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파괴, 생존권 파괴, 극우반동권력 박근혜 정권 퇴진투쟁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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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광장이 들썩이고 있다. 2008년 ‘촛불’ 이후 이명박 정권의 억압에 눌려 숨죽이고 있던 한국 사회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극우반동세력의 민주주의 파괴에 분노한 대중들이 시청광장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불과 수백으로 시작한 촛불집회가 2만, 3만, 5만의 인파가 운집한 거대한 투쟁으로 발전했다. 대중투쟁이 거세지는 만큼 극우반동세력의 ‘물타기’ 또한 거듭되고 있다. 경찰 수뇌부를 동원해 진실을 은폐하려던 시도에 이어 ‘NLL논란’, 반제자주통일 인사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혐의의 압수수색과 구속이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는 국정원의 선거 개입이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국회에서 논의할 문제라면서 일찌감치 거리를 두었고, 새누리당은 국정조사 의제와 증인채택 문제를 둘러싸고 시간 끌기와 논점 흐리기로 일관한데 이어 국정조사에서는 핵심 증인들에 대한 방패막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어버이연합, 00전우회 등을 동원하여 맞불집회를 개최하고 있고, 언론을 통제하고 민주당을 어르고 달래면서 촛불이 더 확산되지 않도록 막고 있다. 그러나 극우반동세력의 은폐, 왜곡 시도가 계속될수록 촛불은 더욱더 활활 타오르고 있고, 오히려 대중투쟁이 의회를 압박, 견인하면서 국정원 사태의 주범인 청와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국정조사가 끝났지만, 뭐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핵심증인으로 나온 국정원장, 경찰청장은 증인선서 거부를 통해 국정조사가 얼마나 무력할 수밖에 없는지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박근혜는 한편으로는 “작금에는 부정선거까지 언급하는데 저는 지난 대선에서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라고 여전히 발뺌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김기춘을 비서실장에 앉히면서 현 사태를 어떻게 돌파할지 보여주었다. 김기춘이 어떤 인물인가? 박정희 독재의 유신헌법을 기초하고 중앙정보부에서 공안검사로 활약한 인물이다. 박정희 정권 이후에도 검찰총장, 법무부장관을 역임하면서 공안통으로 승승장구 하던 인물이었고, 박근혜의 배후 ‘7인회’의 핵심인물이 바로 김기춘이다. 김기춘을 비서실장에 앉힌 것은 현 사태를 정치공작, 공안통치를 통해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국정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분노한 대중들의 참여가 더욱 늘고 있는 추세에 있지만, 대중투쟁이 급속히 냉각될 수 있는 교란 요인 또한 상당수 존재한다. 언제고 반드시 대중들의 뒤통수를 치게 될 민주당이 촛불집회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참여 대중들이 ‘박근혜 하야하라’와 같은 급진적인 구호를 외치는 것과는 달리 아직은 소부르주아적 의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만약 박근혜가 직접 사과하고 책임자로 지목되는 몇몇 관료들에게 책임을 묻는 양보안을 제시할 경우, 민주당은 이것을 자신들의 성과로 선전하면서 대중투쟁으로부터 이탈해갈 것이다. 민주당이 이탈할 경우 상당수의 촛불 참여자들 역시 이탈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촛불집회를 주최하고 주도하고 있는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이하 시국회의)’ 측의 개량주의적, 기회주의적 성격이다. 시국회의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하야’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실상 민주당과도 별반 다르지 않은 요구를 중심에 두어 왔다. 대중투쟁을 통해 정국을 돌파하려 하지 않고 반대로 촛불집회를 국정조사에 대한 압박용으로 사고해 왔기 때문이다. 또한 국정조사가 끝난 이후에는 국정조사만큼이나 무력하고, 한편으로는 박근혜에게 국정원 사태의 진실을 은폐할 수 있는 기회만 제공해줄 뿐인 특검 실시 요구를 핵심 슬로건으로 제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 (전면)개혁으로, 국내 활동을 막는 법률 개정으로 국정원의 ‘활약’이 차단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대중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이는 시국회의 스스로도 국정원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알면서도 회피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대중투쟁을 통하는 것 이외에 국정조사나 의회적 방법, 국정조사 이후에 제기되고 있는 특검을 통해서는 국정원 사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국정원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고 폭로해야 하며 촛불집회를 보다 계급적, 전투적으로 조직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정치세력들의 전면적인 결합이 필요하며, 특히 민주주의 투쟁에 가장 큰 이해를 두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결합이 절실히 요구된다.

‘국정원을 개혁하라’라는 슬로건의 반동성

이승만 정권의 육군 특무대부터 중앙정보부, 안기부, 국정원에 이르는 정보기관의 역할은 권력 유지를 위한 정치공작, 선거개입, 심지어 자신들의 종족인 부르주아 야당 정치인에 대한 탄압까지, 그 활약상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전 사회 영역에 뻗쳐있음을 알고 있다. 김대중 정부 들어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차단’하면서 공식적으로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은 듯이 보이지만,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불법 도감청, 언론장악 시도 등으로 국정원장들이 줄줄이 검찰조사를 받을 정도로 정치개입은 항상적으로 존재했다. 이마저도 세간에 알려진 것일 뿐,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하면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본질은 아니다.

국정원을 비롯한 역대 정보기관의 본질적인 역할은 민주화 열망에 대한 억압, 노동자 인민의 투쟁을 분쇄하고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는 것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최대의 책무는 반도의 남쪽에 자본주의의 싹을 틔우는 것이었고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재벌, 즉 독점자본을 성장시키는 것이었으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로부터, 그리고 공황으로부터 자본을 구출하고 초국적 자본으로 키워내는 것이었다.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던 노동자 인민의 투쟁, 민주화 열망,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고 분쇄하는 것이 자본가계급의 계급지배 기구인 국가의 막중한 책무였고 그 역할을 역대 정보기관이 가장 선두에서 수행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 공작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물리적인 탄압을 통해 반공․반북 체제를 수립함으로써 노동자 인민의 전망을 거세하고 자본의 노예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 이들 정보기관이었다. 그 자신 정보기관의 탄압으로부터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김대중조차도, 자유주의자 노무현조차도 국정원을 그대로 존치시켰으며 국정원을 통해, ‘대책회의’라는 이름으로 노동자 인민의 투쟁을 탄압했다. 간혹 노동운동가, 반제자주통일인사에 대한 사찰이 문제가 된 경우는 있지만, 본질적인 국정원의 역할은 드러나지 않거나 정보기관의 고유 업무로 ‘인정’되어 논외로 간주되고 있다.

이처럼 독재정권, 민주정권 할 것 없이 정보기관이라면 언제나 노동자 인민의 투쟁을 탄압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것은 현 국정원 사태의 본질이 정권의 성격, 즉 극우반동 정권이냐, 민주정권이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정원 자체의 문제, 자본주의 체제를 방어해야 하는 부르주아 국가의 역할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국정원은 결코 개혁될 수 없으며 자본주의 체제와 함께 분쇄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설사 국정원이 개혁되어 업무 영역이 일부 축소되거나 다른 형태로 바뀌더라도, 나아가 역할이 몇 개의 기관으로 분리되더라도 그 본질은 결코 달라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존속되는 한 어떠한 형태로든 정보기관, 혹은 그러한 역할은 존재할 것이고,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진군을 가로막을 것이다. 국정원의 본질이 이러함에도 ‘국정원을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꼴, ‘개혁’되어야 할 대상에게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밖에 되지 않으며, 마치 국정원이 ‘개혁’될 수 있는 것 같은 환상을 노동자 인민들에게 심어주어 소부르주아적 의식을 더욱 강화시키는 반동적인 슬로건이다. 현재는 국정원만, 그것도 활약상의 일부만 문제가 되고 있지만, 비단 국정원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경찰, 검찰, 기무사, 군대, 감옥까지 모든 억압기구들의 역할이 국정원과 결코 다르지 않으며, 아무리 ‘개혁’을 부르짖더라도 그 본질은 결코 ‘개혁’될 수 없다. 현재 검찰은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대해 ‘신종 매카시즘’ 공작이라 규정하면서 마치 사태의 ‘진실’을 파헤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검찰이야말로 매카시즘 공작의 첨병이었음은 노동자 인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결국 국정원 사태, 국가 억압기구의 본질은 누가 국정원, 억압기구의 책임자로서 지휘하고 있느냐, 정권의 성격이 어떠하냐와 상관없이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 계급지배 자체의 문제로부터 기인한다. 그리고 이것은 정권 차원의 문제를 넘어 계급지배의 도구, 즉 국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계급지배 도구로서의 국가와 억압기구

국가는 인류의 계급사회로의 분열과 함께 등장한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시 공산제 사회에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국가에 속한 억압기구 또한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의 등장은 그 자체 “화해불가능한 계급 적대감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사회가 “화해불가능한 계급 적대”의 상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엥겔스의 말을 들어보자.

국가는 결코 외부에서 사회에 강요된 권력이 아니다 ; 국가는 또한 헤겔이 주장하는 것처럼 “윤리적 이념의 현실성”, “이성의 형상 및 현실성”도 아니다. 국가는 오히려 일정한 발전 단계에 있는 사회적 산물이다 ; 국가는 이 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자기 모순에 빠졌으며, 자기의 힘으로 없앨 수 없는 대립물들로 분열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고백이다. 그런데 이 대립물들이, 즉 서로 다투는 경제적 이해를 가진 계급들이 쓸데없는 투쟁으로 자기 자신과 사회를 파멸시키지 않게 하려면 외견상 사회 위에 서 있는 권력, 충돌을 완화시키고 충돌을 ‘질서’의 틀 내에 잡아 둘 권력이 필요하였다 ; 사회로부터 발생하였으나, 사회 위에 서서 점점 더 사회에 낯선 것이 되어 가는 이 권력은 바로 국가이다.

(F.엥겔스,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 <<맑스․엥겔스 저작 선집Ⅵ>>, 박종철출판사, p.187~188)

즉, 국가란 사회의 위에 서서 마치 사회 전체를 조율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그래서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질서’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계급 적대를 은폐하고 계급투쟁을 완화하며, 나아가 ‘질서’라는 명분으로 피지배계급의 저항을 분쇄하는 권력이다. 결국 국가는 경제체제를 막론하고, 정치권력의 성격과 무관하게, 어떠한 외양, 즉 ‘공정’, ‘중립’, ‘질서유지자’와 같은 외양을 띌지라도 어디까지나 그 사회를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계급의 국가, 피지배계급의 저항으로부터 계급지배관계를 유지․강화하려는 지배계급의 조직된 폭력이다.

국가는 계급 대립을 억제할 필요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동시에 그것은 이 계급들의 충돌 한가운데서 발생했기 때문에, 그것은 대개 가장 강력한 계급,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계급의 국가이다. 이 계급은 국가의 힘을 빌어 정치적으로도 지배하는 계급이 되며 그리하여 피억압 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새로운 수단을 획득한다. 따라서 고대 국가는 무엇보다도 노예를 억압하기 위한 노예 소유자들의 국가였으며, 봉건 국가는 농노와 예농을 억압하기 위한 귀족의 기관이었다. 그리고 현대의 대의제 국가는 자본이 임금 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도구이다.

(F.엥겔스,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 <<맑스․엥겔스 저작 선집Ⅵ>>, 박종철출판사, p.189)

계급지배의 이유는 피지배계급으로부터 잉여노동을 착취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잉여노동의 착취는 필연적으로 피지배계급의 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는 계급지배를 위해 수많은 억압기구를 만들고 힘을 키워왔다. 이른바 공권력이라고 하는 “주민과 직접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무장조직을 갖추고 감옥 등의 강제시설, 억압기구를 만들어 온 것이다. 현대의 민주공화국 역시 결코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억압기구들을 고도로 발전시켜왔고, 계속해서 증대시켜가고 있다.

방대한 관료 조직과 군사 조직을 가진, 복잡 다기하고 정교한 국가 기구를 가진 이 집행 권력, 50만 군대와 나란히 서 있는 이 50만 관리군, 마치 망막처럼 프랑스 사회의 온몸을 휘감고서 그 모든 숨구멍을 막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기생체는 절대 군주제 시대에, 즉 봉건제 붕괴기에 성립하여 봉건제의 붕괴를 재촉했다. 토지 소유자들과 도시들이 누리던 영주적 특권들은 국가 권력이 가지고 있는 그만큼 많은 수의 속성이 되었고, 봉건 고관들은 유급 관리들이 되었으며, 서로 다투던 중세 절대 권력들로 이루어진 어지러운 무늬의 지도는 공장식 분업과 공장식 노동 집중이 이루어지는 국가 권력의 가지런한 설계도가 되었다. 국민의 시민적 통일을 이루어 내기 위해 모든 국부적, 지역적, 도시적, 지방적 분리 권력들을 타파할 과제를 짊어지고 있었던 제1차 프랑스 혁명은 절대 군주제가 이미 시작해 놓은 중앙 집권화를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뽈레옹은 이 국가 기구를 완성했다. … 끝으로 의회 공화제는 혁명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탄압 수단들을 강화함과 아울러 정부 권력의 수단을 강화하고 더욱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든 변혁들은 이 기구를 파괴하는 대신에 그것을 완성하였다. 앞서거니뒤서거니 지배권을 다투던 당파들은 이 거대한 국가 건물의 점유를 승리자의 주요 전리품으로 간주하였다.

(K.맑스,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맑스․엥겔스 저작 선집Ⅱ>>, 박종철출판사, p.380~381)

특히 20세기 들어 제국주의 전쟁을 거치면서, 그리고 노동자 인민의 혁명적 진출과 세계 사회주의 진영의 성립에 대응하기 위해 제국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관료제와 상비군을 강화하고 억압기구를 급격히 확장시켜왔다. 한국 역시 해방 이후 지금까지 “탄압 수단들”, “정부 권력의 수단을 강화”해 왔고, 합법, 불법 가리지 않는 극악한 파쇼적 탄압을 가해왔다. 노동자 인민의 혁명적 진출을 분쇄하고, 반도의 남쪽에 반공․반북 체제, 폭압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건설하고 유지․강화하기 위함이었다. 지금에 와서 일정하게 민주주의를 확장함에 따라 과거와 같은 폭력적인 억압은 사라진 듯 보이지만, 오히려 ‘민주화’라는 외피를 쓰고 보다 교묘한 형태의 탄압을 가하고 있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많은 노동자 인민을 감옥에 보냈던 정권이 다름 아닌 ‘민주화 투사’ 김대중 정권이었고, 자유주의자 노무현 정권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 인민의 투쟁이 있는 곳 어디든 방패와 곤봉을 앞세워 짓밟고 있는 경찰, 자본가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노동자 인민에 대해서는 가혹한 형벌을 가하고 있는 검찰과 사법부, 끊임없이 사찰을 행하고 있는 기무사, 심지어 21C인 2006년 평택에 미제의 군사기지 부지를 확보해주기 위해 출현했던 군대까지, 부르주아 국가의 억압기구들은 여전히 맹활약하고 있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은 어떤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며, 국정원의 기본적인 역할의 하나에 불과하다. 2008년 말 발발한 세계 대공황으로부터 재벌, 즉 독점자본을 구출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방어하는데 있어 가장 적합한 인물과 세력, 독점자본으로부터 간택된 박근혜와 극우반동세력을 국가 권력의 집행인에 앉히고자 했던 것이다. 즉, 계급지배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이 국정원을 비롯한 억압기구의 역할임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으로부터 기대할 것이 더 있는가

민주당은, 그 이름에 걸맞게, 국정원 사태를 ‘민주주의의 파괴’라 규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회와 장외를 오가며 ‘대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표면적으로 게거품을 무는 것과는 반대로 이들의 요구는 기만적이기 이를 데 없다. 민주당은 정권 차원의 불법 선거 개입이라고 떠벌이고 있으면서도, 국정원 개혁, 책임자 처벌, 박근혜의 사과를 요구할 뿐 정작 선거 무효조차 선언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서 왔다고 자임하는 정당이라면, 그리고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의해 조작된 18대 대선을 ‘국기문란’, ‘헌정질서 파괴’, ‘제2의 3.15부정선거’, 심지어 ‘쿠데타’라고 규정한다면 응당 그에 상응하는 요구를 제출하고 의회, 장외 가리지 않는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할 법도 하지만, 정작 요구하는 것은 박근혜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요구가 전부다. 이마저도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거냐”라고 박근혜가 엄하게 꾸짖는 순간,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꼬리를 내리는 웃지못할 촌극을 연출하고 있다. 이들 역시 부르주아 국가의 정치권력을 두고 경쟁하는 지배계급의 한 분파,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또 다른 정치 세력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국정원 사태를 계기로 추락한 지지도를 끌어올리고 자신들이 정치적 우위를 점하여 향후 국정 운영에서 주도권을 쥐고자 할뿐이다. 더 나아가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강하게’ 새누리당, 박근혜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표를 구걸할 때면 자신들이야말로 정보기관의,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임을 내세우고 ‘민주주의의 전위 투사’인양 행세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는 극우반동세력이 했던 그대로 국정원을 자신들의 권력 강화를 위해 활용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유지했던 자들이 이들이다. 민주당의 본질이 이러하기에 이들의 요구는 박근혜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도 없다. 민주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새누리당도, 박근혜도 아닌 바로 노동자 인민의 투쟁이 고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스스로도 국정원 사태의 파급력이 어떠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촛불집회가 더 급진적으로, 전투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대정부투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요구 수위를 낮추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의회와 장외를 두고 之자 행보를 취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정치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새누리당과 박근혜에 대해 ‘장외투쟁에 나서겠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정작 촛불집회에 나와서는 ‘00의원님 오셨습니다’라고 소속 의원들을 홍보하는데 열을 올릴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의회적 방법으로 ‘해결’해보겠다고 국정조사에 매달리거나 특검실시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거냐”, “정당성을 부정하는거냐”라고 되레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으로 인해 최소한의 부르주아적 정당성마저 상실한 자들의 협박에 대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 민주당인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사실을 폭로했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어떤 짓거리들이 벌어졌는지 국정조사를 통해 대중들에게 확인시켜줬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민주당으로부터 더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제안한 박근혜와의 2자회담이나 새누리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3자회담이 성사되고 박근혜의 사과와 국정원장 등 ‘책임자’의 처벌을 포함한 양보안이 제시될 경우 국면전환을 위해 빠르게 이탈해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당의 허울뿐인 ‘민주주의’에 끌려가지 않도록 독자성과 자주성을 견지해야 하며, 이들의 본질을 정확히 직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주의 정치세력과 함께 민주주의에 가장 큰 이해가 걸린 노동자계급의 결합이 절실히 요구된다.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 해방 투쟁의 수단

국정원 사태를 두고 ‘국기문란’이니, ‘헌정질서 파괴’니, ‘쿠데타’니 하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열을 뿜는 비난의 이면에는 계급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다. 국기(國基. 국가를 이루는 기초나 기본)라는 것, 헌정질서 자체가 부르주아 계급지배를 위한 것, 계급지배를 위한 법률과 이데올로기이고, 따라서 ‘국기문란’이니, ‘헌정질서 파괴’니 하고 목청을 높이는 순간 우리는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인정하고, 계급지배의 도구인 국가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만큼 노동자 인민의 의식을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가둬두게 되는 것이다. 국정원 사태는 심각한 민주주의 파괴 행위임은 분명하지만 국기를 문란케 하거나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국기를 튼튼히 하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 즉 대한민국의 국기요, 헌정질서인 반공․반북에 근거한 자본주의 착취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자본가계급의 폭압적인 지배체제를 굳건히 하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산업화의 아버지 박정희’ 이미지를 차용하여 노동자 인민의 의식을 왜곡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폭력적인 억압을 통해 2008년 말 발발한 세계 대공황으로부터 위기에 빠진 자본을 구출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지켜낼 수 있는 인물이 박근혜였고,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그를 정치권력의 정점에 앉히려 한 것이다. 따라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은 오히려 대한민국의 국기와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국정원 사태는 자본주의 체제를 폭력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국가의 정치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쳐대지만, 그 이면에는 끊임없이 무언가가 조작되고, 은폐되고, 왜곡되고 있다는 것을, 그러한 과정을 통해 정치권력이 창출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 국정원을 비롯하여 폭압적으로 자본주의 착취 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억압기구, 노동자민중의 의식을 왜곡하고 혁명적 진출의 전망을 상실케 하는 이데올로기 기구들이 총동원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 계급지배를 지키고 번영케 할 수만 있다면 민주주의란 언제든 내팽개쳐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에게 민주주의는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내팽개칠 수 있는 것이지만, 노동자계급은 한 시도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 해방투쟁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가 노동자들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반동파의 앞치마 밑으로 숨어 들고 노동자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자신의 적대 분자(필자 주: 자신들이 무너뜨리기 위해 싸웠던 봉건세력, 즉 반동파)의 힘에 호소하는 최악의 경우가 벌어지더라도 ― 그러한 경우가 벌어지더라도 노동자 당에 남아 있는 방도는, 부르주아적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권리에 대한 선동과 같은 부르주아지가 저버린 선동을 부르주아의 뜻에 상관없이 추진해 나가는 길밖에 없다. 이러한 자유들이 없이는 노동자 당 자신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가 없다 ; 노동자 당이 이러한 투쟁을 벌이는 것은 자신들 본래의 생존 요소, 자신들이 숨을 쉬는 데 필요한 공기를 획득하기 위해서이다.

(F. 엥겔스, <프로이센의 군사 문제와 독일의 노동자 당>, <<맑스․엥겔스 저작 선집Ⅲ>>, 박종철출판사, p.60)

자본가계급의 관심사는 오직 이윤뿐이다. 자신들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정치권력을 장악했다가도, 언젠가 자신들이 구축한 착취 체제를 뒤엎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진출에 놀라 언제든 민주주의를 내팽개치고 반동의 품으로 투항할 수 있는 것이 자본가들의 계급적 본성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단 한순간도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다. 민주주의 없이는 자신의 해방을 위한 사업을 진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에게 사활적인 의의를 갖는다.

해방 이후 노동자계급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돌이켜본다면 노동자계급에게 민주주의가 어떤 의의를 갖는지 짐작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은 독재 권력에 의해 억압과 굴종을 강요당하면서도, 생존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군말 없이, 노예처럼 일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적 제권리, 즉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정치․사상의 자유를 유린당한 채 재갈이 물리고 사슬에 묶여 자본의 노예로, 권력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노예처럼 억눌려 살다가도 정치적 억압이 이완된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혁명적 열망을 분출시켜왔다. 특히 일제가 물러나고 반동권력이 공고해지기까지의 기간 동안, 이승만 정권을 몰아낸 이후 군사 쿠데타로 박정희 독재자가 권력을 잡기까지,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이 그 자리를 꿰차기 전 몇 개월 동안, 마치 참고 있던 울분을 토해내듯 거대한 투쟁을 만들어 왔다. 무엇보다도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잉태했던 6월 항쟁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6월 항쟁으로 열린 민주주의와 정치적 억압의 이완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의 대투쟁은 가능할 수 있었다. 정치적 억압이 주춤하고 민주주의가 확장되는 만큼 노동자 계급의 진군도 가능했던 것이다.

현재는 어떤가? 대한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집회의 자유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언론 노동자들은 촛불집회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이적표현물이라는 명목으로 출판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고, 정치사상의 자유, 심지어 학문의 자유조차 억압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정치 참모부, 전위당 건설은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지경에 처해있다. 노동자 인민의 의식은 반공․반북 이데올로기,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점철되어 현실에 존재했던, 그리고 존재하고 있는 사회주의를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 전망이 아닌 ‘지옥’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사회주의자를 자임하는 자들의 의식까지 국가보안법에 의해 심어진 노예의 의식에 쩔어 있을 정도다. 민주주의를 보장받지 못할 때 노동자계급의 해방도 그만큼 지체될 수밖에 없다.

사실 민주주의는 봉건세력과의 투쟁을 위해, 투쟁의 과정에서 자본가계급이 획득해 온 부르주아적 권리이다. 그러나 그것이 부르주아적 권리라고 해서 자본가계급만의 것으로 독점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노동자계급 역시 함께 투쟁했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은 봉건세력과의 투쟁에,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투쟁에 있어 주된 동력을 형성해 왔다. 자본가계급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역시 봉건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나아가 진정한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우선 봉건세력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는 봉건세력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이후로는 더 이상 민주주의 투쟁에 이해를 두지 않는다. 더 많은 민주주의가 보장될 경우 노동자계급에게 자신들의 심장을 겨누게 될 무기만 제공할 뿐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함으로써 더 많은 이윤을 얻어야 하는 자본가계급에게, 지상낙원을 건설해야 하는 자본의 이해에 그만큼 위협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은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무기를 갖기 위해 민주주의를 확장하지만, 노동자계급에게 무기를 쥐어주지 않기 위해 민주주의를 차단하고 제약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파괴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과거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국가보안법과 정보기관에 의해 탄압을 받던 민주당을 위시한 수많은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그래서 한 때나마 입만 열면 국가보안법 철폐, 공안탄압 중단, 정보기관 해체를 주장하던 이들이 권력을 잡는 순간 180도 태도를 바꿔 노동자 인민을 향해 정보기관이 활약할 수 있는 길을 보장하고 국가보안법의 칼을 휘둘렀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철폐하겠다고, 노동자계급의 전위당을 만들어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건설해보겠다고 나서는 순간 극우반동세력과 조금의 차이도 없이 가차 없이 감옥에 처넣어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민주적이니 하는 수식어를 붙이더라도 부르주아 계급의 한계는 명확하다. 자신들이 권력을 잡고, 억압과 착취의 자유를 존속시켜 자본주의를 번영케 할 수 있는 정도까지, 노동자계급이 자본의 착취 질서를 침해하지 않는 선까지만 민주주의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그 한계에 머무는 순간 영원히 임금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것이야 말로 노동자계급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좌 ․ 우 편향을 극복하고 본질을 폭로하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촛불집회는 계속해서 확대․발전하고 있지만, 이를 방해하는 여러 교란요인들을 가지고 있다. 민주당은 박근혜의 사과와 국정원장, 관련된 정치인 등에 대한 문책이 이루어진다면 언제든 투쟁에서 이탈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자신들이 제안한 2자 회담과 같은 형태로 진행된다면 온전히 자신들의 성과인양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대중들의 뒤통수를 칠 것이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촛불집회가 대정부투쟁으로 발전하지 않는 한계 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민주당의 행보가 아니다.

심각한 문제는 시국회의 측 역시 민주당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데 있다. 시국회의는 “국정원을 전면 개혁하라”, “박근혜가 책임져라”라는 두 슬로건을 주요하게 외치고 있다. 국정원을 전면 개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양이가 생선을 먹지 않고 요리하기 좋게 다듬어 놓을 것인지, 박근혜가 책임지는 것이 무엇을 어떻게 책임지라는 건지 정확한 내용을 알 수도 없거니와, 아무리 급진적으로 해석하려 해도 그 본질은 대단히 개량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다. 앞서 얘기했지만, 국정원은 개혁될 수도, 법적․제도적으로 역할이 축소되거나 변경될 수도 없다.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억압을 본질로 하는 부르주아 국가가 존속되는 한 억압기구로서의 국정원은 결코 사라질 수도, 그 역할을 멈출 수도 없다. 특히나 개혁되어야 할 대상에게 개혁을 주문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박근혜에게 무언가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여지만 주고 있는 것이다. 국정조사 이후에 제기되고 있는 특검 실시 요구 역시 본질은 결코 다르지 않다. 오히려 특검을 실시하는 순간 이명박-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극우반동세력의 정치공작, 선거 조작은 사라지고, 국정원의 본질적 역할은 또 다시 은폐될 것이다. 결국 국정원장, 경찰청장, 몇몇 정치인 등 관련자를 처벌하는 선에서 일단락되고 말 것이다. 과거 노무현 정권의 삼성 특검이, 이명박 BBK 특검이 어떻게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삼성과 이명박에게 면죄부를 주었는지를 상기한다면 특검이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단적으로, 만약 특검을 실시한다면 그 특별검사는 박근혜에 의해 임명될 것이다. 박근혜가 자신의 목을 죌 특별검사를 임명하겠는가?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오히려 박근혜에게 면죄부만 줄게 뻔하고 몇몇 관련자의 ‘일탈적인 행위’, 불법행위 정도로 마무리될 것이다.

시국회의의 더 큰 문제는 국정원 사태를 국정원의 선거 개입, 정치 개입에만 한정하면서 국정원의 보다 본질적인 역할인 노동자계급에 대한 억압과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탄압, 반제자주통일운동에 대한 탄압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으면서 폭력적으로 자본주의 착취 체제를 유지하려는 부르주아 국가의 본질, 억압기구의 본질을 은폐하고 있다. 이는 마치 국정원의 ‘불법’이 선거 개입, 정치 개입에만 있는 것처럼 왜곡하고, 법적 보완을 통해 국정원의 ‘불법’ 행위가 차단될 수 있는 것처럼 왜곡하는 것이다. 노동자 인민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기만적이고 반동적인 슬로건이 아닐 수 없다.

진보진영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국정원의 역할 분할을 통한 ‘해외정보원’으로의 개편 주장 역시 본질에 있어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정원의 본질적인 역할이 국내 노동자계급운동의 분쇄, 반제자주통일운동에 대한 탄압, 사회주의운동 탄압에 있다는 것에 비춰볼 때 ‘해외정보원’으로의 개편은 가당치도 않을뿐더러,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국내 활동은 어디에선가 다른 기관에 의해 어떠한 형태로든 분명히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럴싸하게 들리는 ‘대안’이지만, 이 역시 국정원의 본질은 철저하게 은폐되고 있다. 국정원은 결코 개혁될 수도, 역할이 축소되거나 사라질 수도 없다. 국정원의 본질이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진군을 가로막고 자본주의 체제를 번영케 하는데 있는 한 합법적으로든, 불법적으로든 국정원의 역할은 존속될 수밖에 없다. 결국 국정원은 자본주의 체제와 함께 타도해야할 대상이지 결코 개혁의 대상일 수 없다. 우리의 역할은 그럴싸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부르주아 국가의 억압기구로서의 국정원의 본질을 폭로함으로써 대중들의 의식을 노동자계급적으로 고취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른바 ‘좌파’라고 하는 사회주의 정치조직의 결합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보다 정치적이고 본질적인 내용을 폭로하고 선전․선동함으로써 촛불집회를 급진적으로, 전투적으로 조직해야 할 정치조직들이 철저하게 촛불집회를 외면하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민주주의 투쟁의 의의, 국정원 타도, 국가보안법 철폐의 의의, 18대 대선을 무효화시키고 박근혜를 청와대에서 끌어내는 투쟁의 의의와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고, 지금의 촛불집회가 얼마만큼의 정치적 파급력을 갖게 될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량주의적, 기회주의적 지도부에 대한 ‘실망’으로 아예 투쟁에 참여하는 것조차 외면해버리는 것이다. 가히 ‘혁명적’ 무지와 무능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마치 숟가락만 들고 있으면 저절로 밥상이 차려질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시청광장에 모인 대중들이 즉각적으로 노동자계급의식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하고, 지도부 역시 사회주의 정치 세력으로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좌파’ 사회주의 정치조직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장 대한문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집회의 자유조차 보장받지 못하면서 크나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엄호하기 위해 함께 투쟁하고 있으면서도 민주주의 투쟁은 외면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인식하지도, 무언가를 하지도 못하는 총체적 난관이다. 사회주의를 얘기하고 혁명적 언사를 남발하지만 정작 정세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편협한 인식과 경제주의적 편향이 짙게 배어 있다.

모든 것은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한 배경에는 2008년 발발한 세계 대공황이 자리하고 있다. 경제위기로부터 한국의 자본을 구출하기 위한 사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이명박 정권에 이어 극우반동 박근혜 정권이 필요했던 것이다. 특히 박근혜의 당선은 박정희의 ‘산업화’ 이미지를 차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공황기의 국가 운영에 있어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공황기 자본의 필요에 의해 당선된 박근혜는 이에 부응하듯 집권 초기부터 대대적인 추경을 편성하여 재벌 구출작전에 나서는 한편 자신이 공약으로 들고 나온 복지 사안은 ‘현실성’을 이유로 하나 둘 폐기하거나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발뺌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무방문’이라는 푸대접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으로 날아가더니 대법원 판결에 의해 확정된 통상임금 산정 기준까지 변경하여 독점자본의 앓던 이를 뽑아주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당장은 촛불집회의 확산으로 인해 진행하기 어렵게 됐지만, 얼마 전 노동자 인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위해 시도한 조세제도 개악처럼 노동자계급의 분노를 조절해가면서 반드시 시행하려 할 것이다. 철도, 가스, 전기, 발전 등 공공부문을 사유화하여 재벌들의 곳간을 늘려줄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이를 팔아 번 돈으로 국책사업이나 다른 형태로 다시 돈을 풀어줄 것이니 독점자본에게는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재벌, 즉 독점자본이 박근혜를 내세워 공황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제하고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사이 노동자 인민의 생존권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구조조정 앞에 내몰린 공공부문 노동자들,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정규직 전환하라고 계속해서 싸워야 하는 노동자들, 집회의 자유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화단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 파업일의 ‘신기록’을 매일 같이 세워가고 있는 노동자들, 장기투쟁사업장, 버팀목이 될 노동조합 하나 없이 소리 소문 없이 잘려나가는 부지기수의 노동자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민들의 한숨소리가 더욱 커져가고 있다. 각개분산적인 투쟁을 하나의 전선으로 모아내고 하나의 목표, 청와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촛불집회에 전면적으로 결합하여 이 투쟁이 소부르주아적 투쟁에 머물지 않도록 기조를 명확히 하고 보다 정치적으로, 보다 전투적으로 촛불집회를 견인해야 한다. 국정원 문제를 비롯하여 철도 등 공공부문 사유화 문제, 쌍용자동차 국정조사 투쟁, 불법파견 철폐 투쟁, 통상임금 투쟁, 민주노조 사수 투쟁, 복지확대 투쟁, 밀양, 강정, 4대강 등 굵직굵직한 투쟁 사안들이 개별자본의 문제, 개별사안이 아니라 정권 차원의 문제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각개분산적인 투쟁을 넘어 대정부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온갖 불법․부정을 통해 자리를 꿰찬 박근혜 정권 타도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업장의 담벼락을 걷어내고 노동자들을 거리로 끌어내야 한다. 지역에서부터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되어 촛불집회를 조직하고 촛불투쟁의 지도부로 서야 한다. 민주주의 요구를 명확히 하고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명확히 하는 슬로건을 대중들에게 제출해야 한다. 개별적 참가가 아닌 집단적, 조직적인 참가를 통해 흐름을 만들어내고 전체 촛불집회를 견인해 내야 한다. 시청, 청계천, 광장에 갇혀 있는 촛불대오를 거리로 끌어내고 조직되고 투쟁으로 단련된 노동자들이 가장 선두에 서서 청와대로 나아가야 한다.

국정원 사태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전선을 주도하고 있다. 국정원 사태의 본질을 인식하던 그렇지 못하던, 민주주의 투쟁의 의의를 인식하던 그렇지 못하던 상관없이 이 투쟁이 어떻게 결론 나느냐가 향후 정세를 규정하게 될 것이다. 이 투쟁에서 밀릴 경우, 광우병 촛불 이후 5년 동안 이명박의 억압에 눌려 있었던 것처럼, 또 다시 박근혜 5년 동안 숨죽이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촛불이 타오르던 6개월을 제외하고는 최소한의 부르주아적 염치조차 내팽개친 채 노동자 인민을 억압하고 독점자본 구출작전에 사활을 걸었던 이명박처럼, 박근혜 역시 이명박이 했던 것에서 한 치도 어긋남 없이 그렇게 할 것이다. 노동자 인민은 5년 후에 또다시 ‘절대’ 극우반동만은 안 된다고, ‘마지막으로’ 민주당 한 번 밀어주자는 말로 위로하면서 표를 던져주게 될 것이다. 그만큼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부르주아지의 의식에 갇히게 되고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향한 진군은 지체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인민이 이 투쟁에서 승리할 경우,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극우반동세력을 몰아낼 경우, 아니 최소한 박근혜 정권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경우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는 사유화, 복지축소, 노동조합 탄압, 환경파괴 등 자본의 프로젝트를 무력화시키고 노동자 인민의 생존권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노동자 인민의 혁명적 진출을 가로막아왔던 국정원 등 억압기구의 위세가 약화될 것이고 국가보안법의 칼날은 무뎌지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대폭 확장되면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참모부, 전위당 건설의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자본, 권력 대 노동자 인민의 한 판 싸움이 다가오고 있다. 노동자 인민의 분노를 모아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노동자 인민의 생존권을 파괴하는 극우반동권력 박근혜 정권 퇴진투쟁에 나서자!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Sep 21st, 2013 | By | Category: 2013년 09월호 제93호, 정세 | 조회수: 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