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레닌주의의 기초에 대하여(5)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차례 –

1.레닌주의의 역사적 근원

2.방법

3.이론

4.프롤레타리아독재

5.농민문제

6.민족문제

7.전략과 전술

8.당

9.사업 방식

7.전략과 전술

 

이 주제에서는 여섯 가지 문제를 다루겠다.

ㄱ)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을 지도하는 과학으로서의 전략과 전술

ㄴ) 혁명의 단계와 전략

ㄷ) 운동의 고조 및 퇴조와 전술

ㄹ) 전략적 지도

ㅁ) 전술적 지도

ㅂ) 개량주의와 혁명주의

1)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을 지도하는 과학으로서의 전략과 전술

제2 인터내셔널이 지배하던 시기는 비교적 평화로운 국면이라는 정세 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군대를 만들어내고 단련시키는 시기였다. 의회주의가 계급투쟁의 형태를 주로 지배하던 시기였다. 대규모 계급투쟁의 문제, 혁명적 충돌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준비 문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쟁취할 방법 문제는 일정에 올라있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트 군대를 만들고 단련시키는 것은 합법적 국면의 수단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당시의 임무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야당의 지위에 있었고 야당의 지위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된 조건에 따라 의회주의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에 대한 이런 식의 생각으로는 어떤 완전한 전략도 정교한 전술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증명이 필요치 않다. 전술과 전략에 관한 단편적이고 자질구레한 착상은 있었으나 전술과 전략은 없었다.

 제2 인터내셔널의 치명적 죄행은 당시에 의회를 활용하는 전술을 쓴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의회주의적 투쟁형태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여 사실상 유일한 투쟁형태로 간주한데 있다. 또한 공개적 혁명투쟁의 시기가 닥쳐오고 의회주의 이외의 투쟁형태 문제가 이미 절박한 문제로 다가왔을 때에도 제2 인터내셔널의 당들이 이러한 새로운 임무에 등을 돌리고 책임지기를 거부한데 있다.

 다음 시기 즉 프롤레타리아트가 정면에 나서 행동하는 시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기, 부르주아 타도 문제가 당면 실천문제로 된 시기에 프롤레타리아 투쟁에 대한 완전한 전략과 세밀한 전술이 수립될 수 있었다. 이 때에야 비로소 프롤레타리아트의 예비군에 대한 문제(즉 전략)가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되고, 투쟁과 조직의 모든 형태들一의회 형태와 의회 밖에서의 형태(즉 전술)一이 완전히 명확하게 나타났다.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이 파묻어 버린 맑스와 의 전술과 전략에 관한 영명(英明)한 사상을 레닌이 밝혀낸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그러나 레닌은 맑스와 의 개별적인 전술적 명제를 복구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레닌은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고 새로운 사상과 명제들을 보충하여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투쟁을 지도하는 규칙과 지도원칙의 체계로 결합하였다. ≪무엇을 할 것인가?≫, ≪두 가지 전술≫, ≪제국주의론≫, ≪국가와 혁명≫,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변절자 카우츠키≫, ≪좌익 소아병≫과 같은 소책자는 의심할 바 없이 맑스주의의 총 보물고와 맑스주의의 혁명적 병기고를 풍부히 하는 가장 귀중한 기여이다. 레닌주의의 전략전술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투쟁을 지도하는 과학이다.

2) 혁명의 단계와 전략

전략이란 혁명의 주어진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요 타격 방향을 규정하는 것이며, 혁명 역량(주된 예비군과 부차적 예비군)을 배치하기 위한 적절한 계획을 작성하는 것이며, 혁명의 주어진 단계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우리 혁명은 이미 두 단계를 거쳐 왔고 10월 혁명 이후에 셋째 단계에 들어섰다. 이에 따라서 전략도 변했다.

첫째 단계. 1903년에서 1917년 2월까지.

 목표: 짜리즘 타도와 중세기 잔재의 완전한 일소.

 혁명의 주력: 프롤레타리아트.

 가장 긴밀한 예비군: 농민.

 주요 타격방향: 군주주의적 자유주의 부르주아지. 이들을 고립시키는 것. 이들은 농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하면서 짜리즘과 타협하여 혁명을 소멸시키려 한다.

 역량배치 계획: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동맹.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농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전제정부의 반항을 폭력으로 분쇄하고 부르주아지의 동요를 무력화시켜야 한다.”(레닌, 제8권, p. 96을 보라)1)

둘째 단계. 1917년 3월에서 1917년 10월까지.

 목표: 러시아에서 제국주의 타도와 제국주의전쟁에서의 철수.

 혁명의 주력: 프롤레타리아트.

 가장 긴밀한 예비군: 빈농, 가능한 예비군으로 인접군의 프롤레타리아트.

 유리한 요인: 오래 지속된 전쟁과 제국주의 위기.

 주요 타격방향: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멘쉐비끼, 사회혁명당). 이들을 고립시키는 것. 이들은 농민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하면서 제국주의와 타협하여 혁명을 소멸시키려 한다.

 역량배치 계획: 노동자계급과 빈농의 동맹.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주민중 반(半)프롤레타리아트분자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부르주아지의 반항을 폭력으로 분쇄하고 농민과 소부르주아지의 동요를 무력화시켜야 한다.”(같은 곳을 보라)

 셋째 단계. 1917년 이후.

 목표: 일국에서 프롤레타리아독재의 강화와 모든 나라에서 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거점으로 이용하는 것. 혁명은 일국의 범위를 벗어나 세계혁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혁명의 주력: 일국의 프롤레타리아독재와 모든 나라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운동.

 주요 예비군: 발전된 국가의 반프롤레타리아트와 소농대중, 식민지 및 종속국의 해방운동.

 주요 타격방향: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의 고립화, 제2 인터내셔널 정당들의 고립화. 제2 인터내셔널은 제국주의와 타협하는 정책의 주요 거점이다.

 역량배치 계획: 프롤레타리아혁명과 식민지 및 종속국 해방운동과의 동맹.

 전략은 혁명의 주력과 예비군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전략은 혁명이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 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주어진 단계 동안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3)운동의 고조 및 퇴조와 전술

전술은 운동의 고조나 퇴조, 혁명의 고양이나 쇠퇴의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프롤레타리아트 행동을 규정하는 방침이며, 이 방침을 수행하기 위해 투쟁과 조직의 낡은 형태를 새로운 형태로 바꾸고 낡은 구호를 새로운 구호로 바꾸며 또 그 형태들을 결합하는 투쟁이다. 전략의 목적은 이를테면 짜리즘이나 부르주아지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며 이 목적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는 것이다. 반면에 전술은 이보다 덜 중요한 목적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전술의 목적은 전쟁 전체의 승리가 아니라 특정 교전이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며 혁명의 고양기 또는 쇠퇴기의 구체적 정세에 맞는 운동과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술은 전략의 일부분이며 전략에 종속되며 전략에 복무한다.

 전술은 고조와 퇴조에 따라 달라진다. 전략적 계획은 혁명의 첫 단계(1903년-1917년 2월)동안 변하지 않았으나 전술은 여러 번 달라졌다. 1903년-1905년 시기에 당은 공격전술을 구사했다. 왜냐하면 그 시기는 혁명의 물결이 차오르고 있었고 운동은 고양되었기에 전술은 이러한 사실에서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쟁형태도 고조된 혁명의 요구에 맞는 혁명적 형태였다. 지역 정치 파업, 정치 시위, 정치 총파업, 두마 보이콧, 봉기, 혁명적 전투구호 一 이러한 것이 이 시기 연속된 투쟁형태였다. 당시 조직형태도 투쟁형태에 따라 달라졌다. 공장위원회, 농민 혁명위원회, 파업위원회, 노동자대표 쏘비에뜨, 어느 정도 공개적인 노동자 당 一 이러한 것이 이 시기 조직형태였다.

 1907년부터 1913년 시기에 당은 부득이 퇴각전술로 넘어갔다. 왜냐하면 혁명운동은 쇠퇴하고 혁명은 퇴조기를 맞이하여 전술은 이 사실을 고려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맞게 투쟁형태도 조직형태도 달라졌다. 두마 보이콧은 두마 참여로, 두마 밖에서의 공개적 혁명 활동은 두마내의 활동과 사업으로, 정치적 총파업은 부분적 경제적 파업이나 활동의 일시적 중지로 대체되었다. 이 시기에 당은 당연히 지하로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혁명적 대중조직은 문화조직, 교육조직, 협동조합, 보험조직 기타 합법적인 조직으로 바뀌었다.

 혁명의 둘째 단계와 셋째 단계도 같다. 전략은 변하지 않은 채 전술은 여러 번 달라졌다.

 전술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형태와 조직형태 그리고 그 형태들의 교체와 결합을 다룬다. 전술은 혁명의 특정한 단계동안 혁명의 고조와 퇴조, 상승과 하락에 따라 여러 번 달라진다.

4)전략적 지도

혁명의 예비군은 다음과 같다.

직접 예비군. 1) 국내의 농민과 다양한 중간층, 2) 인접국의 프롤레타리아트, 3) 식민지 종속국의 혁명운동, 4)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전리품과 성과 一 프롤레타리아트는 강력한 적을 회유하여 숨 돌릴 시간을 얻기 위해 힘의 우위를 유지하면서 전리품과 성과의 일부를 양보할 수 있다.

간접 예비군. 1) 국내의 대립하고 충돌하는 비프롤레타리아트 계급들, 프롤레타리아트는  적을 약화시키며 예비군을 강화하기 위해 이런 대립과 충돌을 이용할 수 있다. 2) 서로 간에 대립, 충돌, 전쟁(예컨대, 제국주의 전쟁)하는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적대적인 부르주아 국가들,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들 국가를 공격하는 경우나 부득이 퇴각하는 경우 기동작전에 이들의 충돌 및 전쟁을 이용할 수 있다.

 첫째 범주의 예비군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나 그 의미가 명백하므로 장황하게 말할 필요가 없겠다. 그 의미가 항상 애매한 둘째 범주의 예비군에 대해 말한다면, 그들은 간혹 혁명의 전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1차 혁명 동안과 그 후에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사회혁명당)와 자유주의적 군주주의 부르주아(까데츠)간에 있었던 충돌의 엄청난 중요성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이 충돌은 농민이 부르주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는데 역할을 하였다. 10월 혁명시기에 제국주의의 주요한 그룹들이 격렬한 전쟁에 몰두해 있었다는 사실의 거대한 중요성을 부인할 근거는 더욱 없다. 이 때 제국주의자들은 자기들 끼리 전쟁에 몰두하여 신흥 쏘비에뜨 권력에 반대하는데 전력을 기울일 수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프롤레타리아트는 역량을 조직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전력을 다하여 꼴챠끄와 제니낀에 승리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제국주의 그룹 간의 모순이 점점 더 심해지고 새로운 전쟁이 불가피한 지금에 와서는 이러한 종류의 예비군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더욱 커다란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전략적 지도의 임무는 혁명발전의 매 단계에서 혁명의 기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모든 예비군을 적절하게 운용하는 것이다.

 예비군의 적절한 운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몇 가지 필수적 조건의 실행인데 그 주요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결정적 시기에 혁명의 주력을 적의 가장 약한 지점에 집중하는 것이다. 결정적 시기란 혁명이 이미 성숙되고 공세가 최고조에 달하고 봉기가 임박하여 예비군을 전위대에 집결시키는 것이 성공의 결정적 조건으로 된 그런 순간이다. 예비군을 운용한 이러한 실례는 1917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당의 전략이 보여준다. 의심할 바 없이 이 시기 적의 가장 약한 지점은 전쟁이었다. 예비군 운용에 있어 기본문제는 프롤레타리아 전위대를 중심으로 광범한 대중이 단결하는 것이다. 이 시기 당의 전략은 성명과 시위를 통한 가두진출로 전위를 훈련시키는 한편 후방에서는 쏘비에뜨를 통해, 전방에서는 병사위원회를 통해 예비군이 전위대를 뒤따르게 하는 것이었다. 혁명의 결과는 예비군이 적절히 운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레닌은 봉기에 관한 맑스와 의 유명한 명제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혁명역량을 전략적으로 운용하는 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결코 봉기는 경솔하게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일단 봉기를 시작했다면 끝까지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2) 결정적 순간에 결정적 지점으로 훨씬 더 우세한 역량을 집중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준비와 조직에서 보다 유리한 적이 봉기한 세력을 절멸시킬 것이다.

 3) 일단 봉기를 시작했다면 최대의 결단성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모든 수단을 다하여 무조건 공격해야 한다. ‘방어는 무장봉기의 죽음이다.’

 4) 적을 불의에 기습해야 하며, 적이 흩어진 틈을 포착해야 한다.

 5) 아무리 작은 승리일지라도 매일 매일(한 도시의 경우 매 시간마다) 거두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사기의 우세’를 유지하라.(레닌전집, 제21권, P. 319-320을 보라)2)

둘째. 결정적 타격의 순간, 봉기를 개시할 순간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선택의 순간은 위기가 극도에 달하고, 전위대가 끝까지 싸우려는 각오가 되어 있으며, 예비군이 전위대를 지지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고, 적 대렬 내에 극도로 혼란된 상황이 널리 퍼져있는 시기이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약 “(1)우리에게 적대적인 모든 계급세력이 과도한 힘을 사용하는 자기들끼리의 싸움에 완전히 말려들어 내분이 일어나고 충분히 약화되었다”, “(2) 머뭇거리며 동요하고 침착하지 못한 모든 중간분자들, 즉 부르주아지와는 구별되는 소부르주아와 소부르주아적 민주주의자가 인민 앞에 완전히 폭로되고 실천에서도 완전히 파탄나 망신당했다” “(3)프롤레타리아트 내부에 부르주아지를 반대하는 매우 결정적이며 최고로 과감하게 혁명적 행동을 지지할 만큼 대중적 분위기가 일어나고 더욱 왕성하게 고조되기 시작했다” 결전의 시기가 완전히 성숙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때야말로 혁명이 성숙되었고, 우리가 위에서 지적한 모든 조건을 정확히 판단하여 … 시기를 정확히 선택한다면 우리의 승리는 보장된다.”(제25권, p.229을 보라)3)

 

10월 봉기의 거행은 이러한 전략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조건에 어긋나면 “속도 상실”이라는 위험한 오류에 빠진다. 그러면 당은 운동에 뒤처지거나 지나치게 앞서가게 되어 실패의 위험을 자초하게 된다. 봉기시기를 잘못 선택한 “속도 상실”의 실례는 1917년 9월 민주주의 협의회 성원들의 체포를 계기로 봉기를 개시하려한 일부 동지들의 시도를 들 수 있다. 이 때 쏘비에뜨는 내부적으로 동요하고 있었고 전선에서 군대는 여전히 결단하지 못하고 머뭇거렸으며 예비군은 아직 전위대를 뒤따르지 않고 있었다.

셋째.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난관과 장애를 꺼리지 않고 이미 정한 방침을 꾸준히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위가 투쟁의 주된 목적을 놓치지 않고 대중이 전위 주위에 결집하여 투쟁하며 길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 조건을 준수하지 않으면 어부들에게 잘 알려진 “방향 상실”이라는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된다. “방향 상실”의 실례로 민주주의 협의회 직후 예비의회에 참가한다는 결정을 채택한 우리 당의 잘못된 행동을 들 수 있다. 예비의회는 나라를 쏘비에뜨의 길에서 부르주아 의회제도의 길로 변경시키려는 부르주아의 기도이며, 당이 이런 기관에 참여하는 것은 모든 계획을 혼란시키고 “모든 권력을 쏘비에뜨로”라는 구호 하에 혁명적으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와 농민을 어리둥절하게 한다는 점을 당은 말하자면 잠시 망각했다. 이 오류는 예비의회에서 볼쉐비끼가 탈퇴하여 바로잡았다.

넷째. 적절한 퇴각을 고려하여 예비군이 기동작전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 적이 강할 때, 퇴각이 불가피할 때, 적이 유인한 전투에 응하는 것이 명백히 불리할 때, 주어진 세력관계로 보아 전위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예비군을 보전하기 위해 퇴각이 유일한 길일 때, 이 때가  퇴각할 시기이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혁명적 정당은 완벽하게 배워야 한다. 지금까지 공격하는 것을 배웠다. 이제 적절하게 퇴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공격하는 방법과 더불어 적절하게 후퇴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승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혁명적 계급은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이것을 깨닫게 된다.”(제25권, p. 177을 보라)4)

 

 이러한 전략의 목적은 시간을 벌고 적을 분열시킨 다음 공격하기 위해 힘을 축적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의 모범은 브레스뜨 강화조약의 체결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조약으로 당은 시간을 벌수 있었으며, 제국주의 진영 내의 충돌을 이용하여 적의 힘을 와해시켰으며, 농민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또한 꼴챠끄와 제니낀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기 위한 힘을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닌은 당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단독강화를 체결함으로써 우리는 적대적 두 제국주의그룹으로부터 현재 가능한 최대한도로 자유롭게 되었다. 그들의 반목과 전쟁을 이용하여 그들로 하여금 우리를 반대하는 협정체결을 어렵게 하였다. 그래서 일정 기간 사회주의 혁명을 전진시키고 공고히 하기 위한 자유를 얻었다.”(제22권, p. 198을 보라)5)

 

 레닌은 브레스뜨 강화 조약을 체결한 후 3년이 지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아무리 멍청한 바보라도 ‘브레스뜨 강화’가 우리의 힘을 강화하였으며 국제 제국주의 세력을 분산시킨 양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제27권, p. 7을 보라)6)

 

 이상이 올바른 전략적 지도를 보장하는 주요 조건들이다.

 

5) 전술적 지도

 전술적 지도는 전략적 지도의 일부분으로 전략적 지도의 임무와 요구에 종속된다. 전술적 지도의 임무는 프롤레타리아 투쟁과 조직의 모든 형태를 파악하여 그 투쟁과 조직의 모든 형태의 올바른 이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해당 세력관계에서 전략적 성공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결과들을 최대한 얻기 위함이다.

 프롤레타리아 투쟁과 조직의 형태의 올바른 이용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것은 몇 가지 필수적 조건의 실행인데 그 주요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당면 전선에 정확한 투쟁형태와 조직형태를 제출하는 것이다. 이것은 운동의 주어진 고조 또는 퇴조의 조건에 가장 알맞아야 한다. 그래야 대중을 혁명적 진지로 이끌고 수백만 대중을 혁명전선으로 이끌며, 그들이 혁명대열에 서는 것을 촉진하고 보장한다.

 문제는 전위가 낡은 질서는 유지될 수 없으며 불가피하게 전복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대중이, 수백만 대중이 이 불가피성을 이해해야하고 전위를 지지할 각오를 드러내야하는데 있다. 그런데 대중은 다만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광범위한 대중이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구체제 전복의 불가피성을 깨닫게 하며, 대중이 경험으로부터 혁명적 구호의 정당성을 쉽게 이해하게 해줄 투쟁의 방법과 조직의 형태를 제출하는 것, 이것이 전술지도의 임무이다.

 만일 당이 제때에 두마에 참가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만일 당이 두마 내 활동에 역량을 집중하고 그 활동의 기반위에서 대중 자신이 두마가 쓸모없다는 것, 까데츠의 약속이 거짓이라는 것, 짜리즘과의 타협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 농민과 노동계급간의 동맹이 불가피하다는 것 등을 경험을 통하여 쉽게 깨닫도록 하는 투쟁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전위는 노동계급과 분리되었을 것이며 노동계급은 대중과의 연계를 상실했을 것이다.

 “소환주의자” 전술의 위험성은 전위를 수백만 예비군과 분리시키는 데 있다.

 만일 프롤레타리아트가 1917년 4월에 봉기하라고 호소한 “좌익”공산주의자들을 따라갔다면 당은 노동계급과 분리되고 노동계급은 농민과 병사의 광범위한 대중 속에서 가지고 있던 영향력을 상실했을 것이다. 이때는 아직 멘쉐비끼와 사회혁명당이 전쟁과 제국주의의 옹호자라는 정체가 완전히 폭로되지 않았고, 대중이 멘쉐비끼와 사회혁명당이 떠드는 평화와 토지, 자유가 거짓임을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아직 깨닫지 못했었다. 대중이 께렌스끼 집권시기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멘쉐비끼와 사회혁명당은 고립되지 않았을 것이며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소부르주아당의 오류를 “끈기 있게 설명하며” 쏘비에뜨 내에서 공개적으로 투쟁하는 전술이 유일하게 올바른 전술이었다.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전술은 당을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지도자에서 기반을 상실한 보잘 것 없는 소수 음모가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있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전위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아직 전 계급이, 그리고 광범위한 대중이 전위를 직접 지지하거나 적어도 전위에 대해 우호적 중립을 취하기 전에 전위만을 결정적 전투에 내모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뿐 아니라 범죄 행위이다. 그런데 광범위한 근로인민대중과 자본에 의해 억압받는 모든 계급이 이러한 태도를 실제적으로 갖기 위해서는 선전 선동만으로는 부족하다. 대중 자신의 정치적 경험이 필요하다. 이것은 모든 위대한 혁명의 기본 법칙으로 이제 러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놀라운 힘으로 생생하게 확인되었다. 러시아의 교양 없고 대개가 무식한 대중뿐만 아니라 교양 있고 잘 교육받은 독일 대중들도 스스로의 정치적 경험이 필요하다. 결정적으로 공산주의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제2 인터내셔널의 기사(騎士)들이 지배하는 정부의 극도의 무기력, 무정견, 무능력, 부르주아지에 대한 굴종과 비열성을 스스로 경험하는 것이 필요했다. 또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면 극단적 반동적 부르주아독재(러시아에서 꼬르닐로프, 독일에서 카프일파)뿐임을 스스로의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깨달아야만 했다.”(제22권, p. 228을 보라)7)

 

 둘째. 일정한 매 시기에 여러 과정의 사슬 중에서 어느 한 고리를 움켜쥠으로써 사슬 전체를 지배할 수 있고 전략 달성으로 가기 위한 조건이 되는 특정 고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문제는 당이 당면한 여러 임무 중에서 특정 임무 하나를 골라내는 것이다. 이 임무가 해결의 중심이 된다. 이 임무를 성취하면 다른 임무들을 성과적으로 해결하게 되는 그런 임무이다.

 이 명제의 의의는 두 가지 실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오랜 과거(당 창건 시기)이며 다른 하나는 당면한 현재(네쁘시기)이다.

 당 창건기는 무수한 써클과 조직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수공업적 방식과 써클주의가 당을 위에서 아래까지 좀먹고 있었다. 사상적 혼란이 당 내부 활동의 특징이었던 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전 러시아적 비합법 신문(이스끄라)을 창간하는 것이 당 앞에 나선 여러 임무 중에서 중심 임무이며 일연의 사슬 중에서 중심 고리였다. 왜 그런가? 그것은 당시 조건에서는 전러시아 비합법 신문이라는 방법으로만 무수한 써클과 조직을 하나로 통일시켜 당의 핵심을 육성할 수 있고, 사상적 전술적 통일의 조건을 준비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하여 진정한 당건설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경제건설로 이행하는 시기는 공업은 붕괴상태에 있었고 농업은 도시의 공업제품의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사회주의 건설의 성공을 위한 기본조건으로 국영공업과 농업경제를 연결시켜야 할 시기였다. 이 시기의 여러 임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고리는 상업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신 경제정책의 조건 하에서는 상업을 통하지 않고서는 공업을 농업경제와 연결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판로가 없는 생산은 공업을 파멸시키기 때문에 상업을 발전시켜 판로를 확장함으로서만 공업은 발전할 수 있다. 오직 상업부문이 공고하게 된 후에만, 오직 상업에 대한 관리를 튼튼히 한 후에만, 즉 이 고리를 틀어쥐어야만 비로소 공업을 농업시장에 결합시켜 사회주의 경제 토대 건설의 조건을 조성하기 위한 여러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혁명가나 사회주의 지지자 또는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슬 전체를 틀어잡고 다음 고리로의 이행을 확고하게 준비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해 움켜잡아야 할 특정 고리를 매 순간마다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 …

 “현재 … 이 고리는 적절한 국가 통제(지도)하에서 국내 상업을 활발하게 하는 것이다. 상업 一 이것은 역사적 사건의 연결사슬 중에서, 즉 1921-1922년의 사회주의건설의 과도기적 형태에서 ‘전력을 다해 움켜잡아야 할 고리’이다.”(제27권, p. 82을 보라)8)

 

 이상이 정확한 전술 지도를 확실히 하는 조건들이다.

 

6) 개량주의와 혁명주의

 혁명적 전술은 개량주의적 전술과 어떻게 다른가?

 어떤 사람들은 레닌주의는 개량을 반대하고 협조와 타협을 반대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전혀 옳지 않다. 볼쉐비끼는 어떤 의미에서 ‘모든 사소한 것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어떤 조건 하에서는 부분적으로 협조와 타협을 포함하는 개량이 필요하며 유용하다는 것을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잘 알고 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제 부르주아지를 타도하는 전쟁은 국가 간에 보통 일어나는 전쟁 중 가장 격렬한 전쟁보다도 백배나 더 어렵고 장구하고 복잡하다. 이런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 책략쓰기를 거부하거나, 적들 내부의 모순(비록 일시적이라도)을 이용하지 않거나, 가능한 동맹자(비록 일시적이고 불안정하고 동요하며 조건적이라도)와 협조와 타협을 거부하는 것 一 이것이야 말로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 아닌가? 이것은 아직 탐험되지 않고 지금까지 누구도 접근하지 못한 산을 오르면서 어떤 때는 우회도 하고 어떤 때는 되돌아가며 일단 선택한 코스를 버리고 다른 코스를 잡아보는 것을 미리부터 거부하는 것과 같지 않는가?”(제25권, p. 210을 보라)9)

 

 문제는 분명히 개량이나 협조와 타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량과 타협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있다.

 개량주의자에게는 개량이 전부이다. 혁명사업은 부차적이고 이야기 거리에 지나지 않으며 눈속임을 위한 것이다. 부르주아 지배 하에서 개량주의적 전술의 개량은 필연적으로 부르주아 지배를 강화시키는 도구, 혁명을 와해시키는 도구로 되고 만다.

 반대로 혁명가에게 주요한 것은 혁명사업이지 개량이 아니다. 개량이란 혁명의 부산물이다. 부르주아 지배 하에서 혁명적 전술의 개량은 자연히 부르주아 지배를 와해시키는 도구, 혁명을 강화시키는 도구, 혁명운동을 더 한층 발전시키는 거점이 된다.

 혁명가는 개량을 받아들인다. 합법적 사업과 비합법적 사업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이용하기 위해,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게끔 대중을 혁명적으로 훈련시키는 비합법활동의 엄폐물로 활용하기 위해 받아들인다.

여기에 제국주의 조건하에서 개량과 타협을 혁명적으로 활용하는 전술의 본질이 있다.

 개량주의자들은 개량을 받아들인다. 혁명가와 반대로 모든 비합법활동을 포기하기 위해, 대중이 혁명적으로 훈련되는 것을 좌절시키기 위해 그리고 “하사(下賜)된” 개량의 그늘 아래서 안식하기 위해 받아들인다.

여기에 개량주의적 전술의 본질이 있다.

 이상이 제국주의 조건 하에서 개량과 타협에 대한 문제이다.

 그러나 제국주의를 타도한 이후, 프롤레타리아독재 하에서는 상황이 약간 달라진다. 어떤 조건과 정세 하에서는 프롤레타리아 권력은 현존 제도를 혁명적으로 개조하는 길로부터 점차적으로 개조하는 길로 일시적으로 부득이 넘어 가게 될 수도 있다. 레닌의 유명한 논문 “황금의 중요성”10)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개량주의자의 길”, 즉 우회 운동의 길, 개량의 길, 비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양보하는 길을 갈 수 있다. 이것은 비프롤레타리아계급을 와해시키기 위해, 혁명에 숨 돌릴 시간을 주기 위해, 새로운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가는 길이다. 이 길이 어떤 의미에서 “개량주의적” 길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권력이 수행하는 개량은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강화시키며, 프롤레타리아 권력에 필요한 숨 돌릴 시간을 주는 것이며, 혁명을 와해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비프롤레타리아 계급들을 와해시키려는 사명을 띤 것이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개량은 그 대립물로 전화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권력이 이와 같은 정책을 채택할 수 있는 것은 지난 시기 혁명의 진전이 충분했고, 이리 하여 공격전술을 일시적 퇴각전술, 우회전술로 바꿀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르주아지가 지배하던 이전 시기에는 개량이 혁명의 부산물이었지만, 오늘날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는 개량의 원천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전취물이며, 이 전취물로 이루어진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수중에 축적된 비축물이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직 맑스주의만이 개량과 혁명의 관계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규정하였다. 그러나 맑스는 이 관계를 단지 한 측면에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즉 비록 한 나라일지라도 어느 정도 견고하고 지속적인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승리라는 조건을 볼 수는 없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올바른 관계는 다음과 같다. 즉 개량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계급투쟁의 부산물이다. … 한 나라일지라도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한 후에는 개량과 혁명의 관계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원칙은 그대로지만 형식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 변화는 맑스가 직접 예견할 수는 없었지만 오직 맑스주의의 철학과 정치학의 기반위에서만 인식할 수 있다. … 승리 직후에 그것은(즉 개량 – 쓰딸린)(국제적 규모에서는 여전히 ‘부산물’이지만) 승리한 나라를 위한 필요하고 알맞은 휴식이다. 극도로 긴장된 투쟁 후에는 이런저런 이행을 혁명적으로 수행하기에 확실히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리는 비록 부득이하게 후퇴하는 경우라도 물질적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의 여유”를 준다.”(제27권, p. 84-85을 보라)11)

8. 당

 혁명 이전 시기, 다소간 평화로운 발전의 시기에는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들이 노동운동에서 지배적 세력이었고, 의회투쟁 형태가 투쟁의 기본형태로 인정되고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당이 이후에 공공연한 혁명투쟁이라는 조건하에서 가지게 되는 중대하고 결정적인 의의를 갖지 못하고 가질 수도 없었다. 제2 인터내셔널에 대한 비난을 반박하면서 카우츠키는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들은 평화의 도구이지 전쟁의 도구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전쟁 시기, 프롤레타리아계급이 혁명적으로 행동한 시기에 아무런 중대한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무기력했다고 한다. 이것은 매우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투쟁에 맞지 않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적 정당이 아니며, 노동자가 권력을 장악하도록 이끌지도 못하며, 단지 의회선거와 의회투쟁에 적합한 선거조직일 뿐임을 뜻한다.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요한 정치조직이 당이 아니라 의회 의원단이었다는 사실도 바로 이것에 기인한다. 알다시피 이 시기에 당은 사실상 의회 의원단의 부속물이었고 심부름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당의 지도하에서는 혁명을 위해 프롤레타리아트를 준비시키는 문제는 제기될 수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기가 닥쳐오면서 문제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새로운 시기는 계급 간에 공공연히 충돌하는 시기이며,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으로 행동하는 시기이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기이며,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기 위한 역량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 프롤레타리아트는 새로운 임무에 직면했다. 새로운 혁명적 노선에 입각하여 당의 모든 작업을 재조직하는 임무, 노동자들을 권력 장악을 위한 혁명적 투쟁의 정신으로 교육시키는 임무, 예비군을 준비하고 동원하는 임무, 이웃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동맹하는 임무, 식민지 및 종속국의 해방운동과 튼튼한 연계를 맺는 임무 등등이다. 이러한 새로운 임무들이 의회주의라는 평화스러운 조건하에서 성장한 낡은 사회민주당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절망적인 자포자기와 필연적인 패배에 내맡기는 것이다. 이러한 임무들을 짊어지고도 낡은 당의 지도하에 남아 있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완전히 무장해제 될 것이다. 증명할 필요도 없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러한 상태를 참고 견딜 수 없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당, 전투적인 당, 혁명적인 당이 필요하게 되었다.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선두에 설 만큼 용감하고, 혁명적 상황의 복잡한 조건 가운데서 진로를 찾아낼 만큼 충분히 숙련되어 있으며, 목적에 이르는 길에 놓인 모든 암초를 피해 갈만큼 유연한 당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당이 없다면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전취에 대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 새로운 당은 레닌주의 당이다.

 이 새로운 당의 구체적 특성은 무엇인가?

 

 1) 당은 노동계급의 선진부대이다.

 당은 무엇보다 먼저 노동계급의 선진부대여야 한다. 당은 노동계급의 우수한 분자들, 그들의 경험, 그들의 혁명성, 프롤레타리아트 대의에 대한 그들의 무한한 헌신성을 흡수해야 한다. 그러나 당이 진정으로 선진부대가 되기 위해서는 혁명이론과 혁명법칙 및 운동법칙에 관한 지식으로 무장해야만 한다. 이것이 없다면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지도하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끌고 갈 수 없다. 만약 당이 노동계급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기록하는 것에 그 자신을 제한한다면, 만약 자연발생적인 운동의 뒤꽁무니를 따라 간다면, 만약 자연발생적인 운동이 지니는 정치적 무관심과 타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만약 프롤레타리아트의 일시적인 이해를 초월할 수 없다면, 만약 대중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이해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당은 진정한 당이 아니다. 당은 노동계급의 선두에 서야 하며, 노동계급보다 더 멀리 내다보아야 하며, 자연발생성의 뒤꽁무니를 따를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끌고 가야 한다. “추수주의”를 설교하는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은 프롤레타리아트를 부르주아지 수중에 있는 도구라고 선언하는 부르주아 정책의 전달자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선진부대라는 관점을 취하며, 대중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이해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당만이, 오직 이러한 당만이 노동계급을 노동조합주의의 좁은 길에서 벗어나게 하여 독립적인 정치세력으로 만들 수 있다.

 당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지도자이다.

 앞에서 노동계급 투쟁의 어려움, 투쟁의 복잡한 조건들, 전략과 전술, 예비군과 기동작전 그리고 공격과 후퇴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이 조건들은 적어도 전쟁의 조건들 못지않게 복잡하다. 누가 이러한 조건들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으며, 누가 수백만 프롤레타리아트를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가? 어떠한 군대든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으려면 노련한 참모부가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불구대천의 적에게 유린되지 않으려면 그러한 참모부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는가? 그러나 어디에 이러한 참모부가 있는가? 그러한 참모부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당이다. 혁명적 당이 없는 노동계급은 참모부 없는 군대이다.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참모부다.

 그러나 당은 단지 선진부대일 수만은 없다. 동시에 계급부대, 계급의 한 부분이어야 한다. 자기 존재가 계급에 깊이 뿌리박혀 있어야 한다. 선진부대와 노동계급의 나머지 부분과의 차이, 당원과 비당원과의 차이는 계급이 소멸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차이는 프롤레타리아트 대열이 다른 계급으로 보충되는 한, 전체 노동계급이 선진부대의 수준이 되지 않는 한 존속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차이가 넓어지고, 비당원 대중들로부터 고립되어 분리된다면, 당은 하나의 당이기를 멈출 것이다. 만약 비당원 대중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만약 당과 비당원 대중들 간에 연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약 대중들이 당의 지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만약 대중들 사이에서 도덕적 정치적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당은 계급을 지도할 수 없다.

 최근에 당은 노동자중 20만 명을 새로운 당원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들이 단지 스스로 입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머지 모든 비당원 대중에 의해 당에 파견되었다는 점이다. 즉 비당원 대중이 신입당원 입당에 적극적 역할을 했으며, 이들의 동의 없이는 신입당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비당원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대중들이 우리 당을 자기 당, 자기에게 가깝고 친근한 당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당의 확대와 강화에 절실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자기의 운명을 당에 맡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증명할 필요도 없이 당을 비당원들과 연결하는 이러한 무형의 정신적 줄이 없다면 당은 그 계급의 결정적인 힘이 될 수 없다.

 당은 노동계급의 분리할 수 없는 한 부분이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계급의 당이다. 따라서 거의 전 계급(전쟁기나 내전기에는 완전히 전체계급)이 우리 당의 지도하에 행동해야 하며, 우리당에 가능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 한시라도 전체계급 대부분 혹은 계급 전체가 그 계급의 선진부대 즉 사회민주주의당의 의식성과 적극성의 수준으로 고양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닐로프주의12)이며 ‘추수주의’이다. 지각 있는 사회민주주의자라면 자본주의 하에서 심지어  (보다 초보적이며 의식수준이 낮은 계층에게 가장 알맞은)노동조합조직도 전체계급 대부분 혹은 계급 전체를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선진부대와 그들을 따라가는 전체 대중과의 차이를 망각하여 광범위한 계층을 이러한 선진적인 수준으로 고양시켜야 할 선진부대의 임무를 망각한다면 이것은 단지 자신을 기만하고, 우리 임무가 지니는 중대함에 눈을 감고, 이러한 임무를 협소화하는 것을 뜻한다.”(제6권, p. 205-206을 보라)13)

 

 2) 당은 노동계급의 조직된 부대이다

 당은 단지 노동계급의 선진부대만은 아니다. 당이 진정으로 계급투쟁을 지도하길 원한다면  동시에 그 계급의 조직된 부대이어야 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당의 임무는 방대하고 대단히 다양하다. 당은 국내외의 전진이 극히 어려운 조건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지도해야 한다. 정세가 공격을 요구할 때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공세로 이끌어야 한다. 정세가 퇴각을 요구할 때는 강력한 적의 타격으로부터 벗어나게 프롤레타리아트를 인솔해야 한다. 수백만의 조직되지 않은 비당원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규율성과 체계성, 조직성과 인내성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당 그 자체가 규율과 조직의 구현이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된 부대인 경우에만, 당은 이러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면 광범한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대한 당의 참된 지도를 말할 수 없다.

 당은 노동계급의 조직된 부대이다.

 조직된 전체로서의 당에 대한 사상은 우리 당의 규약 제 1 조에 있는 레닌의 유명한 정식화에서 구현되어 있다. 거기서는 당을 조직들의 총화로 보고 있고 당원은 당 조직들 중의 어느 하나에 속한 일원으로 보고 있다. 1903년에 일찍이 이 정식화에 반대했던 멘쉐비끼는 이 정식화를 자유입당 “제도”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자유입당 제도는 이래저래 당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당 조직 중의 어느 하나에 가입하지 않거나 가입하기를 원하지 않는 “교수”나 “학생” 및 모든 “지지자”나 “파업참가자”에게도 당원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이런 기묘한 “제도”가 우리 당내에 자리 잡게 되었더라면, 당은 필연적으로 교수들과 학생들로 넘쳐나고, 하나의 느슨하고 무정형의 혼란된 “형태”로 타락했을 것이다. “동조자들”의 바다에서 길을 잃었을 것이며, 당과 계급 사이의 경계선이 지워졌을 것이다. 미조직 대중들을 선진부대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당의 임무는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논증할 필요도 없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르또프 동지의 견해를 보면 당의 경계가 전혀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모든 파업 참가자’가 ‘스스로를 당원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느슨함으로부터  어떠한  이로움이 생기는가? ‘명칭’이 널리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 해악은 계급과 당을 혼동하는 조직 해체의 사상을 가져오는 것이다.” (제6권, p. 211을 보라)14)

 

 그러나 당은 단순히 당 조직들의 총합만은 아니다. 당은 동시에 조직들의 통일적 체계이다. 조직들이 정식(正式)으로 결합된 통일적 전체이다. 상하(上下)지도 기관을 가지고 있고, 소수가 다수에 복종하며, 모든 당원들에게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 실천적 결정을 하는 조직이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당은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통일적으로 조직된 전체일수 없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전에는 우리 당은 정식으로 조직된 전체가 아니라 고립된 써클들의 단순한 총합에 불과했으며 따라서 이들 써클 사이에 사상적 영향력 이외에는 어떤 관계도 있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망각해 버렸다. 지금 우리는 하나의 조직된 당이 되었고 이는 권력의 수립을  의미하며 사상적 힘의 권력적 권위로의 전환, 당의 상급 기관에 대한 하급 기관의 복종을 의미한다.”(제6권, p. 291을 보라)15)

 

  다수가 소수에 복종하고 중앙이 당 활동을 지도한다는 원칙은 동요분자들로부터의 공격, 즉 “관료주의”니 “형식주의”니 하는 등등의 비난을 종종 일으킨다. 그러나 증명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원칙들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전체로서의 당이 계획적인 사업을 할 수도 없으며, 노동계급투쟁을 지도할 수도 없다. 조직문제에 있어서 레닌주의는 이러한 원칙들을 확고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레닌은 이러한 원칙에 반대하는 것을 조롱거리로 일축하며 “러시아적 허무주의”, “귀족적 무정부주의”라고 하였다.

 레닌은 ≪일보전진 이보후퇴≫에서 이러한 동요분자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귀족적 무정부주의는 특히 러시아 허무주의자의 고유한 특성이다. 그들은 당 조직을 괴물 같은 ‘공장’으로 생각하고 전체에 대한 부분의 복종,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을 ‘농노제’로 생각하고 … 중앙기관 지도하의 분업은 사람을 ‘톱니바퀴와 나사’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반대하여 희비극적 절규를 일으키며 …  당의 조직 규약에 대해서 말하면서 경멸하듯 얼굴을  찡그리고 규약 따위는 전혀 없어도 괜찮다는 모멸적인 … 비평을 내뱉는다.”

 “관료주의에 대한 이 유명한 아우성은 중앙기관들의 인적 구성에 대한 불만을 가리는 휘장에 불과하며, … 무화과 나뭇잎에 불과하다. 너는 관료주의자이다. 왜냐하면 너는 대회에서 나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의 의지에 반하여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너는 형식주의자이다. 왜냐하면 너는 나의 동의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형식적인 결정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너는 대단히 기계적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왜냐하면 너는 당 대회에서 ‘기계적’ 다수파에 의거하고 있으며 보선에 의하여 충원되고자 하는 나의 희망을 완전히 무시하기 때문이다. 너는 전제군주이다. 왜냐하면 너는 오래 된 동료들16)에게 권력을 양도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제6권, p.310 및 p. 287을 보라)17)

 

 3) 당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조직의 최고 형태이다.

  당은 노동계급의 조직된 부대이다. 그러나 당이 노동계급의 유일한 조직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또한 많은 다른 조직들을 가지고 있다. 그 조직들이 없이는 자본에 반대하여 성과적인 투쟁을 할 수 없다. 노동조합, 협동조합, 공장조직, 의회 의원단, 비당원 여성협회, 출판 기관, 문화 교육 단체, 청년동맹, 혁명적 군사조직(공공연한 혁명적 활동시기의), 국가적 조직 형태로서 대표자 쏘비에뜨(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았을 경우) 등이다. 이러한 조직들 중의 대부분이 당 밖에 있는 조직이며, 그 중의 일부만이 당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거나 당의 파생조직을 구성한다. 이러한 모든 조직들은 일정한 조건하에서는 노동계급에게 절대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조직들이 없다면 당은 계급투쟁의 여러 영역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위를 강화할 수 없으며, 부르주아 제도를 사회주의 제도로 바꾸는 사명을 띤 역량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단련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조직들을 어떻게 통일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가? 이 많은 조직들을 지도하는데 있어 혼란을 낳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무엇인가? 이들 각각의 조직들이 각자의 고유한 특정분야에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서로 지장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조직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활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 조직은 하나의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계급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물어 보자. 이 모든 조직들의 행동 노선, 일반적 방침은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필요한 경험을 지니고 있기에 총 노선을 작성할 수 있으며, 충분한 권위를 가지고 있기에 조직들이 그 노선을 수행하게 하여 지도에서 통일성을 획득하고 혼란을 없앨 수 있는 중심조직이 있는가?

 그 조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이다.

 당은 이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왜냐하면 첫째로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당 밖에 있는 조직들과 직접 연결되어 있고 또 일상적으로 그 조직들을 지도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가장 우수한 분자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노동계급의 가장 우수한 분자들이 결집한 당은 계급내의 모든 형태의 조직을 지도할 줄 아는 노동계급의 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한 최고의 학교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노동계급의 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한 최고의 학교로서의 당은 그 경험과 권위로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 대한 지도를 집중하며, 노동계급의 모든 당 밖에 있는 조직을 당과 계급을 연결하는 보조기관이나 매개물로 전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당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조직의 최고 형태이다.

 물론 이 말은 노동조합, 협동조합 등의 당 밖의 조직들이 형식적으로 당의 지도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이러한 조직들에 소속되어 있으며 확실하게 그 조직들에 영향을 미치는 당원들이 당 밖의 조직을 설득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에 근접하고 자발적으로 당의 지도를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레닌이 당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단결의 최고형태”이며, 그 정치적 지도력을 다른 모든 형태의 프롤레타리아 조직에 확장시켜야만 한다고 말한 이유이다.(제25권, p. 194을 보라)18)

 당 밖에 있는 조직들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주장하는 기회주의 이론은 무소속 의회 의원이나 당을 떠난 출판계 활동가들, 식견이 협소한 노동조합 지도자나 속물이 되어버린 협동조합 간부를 양산하는 이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론은 레닌주의 이론 및 실천과 결코 양립할 수 없다.

 

 4) 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도구이다.

 당은 프롤레타리아 조직의 최고 형태이다. 당은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그 계급의 조직들 가운데 주요한 지도핵심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당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목표나 자족적인 세력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당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단결의 최고형태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직 달성되지 않았을 경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쟁취하기 위한 도구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이미 달성되었을 경우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하고 확대하기 위한 도구이다. 만약 제국주의의 제 조건, 전쟁의 불가피성, 공황의 실재가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쟁취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역량을 한 곳에 집중하며 혁명운동의 모든 실오라기를 한 곳에 모이게 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당은 그렇게 중요한 의미로 부상될 수 없었을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다른 모든 조직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확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성공적인 권력 장악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참모부로서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조직을 자신의 주위로 불러 모으고 투쟁이 전진하는 동안 전체 운동에 대한 지도를 집중할 수 있는 당이 없었다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혁명적 독재를 수립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증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쟁취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독재를 유지하고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 독재를 강화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은 누구나 확실히 알다시피 만일 우리 당에 가장 엄격하고 진정 강철 같은 규율이 없었더라면, 또 노동계급 전체 대중이, 즉 후진계층을 지도하거나 자신들과 나란히 가도록 할 수 있는 사려 깊고 정직하고 헌신적이며 유력한 모든 사람들이 전면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더라면, 볼쉐비끼가 2년 반은커녕 단 2개월 반도 권력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제25권, p. 173을 보라)19)

 

 그런데 독재를 “유지”하고 “확장”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수백만의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규율과 조직성을 불어넣는 것을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 대중들 사이에 소부르주아 분자들의 자생력과 소부르주아 습성의 좀먹는 영향을 막는 방패와 방파제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소부르주아 층을 재교육시키고 개조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적 활동을 늘리는 것을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 대중들이 계급을 폐지시키고 사회주의적 생산을 조직하는 조건을 준비할 수 있는 역량으로 스스로를 교육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단결되고 규율 있는 강력한 당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을 수행하기는 불가능하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낡은 사회의 힘과 전통에 맞선 집요한 투쟁으로서, 유혈 투쟁과 무혈 투쟁, 폭력 투쟁과 평화 투쟁, 군사 투쟁과 경제 투쟁, 교육 투쟁과 행정 투쟁이다. 수백, 수천 만 명이 갖고 있는 습성의 힘은 가장 무서운 힘이다. 투쟁 속에서 단련된 철의 당 없이, 일정 계급의 모든 정직한 사람들의 신뢰를 누리는 당 없이, 대중의 분위기를 지켜보고 그것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당 없이, 그와 같은 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는 없다.”(제25권, p. 190을 보라)20)

 

 프롤레타리아트는 독재를 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당이 필요하다. 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도구이다.

 그런데 여기서 계급이 사라지고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없어지면 당도 없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5) 당은 분파의 존재와 양립할 수 없는 의지의 통일체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쟁취와 유지는 단결되고 철의 규율을 지닌 강력한 당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당내에서 철의 규율은 의지의 통일이 없이는, 모든 당원들에 대한 완전하고 절대적인 행동의 통일이 없이는 상상할 수도 없다. 물론 이로 인해 당내 의견대립의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철의 규율은 비판주의와 당내 의견대립을 없애지 않고 전제로 한다. 규율이 “맹목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반대로 철의 규율에 대한 복종은 의식성과 자발성을 배제하지 않고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오직 자각적인 규율만이 철의 규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견대립이 좁혀지고 난 후에는, 비판이 남김없이 행해지고 하나의 결정이 내려지고 난 후에는 모든 당원들의 의지와 행동의 통일은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이것이 없이는 당의 통일이나 당내 철의 규율이란 상상할 수조차 없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첨예한 내전의 현 시기에 있어서 공산당은 가장 철저한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군사적 규율에 가까운 철의 규율이 당을 지배해야만, 당 중앙이 당원들의 전면적 신임을 받으며 광범위한 권한을 가진 엄격하고 권위 있는 기관이 되어야만 당의 임무를 수행 할 수 있다.”(제25권, p. 282-283을 보라)21)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쟁취하기 이전 투쟁시기 당내 규율에 대한 문제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쟁취한 후의 당내 규율도 역시 동일하지만 더욱 강조된다고 할 수 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누구든지 프롤레타리아트의 철의 규율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킨다면(특히 프롤레타리아독재기 동안) 사실상 프롤레타리아트에 반대하여 부르주아지를 돕는 자이다”(제25권, p. 190을 보라)22)

 

 그런데 여기서 분파의 존재는 당의 통일이나 당의 강철 같은 규율과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증명할 필요도 없이 분파가 존재하면 여러 개의 중앙이 있게 된다. 여러 개의 중앙이 존재한다는 것은 당내에 하나의 공통된 중앙이 없으며 의지의 통일이 깨어지고, 규율이 약화되어 해이해지고, 독재가 약화되어 붕괴되었음을 뜻한다. 물론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반대하여 투쟁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하도록 이끌려고 하지 않는 제2 인터내셔널의 당들은 분파의 자유라는 자유주의를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철의 규율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쟁취하며 공고히 하는 임무에 기초하여 활동하는 국제 공산당의 정당들은 “자유주의”나 분파의 자유를 허용할 수 없다.

 당은 의지의 통일체이다. 어떠한 파벌활동도 어떠한 당내 권력 분산도 배격한다.

 레닌은 “당내 통일과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의지의 통일이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승리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는 관점에서 분파적 활동의 …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이런 레닌의 경고는 우리 당 제10차 대회의 특별결의문 “당의 통일에 관하여”23)에 구체화되어 있다.

  그래서 레닌은 “모든 분파를 완전히 소멸시킬 것”, “이러저러한 강령에 기초하여 형성된 모든 그룹은 예외 없이 즉각 해산할 것”을 요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시 “당에서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으로 추방한다.”고 하였다.(결정서 “당의 통일에 관하여”를 보라)

 

6) 당은 기회주의적 분자들을 숙청함으로써 강력해진다

  당내 분파주의의 근원은 기회주의적 분자들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고립된 계급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프롤레타리아트화한 농민과 소부르주아지 및 지식인 출신들이 끊임없이 유입된다.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 상층, 주로 부르주아지가 식민지로부터 뽑아낸 초과이윤에 의해 사육되는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국회의원들은 타락한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노동자층 혹은 ‘노동귀족들’은 생활방식에서나, 수입의 규모에서나, 전체적 사고방식에서나, 완전히 속물적이고 부르주아화 되었다. 이들이 제2 인터내셔널의 주요 버팀목이며 오늘날 부르주아지의 사회적(군사적이 아닌) 버팀목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노동계급 운동에서 부르주아지의 진정한 앞잡이이며 자본가계급의 노동담당 보좌관이며 개량주의와 배외주의의 실질적인 전파자이기 때문이다.”(제19권, p. 77을 보라)24)

 이 모든 소부르주아그룹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당내에 기어들어와 동요하는 기회주의 풍조와 풍기문란하고 반신반의한 기질을 끌어 들인다. 이들이 바로 파벌활동과 분열의 주요 근원이며 조직을 파괴하며 내부로부터 당을 와해시키는 원천이다. 이러한 “동맹군”을 후방에 두고서 제국주의와 싸우는 것은 전후방으로부터 협공당하는 처지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자들과 무자비하게 투쟁하며 이들을 당에서 추방하는 것은 제국주의와 성과적으로 투쟁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당내 사상투쟁으로 기회주의적 분자들을 “쳐부순다”는 이론, 일개의 당 범위 안에서 이들을 “극복한다”는 이론은 근거가 불충분하고 위험하다. 이 이론은 당을 활동불능과 만성병에 빠지게 하며, 당을 기회주의의 먹이로 만들며,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적 당이 없이 남아 있게 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제국주의와 투쟁에서 자신의 주요한 무기를 잃게 할 위험이 있다. 만약 우리 당에 마르또프와 단, 뽀트레쏘프와 악쎌로드와 같은 이들이 남아있었다면, 정도(正道)를 가지도, 권력을 장악하고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조직하지도, 또 내전에서 승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 당은 내적 통일과 비할 데 없는 단결을 이루는데 성공하였다. 그것은 무엇보다 기회주의 쓰레기를 제때에 청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내의 청산주의자들과 멘쉐비끼를 제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 당은 기회주의자, 개량주의자, 사회 제국주의자, 사회 배외주의자, 사회 애국주의자, 사회 평화주의자를 일소함으로써 발전하고 강고하게 된다.

 당은 기회주의적 분자들을 당에서 추방함으로써 강고하게 된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대열 내부에 개량주의자들, 멘쉐비끼들이 있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 승리할 수 없으며 승리를 지킬 수 없다. 이는 원칙적으로 자명하며 러시아와 헝가리의 경험에 의해 확증되었다. … 러시아에서 만일 멘쉐비끼와 개량주의자들 그리고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 우리 당내에 남아 있었다면 소비에트권력은 거의 틀림없이 전복되었을 어려운 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다. …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바와 같이 이탈리아에서는 국가권력의 장악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결정적인 전투가 임박해 있다. 이러한 때에 당으로부터 멘쉐비끼들, 개량주의자들, 뚜라띠주의자들25)을 제거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비록 뛰어난 공산주의자라도 동요하기 쉽고 개량주의자들과의 ‘통합’에 대해 동요하는 경향이 보인다면 축출하거나 모든 책임적 지위로부터 물러나게 하는 것 이심지어 유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혁명전야에 그리고 혁명의 승리를 위한 가장 치열한 투쟁의 시기에는 당 내부의 극히 사소한 동요도 모든 것을 파멸시키며, 혁명을 사산시키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서 권력을 빼앗아 갈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권력은 아직 공고하지 못하며 그에 대한 공격은 여전히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때에 동요하는 지도자가 물러나는 것은 당과 노동계급운동 그리고 혁명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시키는 것이다.”(제25권, p. 462-464을 보라)26)

  9.사업 방식

여기서 말하는 것은 문학상의 방식이 아니다.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사업 방식, 즉 레닌주의적 활동가의 특수한 전형을 창출하는 레닌주의의 실천에 있어서의 특수성과 독자성이다. 레닌주의는 당과 국가의 활동가의 특수한 전형을 양성하고, 사업에 있어서 특수한 레닌주의적 방식을 창출하는 이론과 실천의 학교이다.

 이 방식의 독자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그 특성은 무엇인가?

 그 구체적 특성은 두 가지다.

 ㄱ) 러시아적인 혁명적 담략(膽略)과

 ㄴ) 아메리카적인 실무능력이다.

 레닌주의의 사업방식은 이 두 가지 구체적 특성을 당 및 국가사업을 하면서 결합하는 데 있다.

 러시아적인 혁명적 담략(膽略)은 타성, 판에 박힌 습관, 보수주의, 사상의 침체, 그리고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에 대한 노예적인 굴종을 없애는 해독제이다. 러시아적인 혁명적 담략(膽略)은 사상을 각성시키고, 사태를 전진시키며, 낡은 것을 파괴하고 전망을 열어주는 생명력이다. 이것이 없이는 어떠한 전진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러시아적인 혁명적 담략은 만약 그것이 활동에 있어서 아메리카적인 실무능력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실천에서 공허한 “혁명적” 마닐로프주의로 타락할 위험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러한 타락의 실례는 매우 많다. “혁명적” 허풍주의와 “혁명적” 설계주의의 병증을 누가 모르겠는가? 러시아 작가인 에렌부르끄는 그의 소설 ≪완전한 공산주의적 인간≫에서 이 병에 걸린 “볼쉐비끼”를 묘사한다. 소설에서 이 볼쉐비끼는 이상적으로 완전한 인간의 표준을 찾으려는 임무에 사로잡혀 … 그 “사업”에 “빠져 버렸다.” 소설은 상당한 과장이 있지만 그 질병의 정확한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이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레닌만큼 그렇게 무자비하고 신랄하게 비웃은 사람은 없다. 레닌은 계획을 꾸며내고 명령으로 일을 처리하는데 대한 병적 믿음을 ‘공산주의적 자만“이라고 멸시하였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산주의적 자만이란 공산당의 일원으로 아직 숙청되지 않은 사람이 공산주의적인 명령을 내리는 것에 의해 모든 귀찮은 일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제27권, p. 50~51을 보라)27)

 

 레닌은 항상 공허한 “혁명적” 호언장담을 소박한 일상적 활동에 대비 시키면서 “혁명적” 허풍은 진정한 레닌주의의 정신에도 말 자체에도 반대된다고 강조하였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허울 좋은 말은 삼가고, 소박하고 일상적인 일을 더 많이 하라.”

“정치적인 공담은 줄이고, 극히 평범하면서도 생생한 … 공산주의 건설이라는 실제적 일에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여라.”(제24권, p. 343, 335을 보라)28)

 

 한편 아메리카적인 실무능력은 “혁명적” 마닐로프주의와 공상적인 계획을 꾸며내는 것에 대한 해독제이다. 아메리카적인 실무능력은 장애물을 알지 못하며 인정하지도 않고, 모든 장애물을 실무적인 인내를 가지고 뚫고 나가며, 일단 시작된 일은 비록 사소한 일이라도 끝까지 해내는 꺾을 수 없는 힘이다. 이것이 없다면 중대한 건설사업은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아메리카적인 능률은 만약 그것이 러시아적인 혁명적 담략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편협하고 무원칙적인 실용주의로 타락할 온갖 위험을 가지고 있다. 종종 일부 “볼쉐비끼”을 변절하게 하고 혁명사업에서 물러서게 하는 편협한 실용주의 병과 무원칙한 실무주의 병을 누가 모르겠는가? 이 독특한 질병은 삘냐끄(B. Pilnyak)의 소설 ≪흉년≫에 반영되었다. 확고한 의지와 실천적 결단을 지니고서 정력적으로” “맡은 바 임무를 다하”지만 통찰력이 없고 “발생하는 모든 일이 무엇인지” 모르며 그로 인해 혁명적 활동의 경로로부터 이탈한 러시아 “볼쉐비끼”가 묘사되고 있다. 이 실무주의 병에 대해 레닌처럼 통렬하게 조소한 사람은 없다. 레닌은 이 병을 “편협한 경험주의”, “두뇌 없는 실무주의”라고 간주한다. 그는 항상 그것을 생생한 혁명적 활동 및 우리의 일상적 활동의 모든 문제에 대해 혁명적 전망을 가져야 할 필요성과 대비시키고, 이 무원칙한 실용주의는 “혁명적” 허풍주의만큼이나 진정한 레닌주의에 반대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러시아적인 혁명적 담략과 아메리카적인 실무능력의 결합은 당과 국가의 사업에 있어서 레닌주의의 본질이다.

 오직 이러한 결합만이 완성된 레닌적인 활동가와 레닌주의적 사업방식을 우리에게 준다.

 

 

1924년 4월 26일과 30일, 5월 9일, 11일, 14일, 15일과 18일자 ≪프라브다≫ 제96호, 제97호, 제103호, 제105호, 제107호, 제108호, 제111호


1)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9, p. 100. (레닌 ≪전집≫ 영문판은 다음의 웹싸이트에서 대조해보았다. (이하동일) http://www.marx2mao.com/ 一역자)

2)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26 , p. 180.

3)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김남섭 옮김, 돌베개, 1992, p. 105-106.

4) 같은 책, p. 22-23.

5) 레닌, “불행한 강화조약에 관한 문제의 역사에 대하여”, 임채희 번역, ≪노동자 정치 신문≫ 제 47호 (2008년 11월), 전국노동자정치협회.

6)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33, p. 24-25.

7)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p. 104.

8)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33, p. 113.

9)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김남섭 옮김, 돌베개, 1992, p. 75.

10) 레닌, “현 시기 황금의 중요성과 사회주의의 완전 승리 이후”,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33, p. 109.

11) 같은 책, p. 116.

12) 마닐로프주의 – 고골리의 ≪죽은 혼≫에 나오는 지주 마닐로프의 이틈에서 유래. 마닐로프는 속물적이고 달콤한 감사주의자의 전형이자 공허한 몽상가이다.

13) 레닌, ≪일보전진  이보후퇴≫, 홍수천 옮김, 풀무질, 1995, p. 62.

14) 같은 책, p. 67.

15) 같은 책, p. 160.

16) 제2차 당 대회의 결의에 복종하지 않고 레닌을 관료주의자라고 비난했던 악쎌로드, 마르또프, 뽀뜨레쏘프 등을 말한다一쓰딸린

17) 같은 책, p. 183 및 p. 156-157.

18)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p. 50.

19) 같은 책, p. 17.

20) 같은 책, p. 43.

21)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31, p. 210.

22)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p. 44.

23)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32, p. 257.

24) ≪제국주의론≫, 박세영 옮김, 과학과 사상, 1988, p. 22.

25) Filippo Turati(1857-1932). 이탈리아의 개량주의적 사회주의자로 이탈리아 사회당을 창당하여 최고지도자로 활동하였고 사회당이 좌경화 되자 탈당 후, 통일사회당을 결성하였다. 점진적 개량과 평화적 혁명을 주장하였다.

26)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31, p. 383-385.

27)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33, p. 77.

28)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29, p. 428,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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