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10월 혁명 100주년 기념 러시아 탐방기 (2)

이영훈 | 회원

 

 

 

온갖 행사가 가득한 11월 7일이 밝았다. 모스크바 붉은광장 근처에 백화점 기념품 가게를 들렸다. 옛날 공산당원의 당비 납부 내역이 적혀있는, 30년대에 발급된 것으로 표시돼 있는 당원증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손바닥 만한 크기의 당원증은 값이 원화로 대략 20만 원으로 너무 비싸 살 수가 없었다. 어디 박물관에 보존돼야 할 과거 사회주의의 흔적들이 비싼 골동품이 되어 돈이 된다면 닥치는 대로 팔리고 있었다. 그나마도 값을 비싸게 안 부르면 다행이다. 깃발 같은 경우는 30~40만 원 정도의 금액이었다.

붉은광장으로 들어갔다. 2차 대전 당시의 러시아의 각종 기갑병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차 위에서 깃발과 플랜카드를 펼쳐놓고 맑스주의자임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보였다. 서로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지 나이가 매우 지긋하신 분이 레닌 묘소 뒤에 있는 묘지에 가서 병사의 안내를 받아 참배하는 모습도 보였다.

 

여담으로 필자는 개량한복을 입고 돌아다녔는데 러시아 병사가 나를 보더니 “닌자”라고 하더라. 아이고… 덕분에 일행이 많이 놀려먹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어디서 왔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일본이나 중국을 첫 번째나 두 번째로 물어보고 마지막으로 한국을 물어본다. 한국도 그냥 물어보는 게 아닌 “북에서 왔냐? 남에서 왔냐?”로 또 갈린다. 유럽에서의 동양인을 상상할 때 일본인을 많이 상상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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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분들을 빼면 섭섭하지 않겠는가?]

 

그 이후 시간을 보내다가 사회주의자들이 행진을 준비하는 곳으로 갔는데 꽤 많은 인파가 스탈린과 레닌의 사진이 큼직하게 그려진 피켓을 여기저기 들고 있었다. 러시아 공산당원 외에도 전 세계 각국의 활동가들이 한가득 어우러져 있었다.

물론 여기서도 경찰의 검색대는 피할 수가 없었다. 행진을 준비하는데 전 세계의 각각 다른 처지의 사람들을 한 가지 이유로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경우가 또 언제 있을까 싶다. 그 감격스러운 기분은 정말 잊혀 지지가 않는다. 행사가 시작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같이 있던 동지가 세계 각지에서 온 동지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한반도에서도 이북 문제를 어떻게 생각 하냐?”,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맞는 거냐?”, “어떻게 봐야할지 고민 한다” 등등의 많은 얘기가 오고갔다고 한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 많은 인파 중 동양인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일본인은커녕 중국인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일행이 아시아 사람이라 유독 질문을 더 받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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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에서 온 행진 직전의 사회주의자들과 활동가들의 모습]

 

행진을 시작하자 정말 다양한 노래와 구호가 세계 각지의 언어로 다 튀어나왔다. 그 분위기 속에서 우리 일행도 온갖 민중가요를 아는 대로 다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 민중가요건 무슨 내용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셋이서 노래를 제일 열심히 불렀던 것 같다. 노래할 때마다 열렬한 호응과 박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행진하다가 낮에 왔던 크렘린 궁 외곽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행사를 정리하며 마무리했다. 행사가 끝나고 크렘린 궁 근처의 기념품 가게에 갔다. 러시아 안에서도 유독 모스크바에서 취급하는 기념품의 대부분이 “소련시절의 흔적”이다. 해외 어디를 가도 이렇게 과거의 흔적을 열성적으로 파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하기 위해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챙기고 기차에 탑승했다. 의자를 내려서 다 펼치면 침대가 되고 위 칸은 사다리로 올라가는 침대가 돼있는 형식의 구조였다. 남자만 셋이 탑승하기엔 객실이 워낙 좁다보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좁긴 해도 누울만한 공간은 그럭저럭 나왔다. 우리가 탑승한 열차는 목적지까지 8시간이 소요되지만 4시간이 걸리는 빠른 열차가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밤에 출발하면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온통 진흙 밭의 풍경이 펼쳐지면서 아침식사가 나와 있었다. 러시아라는 대륙이 정말 넓다고 느낀 게 밤새서 아침까지 달려갔지만 아직도 한참을 달리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에 내려서 숙소 근처에 도착하자 모스크바와는 달리 관광도시의 느낌이 물신 났다. 두 번째로 묵은 곳은 숙박시설 같은 첫 번째 숙소와 달리 젊은 사람들이 많고 학업을 위해 온 사람들이 교류를 위해 묵을 만한 느낌이었다. 큰 주방이 있는 잘 만들어진 공동체 시설 같았다.

 

짐을 풀고 동지와 같이 동네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리가 많았고 큰 마트와 커다란 문화용품과 문구류를 취급하는 상점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둘이서 즉흥적으로 먼저 겨울 궁전에 와서 건물을 외부에서 보는데도 정말 컸다. 궁전 앞에 광장이 피의 광장이라 불리는 유래를 옆에 동지에게 설명을 들었다. 이곳에서 먹고 살 수 있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호소하는 민중들을 학살했다고 한다.

물품을 보관한 뒤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겨울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궁전 초입에는 당시에 쓰던 물품, 무기와 포스터 사진이 반겨줬다. 한 20분 정도 지나고 나자 본격적으로 과거 귀족들이 있던 방이 눈앞에 펼쳐졌는데 어찌 알았으랴? 온갖 옛 흔적과 예술작품이 가득한 곳에 와서 그 화려함에 감탄이 아닌 황당한 마음과 탄식을 연발하게 될 줄은…

방 하나하나 들어갈 때 마다 있던 책상과 장식품 소품 등의 물품들은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금으로 모두 칠해져 있다! 차라리 처음 봤을 때 아무런 감흥 따위 주지 못하는 커다란 벽면거울은 수수한 물품이었다. 화장대와 큰 전신 거울의 테두리 그리고 방 여기저기 걸려있는 액자 테두리들은 죄다 금으로 도색해 놨다. 도대체 이 셀 수도 없는 수백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궁전 곳곳에 걸려있는 액자 테두리가 ‘단 하나도 빠짐없이’ 왜 금이여야 하는가? ‘아름다움, 화려함’ 이라는 단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이리 지독하게 착취를 해서 지배계급 자신들의 필요를 한참 벗어난 욕구를 만족시켰어야 했나?

또 다른 방은 책상이 죄다 금으로 도색된 것으로 모자라 책상 상부가 각각 5cm 정도 되는 정 사각형 모양의 각각 색깔이 다른 형형색색의 돌을 맞춰서 정성스럽게 박아놓았다. 정말 압권인 방은 방 벽 전체가 천장을 제외하고 모두 ‘금’이었다. 이쯤 되자 같이 온 동지가 탄식을 연발하다 못해 모스크바 성당을 들러봤을 때보다 더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야… 이건 진짜 말도 안 돼는 거야. 진짜 레닌이 혁명 할만 했어”부터 “케렌스키가 왜 겨울궁전 들어오고 나서 반동이 될 생각을 했는지 알겠다” 등 “둘 다 이건 진짜 말도 안 돼는 거야”라는 말을 얼마나 중얼거리면서 다녔는지 모르겠다.

나중에는 평소에 신경을 쓰지도 않는 천장을 보니 천장도 방마다 그림 그려놓은 것은 물론이요 장식까지 모두 달랐다. 건물 중간쯤 돌아다닐 때 보게 된 갑옷이나 총기류 및 온갖 무기들은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없어 약 4시간 동안 대충대충 훑어 봤는데도 반은커녕 1/3도 못 본 것 같았다. 금은 기본이오, 공작석과 대리석 이름도 모르는 비싸 보이는 물건으로 만든 온갖 화려한 장식품들을 뒤로하고 저녁때가 되어 숙소 근처에 있는 한식당에 들렀다.

 

여담이지만 사실 난 현지 한국 식당에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한국가면 실컷 먹을 게 뻔하고 현지의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명은 괜찮은데 한 명이 식사로 고역이었다. 고추장이 없으면 아예 입에 대지도 못할 정도였다. 음식으로 고생하던 동지를 보다 못해 한식당을 눈 여겨 보고 있다가 같이 가서 갈비탕과 짬뽕, 제육볶음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자 동지는 감격스럽게 식사를 시작했다. 한 종류당 7000~8000원 정도 금액의 돈을 내고 한국음식 먹는 게 어디냐며 정말 만족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식사 중 일본에서 1년 유학하고 온 친구에게 들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모든 나라의 음식은 다 현지화가 돼서 한국내로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아마 너희가 달달하니 맛있니 하는 일본음식들도 직접 일본 가서 먹으면 본인 입맛에 맞으면 다행인데 막상 입에 하나도 안 맞거나 같은 음식인데 전혀 다른 맛이 날 거라고 했다. 한국인들이 먹던 음식이 러시아로 가자 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도 고추장 말고 먹을 게 없던 같이 온 동지에게 이거라도 어디인가?

 

밤이 되자 이번엔 낮에 숙소에 혼자 있었던 동지와 10시 이후에 같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겨울 궁전의 야경도 보고 궁전 뒤쪽으로 펼쳐진 거대한 다리와 강을 거닐면서 오로라호를 향해 정처 없이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스킨헤드 같은 자들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북쪽과 가까워서 현지시각으로 24시가 되어감에도 해가 거의 다 진 것 같은 느낌의 푸른 물결이 하늘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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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오로라 호와 다음날 내부에서 찍은 사진]

 

 

6일째 되는 날 아침이 밝자 전날 낮에 나와 박물관에 같이 다녔던 동지는 마린스키 극장이나 근처 사원에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한 동지는 따로 겨울궁전에 가서 구경하고 궁전 앞에서 오후 2시경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시간이 촉박하고 개장을 아직 하지 않은 곳이 많아 극장이나 역사 유적들은 입구에서 배회만 하다가 들어가지 못했다. 성 이삭 성당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좀 걸리자 중간에 고급 승용차처럼 보이는 택시를 타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택시요금을 2만 원 가량 불러 기가 차서 택시를 타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한 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택시들도 그랬다. 어쨌든 도착한 성 이삭 성당을 들어가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정말 방송에서만 보던 유럽 양식의 으리으리한 기둥을 가진 건물이었다. “하도 이것저것 본 게 많아서 감흥이 좀 덜하고 크게 볼 건 없었다”라고 하려고 했으나 그래도 화려하긴 엄청 화려했다. 여기 역시 온통 신이 되고 싶어 하는 지배계급의 욕망이 충실히 반영된 그림들이 가득했다. 그 입이 떡 벌어질만한 크기의 거대한 기둥에 연한 녹색의 공작석으로 도배해 놨다. 이러니까 맑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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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신성한’ 성당에서 무슨 재물자랑일까.]

 

다음으로 레닌 박물관을 갔다. 아, 또 일정이 안 맞아 박물관이 닫혀 있었다. 슬퍼라. 이번 러시아 여행은 레닌과 관련된 곳은 모두 문을 닫거나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대신 영국에서 오신 중년의 트로츠키주의자 두 분과 마주쳤는데 정말 몇 마디 안 돼는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본인들은 맑스-레닌-트로츠키라고 했고 우리는 맑스-레닌-스탈린이라고 하자 노(No!)를 외치기 시작했다. “No 스탈린! 맑스-트로츠키!” 우리 둘은 맑스-스탈린이라고 했지만 그분들은 “No, No, No”를 연신 외쳐댔다.

피자를 사먹고 겨울궁전 앞에서 세 명다 모인 뒤 오로라호로 가서 입장료를 내고 함선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기념주화를 자판기마다 2000원에 하나씩 팔고 있었고 당시함선 내부 참전용사들의 생몰년도와 발자취, 사용하던 무기와 유품, 훈장이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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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동상과 293호 열차]

 

핀란드 역으로 걸어갔다. 해가지기 전 그곳에 있는 레닌 동상 앞에 도착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레닌동상을 볼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배하고 갔는지 붉은 장미가 수십 송이가 쌓여 있었다. 동지들은 마침 근처에 있던 타이완 남성분의 도움을 받아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핀란드 역 안으로 들어가 역무원의 안내를 받아 레닌이 혁명 당시 타고 왔다는 293호 열차 앞에 갈 수 있었다. 이제 1주일간의 짧은 시간동안 사실상 마지막 혁명의 흔적을 접한 순간이었다. 글귀가 새겨진 비석 앞에 가방에서 “단결 투쟁“이 써진 민주노총 머리띠를 꺼내 묶어주고 나왔다.

나는 사람들에게 자료의 공유나 자문을 구할 만한 책에 더 눈이 가 서점에 따로 들러 겉표지만 보고 자료로 도움이 되겠다 싶은 책들을 1만원에서 3~4만원씩 주고 몇 개 구했다. 정말 마지막까지 혁명의 상품화는 우리를 씁쓸하게 했지만 다른 기념품 사는 것 보다야 엄청 즐거운 마음으로 구매했다. 정말 신나게 샀다. 숙소로 돌아와서 다들 흐뭇한 마음에 사진과 기념품들을 정리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정말 온갖 생각이 다 스쳐지나갔다. 음식을 먹는 것조차 다양하게 먹어보려 전날 사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갖 맥주와 보드카, 위스키를 열심히 먹었다. 정말 러시아는 혁명을 보고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술에 대한 기억마저도 위대했다.

마지막 날 아침에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기에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묵었던 날들이 진짜 이렇게 끝나다니. 1주일이란 시간이 너무나 아쉬웠다. 이번에 보지 못한 모스크바의 레닌 묘지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레닌 박물관 그 외에 내가 몰랐던 것들을 다음 기회에는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매번 갈아타는 비행기 안에서 이제 러시아의 하늘을 구경하는 것도 마냥 아쉬웠다. 아! 진정 수많은 동지들이 희생해가며 이룩하고자 했던 인류의 희망을 우리 역시 시련을 딛고 실현 시킬 수 있을까?

한국에 11월 11일 도착함으로써 우리의 일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 모든 것들을 언젠가 다시 만나러 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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