, 조합원 수 193만 명, 조직률은 19.8%로 노동조합 운동이 양적으로 급성장했다.

한편 세계 흐름은 1917년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를 건설했던 쏘련이 90년대를 전후로 해서 동독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과 함께 자본주의로의 회귀를 선언하면서 세계 사회주의권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던 시기였다. 또 한 축으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블록이 과잉생산으로 인한 주기적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80년대 후반부터 체제의 위기를 겪고 있었던 시기였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의 부르주아 계급은, 그간 노동자 투쟁으로 인해 확장된 사회복지를 축소하고, 자본의 집적과 집중의 방식을 고도화하였다. 특히 일본의 경우, 소위 일본적 생산방식이라 불리는, 즉 기존의 생산방식과 생산체계를 보다 유연하게 시장 수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동화된 기계설비를 확보하고, 보다 유연하게 노동력을 관리ㆍ통제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으로 노동력을 활용하는 생산방식을 동원하여, 세계 자본주의에 몰아닥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한편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인해 현장 권력을 빼앗긴 한국 자본가계급은, 현장 권력을 통제하고 나아가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소위 일본적 생산방식이라는 노동유연화 전략을 신경영전략, 유연화전략, 기업문화운동 등의 이름으로, 80년대 후반부터 각 단위 사업장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80년대 노동유연화 공세, 즉 신경영전략은 크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방향으로 단위 사업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로 생산체계와 노동력ㆍ임금ㆍ기능을 유연하게 관리하는 노동유연화 전략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 노동유연화 전략을 단위 사업장에 안전하게 정착하기 위하여 노동자의 의식을 개조하는 기업문화 전략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고 노동자 상호 간의 경쟁을 유발하는 신인사노무관리 전략이다.

이러한 신경영전략은 노동유연화의 또 다른 형태이며,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80년대 후반부터 단위 현장에 치고 들어오는 자본가계급의 노동유연화 공세의 구체적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3) 노동유연화의 목적과 그 내용

이렇게 한국에서 총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는, 공중전은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가 확대된 1997년 이후부터, 지상전이라 할 수 있는 단위 사업장에서의 공세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인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의 노동유연화의 목적은 노동자가 생산하는 잉여가치에 대한 전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자본의 소득분이라 할 수 있는 이윤량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동의 유연화는 크게 ①임금의 유연화, ②외부 수량적 유연화, ③외부화, ④내부 수량적 유연화, ⑤기능적 유연화로 구분할 수 있다.

자본으로부터 제기되는 노동의 유연화는,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노동유연화 관련한 내용을 법제도화하는 방식과 단위 사업장 수준에서 노사 간의 합의나 협의의 과정에서 노동유연화를 통한 작업장 체계 구축이라는 방식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국가권력 수준이나 작업장 수준이나 동일하게 노동유연화는 노동자가 생산하는 잉여가치를 전취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지며, 자본의 위기라 할 수 있는 경제위기ㆍ공황기 시대에 자본의 위기관리 전략이라는 형태로 급격하게 노동자계급에게 다가온다.

노동유연화의 두 번째 목적은 바로 노동자 투쟁을 무력화하고 나아가 노동자 상호 간의 경쟁을 통해 자본가계급의 이해와 요구에 복무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자본은 자본주의 초기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노동자들을 분할 지배해 왔다.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내국인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 등,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을 밑으로부터 파괴하는 다양한 형태의 분할 정책을 취해 왔다. 특히나 노동유연화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접고용 노동자와 간접고용 노동자, 내부 노동자와 외부 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의 고용은 노동자들을 분할 지배코자 하는 자본에게는 매력적인 방안인 것이다. 특히 비정규직을 통한 분할 정책은 한국 노동시장의 지각 변동적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러한 비정규직의 확산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노동시장의 전면적 구조 개편을 가져온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제로섬 게임이라 할 수 있는 노동유연화는, 자본주의 최후 단계인 독점자본주의 시대에 독점이윤에 의해 배양ㆍ육성되는 노동조합 운동 내부의 기회주의적 개량주의 세력들에 의한 사회적 합의주의와 맞물려 추진된다는 특징 또한 가지고 있다.

 

 

4. 총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응 방안

 

80년대 후반 단위 사업장으로부터, 98년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확산을 통한 법제도화로부터, 한국 사회에서 시작된 총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는 길게는 30년의 역사, 짧게는 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양적ㆍ질적으로 급성장한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총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로부터 현장 권력을 빼앗기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등으로 분할되어, 통제로부터 한 치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총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한 한국 노동자계급의 대응은, 노동법 개악 저지라는 공중전 수준에서의 투쟁은 비록 버겁고 힘들지만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면서 투쟁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단위 사업장에서 나타나는 개별 자본에 의한 노동유연화 공세는 최소한의 투쟁은커녕 다수의 사업장에서 무기력을 넘어 자발적 동의 아래 노동유연화 공세를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중전 수준에서는 최소한의 투쟁이 전개되는 반면, 지상전이라 할 수 있는 단위 사업장에서는 최소한의 투쟁조차 조직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분석하고 대안을 만들어 낼 것인가?

물론 단위 사업장에서의 투쟁이 조직되지 못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투쟁을 하지 못하는 것과 자발적 동의를 통해 개별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를 수용하는 것은 차원이 다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후 보다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필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총자본의 노동자 분할 통제 전략이, 단위 사업장에서 개별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를 자발적 동의를 통해 수용하는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하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연구 과제로 돌리더라도, 이제 노동자계급의 대응 방안을 살펴보자.

총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가 단위 사업장에서 무저항 또는 자발적 동의 형태로 수용되는 것은, 우선적으로 총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를 공중전과 지상전으로 분리해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은 최소한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투쟁이 전개되는 반면, 단위 사업장에서의 임금피크제나 상여금 월할 쪼개기, 비정규직 확산 등에 대해서는 정규직 중심의 조직된 노동자들의 대응이 자발적 동의 수준으로 이러한 공세를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총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 즉 총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한 몰과학적 인식을 극복하고,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국민국가 수준에서 진행되는 노동법 개악은, 단위 현장을 상대로 한 노동유연화 공세에 있어 그것을 법과 제도로 강제하기 위함이다. 단위 사업장에서 개별 자본이 취득하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으로서의 노동유연화 공세는, 법제도를 통해 추진되는 것이 항상적이다. 당연하게 노동유연화의 법제도화를 저지하는 투쟁은, 총력으로 그것을 저지하고 무력화시켜내야 한다. 동시에 단위 사업장에서 개별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노동유연화 공세 또한 노동법 개악과 동일한 수준에서의 저지 투쟁이 요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노동유연화의 공중전과 지상전이, 동일한 수준에서의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전쟁임을 분명히 해야만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전국의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의 태도이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문제나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총파업 투쟁 등 다양한 형태의 공중전에 대해 전국의 변혁적 현장 활동가들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단위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유연화 공세에 맞선 현장 투쟁에 대해서는 극단적 표현을 사용하자면, 단위 투쟁 주체들에게만 투쟁을 맡겨 두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소한 주요 사안에 대한 전국적 선전ㆍ선동 작업과 함께, 단위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양보교섭의 형태들에 대한 폭로와 투쟁을 조직하는 모습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나오면서

 

임금과 내ㆍ외부 수량 그리고 외부화 및 기능적 유연화로 표현되는 노동유연화 공세의 목적은 자본이 전취하는 이윤의 극대화에 있다. 이러한 노동유연화의 결과는 비참한 노동자의 삶의 모습이며 현장의 모습이다.

본고는 총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와 결코 분리될 수 없지만, 양보교섭 또는 실리교섭 등의 모습으로 단위 사업장에서 무차별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개별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한 문제 제기로부터 시작되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여 년이 흐른 지금, 현장의 모습은 철저하게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었고, 단위 사업장에서는 최소한의 현장 실천 활동가조차 재생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장 실천 활동가의 평균 연령이 고령화되고 있으며, 젊은 노동자들을 투쟁의 주체로 세워 내기가 무척 힘들다는 노령의 활동가들의 푸념은 현장 권력이 자본으로 이동되었음을 보여 주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노동자 상호 간의 경쟁과 비정규직의 확산은 결코 분쇄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고, 우리의 투쟁의 폭과 깊이에 따라 바뀌고 분쇄가 가능한 노자 간의 힘의 관계의 결과물일 뿐이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단지 정규직화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노동자 상호 간을 분열시키는 총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를 분쇄하는 길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총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한 분쇄 투쟁은 공중전 수준이라 할 수 있는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만으로는 부족하다. 단위 현장에서 노동유연화의 법제화를 등에 업고 전개되는 개별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할 때만이, 승리의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이다.

본고는 지금까지 단위 사업장 중심으로 총자본이 행하는 노동유연화 공세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했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소한 무엇인 문제인지 그리고 무엇으로부터 우리의 투쟁이 시작되어야 할지에 대한 필자의 고민을, 독자들에게 부족하나마 전달했다는 판단이다.

다시금 투쟁의 끈을 움켜쥐고 현장으로부터 투쟁을 조직하자. 이 길만이 장기적 저성장이라는 경제위기ㆍ공황기 노동자계급 투쟁의 승리를 안아오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노사과연

 

 


1) 물론 여기서 상여금은 분기 등으로 지급했던 상여금을, 월 단위로 지급하는 월할 상여금이라는 조건을 붙였지만.


2) 사업장마다 다를 수는 있겠으나, 56세에서 60세로 정년이 연장되면서 나타나는 차이인 5년을 의미한다.

3) 제1 인터내셔널 제네바 대회(1866년)의 결정 사항 중에서.

4) 당시 독일 노동조합의 주요 표어 중 하나―“토요일에는 아빠는 우리 것”―에서도,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노동시간 단축의 이유가 여가 시간의 확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5) 2교대를 중심으로 한 노동시간 단축 방식은 1934년 영국의 페르논에 의해 제출되었는데, 상품이 연속적으로 생산되지 않는 사업장이라도 2교대를 통한 생산방식이 1교대 생산방식보다 더욱더 효율적이고 실업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다.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4월 13th, 2019 | By | Category: 제150호(2019년 4월), 현장 | 조회수: 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