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소성리≫ 영화감상평 : 평화를 지키는 할매들의 작은 걸음~!

 

은영지 | 자료회원

  

영화가 시작되는 도입 부분에서 한편의 잔잔한 동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평화로운 길과 개울, 산등성이 여기저기를 카메라가 따뜻하고 친절한 시선으로 잡아주고 역시 그 자연의 일부인 듯 평화로워 보이는 할머니들이 보인다. 나무껍질처럼 거칠지만 풍상을 이겨낸 아름다운 손으로 잡초를 뽑고 모종을 심고 파를 수확하는가 하면 마을회관에 모여 깻잎도 다듬고 음식도 같이 먹으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시는 모습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듣는 이의 귀를 간지럽히는 평온함이 여기에 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그렇게 살았고 나 역시 늙으면 그렇게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은 소박한 미래다.

 

할머니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보면서 “내일 세상의 종말이 와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말한 철학자 스피노자를 떠올린다. 이 외침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인간은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니 세상이 망해도 사과나무를 심는 일밖에 없다는 무기력을 표현한 것이라는 설도 있고, 아님 세상이 끝나더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으면서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야무진 의지를 외친 거라는 의견도 있으나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 내게 소성리 할머니는, 스피노자와 같은 철학자이면서 성자로 와 닿는다.

 

전쟁이라는 파워게임을 수행하려고 한반도, 그중에서도 평화롭기 그지없는 물 맑고 별이 쏟아져 내린다는 소성리에 사드라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배치하는 폭력적인 군사문화의 이식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들에서 갈무리하는 할머니들의 낙천적인 모습은 영락없는 철학자다. 매사에 조급증을 보이고 쉽게 열 받다가 좌절하거나 포기하고야 마는 얼치기에 불과한 내게 소성리 어르신들의 삶은 진정한 스승이고 닮고 싶은 소박한 자화상이다.

 

이 할머니들이 요즘 뿔이 많이 나셨다.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걸 핑계로 골목대장보다 더 치졸한 양아치 같은 행태를 일삼아온 미국이 무능하기 짝이 없는 박근혜를 조종해 소성리를 미군기지로 만들기로 결정했고 정작 주민들에겐 의견 한 번 묻지 않고 점령군처럼 들어와서 사드를 배치하는 무례를 저질렀다. 동화와 같은 소성리가 끔찍한 전쟁터로 탈바꿈하는 걸 용납하지 않으신 할머니들은 투사로 변해 가신다.

 

이미 한국전쟁으로 끔찍한 살상과 폭력, 이념갈등에 시달려온 소성리 할머니들이 사드배치 후 하루에도 수차례 들락거리는 비행기 소음에 몸서리치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요즘 비행기 댕기는 거가 한국전쟁때 비행기 댕기는 거캉 똑같다. 비행기만 보면 작대기로 이 노무새끼들 와 이리 댕기노마 그런다.”

 

사드를 반대하는 할머니들을 두렵게 하는 이들은 경찰과 미군 군홧발 말고 또 있다. 1945년 해방공간에서 빨갱이 때려잡는다며 갖은 악행을 일삼으며 친일잔재 청산을 무산시킨 서북청년단이 아직도 눈 시퍼렇게 뜨고 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전쟁준비를 거부하는 어르신들을 쳐 죽일 종북좌익세력들이라고 악다구니를 퍼부어대는 그들은 막강한 돈줄과 미국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살벌한 풍경을 여지없이 연출한다. 화면에 나오는 그 장면이 한국전쟁 때의 끔찍한 모습인지 현재의 소성리인지 헷갈리기까지 한 공포스러운 장면이다.

  

≪소성리≫ 영화는, 해방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민족이 겪은 근현대사의 아픔과 고통이 이번 사드배치로 또다시 할머니들을 몸서리쳐지게 하고 있다는 걸, 과장된 감정표현을 억제한 절제미로 잘 서술하고 있다. 그때 인민군이 왔다가 가면 한국군이 주민학살을 해서 계곡 여기저기에 시체를 파묻어놓았다고 회상하시는 할머니들의 기억들, 아픔들에 귀를 기울이면서 도대체 국가라는 것, 국가주의와 체제라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들었다.

 

이미 칠, 팔십을 훌쩍 넘기신 자그마한 체구의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소성리의 평화만 지키시는 게 아니라 우리 민족의 평화와 자주의 지킴이로 우뚝 서 계신다. 그래서 지켜보는 내내 맘이 아프고 미안하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년이나 놈이나 그 자리에 가면 다 똑같다’고 푸념하시는 할머니의 말이 얼마나 절절하고 슬프게 와 닿던지…… 그러면서도 천생 법 없이도 살 순박한 우리 어르신들이다. ‘무궁화가 제일 비싼 나무’라며 부자 되게 무궁화를 많이 기르라고 하는 말씀 속에는 국가는 그들을 무시하고 내동댕이쳤지만 국가를, 우리 공동체를 걱정하는 착한 마음이 담겨있다.

 

대개, 좋은 영화를 보면 ‘감동적이다, 아니다’라고 말들을 하지만 ≪소성리≫는 그런 관점으로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진정한 감동은 할머니와 우리 모두의 바람대로 소성리에 박혀있는 사드를 뽑아내고 평화를 보장받은 다음에라야 가슴에 자리 잡을 것이다.

 

영화가 끝난 후 일부러 시간 내어 찾아주신 주연배우 임순분 부녀회장님을 덤으로 마주하는 횡재도 했다. 영화 찍는 줄 몰랐다며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잘 했을 텐데.’라며 농담을 곁들인다. 그러나 사드 얘기를 하며 계속 울먹이실 땐 우리도 같이 눈시울을 적셨다. 할머니들 사시는 집 뒷마당에 북한의 대포를 막는다는 어이없는 핑계로 강력한 무기가 턱 버티고 있는데 얼마나 기가 막히고 분하실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소성리 할머니들은, 내일 세상이 끝장나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자 스피노자보다 한 수 위다. 전쟁터로 변한 소성리를 지키기 위해 아스팔트 도로 위에 드러누워 계시다가도 부지런히 밭에 나가셔서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으신다. 스피노자가 살아 돌아와도 소성리 할머니들처럼 못했을 거라고 장담한다. 이 땅의 자주와 평화를 화두로 꺼낼 때마다 내겐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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