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10월 혁명 100주년 기념 러시아 탐방기

이영훈 | 회원

 

 

1. 201711

 

2016년 2월 겨울이었다. 지하철을 타고가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인 2017년 11월 러시아를 가자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했다. 그리고 진짜로 두어 달 전부터 여행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2017년 11월은 당시 달력으로 10월 혁명 100주년이 되는 시기였다. 그렇게 세 사람이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해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어지는 1주일의 여정을 시작했다. 주된 목적은 하나였다. 옛 사회주의의 흔적과 혁명의 자취를 따라가기 위해서.

 

첫날인 11월 3일, 우리 시간으로 오후1시 비행기로 출발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해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평소 주위에서 접하기 힘든 외국어만이 들렸다(러시아는 대부분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또한 동양인에 비해 큰 유럽 사람들의 모습과 체구였다. 한국 땅을 벗어났다는 것이 실감났다.

단 물가만큼은 한국을 떠났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났는데 원화에서 루블화를 써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공항이라지만 모스크바에 있는 공항이 아님에도 한국 공항과 거의 물가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GDP(국내총생산) 따위의 통계자료가 평균의 오류 등 현실 삶의 질의 반영을 제대로 못한다지만 3만 달러가 약간 안 되는 한국과 비교해도 1만 달러가 조금 넘는 러시아의 물가가 벌써부터 무시무시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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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의 공항 외관]

 

다음 공항인 이르쿠츠크 공항으로 가서 모스크바로 가기 전 하루 묵을 곳을 찾아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 러시아의 택시는 한국의 택시와 매우 달랐다. 자신의 택시를 타라고 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 있었다. 그러나 택시 간판이 붙어있는 택시가 있는가 하면 “택시, 택시”를 외치는 호객행위를 하며 택시 간판이 없는 자기 차로 안내하는 경우도 있었다. 택시라고 안내해 주는 차가 택시 표지판이 없으니 혼란스럽고 ‘혹시 위험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흥정하던 기사에게 미안하지만 불안해서 그 차는 포기했다. 결국 별 수 없이 다른 운전자와 흥정을 해서 (러시아의 택시요금은 출발 시점 거리와 도착 위치를 미터기를 활용해서 자동으로 금액이 찍히는 식이 아닌 운전자와 흥정을 하는 방식이다.) 300루블(당시 환율로 대략 6,000원)에 합의를 해서 숙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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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 낙서와 뭔가 삭막한 느낌의 건설 자재들]

 

새벽 2시경 숙소 근처 마트가 문이 열려있어 햄을 사는 김에 술도 사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밤 10시 이후에는 술을 사지 못하게 되어있단다. 보드카의 나라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새벽이라고 술을 못 사게 되다니. 그것과는 별개로 꽤 늦은 시각인데 동네 마트가 이 시간에도 영업을 하는 것을 보며 여기도 자본주의나라구나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을 보는 것이 그곳에서 본 게 시작일 줄이야.

이거 혁명의 역사와 발자취를 따라가기 전에 현지어가 안 되고 문화에 적응 못해서 미아가 될 걱정부터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니 허허.

3시간 정도 짧게 눈을 붙이고 새벽에 일어나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갔다. 공항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려고 했다. 좀 큰 피자 한 조각이 400루블이고 맥주 한 잔 가격은 200~300루블 정도 했다. 공항물가라는 것을 고려해도 너무 비쌌다. 비싼 물가를 투덜대며 비행기에 탑승했다.

 

2 – 모스크바

 

토요일 오후에 모스크바 근교의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출발했다. 지하철을 탈까 고민했지만,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시간도 단축하고 목적지까지 바로 가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에서 내려서 거리를 둘러보면서 가니 주말에도 여기저기 도구를 가지고 건물 다듬고 이런저런 노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꽤 많이 보였다. 우리가 간 곳은 크렘린 궁에서 도보로 한 25분 쯤 떨어진 곳이었는데 예약했던 숙소는 착오가 있던 것인지 취소되어 다른 곳을 알아 봐야만 했다. 이동하면서 프리드리히 엥겔스 선생의 동상을 본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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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엥겔스 선생의 동상]

 

다행히 주요 시설이 있는 시내나 크렘린 궁 위치에서 예약했던 곳보다 더 가깝고 훨씬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숙소 인근에서 장을 볼 만한 매장들을 들려 장을 봤다. 근처의 매장들이 한국처럼 편의점도 아닌 것이 마트 역할도 하면서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태반이었다. 처음엔 몰랐다. 이러한 곳이 사실상 태반인 것을. 나중에 둘러보면 볼수록 매장들의 영업시간이 한국과 맞먹거나 아니면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많았다. 자본주의의 지독함을 뒤늦게 느꼈을 이 나라에서 주말, 공휴일, 야간, 24시간 노동이 어딜 가나 이렇게 보편화 돼있다니.

이날은 주변의 거리, 식당가와 상가들을 둘러봤다. 패스트푸드점과 수많은 약국과 마트들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간단한 악기를 들고 돈통 하나 놓고 공연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모스크바 한복판인 것을 감안해도 그런 공연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주변 기념품 가게들을 기웃거렸다. 가는 가게마다 기념품 비율이 사회주의 인물이나 정치인 등을 합쳐 10을 기준으로 레닌1 가가린1 그 외2(여기에는 뭐 마오쩌둥, 게바라, 이북의 인물이나 다른 지역의 혁명가 등등) 스탈린3 푸틴3 정도의 비율이었다. 아니 기념품 목록에 푸틴이 이렇게 많이 나오나. 그런데 어딜 가나 푸틴과 스탈린은 기본이다. 아마 스탈린의 이미지를 푸틴 정부 하에서 대입하여 이용하는 게 아닌가.

러시아에 도착한 지 며칠되지 않아 레닌은 의외로 찾기 힘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해당 인물과 시대의 혁명적이고 사회주의적인 모습은 희석되거나 거세되고, 자본주의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의 정치’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반공 교육을 통해 ‘알고 있는’ 강인하면서 광기가 가득한 위엄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스탈린의 모습만 남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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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모스크바로 진입하면서 간간히 보인 벽화들. 시내에서도 가끔 보게 된다.]

 

셋째 날, 본격적으로 돌아다니면서 모스크바 크램린 궁 근처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최근에 같은 시기 상영하던 헐리우드 영화 포스터들이 공원의 커다란 전광판이나 광고판에 보였다. 길거리에서 과거 쏘련시절의 흔적과 상징은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역사적인 장소와 건물에는 예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설명의 철제 표식이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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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조들이 도심 곳곳에 있다. ]

 

도심 건물 벽에 그려진 과거의 역사를 기록한 커다란 그림들을 뒤로하고 크렘린 궁 뒤편 다리와 인근을 둘러보니 이곳저곳에 타워크레인 8~10개 남짓 되는 숫자가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어딜 가나 도심 한복판에도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수도가 바로 앞인데도 주말이거나 공휴일임에도 타워크레인들이 꼭 한 두 대는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정말 주말도 없이 일하는 건가.” 라고 생각을 했다.

러시아어를 아는 동지의 안내와 설명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원을 가보고 여러 지하도를 통과하며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그 시기가 10월 혁명 기념행사와 11월 4일의 국민화합의 날이라는 기념일이 있다지만 공원과 지하도마다 검문소가 있고 경찰들이 상주했다. 공항뿐만 아니라 검문소 또한 가방을 검색하고 소지품을 확인하는 등 검문검색이 일상화됐다.

검문검색 요원들을 하도 많이 마주치다 보니 생각(?)보다 러시아의 치안은 안전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크램린 궁 백화점 근처 광장을 걷다가 <벨라 차오>와 <인터내셔널 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세계 각국에서 온 집회 참가자들을 만났다. 우리들은 집회에 참여하여 노래를 부르고 사진도 찍으며 가능한 언어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영어가 안 되는 나와 한 동지는 반가운 마음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끽하며 내가 노동조합에서 챙겨온 머리띠를 이태리에서 오신 나이 지긋한 동지에게 선물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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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달라도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아마 공통으로 통하지 않았을까?]

 

그 분들을 뒤로 하고 근처 장터에서 옛 쏘련 시대의 배지와 우편 등의 기념품들을 구매했다. 저녁이 되어 숙소 근처의 맥도날드를 갔다. 맥도날드는 각국의 특색을 더한 메뉴를 제외하고는 가격이 한국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음반과 문구용품 책 등 다양한 것을 파는 매장에 들렀는데 규모가 매우 컸다. 음반에 LP판도 많았고 쏘련 시절에 나온 음악을 CD에 담아 옛날 음원 그대로 파는 경우도 있었다.

 

넷째 날은 크램린 궁 안에 직접 들어가 봤는데 성곽 안에 있는 넓은 정원, 온갖 성당들과 국가 지도자의 집무실들이 지금까지 봤던 것들과는 다른 인상을 주기 시작했다. 특히 그 안에 있던 성당들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유적지 같았지만 내부로 들어가자 전혀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성당 유적으로 들어가자 금으로 도배된 장식품과 화려한 물품들 그리고 벽부터 천장까지 신들과 신의 가호를 받는 귀족과 왕들(지배계급인 그들 자신이 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형상화 한 게 아니었을까?)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정말 다른 의미로 기가 막혔다.

어린 시절에는 다큐멘터리나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서 또는 유적지나 박물관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은 왕들과 영웅들의 행위와 제국의 위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또한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한 미술작품과 건축의 예술성에 경탄하는 말들을 듣고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러나 지금 느끼는 것들은 단순히 그따위 것들이 아니었다.

“아니 도대체 제정 러시아 민중들이 얼마나 개같이 일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신의 모습을 형상화하겠다고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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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테트리스 궁전이라고 불리우는 성 바실리 성당 내부의 일부]

 

이런 건물이 한 두 곳이면 모르겠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뿐만 아니라 모스크바의 궁전과 성당 건물에 갈 때마다 이러한 그림들과 조각 장식들로 넘쳐났다. 한 동지가 건물을 보면서 말을 했다. “이건 진짜 말이 안 되는 거야. 아.” 그 동지가 대학생 시절 서원에 갔다가 함께 한 교수가 그러더란다. 수많은 선비들이 이 서원에서 공부하고 먹고 자며 살아갔다고. 그리고 서원 바로 앞에 넒은 논밭들을 가리키면서 “이 선비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천이 과연 어디서 나왔을까?”라고 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정작 체감이 잘 안됐다는데 여기에 와서 그때 들은 게 지금에야 무슨 말인지 체감이 됐다고 한다.

러시아의 지하철은 참 구조가 독특했다. 표 끊고 들어가는 입구와 나가는 입구가 완벽히 분리되어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쏘련 시절의 유산으로 역사 입구부터 열차가 들어오는 승강장의 내부까지 혁명을 표현한 다양한 그림들과 벽화, 조각 등이 역마다 각양각색으로 남아 있었다. 승강장에는 스크린도어가 없었고 무엇보다 기가 막힌 것은 열차의 배차 간격이 굉장히 짧았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짧아도 2분 전후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다음 열차가 늦어야 2분이하거나 거의 30초 전후로 오는 경우도 꽤 됐다. 이러한 것이 쏘련시절의 유산이라는데 허구한 날 인건비가 어쩌고 하며 해고를 남발하고 이윤 창출에 혈안이 된 다른 자본주의 국가였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 여기는 아직 일상에 남아 있다는 게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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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내부의 쏘련 시절 작품들. 저런 작품들이 내부에 흔하다.]

 

그 뒤 둘이서 식당을 들어갔는데 왜 식당에서 물을 기본으로 안 주는지 이때는 잘 몰랐다. 기본으로 시키는 가장 싼 만두 비슷한 빵이 2000원 정도였는데 유리병에 500ml도 안 되는 양의 물이 3000원 정도였다. 같이 간 일행이 왜 물을 안주는지 몰라 답답해하며 분통을 터트렸는데, 나중에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었다. 러시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식당가면 물 자체를 공짜로 주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외국 나가면 식당에서 물을 사 먹는 게 기본이라고 한다. 예전에 한국도 이처럼 물을 유료화 하려다가 결국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얘기도 들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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