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역사> 1917년 10월 25일 ―인류의 도약, 10월 사회주의 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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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 편집위원

 

 

 

러시아 혁명의 전주곡, 피의 월요일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러시아 혁명은 피의 일요일 사건에서 싹텄다. 1905년 초, 쌍뜨뻬쩨르부르크에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1년 전 조선을 둘러싸고 일본과 전쟁을 벌이다가 패배한 러시아의 경제는 심각한 어려움에 빠져 있었다. 굶주린 노동자와 가족들은 빵과 평화를 외치며, 짜르인 니꼴라이 2세에게 자비를 구하려고 궁전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평화로운 저항은 피의 일요일에 동궁(冬宮) 앞 광장에 집결해 있는 그들을 제국 군대가 무차별 살상함으로써 절정에 달했다. 붉은 피와 수많은 시체가 광장을 뒤덮어, 말 그대로 그날은 피의 일요일이었다. 러시아 민중은 자비로운 짜르의 환상에서 깨어났다. 러시아 곳곳에서 짜르를 타도하자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총파업이 수도와 산업 중심지에서 뒤따라 일어났다.

위기를 느낀 짜르 니꼴라이 2세는 개혁을 약속하며 입헌 군주제 헌법을 제정하고 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혁명의 열기를 꺾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만큼, 짜르는 여전히 절대 권력을 누렸고 혁명 세력은 철저히 탄압받았다. 게다가 이 개혁이 결국 지주와 부농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임이 드러나자 러시아 사회의 계급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하여 러시아 전역에서 파업이 일어났고, 혁명의 열기가 점점 고조되었다. 이때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졌다.

 

 

10월 사회주의 대혁명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짜르인 니콜라이 2세는 서둘러 전쟁에 뛰어들었다. 발칸 반도를 차지하고 내부의 혁명 열기를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러시아 군은 짜르의 기대와는 달리 패전을 거듭하였다. 전쟁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전쟁이 장기화되자 국내에는 식량과 물자가 턱없이 부족하였다. 또한 물가는 폭등하게 되고 노동자 민중의 삶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식료품 가게를 습격하는 일이 잦아졌고,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도 계속되었다. 빵과 평화, 토지와 자유라는 구호는 전국에 울려 퍼졌다.

짜르 정부와 싸우면서 노동자·농민·병사들은 자신들의 대표 기관인 쏘비에트를 결성하였다. 마침내 1917년 2월, 쌍뜨뻬쩨르부르크의 노동자와 민중들은 식량 배급과 전쟁의 중지, 짜르의 전제 정치 타도 등을 요구하며 왕궁으로 몰려들었다. 진압군을 싣고 올 기차는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발이 묶였고, 전쟁에 지친 병사들까지 혁명 세력의 편에 섰다. 결국 니꼴라이 2세는 쫓겨났다. 로마노프 왕조가 붕괴되고 러시아 공화국 임시 정부가 구성되었다.

2월 혁명으로 성립된 임시 정부의 실권은 사회혁명당의 두마 의원으로, 뻬뜨로그라드 쏘비에트 부의장이었던 알렉싼드르 께렌쓰끼가 쥐고 있었다. 께렌쓰끼는 민중들의 염원을 외면하고 조국 방위 전쟁을 계속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2월 혁명이 끝난 후 러시아로 돌아온 레닌은 임시 정부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민중들은 쏘비에트가 권력을 가져야 하며, 전쟁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레닌의 주장을 지지하게 되었다. 드디어 레닌의 지도 아래 10월 혁명의 불길이 타올랐고, 임시 정부는 무너졌다. 새롭게 수립된 혁명 정부는 평화에 대한 포고토지에 대한 포고를 발표하여 전쟁 중지와 토지 사유의 폐지를 선언하였다. 노동자·농민의 정부를 내세운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노/사/과/연>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Oct 31st, 2017 | By | Category: 회원마당 | 조회수: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