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동아시아 정세와 노동자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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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찬 | 연구위원장

 

 

 

머리말

 

평창올림픽이 한창이다. 이번의 올림픽은 과거의 올림픽과 달리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한반도에서 치러진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또한 남과 북이 올림픽을 계기로 대화를 시작하고 긴장완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끌고 있다.

올림픽 직전까지 한반도는 전쟁위기에 질식되고 있었다. 이북의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에 대해 미국이 전략자산을 동원한 무력시위를 거듭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북이 올림픽의 성공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올림픽에 대한 참가를 결정하면서 남과 북은 대화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북 예술단의 공연, 고위급 대표단의 파견, 그에 대한 남측의 환대, 그리고 이어지는 남측의 특사 파견 모색 등 한반도의 긴장은 상당히 완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긴장의 고조와 완화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지만 애초에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켰던 원인들, 그 근원은 변한 것이 없다. 미국의 이북에 대한 강경 입장은 변화하지 않고 있으며 이북 또한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쉽게 상정하기 힘들다. 일본은 올림픽 후 한-미 군사훈련을 강행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데 이러한 점은 전쟁위기를 불러일으켰던 한반도를 둘러싼 구도 자체가 변화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시적으로는 외교적 기술이 긴장완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구도 자체가 지속적으로 전쟁위기를 만들어 낸다면 그러한 외교적 기술은 제한된 영향을 가질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결정적인 관건이 되는 것은 한반도의 주체이자 당사자인 남북한 민중의 태도이다. 특히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국제정세의 변화,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에 손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위기의 본질을 인식하면서 전쟁위기를 야기하는 한반도를 둘러싼 구도에 맞서며 스스로 평화의 전망을 내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전쟁에 의해 가장 고통받는 것은 노동자와 민중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전쟁위기 자체에 의해 한국의 정치상황은 극도로 긴장되고 극우이데올로기, 반공 이데올로기가 끊임없이 민중들에게 주입되고 있다. 즉, 제국주의와 지배계급은 전쟁위기를 노동자와 민중을 억압하는 정치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전쟁위기에 맞서는 투쟁에 나서야 하며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의 전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

 

 

  1. 세계 대공황과 전쟁위기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고전적 명제이다. 이 명제는 전쟁의 실체에 대해 과학적 인식을 갖게 하는 과학적인 명제이다. 전쟁은 천재지변처럼 불쑥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야기하는 정치상황의 결과라는 점을 이 명제는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나아가 전쟁을 방지하고 스스로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이 명제를 지금의 현실에 철저히 적용해야 한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전쟁은 과거의 영토전쟁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본주의가 확립된 이후 전쟁은 자본이 자신의 상품판매 시장과 원료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벌이는 전쟁이다. 19세기의 식민지를 둘러싼 전쟁이 바로 그러한 전쟁의 고전적인 사례이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서 자본주의 세계가 제국주의 단계로 진입한 이후 전쟁의 성격은 또 한 번 비약을 한다. 제국주의는 19세기의 자유경쟁 자본주의와 달리 독점자본주의 단계의 자본주의를 일컬으며 독점자본은 더 이상 ‘자유’가 아닌 ‘지배’를 원하며 단지 농업지역만이 아니라 공업이 발달된 지역을 포함하여 세계의 모든 곳을 지배하려는 열망을 지니게 되고, 따라서 제국주의 세력 상호간의 충돌도 불사하는데 이 충돌의 결과가 제 1차, 2차 세계대전이었다. 제국주의 세력 상호간의 충돌은 제국주의 세력 자체의 약화를 가져왔는데, 그 결과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러시아 혁명의 승리가 이루어졌고,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세계 사회주의 진영이 성립하였고, 식민지 체제가 붕괴하였다.

이와 같이 제국주의 시대에 있어서 전쟁은 자본의 논리의 폭력적 관철이며 제국주의 세력은 19세기와 달리 자유가 아니라 지배를 원하는 세력이며 인간의 노예화를 강요하는 세력이다. 21세기 지금에 있어서도 전쟁의 이러한 성격은 변화하지 않고 더욱 더 강화되고 있다. 특히 쏘련 붕괴 후 제국주의에 대한 견제세력이 사라진 이후 제국주의의 이러한 폭력적 성격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라는 약소국가에 대한 침략이 그러하였고 시리아는 지금도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고통을 받고 있다.

2008년 세계 대공황 이후 전쟁의 성격은 한편으로 공황으로 인해 격화되는 제국주의 국가내의 불만을 대외적으로 돌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의 유지와 확대, 세력권의 유지와 확대를 위한 것이 되었다. 미국이 시리아에 개입하고 있는 이유는 석유자원과 시장을 위하여 중동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일 따름이다.

공황은 자본에게 있어서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개별자본의 입장에서는 자본이 파산하는가 아닌가가 달려 있으며 자본주의 국가 차원에서는 계급투쟁의 격화와 혁명의 위험이 대두되는 시기이다. 또한 제국주의 헤게모니 국가에 있어서는 세계적 지배력이 결정적으로 손상되는가 아닌가, 새로운 헤게모니 세력이 대두되는가 아닌가가 달려 있는 시기이다. 미국이 지금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폭력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려 하는 것은 미국의 세계 지배력, 헤게모니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이 없다. 특히 중국의 부상이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주된 이유라 할 수 있다.

 

 

  1. 동아시아의 전략구도와 전쟁위기

 

올림픽이 한창인 지금 화해와 대화의 무드가 남과 북을 지배하고 있지만 한반도 전쟁위기를 야기한 한반도를 둘러싼 구도는 전혀 변한 것이 없다. 미국은 대화의 분위기에 밀려 탐색적 대화의 여지를 열어두면서도 한-미 군사훈련, 대북압박의 지속을 천명하고 있고 일본은 한-미 훈련의 강행을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야기하는 전략 구도에 대해 냉철히 인식하면서 그러한 구도에 맞서서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쟁취하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 앞서 분석했듯이 한반도 전쟁위기의 근원은 세계 대공황에 대한 미제국주의의 대응이라는 점에서 주어진다. 이북의 핵과 미사일은 하나의 계기일 따름이다. 세계 대공황이 미국 국내의 불만을 야기하고 나아가 미국의 세계지배력을 손상시키고 있으며 중국이라는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가 부상하고 있는 점이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주된 원인이다.

여기에 더해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자신의 위상의 추락을 만회하고 경제침체로 인한 국내의 불만을 호도하기 위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의 고조에 적극 찬성하면서 전쟁위기의 고조에 한 몫 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미-일 동맹을 강화하여 대중국 전선을 강화하려는 전략적 포석을 놓으면서 여기에 남한까지 끌어들여서 동아시아의 정세를 첨예화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지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중국 공산당의 평화적 발전 노선으로 인한 것이다. 사실상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이지만 자신의 생산력 발전을 위해서는 평화가 중요한 조건이라는 점이 등소평 이후 견지되어온 중국의 정책이고 노선이다. 즉, 중국은 이북의 사회주의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제 발전을 위한 조건으로서 평화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중국의 한반도에 있어서 입장은 미국과의 대결이 아니라 ‘조정’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이북의 경우 핵과 미사일을 쉽사리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핵-경제 병진 노선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있고 또 세계정세, 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분석 속에서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담보로서 핵을 사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북이 원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미국과의 평화협정 등 평화체제라는 점에서 이북이 대화로 나올 가능성은 전략적 차원에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남한의 경우 문재인 정권은 이북과의 대화에 찬성하면서도 그것을 한-미 동맹의 틀 내에서 진행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권의 대화노력은 제한적인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미제국주의의 신식민지라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즉,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 자주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의 전망을 내올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권 스스로 핵문제는 이북과 미국이 대화를 통해 풀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촛불정권이라 하는 문재인 정권을 통해서는 이렇듯 한반도의 평화를 담보할 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쟁위기의 극복과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서는 한국 노동자, 민중 스스로의 투쟁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전쟁의 근원으로서 미제국주의를 폭로하고 타격하면서, 한-미-일 전쟁동맹의 반대를 기치로 광범한 반전 평화투쟁의 길로 나서야 한다.

 

 

  1. 전쟁위기의 계급적 성격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전쟁은 계급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즉, 전쟁으로 인한 영향은 계급적 처지에 따라, 계급적 존재에 따라 판이하다. 전쟁으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것은 노동자와 민중일 수밖에 없다. 전쟁에서 총알받이로 나가는 병사들은 모두 노동자와 민중의 자식들이다. 또 전쟁은 노동자들에게 노예와 같은 규율을 강요하는 강제노동을 불가피하게 한다. 또 전쟁은 일체의 비판적 세력에게 재갈을 물리게 된다. 반면에 자본가계급은 전쟁으로 인해 새로운 자본축적의 공간을 획득하게 된다. 각종 투기가 번성하고 인민의 피의 도랑에서 독버섯처럼 새로운 자본의 꽃이 피어난다.

그러나 전쟁만이 아니라 전쟁 위기 자체도 하나의 커다란 억압이다. 전쟁위기는 그 자체로 반공이데올로기를 민중들에게 강요하고 극우세력의 성장을 돕는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그에 도전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미제국주의가 이북의 핵을 무기로 미국 국내에서 반공주의를 확산하고 있고 한국에 있어서도 지배계급은 전쟁위기를 반공주의를 확산하고 민중투쟁을 억압하는 기제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쟁위기 자체가 하나의 정치이다.

미제국주의와 일본은 한반도 전쟁위기를 통해 세계 대공황과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흔들리는 자신들의 헤게모니와 위상을 유지하려 한다. 또한 한반도 전쟁위기를 자신들의 국내정치에 적극 활용하여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국내적으로 유지하려 한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를 자신의 경제발전의 조건으로 사고하나 시장경제, 사실상의 자본주의 경제발전으로 인해 미국의 긴장고조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한반도 평화 견지를 자신의 입장으로 하고 있는 것은 향후 한반도 정세에 있어서 중요한 조건이다.

한국의 지배계급은 전쟁위기가 민중에 대한 억압기제가 된다는 점에는 찬성하나 전쟁으로 인해 한국자본주의가 손상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점이 문재인 정권의 전쟁위기에 대한 이중적 성격으로 표현되고 있다. 대화를 원하면서도 대북압박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러한 점이다.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입장에서 전쟁위기는 투쟁의 대상이다. 한반도 전쟁위기의 계급적 성격을 폭로하고 전쟁위기에 반대하고 평화를 쟁취하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 문재인 정권을 통해서는 한반도 평화체제가 담보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의 신식민지적 성격으로 인해 규정되는 문재인 정권의 신식민지 정권이라는 성격은 문재인 정권이 미국에 대항하여 자주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실현한다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쟁취를 위한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의 불가피성이 주어진다.

 

 

  1. 전쟁위기와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

 

현재 한국 국내적으로 문재인 정권의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해 최근에 민주노총의 선거를 통해 위원장으로 당선된 김명환 위원장은 문재인 정권과 협조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잘못된 행보이다. 문재인 정권의 개혁은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감옥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대변하듯이 노동운동의 강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분열과 해체를 가져올 위험이 다분하다. 계급협조를 통해서 노동운동이 강화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이러한 기본적인 지점을 민주노총 지도부가 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시야가 조합주의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조합주의의 입장에서는 정권과, 대통령과 대화를 통해 성과를 얻는다는 것은 매우 좋은 것이지만 실은 그 과정을 통해 노동자의 계급의식이 갉아 먹히고 노동운동의 대오가 부르주아 개혁에 용해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 진영은 계급협조에 반대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개혁의 한계를 비판하고 그에 대해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사회대개혁의 전망을 대치시켜야 한다,

나아가 노동자계급은 전쟁위기의 극복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서도 문재인 정권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헤게모니를 세워가야 한다. 앞서 보았듯이 문재인 정권을 통해서는 한반도의 평화가 담보될 수 없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요원하다. 문재인 정권이 미국에 굴종하고 있는 이상 노동자계급이 투쟁을 통해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강제해 들어가야 한다.

전쟁위기에 대한 반대는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될 때만 광범한 민중의 운동이 될 수 있다. 전쟁을 강요하는 미제국주의에 대한 반대, 한-미-일 전쟁동맹의 반대를 기치로 광범한 민중을 결집시키는 투쟁을 만들어 가야 한다. 또한 문재인 정권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지배계급은 전쟁위기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전쟁위기와 평화의 문제에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세워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는 당장의 전쟁위기 고조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서서 중요한 문제이다. 전쟁위기가 외교적 기술을 통해 지연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근원적인 대안이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근본적 대안을 위해서는 미국에 반대하고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는 전략을 가진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필수적이다. 이것은 장기간의 투쟁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략적 견지에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세우는 길이 요청되는 것이다.

 

 

  1. 노동자계급 헤게모니의 일보전진을 위하여

 

문재인 정권은 신식민지적 정권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 동맹의 틀 내에서 남북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쟁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노동자계급 헤게모니 하에서 광범한 민중이 결집하는 반전 평화투쟁을 통해서만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전망이 가능하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라는 사상은 쏘련 붕괴 후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이 퇴조하면서 도처에서 도전받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고유한 위치로 인해 주어지는 것이다. 생산의 주역이면서 동시에 무산자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 계급없는 사회를 건설할 유일한 세력이라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주어진다. 이러한 점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는 진실이지만 운동의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부터가 회의되고 있고, 나아가 자본주의에 맞서는 세력, 저항운동에 있어서 노동운동은 많은 운동들 중의 하나로 격하되고 있다.

알튀세르의 동료였던 발리바르는 맑스주의로부터 탈출을 제기하고 나아가 ‘계급투쟁에서 계급없는 투쟁으로’를 제기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발리바르가 말하는 계급없는 투쟁은 노동운동이나 사회주의운동이 아니라 환경, 여성, 성소수자, 인권 운동과 같은 신사회운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비단 발리바르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푸코 등 현대 프랑스 철학의 주류가 제창하는 것이기도 하다. 철학적으로 변증법에 대한 부정을 공통분모로 하는 이들은 사회세력들의 상호연관을 무시하면서 사회운동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부정한다. 다만 저항하는 소수의 다양한 세력들의 연합 자체가 이들에게 있어서는 지상의 것이다. 그러나 세력들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과학적 분석 없이, 단지 저항한다는 이유만으로 연합한다는 것은 절망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헤게모니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도 없고 그러한 투쟁은 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서지 못하고 자본주의의 개량에 봉사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론적으로, 철학적으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해체시켜온 지금과 같은 흐름은 끝장나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이들 푸코 등과 신사회운동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는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한계와 연관되는 것인데 이들 신사회운동의 출현 그리고 그 출현의 배경이 된 68운동은 20세기 사회주의의 한계에 대한 문제제기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푸코와 신사회운동이 변증법과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부정하는 등의 비과학성은 적극적으로 비판하되 환경, 여성, 성소수자, 인권 운동 등의 문제의식을 사회주의 운동에 포괄하고 이들과 노동운동과의 관계, 연관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이러한 여러 영역의 비판적 운동 속에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스며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는 21세기 상황에 걸맞은 방식으로 재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한반도 전쟁위기는 거대한 세계질서 변환의 일부이다. 2008년 세계 대공황이 촉발한 세계질서의 변동은 EU의 약화와 영국의 그것으로부터의 탈퇴, 중동지역의 민주화운동의 촉발, 미국의 경제적 위상의 추락, 중국의 부상,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시리아 내전 등 여러 면에서 세계질서를 변화시켜왔고 2018년 지금에 있어서 그것은 중국과 미국의 전략적 대결, 그리고 이북과 미국의 대결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 맞서는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로서 중국의 부상은 동아시아를 세계적 격동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미국은 이북의 핵과 미사일을 계기로 동아시아에서 폭력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고 그것이 한반도의 전쟁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촛불시위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은 전쟁위기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 전쟁위기의 극복과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어렵게 하고 있다. 신식민지 정권으로서 미국에 굴종적인 문재인 정권은 전쟁위기에 대해 대화를 말하면서도 전쟁위기를 강화하는 대북압박에 적극 찬성하는 이중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를 가져오는 것은 문재인 정권으로 대표되는 지배계급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헤게모니 하의 민중들의 광범한 투쟁이다. 한-미-일 전쟁 동맹 반대를 기치로 하는 반전 평화투쟁만이 한반도의 평화를 담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논리인데 저항운동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에 대한 부정이 20세기 후반과 쏘련 붕괴 이후 진행되어 온 점이 그러하다. 그러나 지배체제에 맞서는 저항운동은 그것을 구성하는 세력들의 상호관계에 대한 엄밀한 평가를 필요로 하며 그러한 평가와 분석을 기초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쟁 그리고 전쟁위기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한 최악의 계급적 억압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전 평화투쟁에 광범한 노동자, 민중이 결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결집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인민의 전위투사로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수립하는 길을 걷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며 계급적 성격을 갖는다. 전쟁위기 또한 하나의 정치이며 그 자체로 민중에 대한 억압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재인 정권과 지배계급의 이중적 태도를 넘어서서 광범한 반전 평화투쟁의 길로 거침없이 나서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전망을 열어가야 한다.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Feb 22nd, 2018 | By | Category: 정세, 정세와노동 | 조회수: 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