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집은 어느 은행 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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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주|회원

최근에는 그렇지 않지만 나는 아주 가끔씩 집을 소재로 한 꿈을 꾸곤 했다. 똑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거나 혹은 똑같은 구조의 집에서 사는 꿈이었다.

꿈에 나는 길게 늘어선 일자형의 집에 살고 있다. 내가 사는 집을 포함하여 주변의 집들은 높은 지대에 지어져 있어 맨 아랫동네로 내려가려면 굽이굽이 좁은 골목길을 돌아야 한다. 사방으로 시멘트 골목길이 나 있는데 그 폭은 1 미터가 조금 넘을까 할 정도로 아주 좁다.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집들마다 방들은 작고 창들도 작고 천정은 낮아 매우 어두우며 따로 입구가 없는 방도 있다. 이 허름하고 누추한 집들 아래로 상대적으로 부유한 집이 있는데, 복층으로 설계된 이 집은 천정이 높아 쾌적하고 넓은 거실엔 벽난로와 화려한 꽃무늬의 소파가 놓여 있어 무엇보다 안락함을 느끼게 해 준다. 반면 내가 사는 집은 화장실은 공동사용하면서 정화조는 없는 그런 집이다. 뒷간은 남들 시선으로부터 떨어진 은밀한 곳에 있으며 오물은 늘 넘쳐날 것 같다. 나는 무엇보다 그 오물이 넘쳐나 그것을 뒤집어 쓸까봐 늘 불안하다.

반복되는 꿈 때문에, 내가 언젠가 분명히 이곳에 살았는데 기억을 못하는 것은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무심코 흘려보낸 어린 시절과 상황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부모세대들, 하늘과 가까운 곳에 투덕투덕 지어진 무허가집들, 민둥산을 오르내리며 노는 꼬질꼬질한 아이들, 띄엄띄엄 잘 지어진 이층집들과 반짝반짝한 그집 사람들…

경상도며 전라도며 아래 지방에서 올라온 부모세대들은 몸뚱아리 하나가 전부였다. 거칠게 살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때, 부모들은 생존과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낮은 품값을 받으며 힘든 일을 감내하였고 자식들은 세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시대의 흐름을 따라 살았다. 그런 산동네에 가난한 사람들이 날로 늘어가고 집들은 우후죽순 새로 지어졌다. 사람들이 오고가고 바뀌기를 한참 하더니 마침내 도시정비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서울 산동네들은 구차한 흔적이 싹 지워지고 ‘깨끗하고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대단위 아파트단지로 바뀌었다.

나는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오래전에 그곳을 떠났다. 오래 살긴 했지만 애정은 없었기에 그곳을 다시 찾아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예전 흔적도 없고 추억도 없는 그때 그곳은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가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지금 나에게 과거 불안정했던 삶을 한편의 영상으로써 드러내곤 하는 것이다.

60년대부터, 성장과 개발논리가 지배적 이념으로 자리하면서 집은 자본의 성격도 함께 부여받았다. 부유한 자들의 종자돈은 가난한 사람들의 집들을 무지막지하게 먹어치웠고, 철거민들에게 돌아간 ‘딱지’들은 헐값으로 다시 있는 자들의 수중으로 흘러 들어갔다. 부동산불패신화가 승승장구 이어지면서 거의 모든 도시들의 주거형태는 아파트로 탈바꿈했고 아파트는 자본의 흐름을 더욱 쉽게 만들어주었다. 집을 사고파는 일은 더 이상 도덕적으로 지탄 받을 일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고 현명한 재테크였다. 집은 재테크의 목적이며 수단일 뿐, 그것을 이용할 줄 모르거나 못하는 사람들은 자연 돈의 흐름에서 도태되었다. 사람들은 어제 산 집을 오늘 팔고, 그 돈으로 다른 집을 사고, 불어난 돈으로 두 채를 사고 세 채를 샀다. 많은 사람들이 미친 듯이 집들에 열광하였다. 국가도 언론도 금융권도 건설사도 모두 한통속이 되어 부추겨 댔다. 집 사라, 은행돈 싸게 써라, 이자걱정 뚝, 은행금리이상 수익보장 등… 국가는 올바른 주택정책으로 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했지만 오히려 투기를 조장하여 전 국토를 투기판으로, 전 국민을 투기꾼으로 만들었다. 불과 반세기 만에 주택은 주거형태뿐만 아니라 소유개념까지 모든 것을 완전히 뒤바뀌었다.

용산참사 현장 부근 공사장 펜스에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고 누군가가 써놓은 걸 본 적이 있다. 당연한 말이다. 참으로 집이란, 사랑을 배우고 키우는 곳이며 휴식과 재충전을 하는 곳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젠 이런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교과서적이며 혹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살지 모른다. 집이 사는 곳(Living)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는 것(Buying)으로 더 우선시되고 가치 있는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으니 말이다.

집과 연관해 친구 세 명의 이야기를 잠깐 소개할까 한다.

친구 A. 15년 전쯤, A는 강남에 있는 작은 평수의 재건축대상 아파트를 샀다. 주거 목적이 아닌 투기, 부드러운 말로 재산증식이 목적이었다. 당시 A는 빠르고 정확한 정보수집에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았고 마침내 알토란같은 물건을 잡았다. 친구의 선택은 적중했다. 8년이 지난 후 아파트가격은 거의 여섯 배로 뛰어 올랐다. 친구는 엄청난 시세차익을 실현하였는데 조금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다시 살까 고민하기도 했다. 친구의 재구매여부는 모르겠으나 A에게 집이란 분명, ‘사는 것’이었다.

친구 B. B는 신용불량 신세 덕에 제대로 된 곳에 취직하기 어려웠다. 아는 사람을 통해 공사판 현장에 일용잡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름엔 뜨거운 직사광선에 얼굴을 데이고 겨울엔 칼바람의 영하의 날씨에 얼굴과 발가락은 동상에 걸릴 지경이다. 일은 고되고 힘들지만 그것마저 못하게 될까봐 조마조마하다. 그런 친구가 지친 몸을 누이는 곳은 문을 닫으면 작은 빛 하나 찾을 수 없는 고시원이다. 마치 조금 큰 관(棺)으로 보이는 그곳을 도저히 ‘사는 곳’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그곳은 단지 고시원을 짓고 임대업을 하는 그들을 위한 또 다른 ‘사는(파는) 것’일 뿐이다.

친구 C. 자영업을 하는 C는 10년 전쯤 임대아파트를 계약하고 그곳에 살았다. 몇 년 후 살던 아파트를 분양 전환한다는 말에 C는 이른바 ‘내 집’을 갖고 싶은 욕망에 은행대출을 받고 분양받았다. 그러나 무리한 은행대출에 경제사정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결국 C는 아파트를 전세주고 자신은 반지하 월세로 나와야 했다. ‘내 집’이라는 미끼를 던진 건설사의 유혹에 C는 사는 곳에서 쫓겨난 꼴에다가 은행빚까지 안게 된 셈이었다. ‘하우스푸어’가 된 C는 아파트를 청산한다 해도 은행 대출금에 전세보증금을 내주고 나면 손에 건질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C는 자기네 아파트를 은행집이라 했다. 20년 거치 원리금 상환조건으로 하나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으니 하나은행 것이란다. 마이너스, 카드론 등을 써가며 돌려막는 신세를 감안하면 자기 집은 몇 개 은행이 나눠 갖고 있는 셈이라 했다. 그럼에도 C가 아파트 팔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생애 처음으로 얻은 내 집에 대한 미련과, 처분하고 나면 다시는 내 집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문제가 되어 온 ‘하우스푸어’는 결국 국가가 삶을 기반으로 하는 주택정책엔 등한시하고 다양한 이익집단과 의기투합하여 국민을 대상으로 투기를 조장한 집단사기극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 상승랠리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부채질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집이란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고는, 개개인의 욕망을 볼모로 잡고 거품랠리에 편승시킨 대국민 사기극! 주지하다시피 더 이상의 상승랠리는 없었다. 사람들은 고스란히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고, 살기 위해 상가에 몰래 숨어들어 도둑질을 하는 사람이 생겨났는가하면, 급기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핑크빛 미래를 남발한 국가는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실효도 없을 일시적 부양책이나 미봉책을 제시하고 있다. 싼 금리로 집을 사라고 부추기던 은행은 지금 무엇을 하는가. 또 다른 대출상품을 개발, 판매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밖에 다른 자본은 무얼하고 있는가. 당신들이 그때 꼭지를 잡은 거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바로 바닥이며 집을 마련할 기회라고 말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화려한 외형적인 성장 뒤에 어두운 현실은 늘 존재해 왔다. 청계천이나 서울변두리에 모여 살던 사람들은 사람대접도 받지 못했다. 지방출신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문둥이, 쌍것, 촌놈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 예사였다. 재개발이란 명분으로 보금자리를 빼앗더니 그 수법은 더욱 잔인해지고 용역-공권력의 합동작전도 불사, 죽이고 구속하고 죄인을 만들고 있다. 한편 국민의 대부분은 몰라라 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했다. 성장에 불가피하게 따라오는 부산물 정도로 여기거나 국가나 기업의 성장을 개인의 성장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개인의 불안과 두려움은 늘 극복되지 못한 채 유보되었다.

그러나 초고층의 화려한 외형, 세련된 내부구조와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건축물에는 억울하게 짓밟힌 삶의 터전들이 보이지 않는 흔적으로 배여 있다. 그러다가 개인 속에 치유되지 않은 과거가 어느 순간 도드라지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린 시절 겪었던 광란의 재개발의 상처가 깊게 각인되어 있다가 흐릿한 기억을 뚫고 불쑥불쑥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나 혼자만 이런 경험을 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처럼 정신적 충격을 입었고 또 그것을 어느 순간에 드러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자본의 횡포에 매일 조금씩 나도 모르는 상해를 입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살아가기 위한 최소주거공간이 주어지고 보호되어야 한다. 약자나 가난한 사람들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재 세심한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오히려 그 반대다. 힘 있고 많이 가진 자들이 공권력의 비호를 받는가 하면 약하고 가난한 이들은 공권력과 자본의 공조하에 불평등을 강제당하고 있다. 불평등을 심화시키기 위해, 1%가 아닌 0.1%로 부를 집중시키기 위해, 이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들은 가히 필사적이고 그들의 위력은 그야말로 막강하다. 밑바닥계급은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을 정도이고 스스로 중산층이라 하는 계급도 균열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피지배계급이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지고 자본의 쏠림이 심할수록, 이것은 지배계급의 위기가 되고 결국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사회과학자들은 예언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지금 잠 못 자고 시름 깊은 자, 소리 내지 못하고 우는 자,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자, 빛도 없는 골방에서 시계를 더듬는 자… 아무도 죽지 않았다. 다만 삶의 두께 만큼 더 강해지리니! 네 지배계급의 민낯과 똑똑히 마주하게 되리니!! <노사과연>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Oct 10th, 2013 | By | Category: 2013년 10월호 제94호, 회원마당 | 조회수: 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