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이 | 회원
지난 ≪정세와 노동≫제 2월 140호 정세 글 “아~~~대한민국! ― ‘최저임금 대폭인상’ 소동을 바라보며―”를 읽고,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인 상시 4인 이하 사업장에서 벌어졌던 작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겠다.
A 치과의원 B 원장은 사회진보를 위해 외부활동을 활발히 했다. B 원장은 ‘노무현 탄핵’ 때 치과일도 내팽개치고 노무현 탄핵저지를 위해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A 치과의원은 B 원장의 활발한 대외 활동으로 노동, 농민, 시민운동 등을 하는 활동가들이 환자로 종종 내원했다. B 원장은 자본주의 의료를 타파하기 위해 ‘무상의료’에도 한 목소리를 냈다. A 치과의원은 광우병촛불 이후 인터넷 상으로 알음알음 양심치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한마디로 B 원장은 사회개혁에 앞장서는 진보의사였다. 그런데 몽실이가 A 치과의원에 10년 근무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쓴 적이 없다.
몽실이: “진보에 기여하는 치과로서 우리도 근로계약서라는 걸 작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B 원장: “그럼요. 당연히 해야죠. 며칠 후 노무사가 올 거예요.”
몽실이가 아는 노무사의 개념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직업이라 생각하고 내심 기다렸다. 두 명의 노무사가 두툼한 서류뭉치를 끼고 들어와 “여기 원장님은 좋은 분이고, 다른 곳은 여기에 비해 열악해요.”라며 서두부터 원장 칭찬을 늘어놓는다. 그러더니 A4용지 3장에 달하는 긴 조항을 조목조목 읊는다. 대충 정리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근로기준법에 상시 4인 이하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주요 법 규정>
1 .법령 요지 등의 게시의무
-근로기준법과 시행령의 요지 등을 사업장에 게시하지 않거나 근로자에게 알리지 않아도 된다.
- 해고 등의 제한
-정당한 이유가 없어도 근로자들을 해고하거나 징계 할 수 있다.
- 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고 할 때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할 필요가 없다.
- 휴업수당
-5인 이상의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에 근로자들에게 평균임금의 70%이상의 수당을 지급하여야 하나, 4인 이하의 경우 이 규정의 적용이 없다.
- 법정근로시간 및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1주 40시간, 1일 8시간이라는 법정 근로 시간 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야간, 연장근로 또는 휴일근로 시 50% 가산한다는 조항도 적용이 없다.
- 생리휴가
-5인 이상의 사업장의 경우 여성 근로자가 청구하면 월1일의 생리휴가를 주어야 하지만 4인 이하의 경우 적용이 없다.
- 태아검진 시간의 허용 및 육아시간
-5인 이상의 사업장의 경우 임신한 여성근로자가 <모자보건법>제10조에 따른 임산부 정기건강진단을 받는데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는 경우 이를 허용하여야 하며, 생후 1년 미만의 유아를 가진 여성 근로자가 청구하면 유급 수유시간을 주어야 하지만, 4인 이하의 경우 적용이 없다.
1~7까지 모든 조항이 반노동・반인권적이다. 우리는 이 글의 주제인 임금 관련 부분을 보겠다.
지난 2월 27일 새벽 국회 환노위에서 통과되기 전까지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며, 이를 넘는 연장노동은 1주 12시간을 한도로 노동자의 동의가 있어야 시행될 수 있고 또한 통상임금의 100%(=휴일노동에 대한 수당 50% +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연장노동에 대한 수당 50%)이상이 할증 지급되어야 한다. 환노위에 통과된 휴일노동이 주40시간을 넘는 연장근로임에도 그에 대한 50% 가산분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다. 상시 4인 이하 사업장노동자(5인 이상도 처지는 비슷하다)는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인상이 된다고 해도 2018년 최저임금 7,530원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몽실이가 일하는 동네치과의 4인 이하 노동자들은 휴일노동과 주40시간 초과노동 수당이 머나먼 얘기로 들릴 뿐이다.
올망졸망한 동네 슈퍼들 사이에 대기업슈퍼마켓(이마트 에브리데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등)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처럼 최첨단의료기기와 경영을 보유한 대형치과병원이 들어와 동네의원들을 잠식해 들어왔다. B 원장은 의료영리화 저지를 위한 명목으로 치과계 새로운 업종인 전국프렌차이즈 치과병원과도 투쟁을 불사했다.
A 치과의원은 직원들과 근로계약서를 쓴 몇 달 후 폐업을 했다. 몽실이는 그 때나 지금이나 원장이 인건비부담 때문에 문을 닫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대한민국! – ‘최저임금 대폭인상’ 소동”에서 지적하듯 A 치과의원의 폐업은 높은 건물 임대료, 기계 임대비, 미장원만큼 포화된 치과에 공룡화된 프렌차이즈(독점자본) 치과병원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면 상시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는 아무리 뺑이 쳐도 연장수당을 줄 수 없다고 근기법에 못을 박아났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 슬로건보다 근로기준법 ‘상시 4인 이하 사업장’이라 제외시키는 독소조항 폐지와 근기법 개악책동 분쇄 투쟁에 앞장서야 한다. 민주노총의 창립선언문에 “민주노총으로 결집한 우리는 인간다운 삶과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노동조건의 확보, 노동기본권의 쟁취, 노동현장의 비민주적 요소 척결, 산업재해 추방과 남녀평등의 실현을 위해 가열차게 투쟁할 것이다… 우리는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조직의 확대 강화에 박차를 가한다.”라고 했다. 이 말이 공허한 공문구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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