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역사: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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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영 | 회원

지난 3월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내 삶을 바꾸는 성 평등 민주주의 ― For Gender Justice”라는 슬로건 아래 제 34회 한국여성대회가 열렸다. 이는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퍼진 미투(#Metoo) 운동의 확산으로 어느 해보다 의미 있는 해가 되기를 모두가 희망하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남성중심적 사회구조 속에서 억압받아온 여성의 인권에 대해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여성 인권 신장을 통해 인류 전체의 인권이 한층 더 진보하기를 기대해 본다.

 

3.8 세계 여성의 날은 현재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계적인 기념일이다. 유엔에서도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7년에는 3월 8일을 특정해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화하는 결정서를 채택했다. 그러나 여성의 날은 국가마다 각기 다른 위상을 지니고 있다. 쏘련 시대를 경험했던 여러 국가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 사회주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국가들에선 중요한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고,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에게만 공휴일로 적용하기도 한다. 또한, 일부 국가들에선 어머니날이나 밸런타인데이처럼 남성의 여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행사로 전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세계 여성의 날은 여전히 여성의 자유, 참정권, 인권 등의 정치적 문제를 중심 주제로 삼고 있으며, 국제적인 여성들의 투쟁에서 이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자각을 잘 드러내주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비록 일부 국가들에서 그 의미가 다소 퇴색되었을지라도 세계 여성의 날의 역사적 의미는 결코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세계 여성의 날의 시작과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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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혁명과 시민 혁명으로 서유럽 세계가 자본주의 체제로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여성들의 지위가 달라지게 되었다. 집안에서 가사 노동만을 담당하던 것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체제의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는 여성들에게 남성보다 훨씬 가혹한 조건을 요구했다. 결국, 말도 안 되는 저임금과 열악한 작업 환경에 시달리던 여성 노동자들의 불만이 1857년 미국의 뉴욕 시에서 처음으로 폭발하게 된다. 바로 방직, 직물 공장에서 일하던 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이다. 그러나 이들의 시위는 곧 경찰의 공격으로 해산되고 말았다. 2년 뒤, 1859년 3월, 이 여성들이 최초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다.

그러던 중 안전 장비도 갖추어지지 않고 탈출로도 없는 열악한 미국의 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들의 죽음을 기리며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 환경 문제, 임금 문제, 근로 시간 문제, 투표권 문제 등을 들고 1908년 3월 8일 거리로 나와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웠던 여성들의 첫 대규모 시위대는 이런 노래를 부르며 행진했다.

 

“우리가 행진하고 또 행진할 땐 남자들을 위해서도 싸우네. 왜냐하면 남자는 여성의 자식이고 우린 그들을 다시 돌보기 때문이지. 그런 우리가 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리네. 그러니 우리에게 빵을 달라, 그리고 장미를 달라.”

 

여기서 빵은 굶주림을 해소할 생존권을, 장미는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의미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듬해 1909년 2월 28일, 미국에서 ‘전국 여성의 날’이 선포된다. 이에 영향을 받아 유럽에서는 1910년 제2인터내셔널의 노동여성회의에서 독일의 노동운동가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과 러시아의 노동운동가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 꼴론따이(Aleksandra Mikhailovna Kollontai)로부터 매년 같은 날,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여성의 권리 신장을 주장하는 ‘여성의 날’ 행사가 제안된다. 그리고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1911년 3월 19일1)에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 행사가 개최되었다.

제2인터내셔널에서 결정한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은 일단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치러졌다. 이 날을 전후해 독일과 오스트리아 전역에는 여성의 선거권을 중심으로 하여 여성의 각종 권리를 옹호하는 선전물들이 쏟아졌다. 행사 당일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덴마크 등지에서 약 백만 명 이상이 참가하였다. 이때부터 ‘세계 여성의 날’은 전 세계 여성이 나라와 인종을 뛰어넘어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하고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이후 유럽과 미국 등 각국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사회운동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1912년 5월 뉴욕 5번가에서는 15,000명 이상의 여성 노동자들이 선거권과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주장하는 시위를 펼쳤다. 1913년부터 3월 8일로 변경된 이후 세계 여성의 날은 독일, 미국 등 선진국이 아닌 주변 국가들까지 끌어들이는 성과를 보인다. 특히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은 1913년부터 세계 여성의 날에 참가하였는데, 이들은 모든 정치집회가 금지된 제정 하에서도 끈질기게 국제 여성의 날 행사를 이어나갔다.

 

러시아 2월 혁명 및 그 이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여성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를 주요 모토로 내걸던 세계 여성의 날은 급작스런 쇠퇴를 맞이한다. 혁명이 아닌 개혁 정책을 추구했던 서유럽 각국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국제 연대적 색채가 강한 세계 여성의 날을 공공연히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대전의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세계 여성의 날은 노르웨이 등지에서 계속 명목을 이어나간다. 특히 러시아에서 세계 여성의 날은 제정 폐지라는 성과를 거둔 1917년의 러시아 2월 혁명에 큰 공헌을 한다. 바로 1917년 3월 8일(구력 2월 23일)에 여성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제정 타도를 외치며 뻬뜨로그라드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이들의 공헌으로 당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쫓겨났으며,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주장은 뒤이은 10월 혁명에서의 여성들의 평등권 신장의 밑거름이 된다.

 

여성의 날과 근현대사

식민지 조선에서의 여성의 날은 1920년 일제 강점기에 나혜석, 김활란 등 자유주의 계열과 허정숙, 정칠성 등 사회주의 계열이 각각 여성의 날 기념 행사를 시작하면서 정착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이들의 여성 행사를 감시하였지만 딱히 명분이 없어 탄압하지 못했고, 이는 1945년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나 해방 이후 여러 사회 운동에 대한 탄압적인 정책을 유지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집권 시절에는 사회주의적 경향을 가진 세계 여성의 날은 공개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소수에 의해서만 치러지는 작은 행사로 쇠퇴했다. 이런 상황은 1985년에 가서야 일부 해소되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있었고 제1회 한국여성대회가 개최되었다. 이후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세계 여성의 날은 본격적인 정치색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전국여성노조, 민주노총 및 각종 여성주의 단체들이 주최 및 후원하는 전국적인 정치·문화 행사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이와 같이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대규모 궐기를 계기로, 1909년 사회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정치적 행사로 시작되었다. 지금은 그 구호가 낙태금지법 폐지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으나, 여전히 남녀임금차별의 문제는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패스트푸드 체인 기업 맥도날드가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일시적으로 ‘M’ 로고를 뒤집어 ‘W’자로 바꾸는 마케팅을 진행했다가, 곧바로 전 세계 네티즌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하며 역풍을 맞은 일이 있었다.2) 미국 언론 ≪워싱턴포스트≫는 맥도날드가 최저임금 인상을 줄곧 반대해 온 사실을 근거3)로 이 회사의 이중성을 들춰냈다. 미국에서도 최저임금은 노동계층, 특히 여성에게 무척 민감한 이슈다. 미국 노동부 통계를 보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64.3%가 여성이다. 즉, 최저임금4)을 올리면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를 좁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최저임금은 노동계, 남녀임금차별 문제는 여성계의 현안이라고 나누어 생각하고 각 부문별 우선순위를 다르게 볼 때가 있다. 그러나 모든 부문은 전체의 구성을 이루고 있으므로, 어느 한 부문의 진보는 전체의 진보를 담보할 것이다.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만의 기념일이 아니다. 여성 인권이 올라가면 남성의 인권이 내려갈 것처럼 주장하는 지배계급의 프레임에 속지 말라. 그들은 온갖 구실을 만들어 우리를 경쟁의 구도로 몰아넣고, 우리를 끊임없이 대립시키고 분리시키고 있다. 심지어 인권마저도 말이다. 기억하라. 인권은 시소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1) 1848년 3월 19일은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프랑스 2월 혁명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 계급의 봉기 움직임에 위협을 느끼고 여성 참정권 등을 약속한 날(이 약속은 봉기의 위험이 사라지자 곧바로 취소되었다.)이었기에 이 날로 결정된 것이다.

2) 여러 활동가들이 ‘맥도날드의 시스템은 여성에게 불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시민운동가인 네이트 러너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봐요. 맥도날드. 이런 싸구려 홍보를 할 게 아니라 진짜로 뭔가를 좀 해봐요. (최저임금 대신) 생활임금을 준다든지”라고 썼다.

3) 맥도날드가 30개 주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로비를 벌여온 미국 레스토랑 협회(National Restaurant Association)의 주요 회원이라고 밝힌 것이다.

4) 미국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맥도날드의 ‘평균’ 임금은 시간당 10달러에도 되지 못한다. 이는 캘리포니아와 뉴욕의 최저임금 11달러보다 낮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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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Mar 20th, 2018 | By | Category: 정세와노동, 회원마당 | 조회수: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