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춘래불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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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 | 편집위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 왕소군의 비극에서 유래한 이 고사에는 이민족을 오랑캐라고 부르는 한족중심주의적 시각이 담겨 있지만 현시기에 꼭 이 표현을 쓰고 싶다.

<자료>로 실린 연구소의 연대사 “자본주의와 전쟁이 야기하는 모든 여성 억압의 원천을 철폐해 나갑시다”가 3월 3일 도꾜에서 낭독된 이후 단 이틀만인 3월 5일에 문재인 정부의 특사가 방북하여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흘 뒤인 3월 8일에는 북미정상회담이 발표되었다. 편집자의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스웨덴에서의 협상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순식간에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정상회담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고 마치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화’라는 과제가 이미 완수된 것처럼 들떠있다.

작년부터 전쟁위기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내놓은 연구소의 정세 분석들이 이제는 낡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원칙을 수정해야 할만큼의 대전환이 임박한 것은 결코 아니다. 가시적인 전쟁위기는 분명히 완화되었다. 그러나 표지에서 다룬 것과 같은 1950년대 민간인 학살의 전모조차 아직까지 다 밝혀지지 않았다. 학살자들과 그 후예들은 아직도 이 땅에서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학살과 침략 전쟁을 낳은 제국주의 패권국가와 전세계자본주의 체제는 아직 임종을 고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은 또 어떤가? “북과 대화해도 대북제재 공조는 이완될 수 없다”며 제국주의 충견 노릇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지 않는가.

급박한 정세 변화를 목도하는 시기에 바로 구체적인 전술 지침을 내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대전제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전략적 인내’는 완전히 파산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2017년 4월 17일 미 부통령 펜스의 발언 이전인 2016년 9월 22일 오바마 정권의 한(조선)반도 정책팀장 프랭크 자누지가 이미 실토하였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전략적 인내’ 이외의 다른 근본적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십만(thousands)이 죽어도 상관없다며 미쳐 날뛰기도 하고, ‘코피 전략’으로 북의 핵시설만을 ‘외과 수술’처럼 제거할 수 있을 것처럼 기만하기도 한다. ‘전략적 인내’ 정책을 세울 때도 그것을 버릴 때도 한국의 동의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은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일관성도 없을뿐더러 전혀 ‘대국’다운 면모조차 보이고 있지 않다. 추락하는 미 헤게모니의 끝은 어디일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그 어떠한 강도와 같은 패권세력도 자신의 패권을 평화적으로 넘겨주는 일을 역사에서 목격하지 못했다. 미제국주의의 몰락은 비가역적인 것이지만 결코 자동으로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둘, 전세계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 ‘반도의 비핵화’는 세계 평화에 역행하는 길이다. 1950년 전쟁에서 원폭 투하를 적극적으로 검토했던 미제, 그리고 아직도 미제의 핵우산아래 있는 이 땅의 현실은 변화하지 않았다. 미제가 반도에서 핵을 철거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검증할 길도 없으며, 수시로 핵잠함과 핵항모가 드나들며 군사훈련을 벌이는 현실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성주의 싸드와 제주 해군기지는 동북아시아에서 미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미 연합훈련도 결코 중단되지 않았다. 만약 북이 리비아나 이라크 수준의 무력만을 갖추었다면 결코 미국은 대화를 하겠다는 몸짓조차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몰계급적 평화주의자들의 눈에는 대단히 역설적이겠지만 ‘북핵’이 평화협상의 단초를 열어낸 것으로 보인다.

셋, 근거없는 낙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반동의 시대에 낙관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실천투쟁의 활기를 잃지 않는 것은 지녀할 미덕 중 하나이다. 그러나 지나친 낙관주의는 우익 기회주의를 낳는다. 벌써부터 통일이 곧 이루어질 것처럼 들떠있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 남북 정삼회담 조차 시작하지 않았다. 2000년과 지금의 정세는 분명히 다르지만 ‘615 선언’에서 ‘조미 공동코뮈니케’로 이어진 합의가 어떻게 무력화되었는지 상기해야 한다. 남북 관계의 개선되면 자동적으로 주한 미군이 철수하고, 국가보안법 철폐로 이어질 것이라는 행복회로를 돌릴 때가 아니다.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미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고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철로를 통해 대륙을 횡단하고 유럽 여행이나 하겠다는 단꿈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더욱 치열하게 반제⋅반전 노선을 견지하면서 싸워가야 한다.

이번 호에도 중요한 글들이 여럿 게재되었다.

<정세> 채만수 편집위원의 ““북핵폐기는 ‘핵 없는 세계’ 향한 세계사적 한 걸음 될 것”? ― 제국주의의 악선전 독약에 당의(糖衣)를 입히지 마라!”는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선의로 포장”된 몰계급적 반핵운동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소위 ‘김정남 피살’에 대해, 이른 바 ‘북핵 문제’에 대해 조중동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는 보도를 내놓는 ≪한겨레≫여, 계속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폐간하는 게 창간정신을 살리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현장> 김태균 회원의 ‘민주노총 제9기(직선2기) 선거 투쟁을 통해 바라본 좌파진영의 과제’는 이호동 선거운동 본부의 자기 평가가 담긴 문서이다. 이호동 선본은 선거투쟁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를 내세우는 진영과의 경선에서 패배하였다. 그러나 선거 패배에서 멈추지 않고 자기 반성에 기초하여 향후 전망을 수립하는 자세는 민주노총 외부에도 귀감이 될 것이다. 다만 민주노총 혁신의 과제는 ‘좌파진영’만의 과제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혁신을 외치는 건강한 세력이 아직도 전투적 조합주의 이상의 실천을 해내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근본적인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호동 선본은 소위 ‘북핵위기’의 본질이 ‘미제의 핵독점 전략이자 전쟁책동, 미군산복합체의 무기판매를 위해 끊임없이 조장되어야 하는 위기’라고 올바르게 분석하고 선거투쟁을 진행하였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평가와 그 후속 대책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번역> 쓰딸린의 “10월 혁명과 러시아 공산주의자들 ―상”을 주의 깊게 독해해 보자. 특히 뜨로츠끼의 발언 “프롤레타리아트가 정권을 잡도록 지원한 광범위한 농민대중과도 적대적 충돌을 하게 될 것”이라는 섬찟한 표현을 보자. 농민대중을 추상적으로 일반화하여 농민층의 계급적 분화에 대한 분석을 결여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동맹을 유지해야 하는 빈농과 중립화시켜야 하는 중농 그리고 철저히 분쇄해야 하는 부농⋅꿀라끄에 대한 구분없이 농민대중 전체를 적으로 돌려버리고 있다. 그러면서 러시아 혁명의 승리를 비주체적으로 사고하여 ‘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구체성을 상실한 추상적 조건에 귀속시키고 있다. ‘영구혁명론’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역사에 있어 가정은 의미없는 것이라지만 이러한 뜨로츠끼가 농업집단화를 추진했다면 얼마나 거대한 역사적 비극이 초래되었을까? 혁명적인 수사를 남발하지만 실상은 멘쉐비즘의 변종에 불과한 뜨로츠끼주의를 보다 더 철저하게 짓밟아야 할 것이다.

<번역> “배반당한 사회주의: 쏘련 붕괴의 배후(3)”는 브레즈네프 시대 이후 쏘련사의 알려지지 않은 이면에 대한 알기쉬운 해설을 이어가고 있다. 유리 안드로뽀프 서기장에 대한 서술이 대단히 흥미롭다. 아프가니스탄 혁명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며 국제주의적 원칙을 지켰고, 대내적으로는 관료주의와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한 그의 짧은 재임 기간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회원마당>의 <이 달의 역사>에서는 3⋅8 세계여성의 날을 다루고 있다. 오해영 회원은 여성의 날의 역사적 의의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의 의미도 다루고 있다. 다만 현실 여성운동의 과제에 있어서는 이후에 보다 구체적인 서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여성 이론은 연구소의 취약점이기도 하다. 이에 있어 보다 많은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연구소 여성 회원들께서 보다 분발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부족한 능력임에도 교육위원장에 이어서 편집출판위원장까지 두 번째로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그간 월간지의 부정기적 발행으로 ‘정세와 노동’이라는 표제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5월호부터는 전월 말일 발행이라는 기본적인 원칙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 걸음씩 전진하는 모습을 지켜봐주시고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봄이 왔지만 봄 같지는 않다. 그러나 해방의 봄을 향해 달려가는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2018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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