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며

조선희 | 회원

 

 

 

건강미디어협동조합(번역; 신영전, 신나희, 이미라)에서 2017년 10월, 두 권의 책을 출판하였다.

  1. 붉은 의료(아서 뉴스홈, 존 아담스 킹스베리 지음)
  2. 소련의 건강보장(N. A. 세마쉬코 지음)

 

이 책들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 변화된 쏘련의 보건의료의 실제 모습을 확인할수 있는 고전들이다. 보건의료체계의 기원을 추적하다 만나게 된 이 두 권의 책은 1934년 영국에서 발간되었다.

≪붉은 의료≫는 20세기 초 영국의 보건학자인 아서 뉴스홈과 미국의 공중보건 활동가 존 아담스 킹스베리가 1932년 쏘련 방문 후 쏘련의 사회상과 보건의료 체계를 분석, 소개한 보고서이다. 이 책은 ≪소련의 건강보장≫의 저자 세마쉬코의 구상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쏘련 전역을 거쳐 여행하며 꼼꼼히 살핀 내용들이 기행문 형식으로 쓰여 졌다.

≪소련의 건강보장≫은 의사이자, 레닌과는 혁명동지였으며 10월 혁명 이후 쏘련의 보건의료 체계모형을 설계, 운영하였던 세마쉬코의 저서이다. 세마쉬코는 1918년부터 1930년까지 12년 동안 쏘련 보건위원회 초대위원장을 역임하였고, 세마쉬코의 활약과 정치적 위상으로 보았을 때 ‘쏘련식 보건의료체계’를 ‘세마쉬코 모델’이라 부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혁명직후 쏘련은 오랜 내전과 기근으로 인해 유럽 등 서방국가 못지않게 감염 병이 창궐하였고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인해 쏘련인구의 1/4가량이 감염 질환 등에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었다.

보건의료만큼 한 나라의 정치관계를 잘 보여주는 부문도 없다.

더욱이 쏘련의 보건의료체계는 단지 한 나라의 보건의료체계가 아니라 국가연합이며, 주변 중앙유럽국가들, 중국, 쿠바 등 한반도 역시 포함한 당시 세계인구의 20% 가까이에 해당되는 국가가 강력한 쏘련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 의의는 더욱 크다.

 

러시아 혁명 직후 볼쉐비끼는 국가 보건의료 체계구축의 6대 원칙을 천명한다.

 

1.양질의 의료 서비스

2.모든 인민이 이용 가능한 서비스

3.국가에 의해 제공되는 단일, 통합된 서비스

4.무상 의료 서비스

5.건강한 국민을 만들어내기 위한 예방의 집중

6.건강서비스에 있어서 전체 노동자의 참여

 

이러한 국가보건의료 구축원칙과 정책들은 양봉근 등 일제 강점기 기간 조선의 보건운동가등에 의해, 해방 직후, 한반도에 어떤 보건의료 체계를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과정에서 최응석 등에 의해 소개되고, 또한 추구되었다. 더욱이 해방직후 쏘군정하에 놓였던 북한의 보건의료체계 역시 쏘련식이 관철되었다. “쏘련식 보건의료”가 모델이 된 건 단지 사회주의권 국가들에서뿐만 아니라, 냉전시대 대립되었던 자본주의 진영에도 사회정책에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 현재 진행형으로 가진 자본에 비해 탁월한 효율을 보이는 쿠바의 의료제도 역시 쏘련을 모델로 적용하였다.

차르시대가 끝나고 새롭게 등장한 쏘비에뜨 권력은 심각한 위생문제를 유산으로 물려받는다. 당시 노동자들이 처했던 극단적으로 열악한 물질적 상황, 모든 대중 활동을 억눌렀던 경찰의 탄압, 노동자, 농민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 대중의 낮은 위생관념과 문화 수준 등은 인구집단 사이에 감염 병이 창궐하기 좋은 조건을 제공하고 있었다. 부실한 보건의료서비스를 넘겨받은 쏘비에뜨 정권은 급진적 혁명을 통해 혼란 속에 있는 보건의료 분야의 질서를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

 

쏘비에뜨 의료의 기본 원칙과 구조를 보면

 

  1. 조직의 단일성: 쏘련 인민을 대상으로 예방적, 의료적 지원을 수행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을 국가의 가장 기본적 의무로 여겼다. 무상의 접근성이 향상된 전문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제를 맡은 쏘비에뜨는 정부의 다른 인민위원회와 같은 지위와 권력을 가진 “보건인민위원회”(역사상, 최초의 독립적 보건의료부서)가 1918년 6월에 설립되었고, “지방보건부”가 각 지방 쏘비에뜨에 세워졌다. 이 기관들은 의료서비스 제공, 감염 병 퇴치, 식품, 주택, 상하수도 공공위생시설, 위생 감독, 노동자농민의 건강, 어린이, 청소년과 모자보건, 대중에 대한 위생교육, 의료 인력의 훈련까지 맡고 있어 사실상 쏘비에뜨 영토에서 보건의료 서비스는 완전하게 중앙집권화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일 수행조직으로 대체된 의료서비스는 사실상 쏘비에뜨 영토에서 쏘련 전역에 걸쳐 노동자들이 어디에 거주하느냐에 관계없이 예방과 치료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지방의 보건부는 지역, 도시, 구역의 쏘비에뜨에 속하는 한 부서였고 이들의 구조와 기능은 중앙의 인민위원회와 일치한다.

 

  1. 보건의료서비스에서 노동자농민의 활동: 쏘비에뜨 멤버들은 여러 영역에서 보건의료 서비스에 참여한다. 이것은 보건의료서비스를 구축하는데 가장 근본적인 대중적 힘이 된다. 처방과 같은 의학적인 일에는 관여하진 않지만, 예방과 적절한 서비스가 제공되는지 확인 감독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의료제도운영의 효율성을 담보한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기계 속 단순한 톱니바퀴가 아니라 큰 유기체를 구성하는 주체적인 의식을 가진 한 개체라고 인지했기 때문에 보건의료분야 구성원들 역시 쏘비에뜨 의료시스템 탄생과 함께했던 슬로건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는 것은 노동자 자신의 일이다’를 적극적으로 실행한다.

 

  1. 쏘비에뜨 의료 서비스의 예방적 경향: 법률에서 ‘쏘련 공산당은 인민보건 정책의 기본을 질병발생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종합적인 건강과 위생조치에 둔다’고 규정한다. 의학적 치료와 인민들의 건강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급진적 조치가 통합된 것에 기초를 두는 것이다. 당시 쏘련은 비위생적인 환경이 심각하여 감염성 질환(매독, 발진, 트라코마 등)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1. 결핵진료소: 결핵에 관한 모든 진료는 무상으로 진행되는 것은 기본이고 담당하는 의사인력 또한 확보된 상태에서 의사들은 작업장 등에 파견되어 결핵에 영향을 미치는 작업환경에 대해 분석하고 이에 기초하여 위생 감독 기관에 자문하고 노동 보호 부서에 연락하는 역할을 한다. 성병진료소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치료와 예방을 한다. 결핵 진료소의 구비시설이 민간의사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에 민간의사에게 치료받는 경우는 극소수였다. 혁명전후 성병 환자의 경우는 매우 심각하였다. 매독의 경우 말기 매독이 전체의 65%를 차지하여 들창코가 유행할 정도로 외모의 변형까지 초래하였고, 음식을 나눠먹거나 간단한 키스정도로도 감염되는 실정이어서, 성병의 치료와 예방을 위해 쏘련 정부는 총력을 기울였다. 성병 관련한 모든 치료는 지위와 관계없이 무상으로 제공되었고 매춘부를 위한 예방진료소 또한 설치되어 자발적으로 입소한 그들은 교화와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1. 단일 진료소: 이 기관은 점차 증가되는 추세인데 특정지역 위생조치들 체계 전체(예를 들어 결핵에 대한 투쟁, 모자보건, 어린이 건강의 보호, 산업 질병에 대한 투쟁, 감염 병에 대한 투쟁)에 집중하여 환자들을 분석하여 구역 내 의료적, 예방적 행위에 책임을 지며 위생 교육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러므로 “단일 진료소”는 치료와 예방을 통합한 것이다

 

6.공장의 의무실: 의무실은 모든 공장에 조직되어있다. 이들은 단지 응급조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한다.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보호위원회”가 구성되어 협력한다. 이들은 작업장마다 일어날 수 있는 질병들을 찾아내어 치료와 함께 적극적인 예방에 앞장서고 의사들은 노동보호위원회, 안전제일위원회와 소통하며 전문분야와 관련된 조치들에 대해 상담한다. 이런 노력은 작업장 안의 특별한 질환을 찾아 치료와 예방을 하는데 효율적이었다. 의무실의 의사들은 위생시설, 특히 식당 등의 위생 상태에 대한 검사, 관리하는 것도 임무이기도 했다.

 

  1. 야간 요양소: 가장 기초가 되는 단위의 공장, 사무실, 집단 농장의 의무실, 종합 진료소, 병원, 요양소, 휴양소, 모성과 어린이 자문부서로 정리되는 쏘련의 보건의료체계는 보조적 지원이 이루어지며 강화되는데, 특별해 보이는 것이 “야간 요양소”이다. 질병이 심하진 않지만 정상적으로 일하기 어려운 환자를 위한 시설이다. 결핵 등으로 충분한 요양이 필요하면 경치 좋고 공기 좋은 요양소로 전원되는데, 이러한 특수 질환이 아니더라도 병원진료까지 필요 없는 노동자가 아프거나 피로하면 퇴근 후 가정보다 안락한 야간 요양소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아프지 않더라도 노동자들은 일 년에 2주, 요양소에서 휴가를 지낼 기회를 누렸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황제나 귀족들이 별장으로 이용하던 크림반도의 화려한 공간들이 요양소로 운영되었다.(쏘련의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은 하루 7시간, 주 5일이었다)

 

  1. 숲 속 학교, 건강에 취약한 학생들: 정신 신경적 증상이 있거나 결핵 등에 걸린 어린이들을 위해 설립된 학교로 숲속이라는 개방된 공간에서 배우고 생활한다. 이러한 학교들은 취약하여 병에 걸리기 쉬운 학생들을 위한 것으로 정상적인 일반학교에 비교해 학습양이 적었다.

 

  1. 캠프: 어린이를 위한 캠프가 매우 왕성하게 유행한다. 캠프에서 어린이들은 보통 텐트에서 자게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연을 접하고, 도시를 벗어나 아주 소액으로 건강을 개선할 수 있었고 소액의 이용료조차 지불하기 어려운 가난한 어린이들은 저부나 공공조직의 보조를 받아 무료로 갈수 있다.

 

  1. 위생교육: 광범위하게 발달한 위생 교육이 쏘련의 질병 예방에 큰 역할을 한다. 쏘비에뜨 체계아래서 위생교육은 단지 양적으로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형태적으로도 다양해진다.

 

  1. 약국: 모든 약국은 국영화되었다. 약국은 모든 병원과 각 행정구역에 설치되는데, 수요가 많은 공장과 시골에 우선적으로 설치된다. 의약품의 생산과 분배 방법은 점차적으로 개선되는데, 의약품 생산의 질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관리가 이루어진다.

 

여성의 경우 혁명 이전보다 독립적인 개체로 사회에 참여하게 된다. 노동의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졌고, 불행한 결혼을 중단하는 과정도 전보다 쉬어졌다. 임신 기간 동안 지역의 일차기관 의사가 건강관리를 하고 분만은 종합병원으로 전원되며, 병원에서의 의료 기록은 분만 후 다시 일차기관 의사에게로 전달되었다. 산후 휴가뿐만 아니라 산전 휴가도 8주가 보장된다.

인간보다 자본이 앞선 사회에서 사는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잠시 나의 출산 전후 기억이 떠올랐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여의사들은 조산을 겪게 된다. 의료라는 업무는 산모가 감당하기에는 과중하였으나 오히려 더 열심히, 임신말기까지 뛰어다니며 일을 하였고 결과는 당연하였다. 우리의 아이들은 주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세상 밖에 나오게 되었고, 출산 후 역시 법적(?)으로 보장한 출산휴가를 채우지 못한 채 대부분 직장으로 불려나갔다.

쏘련의 여성노동자들은 남성과 견주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보장받으며 각계에서 차등 없이 일할 수 있음에도 모자보건에서 특별한 보호와 안전을 일반 노동법 외에 이를 보안하는 “특별법”에 의해 보장받았다. 낙태에 대한 법률만 보더라도 1920년 보건인민위원회는 쏘비에뜨 병원에서 모든 인공 중절술을 무료로 시행토록 하여 수술의 위험을 최소화하였고, 의사 이외의 사람이 인공 중절술을 집도하는 것을 철저히 금지했으며, 이를 위반한 간호사나 조산사는 면허를 박탈하였으며, 수입 창출의 목적으로 개인진료실에서 인공 중절술을 행한 의사는 인민 법원에 의해 책임 추궁을 받았다.

법원에서조차 사문화 되었다고 판단한 우리나라의 인공 중절술에 대한 법률은 이명박 정권 시절 방향도 길도 없이 조건 없는 강화로 일축했고, 현실은 우리의 예상대로 처참하게 흘러가고 있다. 중·고등 여학생들의 출산은 의료인들이라면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불법적인 중절술은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모자보건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보건정책은 85년 전 쏘련의 정책보다 더 후진적이다

 

붉은 의료의 저자 아서 뉴스홈과 킹스베리는 쏘련의 중앙정부가 정책을 입안하고, 지역 정부가 실행을 분담하는 중앙집권적 방식을 쏘련 의료 제도가 광대한 국토에도 불구하고 높은 효율과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동력으로 충분히 이해했다. 그들은 쏘련에서 돌아온 이후, 각자의 자료들과 기록을 취합해서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뉴스홈은 어느 정도 비판적인 의견을 표현했던 반면, 킹스베리는 매우 우호적이었다. 킹스베리는 쏘련식 의료체계를 미국에 도입해야한다는 신념이 강했고, 미국인들의 의식도 그만큼 여물었다고 생각하여 미국 전역을 거쳐 강연에 나섰다. 마침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회 전반에 적용될 사회보장제도를 구체화하고 있었고 공공 의료 보험 현실화 계획도 담당위원회에서 검토되고 있었다. 저자들은 쏘련의 보건의료제도가 정치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해석했으므로, 보건의료제도의 긍정적인 평가는 정치체계의 지지로 연결되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가운데 1934년 보고서는 출판되었지만, 킹스베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1935년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회보장제도를 통과시키기 위해 공공의료보험을 협상카드로 이용만 하고 폐기했으며, 이후 킹스베리는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힌 채 미국 공공의료에서 잊혀져 갔다. 반면, 뉴스홈은 영국의 의료서비스가 국민건강서비스로 개편되면서 그 유효성을 인정받았다. 두 저자의 운명이 출신 국가의 공공의료제도와 궤를 같이하게 된 것이다.

이 책들을 읽는 내내 100년 전 혁명정부의 전투적인 보건의료정책과 실천이 없었다면, 현재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짐작하기 어렵다. 실제로 쏘련은 국민들에게 예방과 치료를 포함한 모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설계된 완전한 체계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였다.

 

옮긴이 서문을 인용한다.

 

“알고 보니, 현재의 나와 우리 몸속에 너무 많은 ‘쏘련’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쏘련을 알든 모르든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었다. 그러므로, 쏘련을 모르고서는 나, 우리의 역사 그리고 현재를 이해할 수가 없다. 더욱이 쏘련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러시아/쏘련으로 입은 피해도 있었지만, 도움을 받은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소한, 보건의료 부문에서만큼은 인류는 쏘련에게 빚을 지었다. 우리의 현실은 85년 전 그들이 구축하고 시도했던 의료체계를 전제해야만 하고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사람이 건강 할 수 있는 사회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목표이고, 사람들은 여전히 죽지 않아도 될 병으로 죽고, 노동으로 말미암아 죽고,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로 고통 받는다. 그러므로 목표를 향한 제도와 정책의 고민 중에 쏘련의 건강보장을 거쳐 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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