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과연 ≪자본론≫ 제1권 세미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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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권|≪자본론≫ 1권 세미나 팀원

 

나는 울산에서 태어나 그곳의 정서를 갖고 자란 20대 중반의 청년이다. 울산의 역사는 박정희 정권하 공단 설립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모두(적어도 내가 커오면서 만났던 사람들은) 보수정당을 좋아하고, 박정희에 대한 애틋한, 존경어린 향수를 지닌 사람들이다. 나의 부모님 또한 그런 분들이시며, 심지어 박정희의 후계자인 전두환을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라고 자랑스레 타인에게 말하고 다니는 분들이시다.

‘저곳이 박정희 대통령께서 하루 묵다 가신 곳이다.’, ‘이곳이 박정희 대통령께서 공단 설립의 첫 삽을 뜨신 곳이다.’라는 장소에 대한 일화들과 함께 박정희 전설은 부모님에게서 나에게로 전해졌고, 그런 가정환경하에서 나는 ‘박통’과 ‘전통’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자랐다.

그런 내가 정치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국가를 살리자며 금을 국가에 팔던 TV 속 국민들, 그리고 그들이 보낸 경제회생의 염원에 힘입어 대통령이 된 김대중을 보게 되면서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한 언론 앵커가 말했던 찬사는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건국 이래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해 우리는 진보한 것입니다.’

당시 나는 그 말을 듣고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을 꼬맹이임에도 자랑스러워했다. 비록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지 못한 것을 부모님은 매우 아쉬워하셨지만, TV에서 저토록 칭찬하고 있는데 아쉬울지언정 잘못된 것이 아니며 최선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적 그 ‘뿌듯함’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한국의 역사를 배울 때, 3·15 부정선거 4·19 혁명, 5·16 쿠데타,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등의 폭력과 혼란, 저항의 시대가 나의 출생 이전이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지금처럼 ‘평화로운 정권교체’가 될 수 있는 시기는 그야말로 바른 역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노무현 후보가 김대중 이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는 민주주의가 한층 성숙했다고 매우 기뻐했고,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는 왠지 옛날의 안 좋은 부분들을 국민들이 긍정해준 것 같아서 슬펐지만, 기분 나쁠지언정 ‘이렇게 정권교체가 번갈아가면서 가는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당연히 수긍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무현과 김대중이 죽었을 때는 매우 슬펐고 이명박 정권에 대한 왠지 모를 증오가 생겨났었고, 당시 정권이 과거 회귀적인 인상을 풍기는 정책과 발언이 보이자 불안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 간의 정권 장악을 위한 정치게임에 내가 어이없게도 몰입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학교에서 맑스 정치경제학 수업을 처음으로 수강하게 되면서이다. 하지만 이 수업에 대한 인상이 처음부터 좋지는 않았다. 나는 흔히 이런 말들을 들어왔다. ‘공산주의는 실패한 체제이다. 소련을 봐라.’, ‘조별 과제는 공산주의가 실패한 가장 좋은 예.’, ‘스탈린과 모택동이라는 독재자 악마를 낳는 것이 공산주의.’,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다. 고로 모든 것을 나누는 공산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하에선 숟가락 하나조차도 국가의 것이며 개인의 것은 없다.’

그러니 어떤 선입견과 인상을 갖지 아니하고는 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예컨대, 그 수업을 함께 수강하려 했던 친구는 첫 수업을 듣고는, ‘빨갱이 사상에 혹여 물들까봐 수업을 들을 수 없다.’라면서 수강을 거부했다. 다행히 나 이전에 용기를 갖고 이론을 중립적으로 바라보겠다고 생각하며 수업을 들었던 친구가 ‘매우 훌륭한 수업’이라면서 나에게 수강을 적극 추천을 해주었기 때문에 나도 그 자세를 본받아서 최대한 색안경을 벗고 수업을 듣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 수업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특히 그러했던 것은 내가 지금까지 ‘공산주의에 대해 흔히 들었던 모든 말들’이 전부 다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하나부터 열까지 단 하나도 정말로 참인 말들이 없었다. 심지어 그것들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수업의 선생님이 아니라 맑스 본인이 100년도 더 전에 반론해두었던 문장들에서 알 수 있었다는 것에서 또 한 번 놀랐다.

이 세상이 이렇게나 맑스 정치경제학에 대한 무지와 기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인지, 지금 이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에 엄청난 사기와 허위가 존재하고 있는지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가십으로 삼을 만한, 혹은 어떤 시민운동가들이 신봉하는 미스테리한 ‘음모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미 나의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그 ‘거짓’들로부터 세계에는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해 안다고 자랑스레 말하며 그것을 실패한 체제라고 단언하는 TV 속 유명인사들, 학자들, 정치인들 모두가 실은 손톱 만큼도 그것에 대해 알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나의 머릿속은 그때부터 매우 혼란스러웠다. 옳고 그름이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 ‘진리’의 문제였다. ‘그림자 정부’니, ‘프리메이슨’이니, ‘케네디의 비밀’이니, ‘화폐전쟁’이니 하는 가십거리가 되버린 음모론이 제기하는 역사적 사실의 문제를 넘는 것이었다. 무엇이 ‘옳음’이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당시 인터넷에선 ‘나꼼수’라는 매체가 유행하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이 꾸미고 있다고 말하는 정치적 음모들이 은근히 대중들에게 퍼져나갔고, ‘이명박이 노무현을 암살했다.’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꼼수’들을 그 정의감 넘치는 기자님들께서 취재하여 확인해주시면 대체 무엇이 되는가? 민주당의 재집권? 노무현의 복권? 그러면 우리네 세상은 좋아지는가?

내가 그런 혼란 속에 살고 있을 때, 수업의 선생님께서는 노사과연 세미나를 추천해주셨다. 맑스가 쓴 ≪자본론≫을 읽고 정치경제학에 대한 이해의 기초를 더 쌓으라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에 나 또한 노사과연의 ≪자본론≫ 제1권 읽기 세미나에 참가했다.

≪자본론≫ 1권을 읽으며, 이전에 수업에서 들었던 개념들, 상품, 사용가치, 가치, 노동, 노동력, 화폐, 유통, 생산, 자본, 불변자본, 가변자본, 생산수단, 노동수단, 노동대상, 잉여가치, 가치증식과정, 노동과정, 절대적 잉여가치, 상대적 잉여가치, 노동일, 임금에 대한 복습을 하였다. 그러면서 이들에 대한 기존의 나의 선입견들은 더욱 틀렸음이 명백해졌다. 그리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었다. 봉건제로부터 이어지는 근대 자본제의 발전, 교환, 매뉴팩쳐, 분업, 협업, 기계제 대공업, 기계, 가내공업, 농업, 공장법, 상업, 진정한 매뉴팩쳐 시대, 시초축적, 토지수탈, 구빈원, 축적, 집중, 집적, 상대적 과잉인구, 진정한 식민지, 국채, 조세, 보호무역, 무역전쟁, 자기노동에 기초한 사적 소유, 타인노동에 기초한 사적 소유, 생산수단의 공동점유에 기초한 개인적 소유라는 역사적 개념들을 배울 수 있었다.

책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 말고 특히 세미나에서 유익했던 점은 팀장님과의 질답(질의응답)이었다. 세미나는 1주일에 한 번 세미나에 참가하는 분들이 정해진 분량대로 발제문을 작성해와 발표하고, 내용에 관해 팀장님의 코멘트를 듣고 팀원들이 질문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내용에 대한 해석에 관해서 환류를 받고 시정하는 것 말고도 팀장님께서 항상 지금 이 시대와 관련지어 ≪자본론≫의 내용이 발전되는 것임을 설명해주셨다. 왜 국가재정이 부족하다면서 직접세는 상대적으로 증세하지 않고 오히려 감세하면서 간접세는 언제나 증세하는가, 국가재정은 왜 자꾸 부족하다고 할까,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이명박 정권은 왜 그렇게 사람들을 못 살게 굴었을까, 현대기아차의 노동자들은 왜 그렇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인가, 사랑의 리퀘스트는 대체 왜 있는 걸까, 고용 없는 성장은 왜 일어나는 걸까, 세상은 풍요로워졌는데 노숙자와 거지는 왜 아직도 많은가, 여성운동가들이 지닌 맑스에 대한 편견, 환경 및 생태운동은 왜 일어나는 것인가, 세계체제론의 모순, 농촌은 왜 이렇게 가난한가, 이진경의 기계적 잉여가치에 대한 반론, 천재가 100명을 먹여 살린다는 헛된 이야기에 대한 반론, 정신노동자는 왜 이렇게 많아진 것인가 등등. 현상을 다른 현상을 끌어다가 설명하지 않고, ≪자본론≫에 나오는 바에 기초하여 그것들에 대한 논리적, 이론적, 과학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전에는 논리, 이론, 과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20여 년간 그것들을 학교에서 배웠음에도 말이다. 지금도 그것에 대해 자신 있게 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안다.)

세미나 팀장님은 그것 외에도 책의 내용과 관련한 다양한 비화들과 문장들도 해설해주셨는데, 그것은 가끔 지루해질 수 있는 책읽기를 재미있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자본론≫에 나오는 흔히 위인이라고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사생활이 썩 좋지 않았다던가, 엥겔스와 맑스가 주고받았던 여러 편지의 내용, ‘로마 공중그네’와 상품교환의 예, 가치증식과 ‘로두스 섬 이야기’, 소설 ‘왕자와 거지’와 피의 입법, ‘러다이트 장군’ 이야기 등등. 기타 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든 여러 내용들을 배웠다. 세미나에서 나 개인에게 또 다른 도움을 주었던 것은 세미나 팀원들이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지 않은 나에게 고독감을 씻을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그리고 팀원들 중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 동생뿐 아니라 오랫동안 현장에서 운동가로 활동하신 어르신들도 계셨다. 그분들께서는 몇 십여 년간 자신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가끔 장난스레 해주셨는데, 내가 책으로만 배워왔던 불의와 고난들이 실제였다는 것을 직접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자본론≫의 내용, 이 노사과연 세미나의 형식상 특징, 그리고 세미나에 참여한 팀원들, 이 세 요소들은 이전의 정치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완전히 바꿨고, 확고하게 만들어주었다. ‘투쟁’, ‘단결’에 대한 알 수 없던 불안감과 적의를 가지고 있던 나의 마음을 그러지 않도록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가 되도록 만들었다. 또 누군가가 언론에서 말하는 대로, 학자가 말하는 대로, 또는 어디서 주워들은 대로 ‘경제가 어쩌고’할 때 ‘그렇지 않다. 이러이러하기 때문이다.’라고, ‘사회주의가 어쩌고’할 때 ‘절대 그렇지 않다. ≪자본론≫에 이렇게 쓰여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2013년 노사과연 ≪자본론≫ 제1권 읽기 세미나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여러모로 정말로 ‘값진’ 것이었다. (값싼 세상은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맑스 정치경제학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분들 모두가 단 한 번이라도 이 세미나에 참가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 세미나는 ‘강연’하지 않는 곳이며, ‘읽고’, ‘질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말로 자발성이 필요한 방식이기 때문에,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결코 교회나 절처럼 설문을 듣고 그것에 고개 끄덕이며 그 감정과 신념을 세뇌받는 방식이 아니다. 내 친구처럼 ‘빨갱이 사상에 물들까봐 수업을 들을 수 없다.’했던 그러한 비겁한 자세는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양심이 있고, 논리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물들’ 일은 없을 것이다.

개인 사정 때문에 후속 세미나에는 참여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서가에 꽂힌 ≪자본론≫ 서적과 세미나 자료를 보면서 계속 그 시기와 장소를 되새기며 언젠가 다시 참여할 날을 기다릴 것 같다. <노사과연>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Sep 22nd, 2013 | By | Category: 2013년 09월호 제93호, 회원마당 | 조회수: 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