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북핵폐기는 ‘핵 없는 세계’ 향한 세계사적 한 걸음 될 것”? ― 제국주의의 악선전 독약에 당의(糖衣)를 입히지 마라!

 

  채만수 | 편집위원

≪한겨레≫ 신문은 한국 ‘진보언론’의, 자타가 공인하는, 시쳇말로 ‘아이콘’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기념비적인 반파쇼투쟁의 하나인 1987년 민주항쟁의 직접적인 성과의 일부로서, ≪한겨레≫가, 기본적으로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그 관점에도 불구하고, 여러 면에서 실제로 진보적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진보적인 만큼 그것은, 적어도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대중매체보다도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 터이다. 진보적이거나 진보적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고에 그만큼 강한 영향을 미칠 터이다.

그런데,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한겨레≫의 그러한 강한 영향력은, 하기 나름에 따라서는 그들을 잠재우고, 깨어 있고자 하는 그들의 영혼을 죽이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한 독약이 드물지 않고 살포되고 있기도 하다.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죽이는 독약? ― 그렇다. 분명 독약이다! 같은 말, 같은 내용이라도, 세칭 ‘조중동’ 등의 극우언론이 떠들어대면, “또 짖어대나 보다” 하고 넘길 일이 ‘진보언론’ ≪한겨레≫가 떠들어대면, ‘진실’이 돼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비근하게는, 지난해 초 말레이시아의 어느 공항에서 발생한 ‘김정남 피살사건’에 대한 보도태도⋅보도내용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한겨레≫의 보도는 ‘조중동’ 등의 극우언론의 그것들과 사실상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내용과 태도로 일관하지 않았던가? 요약하자면, 북의 김정은이 권력에 굶주려 자신의 형을 잔인하게 제거했다고! 사실상 가히 확신에 차서 그렇게 보도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것도 사건이 터지자마자! 예컨대, 1898년 2월 쿠바 아바나항에서의 미군함 메인호 폭발 사건이나 1964년 8월 베트남 통킹만 사건과 같이, 제국주의의 사악한 음모와 공작이 난무하는 것이 널리 알려진 오늘날의 국제정치이다. 그런데, ‘김정남 피살’이라는 사건을 보면서 그러한 음모⋅공작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엔 저 진보언론인들의 머리가 너무나 순결했던 것인가, 제국주의의 선전에 찌든 것이었던가? 저들의 보도는 극우 조중동 등의, 나아가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언론 일반의 그것들과 그 내용⋅태도에서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저들의 그것이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악영향 말고는 말이다!

사설(辭說)이 길어졌는데, 이는 진보 ≪한겨레≫의 또 하나의 보도, 아니 ‘보도’ 형식을 빈 사실상 일종의 ‘계몽적 선전’, 어이없는 선전이 지난 기억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3월 16일자 ≪한겨레≫는 “북핵폐기는 ‘핵 없는 세계’ 향한 세계사적 한 걸음 될 것”이라는, 짧지 않은 기사를 싣고 있다. “14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만난, “서울시가 주최하는 ‘한일시민평화회의’ 참석차 방한한”,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ICAN⋅국제운동)의 국제운영위원인 가와사키 아키라”라는 인물과의 인터뷰 기사다.

이 인물이 속한 단체와 그가 지껄이는 말씀에 권위와 신뢰를 부여하기 위해서 기사는 그 머리맡에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 가와사키 운영위원 / 핵무기금지조약1) 유엔통과 기여 노벨상” 운운하는 글줄기를 배치하고 있다. 그리고 본문은 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이렇게.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폐기’가 이뤄진다면, 이는 ‘핵 없는 세계’를 향한 세계사적 한 걸음이 될 것입니다.”

 

기사를 좀 더 인용하면,

 

그는 “기적같이” 찾아온 북-미, 남북 정상회담이 ‘북핵 폐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제적인 검증 기준 마련’과 ‘이행에 따른 단계적 해법’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무엇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CVID) 핵폐기인지 ‘국제적인 기준’을 마련해, 단계별 절차와 보상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는 “핵보유국이 국제적 검증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핵을 폐기하는 사례는 역사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며 “북핵 폐기가 현실화된다면 ‘핵 없는 세계’를 위한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도와 파키스탄 등 다른 핵보유국에도 적용할 수 있는 선례가 된다는 말도 했다.

 

글이 좀 너저분해지더라도 한 마디 하자면, ‘Ctl-C’, ‘Ctl-V’ 해서 좀 편히 입력해볼까 하고 기사(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36054.html)를 검색해보니, ≪한겨레≫ ‘누리집’상의 기사와 인쇄된 기사가 좀 달라, 인쇄된 기사는 인터넷상의 그것보다 어떤 군더더기도 없이 깔끔히 다듬어져 있다. 이 말은, 분명 세칭 ‘데스크’라고 불리는 상급 편집자들이 공을 들인 결과일 것이므로, 기사에 대한 책임은 결국 기사를 작성한 개인(임재우 기자)을 넘어 진보 ≪한겨레≫ 자체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겨레≫가 권위와 신뢰를 부여하기 위해서 애쓴 저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가님의 발언의 특징은, 그리고 ≪한겨레≫ 자체에 책임이 있는 이 기사, 즉 ≪한겨레≫가 벌이는 사실상의 ‘계몽적 비핵화 선전’의 특징은 이른바 ‘북핵’ 문제와 관련한, 그 원인 및 배경과 관련한, 나아가서는 핵 문제 일반과 관련한 미국의 ‘역할’⋅책임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다는 점이다.

저들의 주장은 오직 “무엇보다 ‘국제적인 검증 기준 마련’과 ‘이행에 따른 단계적 해법’”을 통해, 그리고 “무엇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CVID) 핵폐기인지 ‘국제적인 기준’을 마련해” 북핵을 폐기해야 하며, 그리하여 “북핵 폐기가 현실화된다면 ‘핵 없는 세계’를 위한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도와 파키스탄 등 다른 핵보유국에도 적용할 수 있는 선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는 평화운동에 헌신하는 원천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경험’을 들었다”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거론할 때조차 그 원폭을 투하한 미국은, 그 폭거⋅범죄 따위는 기사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들이 주장하는 바는 결국 무엇인가?

저들은 결국 “핵무기 폐기운동”이라는 미명하에, 미국을 위시한 ‘핵강국’들, 제국주의 열강의 핵보유, 그들의 수천⋅수만 발의 핵무기는 사실상 기정사실로, 그리하여 되돌릴 수 없는 당연한 사실⋅권리로 전제하면서, (저들의 밑바닥 의식이 “모름지기 제국주의에 굴종해야 할 비천한 존재들”이라고 속삭이고 있음에 분명한) 북과 인도⋅파키스탄 등의 그것은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한 제국주의의 깡패논리를 그럴 듯하고 달콤하게 포장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애초부터 전혀 핵능력이 없다는 것이 누구의 눈에나 분명했던 아프가니스탄을, 핵무기⋅핵능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라크와 리비아를 저들 제국주의가 어떻게 짓밟아, 어떻게 인간지옥으로 만들었는가는 세계가 다 알고 있는 대로이다. 그런데도 저들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ICAN)”이란 자들은, (그리고 진보 ≪한겨레≫도), 거듭 말하거니와, “핵무기 폐기운동”이라는 미명하에, 저 비열한 제국주의의 깡패논리를 그럴 듯하고 달콤하게 포장하여 설교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악담’이라고 하겠지만, 저들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ICAN)’이 저 영광스러운 노벨 평화상을 탄 것도 사실은 필시 그러한 위선적 역할을 평가받은 때문일 터이다. 반제 인권운동은 벌이지 않았을지언정 반쏘 인권운동을 벌인 공을 평가받아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노벨 평화상을 탔고, 제국주의와 쏘련 해체 후 러시아의 인권상황에 대해선 침묵했을지언정 쏘련 ‘수용소 군도의 반인권’을 고발한 공을 평가받아 알렉싼드르 쏠제니친이 노벨 문학상을 탔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그러니, 그들의 주장과 활동에 비판이 없을 리가 없다. 문제의 기사의 마무리 문단을 보자.

 

국제운동은 ‘핵억지력’과 ‘힘의 균형’을 믿는 국제 정치 질서의 현실주의자들로부터 ‘낭만주의적 공상에 빠진 단체’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가와사키는 이들 현실주의자들이 오히려 ‘낭만적’이라고 반박했다. “이른바 ‘핵억지력’을 통한 안전이라는 발상에는 핵무기가 결코 사용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어요. 지난 70년간 사용되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사용되지 않을 것이란 발상이 ‘낭만적’이죠.” 이런 말도 했다. “원전 역시 안전하다고만 말해왔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졌잖아요. 과연 핵무기와 원전이 사고가 난 뒤에 ‘예상 밖의 일’이라고 할 문제인지 되묻고 싶어요.”

 

나는, ≪한겨레≫는 물론이고,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ICAN)’이 미국을 위시한 열강의 제국주의 깡패논리를 의식적⋅의도적으로 설교하려 들고 있다고는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쯤 되면, 저들은 분명 현실을 은폐하면서 제국주의 깡패논리를 포장, 그에 설득력을 부여하면서 대중을 기만하고 있다고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에서는, 제국주의 열강의 핵무기에 대해서는, 그리고 특히 그 핵무기를 앞세운 미제국주의의 침략과 침략위협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그리하여 문제를 소위 ‘북핵’이나 ‘인도⋅파키스탄 등’의 핵무기, 그 핵폐기의 문제로 제기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그러한 접근방식⋅선전에 비판이 제기되자, 슬그머니 구렁이 담 넘듯 핵사고 일반의 문제로, 그리하여 추상의 차원으로 비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은, 예컨대, 1950년 한국전쟁 때에 맥아더 등 철없는 악마 같은 전쟁광들이 만주와 이북에 핵폭탄 투하를 주장했지만, 미국이 왜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했는지를 반성(反省)해봐야 할 것이다. 1949년에 쏘련이 핵개발에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쏘련 해체 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등을 침공했지만, 온갖 험악한 악담을 퍼부어대고, 사실상 전쟁행위인 해상차단까지를 벌일지언정 미국이 이북을 (그리고 이란을) 침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경제에서의 ‘자본주의적 혹은 제국주의적’ 이익 때문에 러시아는 물론 중국까지도 미국 주도의 ‘봉쇄’에 동참하고 있는 국제정세의 현실을 고려하면, 북(이나 이란)이 가진 ‘핵억지력’ 때문이라고밖에 다른 대답이 가능할까? ― 이것이 내가 ≪한겨레≫를 포함하여 저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그리고 진보 ≪한겨레≫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아니, 사실은 저들도 이미 익히 알고 있을 터이니까, 상기시키고 싶은 서양(영국과 독일)의 속담이 있다. ―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진보 ≪한겨레≫여! 제발 제국주의의 악선전 독약에 당의(糖衣)를 입히지 마라! ‘차라리 폐간하는 게 창간정신을 살리는 길일지도 모르겠다’는 외침이 터져 나오기 전에!


1) 기사에 따르면,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이 주도한” 이 “조약은 기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한발짝 더 나가[?!] 핵보유국의 핵 폐기를 의무화하는 국제조약”으로서, “지난해 7월 유엔 총회에서 미국⋅러시아 등 핵보유국과 한국⋅일본 등 이들의 동맹국들을 제외한 122개국이 … 찬성표를 던져 채택됐”단다. 당연히 유엔의 유명무실한 장식품이다. 그런데, 이 핵무기금지조약에 찬성하지 않은 “미국 … 한국⋅일본 등”은 과연 무슨 명분으로 ‘북핵’을 폐기하지 못해 이토록 광분한단 말인가? 파렴치하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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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댓글

  • 자유게시판에서 알려드린대로 지난달 만 1개월 여전 노건투가 해산했는데 이들의 문제 역시도 한겨레와 같은 자유파 그리고 사민파, 수정주의 유파들과 거의 동일한 인식을 보였습니다. 앞으로 노건투의 양대 구성진영에서 새로운 기구들로 선을 보이겠다고는 했지만 인식을 전환하지 않고서는 역시 재판, 그것도 두 배로 재판할 뿐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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