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 연장. 인생 이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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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노동예술단 선언 “몸짓선언”, 자료회원

 

“우리 (환경미화 노동자)정년이 67세로 돼 있는데 올핸 그걸 70세로 연장할라고 오늘 교섭요구안 작성했지.”

갑자기 하던 젓가락질을 멈춘다.

살짝 미소 짓던 입에선 무거운 한숨 묻은 말이 이어진다.

“그래 내 손으로 그 요구안을 써놓고도… 이래 생각하이 참 서글픈기라…내가 그 나이까지 이 일을 해야 되나…”

어느 대학교에서 청소 용역 일을 하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해온 한 노동자 누님.

오랜만에 한 투쟁현장에서 만나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이내 멈췄던 젓가락을 치켜들며 언성을 높인다.

“그라이 정년을 연장할 끼 아이라 임금을 올리야지! 그래 그 나이 묵고는 좀 쉬재!”

“맞아요! 그래야지요!”

맞장구를 쳐보지만 언짢은 듯, 슬픈 듯한 표정을 바꾸기엔 턱없다.

“그래도 우짜겠노…. 지금은 이리 안 하믄(정년 연장) 당장 정년이 코앞인 우리 조합원들… 살 길이 막막하이…에휴… 그나마 그그라도 올해 체결할라믄 또 싸와야(싸워야) 하는기라.”

마치 지금 바로 싸우러 가기라도 할 듯 밥 한숟갈 크게 떠넣으신다.

‘내가… 그 나이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문득 얼마 전에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어느 건물에 들어갔다가 찾아가는 층수가 높지 않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던 중이었다. 연세가 제법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비교적 젊은 할머니라 표현하는 게 더 맞겠다…)한 분이 한 손은 힘겨운 듯 한쪽 무릎을 짚고, 한 손은 계단 난간을 잡은 채 한 칸씩 한 칸씩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르고 계셨다.

‘응? 무릎이 많이 불편해 보이는데 왜 엘리베이터를 안 이용하실까?’

라는 생각을 하며 그냥 지나치고선, 볼 일을 마치고 그 건물을 나오기 위해 다시 계단에 들어서던 순간.

시쳇말로 빛의 속도로 그 계단을 걸어 올라오시는 한 환경미화원 복장의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분명… 아까 내가 건물에 들어올 때 힘겹게 한 계단씩 오르던 아주머니였다.

사복에서 환경미화원 복장으로 바뀌었지만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응? 아까는 그렇게 힘들게 계단을 오르시더니… 심지어 청소도구까지 들고 저렇게 빠르게 오르내리시다니…’

‘도복이 10단’이라는 말이 있다는데, 복장이 바뀌니 정말 전투력이 급상승하신 건가?…..

우연히 그 의문이 한 단계 풀릴 계기가 있었다. 어느 시설관리 노동조합활동가와 얘기를 나누다 그 건물에서 겪었던 일을 말했었다.

“당연하죠… 작업복 입고 아프거나 힘든 티 내면 바로 계약해지 당할 텐데요. 안 짤릴려면 아무리 아파도 아픈 티 내면 안 되죠.”

아…그랬던 거구나…

그리고 얼마 후 인천공항 비정규직 동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또한번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우리보고 유령이 되래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후다닥 청소하고, 특히 공항에 높은 사람 오면 어딘가에 숨어서 절대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거예요…”

유령이 되어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이용하는 이들이 많아 눈에 짤 띄어서였을까? 무릎이 그렇게 불편한데도 후다닥 계단을 오르내리던 건 가급적 눈에 띄지 않고 다니는 게 몸에 배어 있어서였을까?…

“내 그 나이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들고 있던 젓가락을 툭 내려놓으며 한숨처럼 내뱉던 그 말이 새삼… 마음에 박힌다. 아마도 그 ‘일’이라는 게 ‘청소’ 그 자체만을 의미하진 않았을 테다. 내가 그 나이까지 유령으로 살아야 하나… 아파도 아프다는 티도 못 내고 그렇게 눈치보며 뛰어 다녀야 하나…

수명100세시대, 인생이모작. 요즘 제법 유행하는 말들이다.

노인이 겪는 4가지 고통이라는 ‘노인4고’ 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이 ‘무위고’ 즉, 할 일 없는 고통이라고들 하던데. 뭐…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인생이모작이라는 말은 참으로 인정머리 넘치는 말일 뿐 아니라 그 환경미화노동자누님의 한숨은 진정한 고통을 모르는, 말 그대로 배부르고 철없는 소리일지 모른다.

그 ‘할 일’이라고 하는 게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니라 ‘하고픈 일’이란 의미일 때 말이다.

싫든 좋든 남한 사회의 투쟁하는 대다수 노동조합들은 그 누님이 작성한 임단협 요구안처럼 ‘정년연장’을 기본적인 요구로 삼아왔다. 그리고 올 해 국회에서는 정년연장법이 통과되었다.

“다른 나라 노동자들은 일을 덜하겠다고 투쟁하는데 이상하게 한국 노동자들은 일을 더 시켜달라고 투쟁을 하네요”라고 어느 외국인이 그랬다는데…

아닌 게 아니라 정년연장법의 국회 통과에 대한 노동, 진보운동진영의 여러 환영메세지를 접했을 때, 몇 년 전 정년연장에 반대해 대대적 투쟁에 나섰던 프랑스 노동자들이 떠올라 서글퍼지기도 했었다.

뭐… 서글픈 일일 수는 있겠지만 그 외국인 말처럼 이상한 일은 전혀 아니다. 너무나 저임금이기 때문에. 또한 얼마전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기초연금 공약을 파기했듯, 노인연금이니 사회보장이니 하는 복지정책은 전혀 비빌 언덕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아까 그 누님 말처럼 당장 정년이 되어 일을 못 하게 되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니까… ‘나를 더 오래오래 부려 먹어 달라’는 요구를 내 손으로 내걸고 싸워야 하는 서글프게 이상한 일이 벌어질 수밖에…

혹시 이리 말하면 ‘저임금? 그렇다면 비정규직이나 진짜 저임금 노동자들이 정년연장 요구하며 투쟁하는 건 이해가 가는데 왜 연봉 1억대에 육박한다는 고임금 정규직 노동자들도 정년 연장하라고 요구하는 건데?’라고 의문을 던지시는 분들 계실 거다.

실제로 언젠가 어느 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에서 “에이. 우리야 뭐 사실은 배부른 투쟁이죠. 다들 월급도 많이들 받는 편이구요”라고 멋쩍게 말하던 동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연봉 2천 만원이 안 되는 노동자들에게 연봉 7,8천 만원 되는 노동자들은 어마어마한 고임금 노동자들일 게다.

그런데 왜 그런 고임금자들이 정년연장을 요구하냐는 의문에 대한 답은 실은 당연하게도 설사 1억이라 해도 전혀 고임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금이 많으냐 적으냐는 표시된 숫자의 크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 금액이 ‘그 사회에서 소위 보편타당하게 생활해 낼 수 있는 정도인가?’에 달려있다. 새삼스레 말하자면 임금이란 노동력의 정상적인 재생산비이고 보편적인 가족부양비이니까.

언젠가 나온 언론보도를 보면 서울 강남 웬만한 가정은 자녀 1인당 한달 평균 사교육비로 300여만원을 지출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초등학생 자녀 사교육비 300만원 때문에 도둑질을 하다 붙잡힌 어느 주부의 이야기가 보도된 적도 있다. 만약 자녀가 둘이라면 1년에 사교육비만 7천2백여만원인 셈이다. 엄청난 고임금 부자노동자들의 그 고임금은 실은 강남에선 애들 사교육비밖에 안 되는 돈이다.

물론 사교육비는 보편타당한 생활비가 아니니 억지 주장이라 말하실 수도 있다. 그럼 주위를 한번 둘러보시라. 애 키우는 사람들에게 있어 사교육을 시키는 게 이 사회에서 보편타당한 생활로 강제 받고 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거기에다 자녀 중 누군가가 등록금 천만원 시대인 지금에 대학이라도 가게 된다면…

뭐… 그래도 그건 좀 그렇다고 여기신다면…음… 살아야 하는 집은 당연히 보편타당한 생활의 기본 중에도 기본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으실 게다. 연봉 7,8천의 고액 연봉 노동자들이 가장 기본적인 보편타당한 생활을 위한 주거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평생 채무노예가 되는 현실만 봐도 그들의 임금이 얼마나 저임금인지 증명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럼 연봉 7,8천은 꿈도 못 꾸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뭐냐?

당연히… 저임금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초초초초저임금일 뿐이다. 그들이 초저임금 노동자라고 하여 연봉 7,8천 노동자들이 고임금이라 말할 근거는 전혀 없으며 다만 그것은 자본가들이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고 서로 갈등하게 만들기 위한 그저 기만적인 지배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지난 국회에서 정년연장법이 논의되고 있을 때 심지어 매우 진보적인 어느 노동운동 단체라는 곳에서는 “국회가 정년연장법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면 노동계는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 논의해볼 수 있다”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그들의 정년연장 조건은 당연하게도 근무기간에 있어서의 임금체계 개편, 에이 그냥 쉽게 말해 임금하락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그게 전제가 아니라 그걸 위해 즉, 저임금화를 위해 그들은 정년연장을 논의한 것이다.

참… 그 논평을 낸 단체에 계신 분들을 모두 아까 그 환경미화노동자 누님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에 초대라도 한번 해야 하나…

“정년을 연장할 끼 아이라 임금을 올리야지!!!”

정확히 그 반대로 하고 있는 그들, 소위 노동운동의 지도자들 때문에 어쩌면 그 누님은 자기 손으로 ‘나를 더 오래 부려 먹어달라’는 요구안을 쓰며 그토록 괴로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선 그 ‘인생이모작’이란 말도 마찬가지일 게다.

노령화시대, 소위 은퇴 후의 새로운 삶으로서의 재취업.

인생이모작… 맞다… 그것이 직접 씨를 뿌리고 김을 메고 수확을 한 직접 생산자들의 몫이 두배가 되는 원래 의미의 이모작인 한에서는… 맞다.

짐짓 그렇게 느껴지게 하려 그들은 이 말을 쓰고 있을 게다.

여전히 이 사회는 생산을 통해 만들어 놓은 부가 전혀 직접적으로 생산한 이들의 것이 될 수 없고 다만 생산수단을 사적, 배타적, 독점적으로 소유한 이들의 것으로만 되는 사회임을 철저히 감춰놓고 벌이는 사기의 말잔치.

그런 한… 정년 연장이든 인생이모작이든 그것은 다만 인생을 두 번 착취당하는, 온 뼈마디 관절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무릎 한 번 부여잡지 못한 채 숨막히게 계단을 오르내릴 것을 강요 받으며 죽을 때까지 착취 당하는

‘인생이모착’이고 ‘착취 연장’일 뿐이다. <노사과연>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Oct 10th, 2013 | By | Category: 2013년 10월호 제94호, 회원마당 | 조회수: 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