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과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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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찬 | 연구위원장

 

 

 

머리말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지 5개월여가 넘어서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은 그동안 80%를 넘다가 하락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2/3 이상의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다. 즉, 한국 사회 전체에 걸쳐서 문재인 정권의 헤게모니가 관철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편으로는 개혁을 내세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미 대결의 과정에서 문재인 정권이 철저히 미국 추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그러나 성주지역의 싸드의 폭력적 배치로 인해 문재인 정권의 기만성의 가면이 살짝 걷어 올려졌다. 성주의 주민들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기대를 영원히 버렸다고 탄식하고 있다. 그리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외쳤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약속도 학교비정규직에 대한 기만적 조치로 인해 그 성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또한 전교조에 대해 박근혜 정권이 저질렀던 노조 아님 통보도 여전히 철회되지 않고 있으며 공무원 노조의 단결권의 보장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최선두에 서서 박근혜 정권의 퇴진에 가장 크게 기여했던 민주노총의 한상균 위원장은 여전히 감옥 속에 있으며 여타의 양심수 또한 한 명도 석방되지 않고 있다. 파쇼적 악법인 국가보안법은 북-미 대결의 과정에서 그 개정 논의가 착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서서히 문재인 정권 하에서 계급대립의 구도, 전략구도가 드러나고 있다. 촛불시위에 결집했던 광범한 민중들의 열망으로 인해 문재인 정권의 성공의 요구, 한국 사회의 민주적 개혁과 진보를 향한 흐름이 좌절되어서는 안 된다는 요구가 많이 있지만 출범 후 5개월여가 지난 지금 문재인 정권은 촛불의 열망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한편 한국 사회는 촛불 시위를 통해 파쇼적인 극우 박근혜 정권을 극복했지만 세계적 차원에서는 여전히 혹은 갈수록 극우세력들이 득세하고 있다. 미국, 유럽, 중동, 동남아 등 각지에서는 극우적인 세력이 정권을 잡거나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1990년대의 쏘련 붕괴 이후 시작된 반동기가 세계적 차원에서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아직까지는 세계사적인 반동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동기는 노동자계급이 다시금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할 때까지는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사회의 지형, 계급대립구도를 고찰하고 노동자계급의 전망의 문제를 살피는 것은 긴요하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문재인 정권의 헤게모니가 관철되고 있다는 것은 다수 대중이 문재인 정권을 통한 개혁을 바라고 있다는 것, 그리고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독자적 전망을 가지지 못하고 그러한 개혁에 녹아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만약 이렇게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개혁에 녹아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 사회에서 진보의 전망은 사라지고 노동운동은 해체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의 문제, 나아가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의 문제가 부르주아 개혁이라는 상황에서 전면적으로 고찰되고 제기되는 것이 필요하다.

 

 

1. 촛불시위와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

 

촛불시위가 없었다면 문재인 정권은 성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리멸렬했던 민주당 등 자유주의 세력은 촛불시위로 말미암아 살아났고 나아가 정권을 움켜쥐었다. 따라서 현재의 문재인 정권의 성격과 지금의 계급대립 지형을 살피기 위해서는 촛불 시위에 대한 계급적 접근이 필요하다.

2016년 4월의 총선은 박근혜 정권에 대해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이라는 폭거, 세월호 학살, 전교조에 대한 탄압 등 박근혜 정권의 파쇼적 억압은 이 총선 결과에 의해 한 차례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단순한 선거에서의 패배였을 따름이었다. 즉, 박근혜 정권의 헤게모니는 총선 후에도 여전했고 민주주의는 질식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촛불시위의 확대와 전 민중적 참여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선고를 가져왔다.

광범한 대중들이 촛불시위로 집결했던 것은 한편으로는 파쇼적 억압에 대한 반발, 민주주의의 수호의 차원이었다. 즉, 촛불시위에서 정치적 구도는 민주-반민주 구도였다. 촛불시위가 민주주의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에 광범한 민중의 참여가 이루어졌고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촛불시위는 이러한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경제위기로 인해 민중들의 생존권이 벼랑에 몰리고 있는 상황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박근혜 정권의 경제정책은 민중들의 생존권을 압살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정치적, 경제적 위기가 맞물리면서 촛불시위라는 형태로 민중투쟁이 폭발했다.

그런데 촛불시위는 민중투쟁의 폭발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계급의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이반의 표출이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의 폭로가 촛불시위의 직접적 도화선이었는데 ≪조선일보≫는 이 게이트의 폭로를 주도했다. 이러한 상황은 일부 지배계급조차 반박근혜에 섰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경찰은 촛불시위를 보장했고 법원은 청와대 앞에서의 시위를 허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지배계급이 박근혜를 버리는 대신 촛불시위를 관리 가능한 범위로 묶어두고 그것을 체제 내 개혁의 동력으로 전화시키겠다는 지배세력의 의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 헌법재판소는 8:0의 비율로 박근혜에 대한 탄핵을 선고했다.

이러한 지배세력의 의도는 지금까지 그대로 관철되고 있는데 지배세력의 이러한 의도의 관철이 가능했던 것은 변혁운동세력이 매우 약화되어 있었다는 상태를 조건으로 한 것이었다. 압도적 다수의 대중이 반박근혜로 떨쳐나섰지만 그 가운데 변혁운동의 헤게모니가 거의 없었다는 상황이 대중을 평화적 시위로 관리 가능하다고 지배세력이 판단하게 했던 것이다.

일부는 이를 두고 당시 상황을 민주-반민주 구도로 본 것이 잘못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박근혜 정권의 파쇼적 성격에 대해 반파쇼 민주주의 전선으로 대응한 것은 정확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반파쇼 민주주의 전선에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되지 못한 것은 쏘련 붕괴 뒤의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적 해체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고 그에 따라 변혁운동이 매우 약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촛불시위를 구성한 대중의 압도적 다수는 노동자였지만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는 촛불시위에 각인되지 못했다. 이렇게 촛불시위는 민중투쟁의 폭발이면서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의 부재를 보여 주었다.

이를 정리해 보면, 촛불시위는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 역량이 강고히 존재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러한 역량의 존재는 한국 사회에서 반동적 경향을 억제하고 한국 사회를 진보의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촛불시위에서 명백히 드러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의 부재는 촛불시위에서 확인된 진보의 방향의 가능성과 그 가능성의 현실화 사이에는 매우 큰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촛불시위에서 많은 대중들이 운동가요를 부르고 또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느끼고 있었지만 계급적 단결의 필요성은 전혀 각인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 요인은 사회주의를 자신의 기치로 하는 세력,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에 대해 선전, 선동하는 세력이 부재하거나 미약했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당이 부재한다는 것이 어떤 정치적 귀결을 가져오는가를 촛불시위는 명확히 보여 준 것이다.

레닌은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운동은 없다라는 말로 사회주의 운동의 대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과학적 전망의 수립, 이론의 생산, 사회주의 기치의 재정립, 그러한 기치를 중심으로 한 변혁적 세력의 결집, 나아가 당 건설 전망의 수립 등등, 촛불시위는 한국 사회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사고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과제를 던지고 있다.

이렇게 사회주의적 전위세력, 혹은 변혁세력을 통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부재하면서 촛불시위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선고로 종식되고 선거를 통해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였다. 촛불시위에서 타올랐던 민중들의 열망이 자유주의적 개혁에 흡수되는 순간이었다.

 

 

2. 문재인 정권의 개혁과 노동자계급

 

문재인 정권은 촛불시위가 없었다면 탄생이 불가능했던 정권이다. 촛불시위 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세력은 매우 위축되고 있었고 독자적 전망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리하여 반동세력을 대표하는 박근혜 정권과 노동자계급ㆍ민중세력의 대결이 주된 구도였고 자유주의세력은 사실상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면 지금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후의 구도는 어떠한가?

한국자유당으로 대표되는 반동세력은 박근혜의 구속, 그리고 적폐청산 등으로 일정하게 위축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세력은 최근의 북-미 대결 구도 속에서 안보 프레임을 타고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바른정당의 한국자유당으로의 흡수가 논의되면서 이들은 예전의 지위의 회복을 노리고 있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은 현재 압도적 지지율을 바탕으로 개혁을 내세우면서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자유주의세력의 개혁의 기치는 매우 취약하다. 북-미 대결의 구도 속에서 미국에 굴종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이들 세력은 대외적 문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이전의 박근혜 정권과의 차이를 거의 보여 주고 있지 못하다. 한편 국내적 문제에서 이들의 개혁은 매우 제한된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그러한 개혁은 노동자와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안정화라는 틀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과거 정권과 달리 시민사회세력, 시민단체로부터의 지지와 그들의 동원을 통해 자신들의 정책들을 뒷받침하면서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보충하고 있다.

노동자계급과 민중세력의 상당수는 문재인의 개혁에 대해 환상을 갖고 지지를 보내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자리위원회 등 노동의제와 관련하여 특히 그러하다. 노동운동의 상층부의 상당수 또한 문재인 개혁을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에 대한 기대는 서서히 깨져 나갈 수밖에 없는데 싸드의 폭력적 배치에서 드러나듯이 문재인 개혁의 폭은 매우 좁고 철저히 부르주아적 입장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결국은 그 반민중성과 기만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문재인 정권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주요 영역인 개혁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촛불시위의 열망에 힘입어 진행되고 있는 적폐청산은 지금 그 폭이 매우 좁아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압살했던 박근혜 정권의 적폐에 대한 청산은 지금 현재로는 민주주의의 전면적 확장과는 거리가 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블랙리스트 등이 폭로되고 있지만 그것은 자유주의세력과 반동세력과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축소되고 있다. 박근혜 정권, 그리고 이전의 이명박 정권의 헤게모니를 눌러서 자유주의세력의 확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반면에 한상균 등 양심수의 석방, 국가보안법의 철폐 등 민중적 의제는 전혀 일정에 오르고 있지 못하다. 문재인 정권은 민주주의의 확장이 노동자계급과 민중세력의 성장을 가져온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민중세력의 성장을 억제하고 견제하는 수준에서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논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적폐청산이 반동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축소되는 것을 반대하면서 민중적 의제를 일정에 올리도록 압박하고 민주주의의 확장으로 나아가도록 비판하고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노동의제와 관련하여. 현재 문재인 정권은 전교조의 합법화, 공무원의 단결권 인정에 대해 전혀 일정에 올리고 있지 않다. 문재인 정권은 1년의 시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정치적 백치로 취급하는 것이다. 1년이라는 시간은 한없이 길어질 수도 있고 투쟁 여하에 따라 단축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계급세력의 상호관계에 의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권의 선의에 기대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되며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투쟁을 통해 단결권을 쟁취해 나가야 한다.

문재인은 출범 직후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기만적인 제스춰였음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학교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물 건너갔고 여타의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소위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라는 기만적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이는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노동자계급의 분열이 자본가계급의 본질적 요구이며 따라서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이며 이에 대해서 자본가 정권인 문재인 정권 또한 노동자계급의 분열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요구를 거스를 수 없으며 따라서 기만적 해결책 이외에는 내올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노동자 스스로의 단결된 투쟁에 의해서만 해결 가능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 투쟁은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열시키는 것은 자본주의 자체라는 인식하에 전개될 때 승리가 가능하다.

또한 문재인 정권이 실업문제에 대해 내놓는 정책도 매우 한계가 있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늘려서 실업문제의 해결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것은 의도는 좋지만 자본의 축적구조를 손대지 않는 상태에서 그것은 단지 에 지나지 않는 기만책이 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 혁명, 그리고 고용없는 성장은 자본주의 축적구조 자체의 문제이다. 모든 생산이 갈수록 자동화되고, 공장 전체가 사람이 없는 스마트공장이 되고 인공지능의 발달로 지금 존재하는 수많은 인력도 해고시켜야 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고 고용없는 성장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전략은 이 사회의 지배계급인 독점자본들이 자본 간의 세계적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채택할 수밖에 없는 사활적인 전략의 문제이다. 따라서 이러한 축적구조와 무관하게 혹은 별도로 실업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 혹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접근은 촛불시위에서 드러난 청년들의 광범한 불만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일시적 방책에 지나지 않으며 실업문제에 있어서 기만책일 따름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재인 정권의 개혁의 환상성, 기만성에 대해 노동자와 민중의 다수는 아직까지 깨닫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그렇게 대중의 기대와 열망을 흡수하면서 문재인 정권은 한국 자본주의의 안정화라는 지상의 과제를 실현해 가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가 여전히 큰 것은 문재인 정권이 촛불시위로 인해 탄생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전의 박근혜 정권과 비교해 볼 때 개혁을 외치고 있고 또한 각종의 민주주의적 제스춰를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의 좁은 폭과 취약성, 그리고 그에 따라 불가피한 정책의 기만적 성격은 서서히 폭로될 수밖에 없고 대중들은 서서히 환상에서 깨어날 것이다. 이 점은 정권 출범 후 불과 4개월 만에 단행된 싸드의 폭력적 배치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다. 촛불시위에서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느꼈고 내세웠던 대중들은 부르주아적 개혁에 대해서도 그것이 대중을 소외시키고 기만하는 정책이라는 것을 깨달아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운동의 상층부의 상당수가 문재인 정권의 개혁의 떡고물에 흡수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부르주아적 개혁이 대중에게 미치는 정치적 효과, 전술적 성격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즉, 노동운동의 상층부의 부르주아적 개혁에의 흡수는 전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 차원의 문제이다. 노동운동의 일정한 흐름이 문재인에게 정치적으로 흡수당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궁극적으로 노동운동은 해체되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부르주아적 개혁에의 기대는 노동자 스스로의 단결에 기초하는 노동운동의 자주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노동운동이 사실상 해체되고 일본 사회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은 남의 일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의 노동운동에 대한 태도는 한상균의 석방에 대한 거부에서 보듯이 노동운동을 한편으로는 견제하고 나아가 억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의 떡고물을 통해 흡수하는 것이다. 분할과 배제와 억압, 흡수 정책의 병행, 즉 노동운동의 분열이 문재인 정권의 노동운동에 대한 태도이며 이는 그 정권이 자본가 정권이라는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며 단지 그것의 방식이 자유주의적이라는 점이 과거의 박근혜 정권과 다를 따름이다. 따라서 노동운동 상층부의 문재인 정권의 개혁에의 영합에 대해서 변혁적 세력은 그것의 기회주의성을 폭로하고 노동자계급의 전투성을 유지하고 계급적 독자성을 확보하는 투쟁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3. 한반도 전쟁위기와 문재인 정권

 

한편 현 정세를 규정하는 커다란 요소는 문재인 정권의 개혁과 더불어 북-미 간의 대결이다. 대결의 격화는 상호 간의 말폭탄을 불러왔으며 전쟁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북의 핵과 미사일 실험과 그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재가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전쟁위기까지 거론되고 있지만 위기의 참된 원인에 대한 해명은 부족하다. 이북의 핵과 미사일이 위기를 격화시킨다는 매우 피상적이고 천박한 분석이 제도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러한 천박한 분석은 위기의 국제적 성격, 위기를 야기하고 있는 전략적 구도에 대한 분석을 생략하고 맹목적인 반공주의에 따른 분석만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쟁위기의 참된 원인을 밝히기 위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정세, 그리고 나아가 국제적 대결구도를 살펴보자.

현상은 이북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것에서 대결이 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북의 핵과 미사일 실험에 대해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략무기를 전개하고 한-미 연합훈련을 강화하고 UN을 매개로 한 제재를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즉, 작용과 반작용이 상호 강화되면서 위기가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며 전쟁위기는 어딘가에서 정치위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어디에서 진정한 정치위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인가?

먼저 이북을 보면 이북에서 정치위기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이북은 사회주의 체제로서 공고하게 단결해 있고 각종 제재에도 굴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또한 탈북민의 추세도 김정은 정권 들어서서 감소하고 있고 경제도 서서히 성장하고 있다. 이렇게 이북에서는 정치위기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한국의 경우 박근혜 정권에 맞선 촛불시위로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고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경제위기에 대한 박근혜식 대처법이 파산하고 문재인식 대처법이 등장하여 아직까지는 잘 추진되고 있다. 이와 같이 한반도의 남과 북 양측에서는 정치위기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그러면 한반도 밖으로 눈을 돌려보자. 세계적 차원에서는 극우가 득세하고 정치적 불안정이 전개되는 국가가 많다. 즉, 2008년의 세계대공황의 영향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정치 위기가 전개되고 있다. 그러면 동아시아에서는 어떠한가? 동아시아의 가장 커다란 국가인 중국의 경우 경제와 정치의 양 방면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경우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공황에 대처하면서 G2로 떠올랐고 미국과 헤게모니 경쟁이 한창이다. 일본의 경우 일정하게 정치적 불안이 존재한다. 일본의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한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시도에 대해 그에 맞서서 호헌을 외치는 세력이 부딪히고 있고 또 경제는 장기침체에 빠져 있다. 일본의 경우 이러한 정치, 경제적 위기 상태에 대한 탈출구를 필요로 하며 일본의 아베의 경우 한반도의 위기를 조장하고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은 어떠한가?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세계대공황의 진원지였으며 현재까지 그 영향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과 위상은 현격히 추락했으며 미국의 헤게모니는 세계 도처에서 도전받고 있고 특히 중국의 부상은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바꾸고 있다. 즉, 이북과 한국, 중국과 일본, 미국 중에서 전쟁위기라는 탈출구를 가장 바라는 세력은 현격한 헤게모니의 추락을 겪고 있는 미국(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일본)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 한반도 전쟁위기의 진원지는 이북이 아니라 미국 자체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북은 리비아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침략을 목도하면서 핵무장을 불가피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미국은 그것을 빌미로 전쟁위기를 격화시키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극우의 득세는 그 나라와 사회의 위기상태를 입증하는 것인데 미국에서 트럼프라는 극우정권의 등장은 현재 미국 사회와 미국의 헤게모니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이러한 미국의 위기는 경제적 침체와 중국의 부상으로 가속되고 있다.

이러한 것이 한반도 전쟁위기를 둘러싼 대략적인 국제적 역학관계이다. 전쟁위기의 진원지로서의 미국, 위기의 격화요인으로서의 미국이라는 분석이 한반도 전쟁위기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권은 전적으로 미국에 영합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북에 대해 원유공급을 끊자는 것은 사실상 전쟁을 하자는 것과 같은 것인데 문재인은 앞에서는 대화를 말하면서 뒤돌아서는 전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은 한-미 동맹의 강화를 통해 전쟁을 억제한다고 하지만 한-미 동맹은 평화의 동맹이 아니라 전쟁동맹이다. 미국의 경우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그것을 한-미-일 동맹으로 격상시키고 강화하여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헤게모니의 추락을 상쇄하고 중국을 견제하고 나아가 한반도의 전쟁을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은 이러한 국제정세에 대해 일말의 자주적 태도도 없이 한국 민중의 이익을 희생시키면서 미국에 굴종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서 자주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사고하게 하는 것이다. 대외적 문제에서, 대미관계에서 문재인과 박근혜가 차이가 없다는 것은 한국에서 신식민지성의 문제가 단지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자체의 문제, 사회구성체 차원의 문제, 한국 자본주의의 본질적 속성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사회의 신식민지성을 극복하려 하고 자주성을 자신의 것으로 하는 세력은 자본가계급이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민중세력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권의 대미 굴종을 비판하며 노동자, 민중 스스로 미국에 반대하고 전쟁위기에 반대하고 한-미-일 전쟁 동맹의 해체를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위기의 근원을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폭력 모두를 반대한다는 소부르주아 평화주의도 비판되어야 한다. 소부르주아 평화주의는 현상은 보지만 전쟁위기의 근원이 제국주의라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것이며 동아시아의 한-미-일 전쟁동맹을 해체하는 것임을 제기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민중을 결집시키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한반도의 전쟁위기에 대한 궁극적인 극복은 전략적 차원에서 한국 사회의 신식민지성을 극복하고 자주성을 확보하는 문제에 다름 아니다. 다만 80년대와 다른 것은 한반도의 전쟁위기의 극복이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대결, 헤게모니 경쟁을 조건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미국와 중국의 대결은 동아시아 전체 지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있어서는 하나의 조건일 따름이다. 한반도의 당사자이자 주체는 남북한의 민중이며 민중이 주체가 되는 반제 투쟁, 반전 평화투쟁이 전쟁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 요소이다.

 

 

4.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위한 조건

 

문재인 정권의 개혁에 노동운동이 용해되는 현상, 촛불시위로 타올랐던 민중들의 열망이 부르주아적 개혁으로 흡수되고, 자본주의의 안정화에 봉사하고 또 촛불정국에 이어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현실은 노동자계급과 민중세력의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다.

부르주아적 개혁에 노동운동이 지속적으로 용해된다면 한국 사회의 진보의 일체의 전망은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저지선이 필요하며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의 문제를 전략적 차원으로 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은 전쟁위기를 막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버팀목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전쟁위기가 지배계급의 정치위기로 전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여야 지배계급과 제국주의는 전쟁위기의 고조를 멈추게 되는데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은 전쟁위기를 정치위기로 전화시킬 수 있는 지렛대이기 때문이다.

쏘련 붕괴 뒤 30년 가까운 세월이 반동기로서 흘러갔고 세계사적 조류로서 반동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는 극우가 득세하여 그 사회를 후퇴시키고 있다. 이러한 세계사적 조류는 한반도에서는 전쟁위기의 고조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촛불시위가 있어서 극우정권을 퇴진시켰지만 그러한 상황이 세계사적 반동을 극복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문재인 정권의 부르주아 개혁에 용해된다면 한국에서 진보의 전망은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계급적 지형과 계급대립구도를 철저히 분석하면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지켜내고 나아가 한국사회의 진보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세워내는 것이 필요하다.

헤게모니는 직접적 힘과는 다른 것이다. 헤게모니는 주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존재하는 각 세력 간의 관계에 있어서 주요한 위치를 점하고 그 관계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헤게모니는 적어도 한 세력으로는 인정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한 세력으로서 인정되지 못하면 헤게모니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당하는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이 헤게모니를 수립하고 헤게모니를 행사하려면 적어도 하나의 독자적 세력으로 자신을 정립해야 한다. 그것이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의 문제이다. 즉,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은, 부르주아계급으로부터의 독립성은, 헤게모니의 전제조건이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은 이 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이 차지하는 고유한 위치를 자각하는 문제이다. 노동자계급은 생산의 주역이라는 것, 그리고 동시에 생산수단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무산자라는 것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의 참다운 의미는 노동자계급이 생산의 주역이면서 동시에 무산자라는 그러한 위치로 인해 노동자계급이야말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계급을 폐지하여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유일한 세력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에 이를 때만이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은 흔들림 없이 성립할 수 있다. 즉, 사회주의적 의식을 노동자계급이 가질 때만, 사회주의의 기치를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것으로 할 때만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은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는 현실적으로는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당을 건설하는 문제이다. 사회주의 당을 가질 때만 노동자계급의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독자성, 정치적 독자성이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기치를 재정립하는 문제, 써클이 아닌 당적 결집을 사고하는 문제는 전략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정세적 의미, 전술적 의미를 띠는 문제이다.

그러면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의 문제에 기초하여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사고해 보자.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은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세력으로 승인되는 문제였다면 헤게모니는 그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헤게모니는 직접적 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한 사례는 러시아 혁명에서 레닌과 볼쉐비끼의 전술에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 혁명에서 노동자계급은 매우 소수였다. 즉, 직접적 힘은 매우 적었다. 그러나 레닌은 러시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주장했다. 멘쉐비끼는 이와 달리 러시아의 당면 혁명이 부르주아 혁명이기 때문에 19세기의 유럽의 부르주아 혁명들과 같이 부르주아지가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러면 레닌이 소수에 불과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주장한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노동자계급은 생산에서의 지위로 인해,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성립시킬 유일한 세력이라는 점으로 인해 그 사회에서 소수라 할지라도 동맹을 결집시킬 능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러시아에서 압도적 다수는 소농민이었지만 이들이 부르주아 혁명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를 성립시킬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하는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주위에 농민을 집결시킬 수 있다는 것이 레닌의 전략이었다. 이것은 헤게모니 개념의 참다운 의미를 보여 주는 사례이다.

그러면 레닌보다 뒤에 헤게모니 개념을 발전시킨 그람시를 살펴보자. 그람시는 러시아 혁명 후 서유럽에 닥쳤던 혁명적 물결이 퇴조하면서 혁명의 패배를 겪었다. 그러면서 그람시는 서유럽 혁명의 조건을 투철하게 사고했다. 이 과정에서 그람시는 헤게모니 개념을 발전시켰는데 그람시는 서유럽은 러시아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시민사회가 고도로 발전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지배계급은 폭력만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를 매개로 하는 헤게모니적 지배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람시의 표현으로는 강제의 철갑에 의해 보호되는 헤게모니는 지배계급이 한편으로는 국가의 본질인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헤게모니적 지배, 즉, 피지배계급의 동의에 기초한 지배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람시는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지의 이러한 헤게모니에 도전해야 하며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적 지배에 맞서서 시민사회 곳곳에 진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의 문재인 정권 또한 헤게모니적 지배를 시도하고 있다. 민주주의적 제스춰, 시민사회 단체를 동원한 동의의 기제의 활용, 노동자계급의 분열 정책에 기초한 배제와 흡수 전략은 그람시가 말한 헤게모니적 지배와 양상이 유사하다. 따라서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문재인의 개혁에 대해 소극적으로 방어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스스로 헤게모니를 성립시키고 행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회주의의 기치를 자신의 것으로 하는 것을 기초로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부르주아지와 문재인 정권에 맞서는 헤게모니 투쟁을 해야 한다. 부르주아 개혁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농민과 빈민, 소부르주아 하층을 자신의 주위에 결집시키는 변혁의 전망을 제출해야 한다. 문재인이 제기하는 개혁의 쟁점에 대해 자신의 독자적 입장을 정립하고 대립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한반도 전쟁위기, 동아시아의 전략구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출해야 한다.

그람시는 파시즘의 옥중에서 헤게모니 개념을 벼려내었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의 폭력적 지배와 달리 자본가계급의 헤게모니적 지배를 의미한다. 이에 맞서는 유일한 길은 노동자계급이 문재인 정권과 헤게모니 투쟁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헤게모니 투쟁은 문재인 정권하에서 불가피하며 이 투쟁에서 승리할 때만 노동운동은 문재인의 개혁에 용해되는 위험에서 벗어나 하나의 세력으로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의 기치를 자신의 것으로 하면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수립하는 길을 가야 하며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계급적 단결의 전망을 열어 가야 한다. 이러한 점을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위한 조건으로 정식화해 보자.

먼저,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적 독립성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데올로기의 독립 없이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독립성의 문제는 노동자계급이 현재 이데올로기적 해체상태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회주의의 기치를 재정립하는 문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위치는 과연 무엇인가? 자본주의의 비약적인 생산력의 발전이 자본주의적 관계와 지속적으로 양립가능한가? 사회주의는 과연 무엇인가? 사회주의는 시장과 양립하는가 아닌가? 쏘련을 비롯한 20세기 사회주의는 지금의 시점에서 노동자계급에게 과연 무엇인가? 사회주의가 20세기 후반의 커다란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승리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인가? 등등의 문제에 대해 답을 내와야 하며 이를 통해 사회주의의 기치를 다시 가다듬고 깃발을 세워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둘째,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 중에 이데올로기의 독립성과 더불어 중요한 또 다른 것은 자신의 주위에 동맹을 결집시킬 수 있는 전망이다. 소수의 자본가계급을 제외한 압도적 다수의 민중을 노동자계급의 주위에 결집시키는 것은 곧 변혁전략의 문제이다. 이는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총체적 분석을 요구하는 것이며 각 계급세력을 분석하여 동맹과 중립화세력을 설정하고 각 동맹세력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태도를 정식화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농민에 대하여, 빈민에 대하여, 중소영세상인에 대하여, 소부르주아 하층에 대하여 노동자계급은 무엇을 매개로 동맹관계를 구축할 것인지를 설정해가야 한다.

셋째,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성립하기 위해 결정적 관건이 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당의 건설의 문제이다. 그러한 당이 없다면 헤게모니적 실천은 단지 맹아상태로 존재할 뿐 참다운 헤게모니 투쟁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은 광대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는 자본과 노동의 모순을 격심한 정도로 끌어올리고 있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의 사회 곳곳의 부르주아 관계의 억압성은 점차 높아지고 그것의 기만성은 정도를 더해 가고 있다. 이러한 점, 자본주의의 성숙은 그 자체가 사회주의 당의 성립을 위한 물질적 전제조건들이 성숙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물질적 조건, 객관적 조건에 조응하는 주체적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 중요하다. 물론 그러한 주체적 조건의 확보는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특히 강조해야 할 것은 노동운동의 대열 내에 존재하는 부르주아 개혁 세력을 타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력은 현 시점에서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가로막는 주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적 독립과 정치적 단결의 구심을 서서히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

 

성주 주민들의 탄식은 곧 이 사회의 민중들의 탄식이다. 싸드를 막기 위해 문재인 정권을 찍었건만 이렇게 배신할 줄은 몰랐고 이제는 영원히 문재인 정권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는 성주 주민들의 인식은 앞으로 한국의 민중들이 겪게 될 인식이다. 촛불의 영향으로, 그리고 출범한 지 얼마 안 되어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은 고공비행을 하고 있고 그 정권의 헤게모니가 이 사회에 관철되고 있지만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개혁의 폭은 매우 좁고 취약하며 또한 매우 기만적이다. 인천공항을 방문하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물 건너갔다. 이러한 양상은 앞으로 문재인 정권의 개혁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노동운동이 그러한 부르주아 개혁에 흡수당하고 있고 전교조의 사례에서 보듯이 노동운동이 상처를 입고 분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에의 기대와 환상이 깨져나가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운동이 용해되는 것을 막아내고 올바른 전략적 구도를 설정하는 것은 긴급한 문제이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의 폭력적 지배와 달리 헤게모니적 지배를 행사하고 있다. 동의에 기초한 지배! 강제의 철갑에 의해 보호되는 헤게모니! 이러한 헤게모니적 지배에 맞서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세워내는 것 이외에는 답이 없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위한 조건은 이데올로기의 문제, 전략의 문제, 당건설의 문제로 압축된다. 물론 이러한 과제가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노동운동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들 문제를 총체적으로 사고하고 한편으로는 방어선을 치면서 한편으로는 공세를 준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전쟁위기는 세계사적 반동기라는 시대적 모습이 한반도에 투영되는 모습이며 한국 사회의 계급대립구도를 제약하는 조건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단련되고 있고 누가 진정한 평화세력인지,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는 국제적 조건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서서히 깨달아 갈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개혁은 한국 자본주의의 안정화를 모토로 한다. 그를 위해 문재인 정권은 노동운동을 분열시키고 흡수하여 부르주아 개혁의 동력을 보충하려 한다. 이에 대해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개혁의 부르주아적 성격, 반민중적 성격을 폭로하고 민주주의 확장과 민중생존권의 보장이라는 전술적 과제의 달성과 더불어 전략적 진지를 건설하고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노/사/과/연>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Oct 31st, 2017 | By | Category: 정세 | 조회수: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