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일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부산지회 세미나 참여 후기 –

 

손현진 | 부산지회 회원

 

 

2016년은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시작된 파도는 점점 커지면서 나를 덮쳐왔다. 모든 계획은 다 틀어져 버렸고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때마침 부산으로 내려와 일해 볼 생각 없느냐는 선배의 전화를 받은 그날 7년 넘게 다닌 직장을 그만둘 결심을 했다. 주말부부에 지쳐가던 남편이 고맙게도 같이 부산에 가서 자리를 잡겠다고 결심해 주어 부산으로 이사를 온 것이 그해 8월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잘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 늦기 전에 쳇바퀴 돌 듯 정신없이 나를 소진시키던 생활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산에 내려와 새 집, 새 동네, 새 직장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난 후 여유가 생기니 공부가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내가 한 공부라고는 학교나 직장에서 배운 것이 전부였다. 한마디로 해야 하고 시키는 공부만 한 교양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공부 말고 진짜 공부가 하고 싶었다. 근본 없이 쌓아올린 기능적 지식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고 그런 지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미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부산지회에서 매주 열리는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던 친구의 손에 이끌려 2017년 2월 14일 처음으로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 세미나에 다녀오고 계속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다. 매주 화요일 저녁에 열리는 세미나에서는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과 ≪자본론≫을 격주로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미 중반을 훌쩍 넘을 정도로 진도가 나가 있었다. 내가 처음 간 날은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을 공부하는 날이었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파리 꼬뮌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다른 나라 언어를 듣고 있는 듯 했다. 꼬뮌이 뭔가 싶어 휴대전화를 살짝 꺼내 검색해 보기도 했다. 내용도 너무 생소했고 책은 또 어찌나 어려운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뛰는 어른을 따라 가려니 힘에 부친 건 당연하다. 게다가 여섯 권이나 되는 표지도 새빨간 이 책이 과연 서점에서 살 수 있는 책인가 싶어 인터넷 서점에서 찾아보다 나도 검열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문득 깨닫고 움찔 놀라기도 했다. 그래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조금씩 알아듣겠지 생각하며 꾸역꾸역 계속 다닌 것이 벌써 일 년이 넘었고 출석률도 나쁘지 않았는지 얼마 전 종료한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읽기 세미나에서는 수료증까지 받았다.

고백하건데 나는 예습과 복습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냥 마음 편하게 깨끗한 책을 가지고 가서 발제와 토론을 들으며 중요해 보이는 문장에 연필로 몇 줄 그어 놓고 때로는 몇 자 적어놓기도 했다. 하루에 하나만 알아가자 생각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책을 읽고 발제를 들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던 것들도 중간 중간 누군가의 보충 설명이나 토론을 들으면서 조금씩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오셔서 항상 막차를 타고 서울로 가셨던 채만수 선생님은 아무리 어려운 것도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쉽게 설명해 주셨다. 덕분에 하루에 하나씩은 알아갈 수 있었고 그것이 차곡차곡 쌓여 처음 세미나에 참석했던 1년 전의 나보다는 조금 교양이 쌓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도 발제를 맡은 부분은 진짜 열심히 준비했다고 자신한다. 발제는 ≪자본론≫ 두 번,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한 번 등 총 세 번을 맡았다. ≪자본론≫은 중간에 잠깐 I권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1편 상품과 화폐 제1장 상품 1~3절’과 ‘제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7장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 부분의 발제를 하였다. 발제를 준비하면서 두 번 세 번 곱씹어 읽어가며 요약정리하고 세미나에서 다시 읽으니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오래 남았고 참석자들의 토론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한마디 거들수도 있었다. 역시 예습과 복습은 중요한 것 같다.

일 년간 세미나에서 학습하면서 깨달음 혹은 놀라움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는가에 관한 문제도 그 중 하나였다. 돈 있는 사람들은 노동하지 않아도 돈이 돈을 벌어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노동자를 착취한 결과라는 주장에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 도 있는 거 아닌가? 착취는 너무 심한 말 아닌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추상적 인간 노동이 가치의 실체이며 자본가는 자본증식과정을 통해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그것을 독차지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으로 생산한 가치를 온전히 가지지 못하고 그저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놀고만 있는 자본가에게 빼앗기고 있었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것은 그저 ‘주장’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설명될 수 있는 ‘과학’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설명을 듣지 못했던 걸까.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이런 생각을 사람들이 서로 나누지 못하게 억압하고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에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과격한 이야기는 동의하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특히 ≪정세와 노동≫에 실리는 글들이 그랬다. 촛불집회에 몇 번 참가한 것이 전부인 내가 자본의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 현장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센 글들이 실리는 ≪정세와 노동≫에 말랑말랑한 이 글이 어울릴까 싶은 걱정도 된다.

세미나의 꽃은 역시 뒷풀이였다. 방금 세미나를 하며 진지하게 토론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서로 밀린 얘기를 나누느라 아주 시끄럽다. 대화의 주제는 이리 튀고 저리 튀기 일쑤이고 어쩌다 보면 두세 가지 주제가 동시에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그래서 내가 세미나팀에 붙여준 별명이 ‘봉숭아 학당’이다. 일 년 동안 세미나에 열심히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실 뒷풀이였다. 나는 학생운동에 관심이 없었고 노동조합에 가입해 본적도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서로를 동지라 부르며 연대하고 투쟁의 최전선에 있는 다른 세미나 참여자들이 낯설게 느껴졌고, 내가 지적 욕구만을 쫓는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지 걱정도 되어 편치만은 않았다. 세미나팀 모두가 다들 참 좋은 사람들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시끌벅적한 뒷풀이 시간이 점점 기다려졌다.

지난 주부터 ‘사회과학 기초세미나’가 시작되었다. ≪인간의 역사≫, ≪철학의 기초이론≫, ≪노동자교양경제학≫을 차례로 학습하게 된다. 나에게 딱 맞는 수준의 세미나가 시작되어서 기뻤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을 생각하니 설레기도 했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부산지회 세미나의 진짜 매력은 서로 어디서도 만날 일이 없고 아무런 이익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 섞이며 생각을 나누고 이해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주 기초세미나에서 공부한 ≪인간의 역사≫ 책을 보면 인간은 노동을 통해 스스로 보이지 않는 우리를 부수고 나와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거인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학습하고 토론할 수 있는 조금의 여유라도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주입된 이데올로기라는 우리에 갇혀있지 않고 스스로 그 보이지 않는 우리를 부수고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이제 그 보이지 않는 우리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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