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배반당한 사회주의: 쏘련 붕괴의 배후(4)

 

 

 

로저 키란(Roger Keeran)과 토마스 케니(Thomas Kenny)

번역: 편집부

 

[차례]

서문

1. 서론

2. 쏘련 정치에서의 두 가지 경향

3. 제2 경제

4. 약속과 예언, 1985-86

5. 전환점, 1987-88

6. 위기와 붕괴

7. 결론과 암시

8. 끝 맺음말 – 쏘련 붕괴의 설명들에 대한 비판

후주

 

 

 

 

 

 

3. 제2 경제

 

쏘련의 그림자 경제와 그 지하경제의 안식처인 횡령, 부패, 조직범죄가 결국 체제 붕괴를 가져왔다. … [그것은] 당-국가 체계 범위 내에 있는 규율과 통제를 담당하는 공식적 기관 상당수가 형해화(形骸化)되고 수직적 의사소통과 권위가 끊어지거나 닳아 없어진 데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자 노멘클라투라의 개인적(혹은 집단적) 관심과 충성심은 부와 권력의 비공식적 원천에로 방향을 돌렸다. 그 결과 제국, 노동조합, 시스템, 그리고 경제는 비참해졌다. 그레고리 그로스만 (Gregory Grossman)1)

1960년대 중반이후 제2 경제의 출현과 급속한 성장은 1980년대 말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야기했고 결국 쏘비에뜨 경제의 해체를 가져왔다. 블라디미르 트레믈(Vladimir G. Treml)과 마이클 알렉시브(Michael Alexeev)2)

그림자 경제는 소비자 시장의 부족을 완화시켰지만 동시에 소비자 시장의 성장을 자극했다. … 생산품 부족 현상은 조직적 경제 범죄 집단을 키웠고, 이들은 사회-경제적 및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왔다.찌아나 꼬리아기나(Tatiana Koriagina)3)

 

 

쏘련공산당(CPSU)내의 두 가지 정치적 경향이 지속된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사상은 고유한 목적이 사라진 뒤에도 전통과 정서가 남아있기 때문에 일정한 생명력을 가지고 어느 정도까지는 존재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나란히 존재하게 되자, 한 시스템의 사상이 다른 시스템의 사상에 침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시카고대학의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과 하버드 대학의 제프리 잭스(Jeffrey Sachs)의 극단적인 자유시장 사상이 광범위하게 부활하였고,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영국 및 폴란드와 같은 다양한 국가 지도자들이 인플레이션과 스테그네이션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여겼다. 같은 시기에 쏘련의 몇몇 지도자들도 이러한 사상에 매료되었다. 쏘련에서 이런 자유시장에 대한 생각은 사회민주주의적 경향과 맞물려 줄곧 존재해 왔었다.

 

쏘련 사회와 공산당 안에 자유시장 사상이 잔존하기 위해서는 전통이나 정서, 외부적인 힘 이상의 것이 작동해야만 한다. 쏘비에뜨 사회 내에 어떤 부분이나 계층이 이러한 사상에 대해 지적인 이해관계 이상의 것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쏘비에뜨 역사의 초기 수십 년 동안 이러한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은 농민이었다. 여기에 농민을 배경으로 한 사람들과 전에 자본가였던 사람들 소위 네프맨이 추가되었다. 이들은 혁명이전 상태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농민은 국영농장과 집단농장의 농업노동자로 변모하였고, 공업화로 인해 거대한 노동계급이 생겨났다. 따라서 준(準)자본주의 사상의 기반이 되는 농민은 줄어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수치로도 나타났다. 농민은 1926년 인구의 83%를 차지했으나 1975년에는 20%에 불과했다. 공업, 건설, 운송업 종사자는 1926년에 500만 명이었는데 1975년에는 6200만 명으로 늘었다.4)

 

1953년 이후 부르주아 사상의 새로운 경제 기반이 사회주의 안에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초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적 경제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른바 제2 경제로서 제1 경제인 사회주의 경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처음에는 제2 경제의 존재 자체가 제1 경제인 사회주의 경제에 스며들어 있어 드러나지 않았다. 어떤 별도의 계급이 제2 경제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제1 경제에 종사하는 노동자 농민이 합법, 불법적 수단으로 돈을 벌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후시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제2 경제에 참가하였고 소득에서도 점점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게 되면서 사실상 쁘띠부르주아 계층이 다시 살아났다.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시대에 가장 큰 타락의 근원이 사적 경제 즉 제2 경제와 이로부터 이익을 얻는 계층에 확실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적 경제 활동은 사회주의 하에서도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었고, 쓰딸린에 의해 억제 되었다가 흐루쇼프 하에서 새로이 활력을 얻어, 브레즈네프 하에서 번창했으며, 고르바쵸프와 옐찐 시대에 여러 측면에서 제1 경제인 사회주의 경제를 대체했다. 제2 경제는 쏘비에뜨 사회주의에 깊고도 넓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적 소득원과 사적 생산 및 분배 체계를 새롭게 창안하거나 되살려냈다. 광범위한 부패와 범죄의 근원이 되었다. 사적 기업을 정당화하는 사상과 정서가 생겨났고, 체제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자들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원천이 되었으며, 사회민주주의 사상의 물질적 기초를 제공했다.

 

제2 경제의 결과를 자세히 설명하기 전에 먼저 제2 경제를 정의하고, 사회주의 문헌에서 어떻게 취급하였는지 검토하고, 그 다양한 징후와 역사를 설명하고, 규모를 추정해야 한다. 여기서는 제2 경제를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간에 사적인 이익을 위한 경제적 활동으로 정의한다. 합법, 불법을 모두 포함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러한 정의는 그레고리 그로스만와 다른 학자들이 사용한 정의이다. 따라서 그들의 연구를 언급할 때 혼란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5) 둘째, 사적 경제 활동은 집단적 경제 활동과는 다른 관계, 가치 및 사상을 불러일으키고, 그 자체로 사회주의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쏘비에뜨는 신경제정책(NEP) 기간 동안 외국인 투자와 사적 활동을 합법적으로 인정했다. 쿠바에서도 소위 특별한 시기6) 동안 허용되었다. 이 때문에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사적 경제 활동의 광범한 보급은 사회주의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제2 경제라는 개념정의에 합법적 불법적 활동 모두를 포함한다고 하여 그 위험마저 같은 것은 아니다. 사회화된 부문이 모든 소규모 수리, 서비스 및 사소한 상품 교환에 대해서까지 현실적으로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에 사적 경제 활동은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에 존재한다. 도를 넘지 않는다면 사적 활동은 자연스럽고 위협이 되지 않는다. 쏘련에서 대부분의 합법적 경제 활동의 경우가 그렇다. 1950년에서 1985년 사이에 실제로 합법적인 사적 경제 활동 규모는 사회주의 부문에 비해 축소되었다. 그러나 불법 행위는 그 반대였다. 앞으로 검토하겠지만, 불법 행위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잠식(蠶食)해 들어갔고, 그 중 많은 경우 합법적 활동을 위태롭게 한 방식이 특히 중요했다. 게다가 1950년에서 1980년 사이에 불법적인 사적 경제 활동은 크게 확대되었다.

 

불법적인 제2 경제나 암시장은 물론 사회주의 사회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도 불법적 경제 활동은 매춘, 탈세를 위한 분식회계, 마약 및 밀주의 판매 등의 형태로 존재한다. 금주법을 시행하는 동안 미국에서는 밀주를 판매하는 큰 규모의 암시장이 나타났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타이어, 설탕 및 기타 배급품 암시장이 형성되었다. 사회주의에서 암시장이 보다 큰 문제로 대두된 것은 자본주의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사적 경제 활동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회주의 혁명이 경제적으로 덜 발전된 사회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자본투자와 국가 안보가 필요하였고, 따라서 소비재에 대한 투자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소비재에 대한 수요는 늘 공급을 초과하였다. 그 결과 할당량이 정해져 있는 배급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경제 활동에 대한 금지가 더욱 늘어났고 소비재가 부족해질수록 법을 우회하려는 유혹은 더욱 커졌다. 이 유혹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주의 사회는 활발한 교육 캠페인과 엄격한 법 집행을 사용했다.

 

발전이 덜된 사회주의에서는 암시장이 고질적인 것이긴 하지만 쏘련에서 제2 경제가 존재하고 성장한 것은 맑스주의자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놀라운 것이었다. 그런데 이 놀라움은 경제학자들이 제2 경제를 적절히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맑스주의자들은 쏘련의 제2 경제를 사실상 다루지 않았다. 영국의 맑스주의자 모리스 돕은 ≪1917년 이후 쏘련경제의 발전≫7)의 1948년판이나 증보판, 1966년의 개정판에서도 1920년대에 암시장에 대한 두 가지 언급 이외에 합법적이거나 불법적인 사적 기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8) 1980년까지 쏘련 경제학자 꼬리아기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제2 경제를 무시했다.9) 정치경제학자 레온치예프(L. Leontyev)의 ≪정치경제학: 간추린 강의(Political Economy: A Condensed Course), 꼬즐로프(G. A. Kozlov)의 ≪정치경제학: 사회주의(Political Economy: Socialism), 사르끼시얀츠(G. S. Sarkisyants)의 ≪쏘비에뜨 경제: 결과와 전망(Soviet Economy: Results and Prospects)≫, 니끼찐(P. I. Nikitin)의 ≪정치경제학의 기초(The Fundamentals of Political Economy)≫ 그리고 유리 뽀뽀프(Yuri Popov)의 ≪정치경제학 논문집(Essays in Political Economy)≫과 같은 정치경제학 표준 교과서에서도 검토되지 않았다.10) 쓰딸린은 1952년에 출판한 쏘련 경제 문제에 관한 그의 마지막 논문에서 시골지역에서의 사적 상품 생산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이야기했지만, 불법적인 사적 기업의 위험성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아마도 당시의 사적 기업 규모가 무시해도 될 정도였기 때문일 것이다).11) 이와 유사하게, 미국의 맑스주의 경제학자 빅터 페를로(Victor Perlo)는 1961년에 출판 된 쏘비에뜨 경제에 대한 소책자에서 외화 암시장을 짧게 다루었지만, 일시적이고 제한된 현상으로 보았다. 페를로는 암시장을 “우리 사회의 표피에 붙어있는 한 줌의 찌꺼기”라고 했던 (각료 평의회) 제1 부주석 아나스따스 미꼬얀(Anastas Mikoyan)의 말을 인용하면서 “암시장이 우리 인민들 사이의 추세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12) 심지어 1980년대 말에 빅터와 페를로의 쏘비에뜨 경제에 대한 솔직하고 유익한 토론을 책으로 묶은 ≪쏘비에뜨 경제(Soviet economy)≫에서도 제2 경제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13)

 

대부분의 맑스주의 경제학자들과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사회주의 내에서의 사적 경제 활동을 무시했지만, CIA뿐 아니라 일부 미국, 서유럽 및 쏘련 학자들도 1970년대에 이 현상을 주목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실, 쏘련의 제2 경제에 대한 연구는 미국에서 소규모로 시작되었다. 1985년에 캘리포니아 버클리(California-Berkeley) 대학의 그레고리 그로스만와 듀크(Duke) 대학의 브라디미르 트레믈이 쏘련의 제2 경제에 관한 버클리-듀크 비정기 간행물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1985년부터 1993년까지 버클리-듀크 프로젝트는 이 주제로 26명의 필자가 51개의 논문을 출판했다. 논문의 절반 이상이 브레즈네프 시대를 다루었으며 1971년과 1982년 사이에 쏘련을 떠나 이민 온 1,061 가구에 대한 설문 조사를 토대로 하였다.14) 또한 버클리-듀크 프로젝트는 쏘련과 동유럽의 제2 경제에 관한 주요 서양 언어로 된 269건의 참고문헌을 만들었다.15) 많은 학자들에게 제2 경제가 어렴풋이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쏘련 사회주의에서는 사적 경제 활동이 대부분 법률로 금지되었다. 다른 사람의 고용(가사 도움 제외), 이익을 추구하는 상품 매매, 외국인과 거래, 외화 보유 및 사적 이익을 위한 공예품의 생산과 판매 등은 금지되었다. 결과적으로 노동의 합법적인 착취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쏘련 사회주의에서도 엄격한 법적 한계 내의 일정한 사적 경제 활동은 허용되었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상당한 수의 행위가 합법적으로 남아있었다. 이는 때때로 불법적인 활동으로 변질되었다. 집단 농장이나 국영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3/4에이커(약 900평)의 텃밭을 사적으로 경작할 수 있었고, 농장에 고용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일부 허용되었다. 몇몇 추정에 따르면, 1974년 개인 텃밭은 농업에 소비되는 시간의 거의 3분의 1의 비율을 차지했고, 경제 총 노동 시간에서는 거의 10분의 1을 차지했다. 생산량에서도 쏘비에뜨 농산물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개인 텃밭에서 생산된 농작물을 판매하기 위해 소위 공동 농산물 시장이 나타났다. 비록 합법적이었지만 개인 텃밭의 농작물이 늘어나고 매매됨에 따라 불법적 폐해를 낳았다. 개인 텃밭을 유지하고 생산물을 시장에 팔기 위해 사회재산(종자, 비료, 물, 사료, 장비, 운송수단)을 빼돌리는 일이 벌어졌다.16)

 

개인소유 주택도 합법적으로 허용되었다. 그로스만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에 쏘비에뜨 인구의 절반과 도시 인구의 1/4이 여전히 개인소유 주택에 살고 있었다. 합법적인 개인소유 주택은 불법 임대, 불법 건축 또는 수리를 위한 고용, 사회 부문의 건축 자재 빼돌리기, 공무원 뇌물 수수 등의 불법 행위를 낳았다. 다른 분야에서는 의사, 치과 의사, 교사 및 전문가들이 합법적으로 서비스를 판매 할 수 있었다. 기능공은 시골 지역의 집수리를 해 줄 수 있었고, 일부 기능공은 제한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거래를 할 수 있었다. 광물을 국가에 판매한다는 조건하에 개인 탐광자(探鑛者)는 채굴을 할 수도 있었다. 중고물품의 판매도 허용되었다.17) 합법적인 사적 활동 자체만으로는 큰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았다. 고르바쵸프때까지 GNP에서의 합법적인 사적 경제 비율은 꾸준히 하락했다. 그로스만은 1950년에 GNP의 22%, 1977년에는 GNP의 10%로 추정했다. 물론 쏘련 GNP가 1950년에서 1977년 사이에 크게 성장 했으므로 합법적인 사적 경제 활동은 여전히 ​​큰 규모였다.18)

 

1953년 이후에 불법적인 돈벌이가 합법적인 활동과는 다르게 매우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불법적 활동은 마침내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고, 쏘비에뜨 생활의 모든 면에 스며들었으며, 인간의 교묘한 재주가 미치는 곳은 어디든지 제한이 없었다. 가장 일반적인 경제 활동의 범죄형태는 국가, 즉 직장이나 공공 기관에서 훔치는 것이었다. 그로스만은 “농부는 자신의 가축에게 먹이려고 꼴호즈(집단농장)에서 사료를 훔치고, 노동자는 ‘부업으로’ 팔아먹기 위해 자신의 작업대에서 재료와 도구를 훔치고, 의사는 의약품을 훔치고, 운전기사는 무허가 택시를 운행하기 위해 관용차의 휘발유를 훔친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트럭운전수도 휴양지를 짓고 아파트를 재건축하거나, 자동차를 수리하는데 사용될 국유자원을 사적인 시장으로 빼돌렸다.19)

 

국가재산의 절도는 때로는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대담하고 대규모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조직된 갱단”이 있었다. 여기에 암시장으로 빼돌리기 위해 물품이 손상됐다거나 손실이 있었다고 보고하는 관리자의 관행도 한몫했다. 관리자나 판매원의 일반적인 수법은 암시장에 내다 팔거나 손님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팁을 받기 위해 좋은 물건을 빼놓는 것이었다. 구매 대기자 명단에 등재하고 기다려야하는 자동차와 같은 내구재는 가격을 더 붙여서 다시 판매하기 위한 “투기”와 같은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20)

 

수리, 서비스 심지어 생산까지도 불법적인 수익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재건축, 자동차 수리, 재봉과 재단, 가구 운반, 개인소유 주택의 건축이 그러했다. 이러한 일은 그 자체가 불법이므로 대개 정식 직장에서 빼낸 재원과 시간이 필요했다. 사적 생산은 말 그대로 지하 자본주의의 완전한 형태를 띠었다. 자본투자, 대규모 생산, 노동자 고용과 착취, 암시장에서의 상품 판매 등이 뿌리내렸다. 그로스만에 따르면, 생산품은 대개 소비재 즉 “의류, 신발, 가정용품, 잡동사니 등”이었다. 그밖에 “대규모 사적 영업활동은 국유 공장이나 집단농장으로 위장하여 운영하고 이를 묵인해주는 사람에게 돈을 건넸다.”21) 1970년대에 많은 지하 사업가를 대변했던 유명한 쏘련의 변호사 꼰스딴찐 시미스(Konstantin Simis)는 ≪쏘비에뜨 자본주의의 비밀 세계(The Secret World of Soviet Capitalism)≫라는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기술했다. 시미스는 “사적 공장 네트워크가 전국에 퍼져있다”며 수만 명이 “니트, 신발, 선글라스, 서구의 대중음악 레코드, 핸드백 및 기타 여러 상품”을 제작한다고 말했다. 공장 소유자는 “단일 사업장”을 가진 사람부터 “수십 개의 공장을 계열사로 가진” 사람까지 있다고 했다.22)

 

종합해보면, 다양한 논문이 브레즈네프 시기의 제2 경제에 관한 주마등 같은 조망을 제공한다. 사적 식품 행상인들은 연간 355억 루블 상당의 상품을 판매했다.23) 국영 이발소의 이발사는 “사실상 거래를 SE[제2 경제]로 전환시켜” “고액”의 팁을 관례적으로 받았다.24) 가정에서 포도주 및 과일주, 맥주의 생산, 국영 음료의 불법적 재판매, 훔친 에탄올의 판매 등이 1979년 국내 총생산(GDP)의 2.2%를 차지했다.25) 1970년대 말에 국영 자동차 및 트럭 운전사가 암시장에 판 가솔린이 도시 지역 가솔린 총판매의 33~65%에 달했다고 전해진다.26) 집주인은 불법적 개인소유 주택의 임대로 1977년에 약 150만 루블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27) 장례식을 치루기 위한 사례금, 뇌물 및 사적 서비스(종교 의식과 같은)에 대한 비용은 공식 장례식에 지출된 돈보다 4배 이상 많았다.28) 매춘과 마약 판매는 제2 경제의 또 다른 부분이다.29)

 

마리나 쿠르크치얀(Marina Kurkchiyan) 연구원은 쏘비에뜨 아르메니아 운송 시스템에서 제2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는데, 그녀는 그것을 “전형적”이라고 생각했다. 버스 운전기사는 평균임금 이상을 받았지만 국가로부터 받는 임금보다 손님에게서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운전기사는 손님으로부터 직접 돈을 받고 국가에는 일부 영수증만 제출했다. 운전기사는 청소, 부품, 유지 보수 및 연료비를 자신의 주머니에서 지출했다. 결국, 버스 운전기사의 총 수입은 제반경비를 지불한 후에 공무원 급여의 2~3배에 달했다. 쿠르크치얀은 1980년대 말에 어느 정도 고르바쵸프 정책의 결과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모두”가 제2 경제에 참여하게 되었고 “재화 및 서비스의 배분에서 지배적인 힘”이 되었다고 결론 내렸다.30)

 

제2 경제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모든 방법론이 가진 어려움은 규모와 성장을 수치화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1989년 이후에 발표된 공식적인 쏘비에뜨 수치뿐만 아니라, 서로의 수치에 대해서도 의견을 달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전문가들은 30년 이상 제2 경제의 성장률이 증가했다는데 동의했다. 블라디미르 트레믈과 미카엘 알렉시브는 러시아와 우끄라이나의 특정 지역에 대해 수입 및 법정 소득과 재화 및 용역에 지출된 금액 간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들은 1965년과 1989년 사이에 소득과 지출/저축 간의 상관관계가 계속 줄어들어 결국엔 전혀 관계가 없어졌음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서 지출하거나 저축한 금액의 합이 합법적으로 벌어들인 수입의 합보다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불법 소득이 그 차이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제2 경제의 규모와 성장에 대한 어떠한 수치도 제시하지 않았지만 “제2 경제는 1965년에서 1985년 사이에 급속히 성장했다”는 결론을 내렸다.31) 1991년 이후 개방된 쏘비에뜨 통계를 이용한 또 다른 연구에서 김병연은 “비공식 경제의 절대 크기는 실제로 1969년에서 1990년까지 증가했다.”고 결론을 내렸다.32)

 

제2 경제의 유력한 전문가인 쏘련 국가 계획위원회의 경제연구소(이 연구소는 제2 경제의 적어도 일부를 합법화하는 것을 선호했다) 소속인 꼬리아기나도 제2 경제의 성장을 측정하려고 시도했다. 한 연구에서 꼬리아기나는 트레믈과 알렉시브가 사용한 것과 유사한 방법론을 사용했다. 그녀는 합법적으로 벌어들인 월 소득 총액을 지출 및 저축 총액과 비교했다. 그녀의 수치들도 마찬가지로 제2 경제 규모가 크고 꾸준히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재화 용역의 소비 및 저축은행의 저축 총액과 비교한 노동자 월 급여 증가33)

1960

1970

1975

1980

1985

1988

월급여 총액

80.6

122

145.8

168.9

190.1

219.8

1960년 대비율

152

180

210

236

273

소비/저축 총액

103.2

223.2

329.9

464.6

590

718.4

1960년 대비율

216

320

450

572

696

 

쏘비에뜨 경제 전체에 대한 통계를 사용하여, 꼬리아기나는 제2 경제가 위에서 언급한 지역보다 쏘비에뜨 전체가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더욱이 제2 경제가 제1 경제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다. 꼬리아기나에 따르면 공식적인 국민소득과 소매 상품 및 용역의 가치는 1960년대 초반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4~5배 증가했으나 제2 경제는 18배 증가했다.34)

 

이와 같이 제2 경제가 성장했지만 실제 크기를 측정하기는 어렵다. 미국과 쏘비에뜨의 온갖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지닌 경제학자들 모두 쏘련 전체 경제와 비교하여 제2 경제의 규모를 예측하는 것이 어렵다고 인정했다. 어려움 중 하나는 “비공식 경제”, “그림자 경제”, “제2의 경제”, “사적 경제”, “지하 경제”, “암거래 경제” 등 가지각색의 개념정의가 상황을 복잡하게 한데 있다. 일부 학자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사적 경제영역이 중요한 판단근거라고 하는 반면 다른 학자는 불법 활동만 고려하면 된다고 했다. 개념정의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모든 판단은 현실보다 많거나 적을 수 있는 가설을 포함한다. 한 경제학자는 쏘비에뜨 제2 경제의 측정 문제를 물리학자들이 이웃 행성들의 진동을 연구함으로써 명왕성의 궤도를 알아내는 것에 비유했다. 그러나 이 모든 판정기준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제2 경제에 대한 추산(推算)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꼬리아기나는 거시 경제 통계에 근거해서 불법 제품 및 용역의 연간 가치가 1960년대 초 약 50억 루블에서 1980년대 말에는 900억 루블로 증가한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가격으로 쏘비에뜨 국민소득(물질 순생산, *NMP: 국내총생산과 비슷한 개념으로 물질 생산 부문만 계산하며 주로 사회주의권에서 사용하였다.)의 가치가 1960년 1,450억 루블, 1988년 4,220억 루블, 1990년 7,010억 루블일 경우, 제2 경제의 규모는 1960년에는 국민소득의 약3.4%, 1988년에는 20%, 1990년에는 12.8 %를 기록했다.35)(1990년에 이전의 불법행위가 일부 합법화 되었다.) 꼬리아기나는 1988년에 불법적으로 축적된 개인 재산 총액이 2,200억-2,400억 루블에 달해, 개인 재산 전체의 20-25%에 이른다고 추정하였다.36)

 

꼬리아기나의 수치는 불법적인 경제 활동 수입만을 나타낸다. 사적 경제 활동 전체 크기는 꼬리아기나의 수치에 합법적인 사적 활동의 규모를 더해야 한다. 다시 말해, 1988년에 사적 활동 규모는 국민소득의 30%내지 축적된 사적 자산의 30-35%에 달해 불법적인 경제활동만 고려할 때 보다 적어도 10% 포인트 더 높다.

 

꼬리아기나의 수치에 합법적인 사적 활동의 수치가 더해진다면, 미국의 권위 있는 그레고리 그로스만의 수치와 비슷할 것이다. 그레고리 그로스만의 수치는 쏘비에뜨 이민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수집된 미시 경제 자료이다. 그는 1970년대 말 도시민(전체 인구의 62퍼센트를 차지함)이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비공식적 사적 활동을 통해 총 수입의 약 30퍼센트를 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37)

 

1991년 이후의 쏘비에뜨 아카이브를 사용한 연구는 제2 경제 규모에 대한 추정을 보강해 주었다. 2003년 영국 워릭(Warwick) 대학의 경제학자 김병연은 공식적인 쏘비에뜨 가족 예산 조사 자료(FBSD)에 근거하여 제2 경제 규모를 추정했다. 1969년에서 1990년 사이에 쏘비에뜨 정부는 62,000에서 90,000 정도의 가계 샘플에서 수입과 지출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응답자들은 공식 소득과 “비공식” 소득 그리고 지출을 보고했다. 즉 사적 활동으로부터 발생한 소득(물론 불법적인 것을 포함해서)과 사적 상거래에 지출한 비용 모두를 보고한 것이다. 비공식적 수입에는 현물 소득, 농경용 가축 및 농산물 판매 소득, 개인 소득이 포함되고 비공식적 지출에는 사적으로 생산한 상품의 구매와 재화를 위해 개인에게 지불한 돈이 포함되었다. 김병연은 이러한 응답이 불법 활동과 관련된 수입과 지출을 밝히는데 있어서 그로스만이 조사한 쏘비에뜨 이주민의 응답보다 당연히 적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로스만 조사의 응답자가 사회주의에 불만을 갖고 있었고 사적 기업에 더 많이 참여했으며, 이민가지 않은 쏘비에뜨 시민에 비해 사적 기업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병연의 데이터에 기반한 제2 경제의 규모가 그로스만의 것보다 적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사실이 그랬다. 김병연은 제2 경제로부터 얻은 총 수입의 비율을 16%로 보았으나, 그로스만은 28-33%로 추정했다.38)

 

또 다른 연구에서, 그로스만은 제2 경제는 러시아보다 쏘련의 외곽 지역이 더 큰 규모를 나타낸다고 밝혔다.

 

그로스만의 제1 경제와 비교한 쏘비에뜨 제2 경제 추정 규모

 

브레즈네프 시대(1977)39)

 

러시아(RSFSR)                                     29.6%

벨라루시, 몰다비아, 우끄라이나                      40.2%

아르메니아(아르메니아 민족만 포함)                 64.1%

중앙아시아나 남까프까즈40)에 거주하는 ‘유럽인’     49.7%

 

 

그로스만은 70년대 후반에 도시 소득의 30%를 제2 경제에서 얻었고, 제2 경제는 북쪽(중앙 러시아, 발트해 연안, 시베리아)보다 남쪽(북부 까프까즈 지역과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의 남까프까즈 공화국들,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상대적으로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데사와 같은 특정 국경지역과 1917년 이후에 쏘비에뜨에 편입된 몰도바, 우끄라이나, 벨라루시 등의 지역에서도 광범위 했다. 지역적 민족적 다양성으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는 정규적이고 합법적인 직업으로부터 얻는 수입보다 불법적인 사적 활동을 통한 수입이 평균적으로 더 많았다. 일부지역에서는 2배나 많았다.41) 가족예산조사 자료에 의거한 김병연의 연구는 그로스만과 다른 학자들의 결론을 확인시켜 주었다. 김병연에 의하면 제2 경제는 러시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에서 가장 작았고, 우즈베끼스딴,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끼르기즈스딴, 따지끼스딴,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켰다.42)

 

제2 경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었는가? 대부분의 학자들은 1980년대에 제2 경제가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손을 뻗쳤고,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작용을 미쳤다는 점에 동의했다. 브레즈네프는 사적 돈벌이에 대해 “누구도 임금만으로 살 수는 없다.”고 언급했다.43) 그러나 중요한 것은 좀도둑이나 암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수입의 상당부분 또는 전부를 사적 활동에 의존하는 인민의 출현이었다. 얼마간의 사람들은 매우 부자가 되어 “브레즈네프시대의 새로운 부자(Brezhnev new rich)”44)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소부르주아의 신생 계급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제2의 경제에 관련된 사람들, 특히 불법적인 사적 기업으로부터 막대한 수입을 얻은 사람들의 숫자나 비율을 찾으려고 했다. 블라디미르 트레믈에 따르면 1970년대 말의 지하 경제 또는 불법 경제는 노동력의 10~12%를 차지했다.45) 꼬리아기나는 제2 경제의 불법적인 부분에 관련된 인민의 수가 1960년대 초에 8백만 명 미만이었다가 1974년에는 1,700만~2,000만(6~7.6퍼센트)로 증가했고, 1989년에는 3,000만(인구의 약 12​​퍼센트)으로 성장했다고 추정했다.46) 그로스만은 1980년대 중반의 제2 경제 규모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리하여 쏘비에뜨 시대의 지난 30년 동안 불법 경제 활동이 모든 부문에 침투하여 경제를 침범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외형과 형식을 띠었다. 규모면에서 대중을 위한 작거나 검소한 것에서 많은 사람에게 실제 중요한 것까지, 나아가 몇몇 사람을 위해 정교하게 제작된 호화로운 것까지 운영되었다.”47) (다음 호에 계속)


1) Gregory Grossman, “Subverted Sovereignty: Historical Role of the Soviet Underground(체제의 전복: 쏘비에뜨 지하경제의 역사적 역할)”, Stephen S. Cohen외 편집, The Tunnel at the End of the Light(빛이 끝난 곳에 터널이),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1988), 24-25.

2) Vladimir G. Treml 와 Michael Alexeev, “The Growth of the Second Economy in the Soviet Union and Its Impact on the System(쏘련에서 제2 경제의 성장과 체제에 미친 영향)”, Robert W. Campbell(로버트 캠벨) 편집, The Postcommunist Economic Transformation(후기공산주의 경제의 변질), (Boulder, San Francisco and Oxford: Westview Press, 1994), 222.

3) Treml과 Alexeev의 인용문, 238.

4) Moshe Lewin, Political Undercurrents in Soviet Economic Debates, from Bukharin to the Modern Reformers(쏘비에뜨 경제 논쟁의 저류, 부하린에서 현대 개혁가까지)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5), 254.

5) Gregory Grossman, “The ‘Second Economy’ of the USSR(쏘련의 ‘제2 경제’),” Problems of Communism(공산주의의 문제) (September-October, 1977), 25.

6) 역주: 쏘련 붕괴 이후의 쿠바가 겪은 고난의 행군 시기.

7) 모리스 돕, ≪쏘련경제사≫, 임휘철 옮김, 형성사. 1989

8) Maurice Dobb, Soviet Economic Development Since 1917(1917년 이후 쏘련경제의 발전)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1966).

9) 안더스 오슬룬드(Anders Aslund)에 따르면, 1960년대까지 네 개의 주요 경제 학술 기관 중 세 곳을 “통화 상품 관계”또는 단순히 “시장 관계”를 선호하는 경제학자들이 지배하였다. Gorbachev’s Struggle for Economic Reform(고르바쵸프의 경제개혁을 위한 투쟁) (Ithaca,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1989), 5, 제2 경제에 관한 쏘비에뜨의 주요 전문가인 꼬리아기나는 1986년까지 반시장 경제학자인 띠그란 하차뚜로프(Tigran Khachaturov)가 이끄는 경제 연구소에 속해 있었다. Gregory Grossman, “Subverted Sovereignty: Historic Role of The Soviet Underground”, Stephen S. Cohen외 편집, The Tunnel at the End of the Light,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1998), 36.

10) G. A. Kozlov 편집, Political Economy: Socialism(정치경제학: 사회주의)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77); L. Leontyev, Political Economy: A Condensed Course(정치경제학; 간추린 강의) (New York: International, 974); P. I. Nikitin, The Fundamentals of Political Economy(정치경제학의 기초),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83); G. S. Sarkisyants 편집, Soviet Economy: Results and Prospects(쏘비에뜨 경제: 결과와 전망),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77); 그리고 Yuri Popov, Essays in Political Economy(정치경제학 논문집),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85).

11) Joseph Stalin, “Economic Problems of Socialism in the USSR(쏘련사회주의 경제의 제문제)”, Bruce Franklin(브루스 프랭클린), The Essential Stalin(쓰딸린의 정수) (New York: Anchor Books, 1972), 445-481.

12) Victor Perlo, How the Soviet Economy Works(쏘비에뜨 경제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New York: International, 1961), 34.

13) Victor 와 Ellen Perlo, Dynamic Stability: The Soviet Economy Today(동적 안정성: 오늘날의 쏘비에뜨 경제),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80).

14) “List of Berkeley-Duke Occasional Papers in the Second Economy in the USSR with Abstracts and Notes,(개요와 주석이 있는 쏘련의 제2 경제에 대한 버클리-듀크의 비정기 간행물 목록)” http://econ.duke.edu/Papers/Treml.BDOP.html (date accessed August 6, 2010).

15) Gregory Grossman, “The Second Economy in the USSR and Eastern Europe: A Bibliography(쏘련과 동유럽의 제2 경제: 참고문헌),” (Berkeley-Duke Occasional Papers on the Second Economy of the USSR, July 1990).

16) Grossman, “The ‘Second Economy’ of the USSR,” 25-27.

17) Grossman, “The ‘Second Economy’ of the USSR,” 26-27.

18) Grossman, “The ‘Second Economy’ of the USSR,” 35.

19) Grossman, “The ‘Second Economy’ of the USSR,” 29-30.

20) Grossman, “The ‘Second Economy’ of the USSR,” 30.

21) Grossman, “The ‘Second Economy’ of the USSR,” 31.

22) Konstantin Simis, USSR: The Corrupt Society: The Secret World of Soviet Capitalism(쏘련 : 부패한 사회 : 쏘비에뜨 자본주의의 비밀 세계)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82), 145-147.

23) Vladimir G. Treml, “Purchase of Food from Private Sources in Soviet Urban Areas(쏘비에뜨 도시지역의 사적 공급원으로부터의 식품 구매),” (Berkeley-Duke Occasional Paper, September 1985).

24) Gregory Grossman, “A Tonsorial View of the Soviet Second Economy(쏘비에뜨 제2 경제에 대한 한 이발사의 견해),” (Berkeley-Duke Occasional Paper, December 1985).

25) Vladimir G. Treml, “Alcohol in the Soviet Underground Economy(쏘비에뜨 지하경제에서의 알코올),” (Berkeley-Duke Occasional Paper, December 1985).

26) Michael V. Alexeev, “The Underground Market for Gasoline in the USSR(쏘련의 가솔린 지하 시장),” (Berkeley-Duke Occasional Paper, (April 1987).

27) Michael V. Alexeev, “Expenditures on Privately Rented Housing and Imputed Rents in the USSR(쏘련의 사적주택 임대료와 귀속집세),” (Berkeley-Duke Occasional Paper, November 1991).

28) Kimberly C. Neuhauser(킴벌리 노이하우저), “The Second Economy in Funeral Services(장례식에서의 제2 경제),” (Berkeley-Duke Occasional Paper, February 1992).

29) Clifford G. Gaddy(클리퍼드 가디), “The Size of the Prostitution Market in the USSR(쏘련의 매춘 시장 규모),” (Berkeley-Duke Occasional Paper, November 1989)과 Kimberly C. Neuhauser, “The Market for Illegal Drugs in the Soviet Union in the Late 1980s(1980년대 말 쏘련의 불법 마약 시장),” (Berkeley-Duke Occasional Paper, November 1990).

30) Marina Kurkchiyan, “The Transformation of the Second Economy in the Informal Economy(비공식 경제로의 제2 경제의 전환)”, Alena V. Ledeneva(알레나 레데네바)와 Marina Kurkchiyan 편집, Economic Crime in Russia(러시아의 경제범죄) (The Hague, London, and Boston: Kluwer Law International, 2000), 86-87.

31) Treml 와 Alexeev, 221, 235.

32) Byung-Yeon Kim(김병연), “Informal Economy Activities of Soviet Households: Size and Dynamics(쏘비에뜨 가구의 비공식 경제 활동: 규모와 역동성),” (PERSA Working Paper No. 26, University of Warwick, 29 January 2003), 9.

33) Tatiana Koriagina, “The Shadow Economy of the USSR(쏘련의 그림자 경제),” Izd-vo Pravda 3 (1990): 113 [in Russian].

34) Gregory Grossman, “Subverted Sovereignty: Historical Role of the Soviet Underground(체제의 전복: 쏘비에뜨 지하경제의 역사적 역할)”, Stephen S. Cohen외 편집, The Tunnel at the End of the Light(빛이 끝난 곳에 터널이),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1998), 36.

35) Treml 와 Alexeev, 224-225, 239.

36) Gregory Grossman, “Sub-Rosa Privatization and Marketization in the USSR(쏘련의 비밀스런 사적화와 시장화),” Annals, ASPSS(ASPSS 연보), (January, 1990), 49.

37) Gregory Grossman, “Sub-Rosa Privatization,” 49

38) Byung-Yeon Kim, 6, 9.

39) Gregory Grossman이 개발한 추정치, “The Second Economy: Boon or Bane for the Reform of the First Economy?(제2 경제: 제1 경제의 개혁의 약인가 독인가?)”, Economic Reforms in the Socialist World(사회주의 세계의 경제개혁), Stanislaw Gomulka(쓰따니슬라프 고물까)외 편집, (London: Macmillan, 1989), 94

   그로스만에 따르면, “최근에 미국으로 이민 온 1000명의 쏘비에뜨 이민자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쏘련의 비공식(또는 사적)소득의 크기를 얼마간 파악할 수 있다. 설문조사는 트레믈 교수와 필자(그레고리 그로스만)에 의해 수행되었다. 데이터는 1977년을 중심으로 도시 지역에 국한된다. 제시된 수치는 남편과 아내가 둘 다 있고 둘 중 적어도 한명은 공식적으로 직업이 있는 가정에 적용된다.” 그로스만이 볼 때 제2 경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성장하였다. 위 표는 브레즈네프 시대 말기에 가장 큰 공화국인 러시아에서 제2 경제가 대략 30%, 또 다른 주요 슬라브 공화국인 우끄라이나와 벨라루시에서 대략 40%를 차지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에 따르면 쏘련의 다른 지역들은 제2 경제가 이들 지역보다 더 크고, 어쩌면 제1 −계획적인 국가 소유−경제와 동등하거나 능가했다.

40) 역주: 러시아어로 Закавказ. 영어권에서는 트랜스코카서스 혹은 트랜스코카시아라고 부른다.

41) Simis, 153; Grossman, “Subverted Sovereignty,” 39-40.

42) Kim, 12, 23.

43) David Pryce-Jones가 인용한 Brezhnev, The Strange Death of the Soviet Empire(쏘비에뜨 제국의 예상 밖의 죽음), (New York: Henry Holt, 1995), 53

44) Gregory Grossman, “Inflationary, Political, and Social Implications of the Current Economic Slowdown(현재 경제 침체의 인플레이션, 정치 및 사회적 함의)”, Hans-Hermann Hoehmann(한스-헤르만 호만), Alex Nove(알렉스 노브)와 Heinrich Vogel(하인리히 보글), Economics and Politics in the USSR(쏘련의 경제와 정치), (Boulder and London: Westview Press, 1986), 192.

45) Michael Alexeev, “The Russian Underground Economy in Transition(이행기의 러시아 지하경제)”, Michael Walker(마이클 워커) 편집, The Underground Economy: Global Evidence of its Size and Impact(지하경제: 규모와 영향에 대한 지구적 증거), (Vancouver, Canada: Fraser Institute, 1997), 259.

46) Treml 과 Alexeev, 225; Valery M. Rutgaizer(발레리 루트가이저), “The Shadow Economy in the USSR(쏘련의 그림자 경제)” (Berkeley-Duke Occasional Papers on the Second Economy in the USSR, No. 34, February 1992), 41.

47) Grossman, “Subverted Sovereignty,”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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