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조선)반도 평화체제의 전망과 노동운동의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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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한국전쟁 종전선언, 평화협정” 문제가 논의되고 선언되었다. 역사적 사건이다. 지난해에 심각한 전쟁위기가 지속된 것을 생각해 보면, 불과 1년여 만에 남북이 한(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한 좋은 흐름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인 반전이다. 5월 말 혹은 6월에는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가운데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급변하고 있는 반도의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응방향을 수립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긴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작년에 반도에 조성되었던 전쟁위기는 세계대공황과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제국주의의 도발적 대응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미국은 추락하는 자신의 헤게모니를 지켜내기 위해 노골적인 군사적 위협에 나섰던 것이다.

위기를 극복한 동력은 무엇일까? 똑같이 전쟁위기가 있었던 시리아와 반도를 비교해 보자. 시리아는 제국주의의 침략과 압제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반도는 대화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북이 핵으로 무장하고 있지 않았더라도, 이 판이한 정세의 전개가 가능했을까?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대한 계급적 태도를 정립하자

전쟁은 천재지변과 같이 불쑥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야기하는 정치상황의 연장선상에서 그것은 발발한다. 즉,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고, “정치는 경제의 집약이다”. 전쟁은 최악의 계급적 억압을 의미한다. 노동자와 민중은 전쟁에 총알받이로 끌려가게 되고, 전쟁을 핑계로 노예와 같은 강제노동이 부과된다. 또한 전쟁은 일체의 비판적 세력에게 재갈을 물리는 구실이 된다. 반면 자본가들은 전쟁을 통해 자본축적의 새로운 공간을 연다. 전쟁이라는 도랑에 인민의 피가 흘러넘치고, 그 피에 젖은 자본의 대지에는 꽃들이 만개한다.

당연히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원한다.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고, 나설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반전⋅평화투쟁이야말로 전쟁을 막는 참된 길이다. 평화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직 지난한 계급투쟁의 결과 획득되고 쟁취되는 것, 계급투쟁의 연속인 것이다. 이러한 점을 망각하고, 노동자계급이 계급화해의 수렁에 빠진다면, 전쟁에 대한 계급적 관점을 상실한다면, 평화 또한 위태로워지고 노동운동은 전망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한-미 동맹에 기초한 평화의 모순

 

그러한 점에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우선 긍정적인 정세의 표현이요 성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 한계가 명백하다. 문재인 정권은, 노동자⋅민중의 역량에 기초한 자주적인 평화가 아니라, 공공연히 한미 동맹에 기초한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하고 있다. 심지어 남북 정상회담을 북미 정상회담의 길잡이로 설정하고 있다.

한-미 동맹이란 과연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미국은 반도의 분단에 대해 직접적 책임이 있다. 즉, 현재의 반도의 위기를 포함하여, 각종 위기와 모순을 잉태하고 있는 현재의 분단질서는 미국이 70여년 전에 조성한 것이다. 미국은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한-미 군사훈련 등등으로 군사적 압박을 가해, 반도에 전쟁위기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려 했다. 또한 미국은 한국 사회를 정치, 경제, 문화, 이데올로기 등의 제 측면에서 신식민지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한미 동맹에 기초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한다는 문재인 정권의 태도는 한국사회가 미국의 신식민지 사회임을 다시 한번 공공연하게 승인하는 것이다.

한-미 동맹은 한국의 독점자본가계급의 미국의 독점자본가계급에 대한 종속적 동맹을 의미할 뿐이다. 한-미 동맹은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해서는 적대적 관계에 있다.

이러한 한-미 동맹에 기초하여 추구되는 한반도 평화는 수많은 모순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미 동맹 즉,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담보하는 질서로서 반도의 평화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그리고 그러한 평화는 미국의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전쟁으로 전화될 수도 있는 불안정한 평화, 살얼음판 위의 평화에 지나지 않게 된다. 나아가 미국 혹은 주한 미군이 반도 평화의 담보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미국의 신식민지적 지배를 더욱 고착화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문재인 정권이 유포하는 환상적 견해를 분쇄하고, 투쟁을 통한 평화의 쟁취, 계급투쟁의 연속으로서 평화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

 

 

한(조선)반도 평화의 조건들

반도의 분단질서를 극복하고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가슴 벅찬 전망이다.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며, 몇 번의 회담을 통해 수립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동안 반도의 분단질서는 남북의 인민을 갈라놓아 서로 대립하게 하는 것이었으며, 국내적으로는 한국의 노동자와 민중을 짓누르는 억압의 질서였다.

여전히 존재하는 국가보안법은 그동안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억압하는 주요 기제였으며, 헌법상 나열되어 있는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 정치적 자유 등을 무력화하는 장치였다. 파쇼 악법인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전적으로 이북과의 대결을 빌미로 한 것이었다. 따라서 반도의 진정한 평화는 무엇보다도 먼저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분단질서를 실제적으로 극복하게 하는 첫 걸음이다.

또한 분단질서의 극복, 혹은 반도 평화의 주요 조건의 하나는 주한미군의 철수이다. 주한미군은 반도에서 분단을 유지시키는 주요 장치였다. 또 한국 내부적으로는 미국이 한국사회를 신식민지적으로 지배하는 주요 고리이기도 했다. 주한미군이 한국군에 대해 갖고 있는 전시작전권은 미국이 마음대로 언제든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철수 없는 반도 평화는 남북의 민중들을 철저히 기만하는 조치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반도 평화의 주요 조건 중 하나로 주한미군의 전면적 철수를 주장해야 한다.

반도의 평화의 조건은 이러한 점을 넘어서서 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조건의 문제가 있다. 작년의 전쟁위기는 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조건의 결과였다. 따라서 반도의 평화는 이러한 국제질서의 변동을 조건으로 한다. 미국과 일본의 이북에 대한 적대시 정책의 종식과 평화회담과 수교의 문제가 그것이다. 그리하여 남북 간의 화해에 더하여, 이러한 국제질서의 변화를 이끌어낼 때 반도의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반도의 평화실현에 다가설 수 있다.

 

 

노동자계급은 조합주의, 사회적 합의주의를 극복하고 변혁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

 

현재 반도를 둘러싸고 회오리치는 정세의 본질은 각 계급세력이 자신의 전략을 갖고 부딪치고 있다는 데 있다. 즉, 현 정세에서 각 계급세력의 전략의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북의 전략, 미제국주의 전략, 문재인 정권으로 대표되는 한국자본가계급의 전략, 중국과 일본의 전략이 반도라는 무대에서 거세게 부딪치고 있는 것이, 지금 반도를 둘러싼 격동의 본질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어떠한 전략을 갖고 있는가? 지금의 현실을 냉정히 보면,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지금의 정세에 내세울 수 있는 자신의 전략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노동자계급은 정세의 변화에 끌려 다니며, 결국은 제국주의의 억압과 기만 그리고 계급화해 이데올로기 속에서 조각조각 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1997년에 정리해고와 비정규직도입 수용이라는 노사정 합의 이후, 운동의 몰락과정을 거쳐 왔다. 자본의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서, 노동자계급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열이 고착화되었고, 노동운동은 조합주의라는 좁은 테두리 내로 점점 위축되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전국자동차판매연대노조가 금속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무산된 것은, 한국사회 노동운동 전체가 얼마나 조합주의에 병들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신자유주의 공세가 강요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 그리고 조합주의로의 후퇴가 이제는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조합주의와 더불어 사회적 합의주의는 노동운동을 병들게 하고 있는 주요한 요소이다. 말이 좋아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지, 그것은 실제로는 노동자계급의 자본가계급에 대한 철저한 굴종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수단을 박탈당한 노동자는 자본가와 결코 대등해질 수 없으며, 따라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화해, 혹은 합의는 현실에서의 굴종을 가리는 수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사회적 합의주의의 환상을 극복하고 노동운동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조합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수립해야 한다.
조합주의를 넘어서는 것,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을 극복하는 것은, 그것을 넘어서는 전망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전망은 한국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에 입각해 있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에 입각하여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가질 때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자본가계급이 강요하는 노동자계급의 분열이 극복될 수 있다. 그리하여 사회주의를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하는 것을 전제로, 노동자계급은 변혁전략을 세워 냄으로써, 여타 민중을 이끌어가는 전위투사로서 자신의 위치를 회복해야 한다.

그동안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퇴락하면서 확산된 시민운동은 노동운동을 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운동들, 세력들 중의 하나로 치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시민운동은 변혁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주도성, 헤게모니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이러한 점을 근원적으로 극복하고,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의 기치를 세워내면서 한국사회의 변혁에 있어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수립하는 길로 가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만이 조합주의, 사회적 합의주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을 딛고 계급적 단결을 이루어내고 원대한 노동해방 세상으로, 새로운 대안사회로의 진군이 가능할 것이다.

 

 

 

남북 민중에 대한 전쟁 선포!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한(조선)반도 평화 가로막는 주한미군 철수하라!

한-미 동맹에 기초한 평화는 기만이다. 노동자-민중 투쟁으로 자주적 평화통일 이룩하자!

조합주의, 사회적 합의주의를 넘어서서 노동해방 세상으로 나아가자!!

 

 

2018년 5월 1일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운영위원회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Jul 10th, 2018 | By | Category: 자료, 정세와노동 | 조회수: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