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조운동 30년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오늘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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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 회원

 

 

 

1.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되돌아보는 이유는 2017년 지금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함이다

 

공자 왈 맹자 왈 할 때의 공자 왈, 인간의 나이 30이면 이립(而立)이라 하여 스스로 일어서는 자립(自立)할 나이라 했다.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상 가장 대중적 투쟁을 전개했다고 평가되는 1987년 7, 8, 9 노동자 대투쟁이 전개된 지 30년이 되었고 공자에 의하자면 한국 노동운동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이제 스스로 자립하고 일어서야 하는 이립(而立)의 시기가 된 셈이다.

그러나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노동운동은 자립은커녕 노동운동 안팎으로 위기적 상황이라는 진단에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2017년 현재 한국 노동운동이, 평하기 좋아하는 평론가들뿐만 아니라 한국 노동운동의 주체들 스스로도 위기적 상황이라고 진단을 하고 있는 것일까?

노동자 대투쟁을 겪었던 세대뿐 아니라, 새롭게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사측에 의해 길거리로 내몰려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있어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어떠한 의미로 다가서고 있는 것일까? 회사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조합에게도 내몰려 철탑으로, 고가 위로, 그리고 천막으로 내몰리고 있는 2017년 우리네들에게 있어 30년 전에 벌어졌던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지금의 한국 노동운동 주체들에게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어찌 보면 생소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가 1920‒3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치면, 한국 노동운동 역사는 100년도 채 안 되었다. 100년의 역사도 채 안 된 2017년 오늘, 우리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되돌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되돌아봄으로써, 2017년 지금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해 보려 한다.

우리가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되돌아보는 이유는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와 멋지다 하면서 자위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가 다시 30년 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바로 지금 우리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함이며, 해소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함일 것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그리고 30년이라는 시간을 되돌아봄은, 지금의 위기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함일 것이다. 역사를 학습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는 단지 교과서에 갇혀 있는 박제화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존재하는 우리에게 현재를 진단하고 내일을 설계하기 위한 지침이기 때문이다.

 

 

2. 노동운동 발전의 밑바탕은 자본주의 발전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적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되돌아보려 한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은 무엇이며, 그리고 어떻게 발전하는 것이고 어떠한 기준에 의해 그 발전 법칙이 규정되는 것일까?

노동자의 노동운동은 그리고 노동운동의 발전은 노동자가 속해 있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붕어가 없는 붕어빵은 있지만 노동자가 없는 노동운동이란 있을 수 없다. 노동운동은 노동자가 생성된 이후부터 가능한 운동이며, 자본주의 사회는 바로 노동운동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을 만들었고 성장시켰기 때문에, 노동운동의 발전은 바로 자본주의의 발전을 토대로 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발전과 발전의 법칙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발전 법칙을 먼저 규명해야 한다. 그 이유는 노동운동의 밑바탕이 자본주의의 구조와 그 발전의 법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 공동체의 필요에 의해 재화가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이윤추구를 위해 모든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는 사회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생산의 특징은 ① 상품생산 경제, ② 생산의 무정부성, ③ 노동력의 상품화로 집약된다.

상품생산 경제는 생산자들이 각각 사회의 필요한 노동생산물의 생산을 분담하여 그 일부만을 생산하는 사회적 분업에 의해 생산되지만, 생산수단이 사회 전체의 공동소유가 아니라 부르주아지에 의해 사적으로 소유됨으로써 사회적 분업에 의한 생산이 상호교환을 거쳐 사회적 생산물로서 모습을 나타낸다. 이렇게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생산의 사회적 성격은 상품에 내재되어 있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와의 모순으로, 그리고 구체적 유용노동과 추상적 인간노동의 대립으로 종국적으로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생산의 무정부성은 사회적 재생산의 과정이 사회 전체 즉 공동체 의지에 의한 계획된 생산이 아니라 각 생산 단위의 자기 의지에 의한 개별적 생산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산의 무정부성은 개별 생산의 생산 관련한 행동이 이윤추구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에 나타나며, 이로 인한 생산과 소비의 모순으로 인해, 생산의 무정부성의 결과로 과잉생산으로 인한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주기적(대략 10년의 주기로)으로 발생한다.

또한 개별 자본은 이윤추구를 위한 무계획적 생산뿐 아니라, 개별 자본 상호 간의 경쟁 과정에서 자본 간 흡수합병이라는 자본의 집중 과정과 노동자가 창출하는 이윤의 극대화(자본의 집적) 과정을 통해 점차 거대화되는데 이를 자본의 집중・집적 과정을 통한 독점자본화라 할 수 있다. 독점자본화는 개별 자본의 거대화의 진척임과 동시에 노동자계급에게는 노동 강도의 강화, 장시간 노동시간, 실업, 임금 저하, 빈곤화 등 곤란을 강요함으로써 자본주의 발전 그 자체는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간의 대립의 정도를 심화시키게 된다.

 

 

3. 노동운동의 합법칙성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성에 의해 그리고 선진 활동가들의 올바른 지도・집행에 의해 좌우된다

 

노동운동의 발전 과정도 하나의 역사적 과정인 한, 자본주의 사회의 성장 및 발전의 기본 법칙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노동운동의 합법칙성은 노동운동의 점진적이면서 자연성장적인 발전이 아니라 패배와 승리, 정체와 비약의 과정을 통하는 이른바 사적 유물론에 의해 성장한다. 노동운동의 합법칙성은 정체와 비약 그리고 패배와 승리의 국면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노동운동의 주체적 조건과 향후 투쟁 방향을 전망하는 과학적 연구 과정에서 나온다.

노동운동의 자연발생적 성장은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밀접하게 조응한다. 즉 경제가 어려워져 노동자들의 삶이 팍팍해지면 그만큼 자연발생적 노동자 투쟁이 폭발하며 이러한 상황은 역으로도 나타난다. 생산의 무정부성과 이윤율의 경향적 감소 법칙으로 인한 자본주의 사회의 주기적 경제위기는 노동자계급에게 자연발생적 대중투쟁을 요구한다. 경제위기 즉 공황기에는 소자본의 대규모 파산과 함께 거대화된 독점자본의 독점화라는 자본의 집중 과정이 진행한다. 또한 동시에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자본의 집적 과정이 고도화되면서 대규모의 실업과 임금 삭감 등 노동자의 고통이 수반된다. 이러한 노동자의 고통은 노동자 대중의 자연발생적 투쟁을 불러오는데 이러한 노동자 대중의 자발적 투쟁은 자본주의 경제위기 즉 공황 주기에 연동되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자발적 노동운동의 성장은 자본주의 경제위기의 주기성에 따라 나타나며 이는 점진적인 성장과 급격한 성장을 반복하는 사적 유물론에 규정을 받는 노동운동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이다. 노동운동의 일반적 합법칙성에 대한 높낮이는 노동자 대중의 투쟁력에 의해 규정이 된다.

그러나 노동자 대중의 투쟁력이 아무리 높아도 무조건 승리하지는 않는다. 노동자 투쟁의 승리는 노동자 대중의 투쟁성에 의해 담보되는 것이 아니라 투쟁성을 전제로 목적의식적인 선진 활동가들의 지도・집행력이 담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해방이라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명확한 전제하에 전략과 전술에 대한 명확함만이 노동자 대중의 자연발생적 투쟁을 승리로 안아올 수 있다.

 

 

4. 30년의 역사의 출발점, 87년 노동자 대투쟁

 

1987년 7, 8, 9월 3개월 동안 진행된 노동자 대투쟁은 공돌이 공순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던 산업역군이, 사회발전의 주체로서 노동자라는 이름을 되찾는 인간 선언의 장이었다. 장시간 노동과 살인적인 노동 강도 그리고 최소한의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살인적 노동조건과 노동조합이라는 노동자 대중조직을 가지지 못했던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의 산업역군들이, 3개월의 투쟁을 통해 당당하게 노동자로서 인간임을 선언한 자리였다.

 

아 대한민국 (노가바―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흔히 불렀던 노랫말)

 

방세는 하늘 위로 치솟고 임금은 바닥에서 빌빌빌 /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우리와 거리가 먼 곳

장시간 노동에, 피곤에. 휴식도, 나들이도 못하고 / 우리의 조그마한 꿈조차 산산이 부서지는 곳

원하는 것은 돈이 없어 살 수가 없고 / 뜻하는 것은 시간 없어 할 수가 없네

이렇게 우린 언제까지 살 수가 있나 / 이제는 일어나 소리 높여 외쳐 부르세

아 – 아 임금 인상하라 시간 단축하라 / 아 – 아 함께 뭉쳐 승리하리라~~~~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87년 7월 5일 울산의 현대엔진 노동조합 창립총회를 시작으로 9월 중하순까지 전개된 한국 노동운동 최대의 대중적 투쟁이었다. 3개월 간 진행된 노동자 대투쟁은 전체 기간 동안 총 3,241건의 쟁의가 발생했고, 하루 평균 44건의 파업 및 투쟁이 전개되었다. 87년 6월 말 현재 2,449개의 노동조합과 906,000여 명의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었는데,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인 87년 12월 말 현재 3,532개 노동조합에 1,170,000명으로 노동조합 조합원수가 증가했다.

또한 노동자 대투쟁은 한 개의 공장, 하나의 지역에서만 벌어졌던 투쟁이 아니라 전 공장에서, 전 산업에서 그리고 전 지역에 걸쳐 일어난 최대 규모의 노동자 대중투쟁이었다. 대부분의 노동자 투쟁이 노동악법의 틀을 넘어 선파업 후협상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으며 파업 기간 동안 공장에서의 프로그램 진행과 함께 공장 밖 가두로 진출해 지역 시민과 결합했던 투쟁의 모습을 보였다.

노태우의 6.29 선언으로 일단락되었던 6월 항쟁은 노동자 대중에게 노동자계급의 요구와 이해를 가지고 투쟁할 것을 요구했다. 6월 항쟁의 결과물인 6.29 항복문서(직선제 개헌, 사면ㆍ복권과 시국사범 석방, 언론의 자유 등)는 노동자 대중에게 그 어떠한 민주적 권리를 규정하는 조치도 없었다. 공돌이 공순이로 사회적 취급을 받으며 세계 최장시간의 노동시간과 저임금, 살인적 노동 강도와 군사적 병영통제에 시달리던 노동자 대중에게 있어서 노동자 스스로의 투쟁만이 노동자 대중의 제 민주적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는 투쟁의 학습 효과를 준 것이다. 또한 6월 항쟁은 비록 조직적 참여를 하지는 못했지만 개별적으로라도 참여했던 노동자들에게 투쟁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승리에 대한 확신을 주었고, 개별 공장이 아닌 가두 투쟁의 과정에서 내가 아닌 우리라는 연대 의식을 심어 주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는 노동자로서의 인간 선언과 함께, 신규 노조를 확대시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는 투쟁의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노동해방을 비롯한 자주와 민주 그리고 연대라는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투쟁 전술에 있어서는 공장 담을 넘는 가두 투쟁을, 그리고 구사대 폭력에 맞선 노동자 정당방위대의 폭력을, 최루탄과 구속 연행이라는 공권력에 맞서 화염병과 쇠파이프라는 자위적 전술을 익혔고, 하나가 아닌 우리라는 연대 투쟁 전술을 새롭게 익히게 되었다. 또한 한 푼의 임금 인상이라도 노동조합 결성과 집단적 교섭 그리고 파업 투쟁을 통해 그리고 자본과 정권을 상대로 그리고 그들의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와 경찰, 군대 등 폭력적 국가기구를 상대로 투쟁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치 투쟁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성과를 낳았다. 이외에도 투쟁의 과정에서 획득한 소중한 노동문화(노동문학, 시, 노래, 풍물, 율동, 그림, 노보 등)도 있었다.

이러한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는, 이후 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노협)의 건설과 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의 건설이라는 노동조합 차원의 전국적 조직 건설, 그리고 <평등세상을 여는 노동자회>(기아차), <노민추>(기아정기), <현장조직 건설 추진위>(대우차), <평등세상 실노회>(대우케리어), <민투위>(현대차) 등 기업 차원에서의 선진 현장활동가 조직의 건설이었다.

90년 전노협과 95년 민주노총 건설로 이어지는 전국 단위 노동조합 건설과 기업별 현장조직 조직화뿐 아니라 연대 단위가 88년 5월 현대엔진 노조 탄압 저지 투쟁을 위해 노조탄압저지 전국노동자공동대책협의회(이하 공대협, 이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로 개편)을 건설하고, 노동조합 차원에서 노동법 개정 투쟁을 위해 88년 6월 노동법 개정 전국노동조합 특별위원회(이하 노조특위)를 구성하여 이후 공대협과 노조특위가 모여 전국 노동법 개정 투쟁본부를 구성하고 같은 해 11월 연세대에서 5만여 노동자들이 모여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는 등의 노동단체라는 선진 활동가조직과 노동조합의 공동 연대 투쟁의 경험을 확인시켰다.

 

 

5.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년의 역사

 

노동운동 발전의 밑바탕은 자본주의 생산의 발전에 있다. 자본주의 생산의 발전은 자본의 집중과 집적의 과정에서 자본의 거대화가 진척되면서 노동자계급의 고통과 노-자 간의 대립의 폭과 깊이를 수반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자 대중의 자연발생적 투쟁이 투쟁력에 조응하며 점진적 혹은 급진적 성장을 이뤄 왔으며, 노동해방으로 무장한 선진 활동가들의 목적의식적 지도・집행 활동에 따라 일시적 승리나 혹은 패배를 맛보게 된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 자본주의는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끝난 직후인 1988년 말부터 1989년, 1997년, 2009년, 2014년 등 약 10년을 주기로 경제위기가 나타났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전개된 지 30년이 된 2017년 현재는 2014년 경제위기기 지속,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1989년 경제위기는 생산의 극대화와 이윤율의 저하로 인해 수많은 자본이 생산에 재투자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과 증권 등 투기산업으로 투자되면서 나타났다. 이후 1997년 경제위기는 IMF 경제위기로 나타났고 2009년 경제위기는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한복판에서 2010년 유럽의 재정위기와 함께 나타난 경제위기이다. 그리고 2008년 미국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 재정위기의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13년 중국의 경제위기의 한가운데서 나타난 2014년 한국 자본주의 경제위기는 2017년 현재까지 진행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30년의 역사는 바로 경제위기 시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는 자본과 정권을 상대로 한 투쟁의 역사였다. 파산되는 기업 단위에서의 구조조정 대응 투쟁, 노동시장유연화를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대응 투쟁, 노동악법 개악 저지 투쟁, 독점이윤에 의해 배양된 일부 노동운동 상층의 기회・개량주의자들과의 대응 투쟁, 국가주의에 근거한 나라 경제 살리기 이데올로기 대응 투쟁의 역사가 바로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의 역사이며 우리 모두의 투쟁의 역사인 셈이다.

 

 

6.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선진 활동가

 

제조업 대공장 중심의 기업별 현장 활동가조직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기존의 어용노조를 민주화하는 민주노조운동과 더불어 새로운 노동조합을 건설하는 노동조합 건설 투쟁의 과정이었다. 이 속에서 선진 활동가들은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이하 노민추)나 혹은 민주노동조합건설위원회(이하 노조 건설위)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기업별 선진 활동가조직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전 과정에서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민주화하는 투쟁과 사측에 맞서 현장 투쟁을 조직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96년 12월 울산에서 진행된 현장조직 토론회에서 전국의 현장조직들이 정기적 모임을 가지고 각 현장조직의 경험을 공유하며, 교류할 것을 결의하며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이하 현장전국회의)를 구성하였다. 이후 현장전국회의는 98년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불참 조직화 사업, 민주노총 총파업 조직화 사업, 신경영 전략 분쇄 및 자본과 정권의 이데올로기 공세 공동 대응 등 전국적 수준에서의 투쟁과 더불어 각 기업별 투쟁에 대한 연대 투쟁 그리고 각 현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신경영 전략 분쇄 투쟁 등을 전개했다. 이후 현장전국회의는 98년 8월 마지막 17차 대표자회의를 끝으로 해산 수순에 들어갔다.

 

전국현장조직 대표자회의 참여 및 참관 조직2)

지역

참가조직명

참관조직명

수도권

기아자동차 평등회

대우자동차 대현추

부평아남반도체 현장을 사랑하는 노동자회

대우중공업 미래의 희망을 여는 노동자회

대전

충남

한국타이어 실노회

한라공조 현준위

대한 이연 실천위

신탄진 노동자회

늘푸른 노동자 학교

미포조선 민주노동자회

울산

현대중공업 전노회

현대자동차 민투위

현대정공 동지회

 

광주

전남

아시아자동차 현장추

한라중공업 현장투

대우캐리어 현장

금호타이어 금현추

마산

창원

기아정기 노민추

 

전북

AP 현민연

현자 전주공장 노해투

 

기타

만도기계 비전모임

전해투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98년 17차 대표자회의 이후 실질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던 현장전국회의에 참여했던 전국의 선진 활동가들은 2003년 전국적 활동가들의 조직적 결집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게 된다. 이후 수차례의 논의를 거치면서 2005년 전국의 선진 활동가들 9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토론회를 통해 전국 조직 건설을 위한 전국 순회 간담회와 당면 정세에 조응하는 공동 투쟁을 결의한다. 이후 2006년 4월 1차 간담회, 5월 2차 간담회를 진행하고 6월 3차 간담회를 통해 9월 충남 논산에서 전국 활동가 조직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2007년 4월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이하 노동전선)을 출범시킨다.

이처럼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과정에서 성장한 전국의 기업별 현장조직들이 96년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로 결집했고, 이후 이들 전국 현장 좌파 선진 활동가들의 전국적 조직으로서 노동전선이 출범한 것이다.

 

국민파, 중앙파 등의 전국 현장조직의 출범

2007년 전국 현장 좌파 활동가들의 전국 조직인 노동전선의 출범 이외, 2001년 국민파 노선의 민주노동자 전국회의와 벽제파가 이름을 바꾸면서 출범한 노동운동전략연구소의 출범이 있었고, 이후 또 다른 국민파 경향인 현장실천노동자연대가 2008년 출범하였다. 중앙파 조직으로는 2003년 출범한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가 있다.

 

이념별 전국 단위 현장조직의 출범

 

현장파

중앙파

국민파

1996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2001

 

 

민주노동자전국회의

2001

 

 

노동운동전략연구소

2003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

 

2007

현장실천・사회변혁

노동자전선

 

 

2008

 

 

현장실천노동자연대

 

 

7. 신자유주의 공세

 

세계 자본주의는 1970년대 포드주의라 불리는 대량생산체제의 한계와 함께 이윤율의 감소 위기에 부딪히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된다. 바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경우 이러한 세계 자본주의의 흐름과 함께 1987년 7, 8, 9 노동자 대투쟁의 과정에서 성장한 노동운동의 광범위한 저항투쟁으로 인해 한국 자본가계급 또한 새로운 돌파구를 요구받게 되었다.

한국 자본가계급의 새로운 돌파구는 바로 현장에서는 노동유연화 중심의 신경영 전략, 독점자본의 독점이윤으로 배양된 노동운동 내 기회・개량주의를 동원한 노사 협력 구조 만들기, 국가 단위에서는 사회적 합의주의, 노동 관련법을 동원한 제도적 노동통제 등으로 나타난다.

 

1) 신경영 전략

70년대 대량생산체제의 한계와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급성장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한국 자본가계급의 새로운 대응은 90년대부터 시작된 신경영 전략이었다. 생산성 향상 운동, 생산 합리화 운동, 현장 감독자를 중심으로 한 현장 단위 노동통제 강화, 노동자를 맘대로 통제할 수 있는 노동력 이용 체계, 직제개편, 능력주의적 임금체계, 성과급제 도입, 노동자의 의식과 정서를 일상적으로 통제하는 기업문화 운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공기업 또한 공기업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자본의 합리화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신경영 전략은 자본 간 무한 경쟁에서 개별 자본의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생산과정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 원가절감, 생산성 극대화를 위한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현장에 대해서는 자본의 직접적 통제를 강화하고 자본의 경영목표에 순응하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협조적 노사관계의 구축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자본의 신경영 전략은 대량생산체계 및 이윤율의 하락이라는 자본의 위기를 극복함과 동시에, 87년 3개월 동안 치열한 투쟁을 통해 획득한 수많은 성과를 한순간에 무력화시키면서 노동조합으로 묶여 있는 노동자들을 개별적으로 자본의 살인적 게임인 무한 경쟁 게임으로 포섭하는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울산 현중에 불어닥친 신경영 전략

① 노조간부 활동가 조합원에 대한 회유와 무자비한 폭력을 동반한다.

② 회사관리직 라인을 통한 성향별 분석을 통한 개별관리와 5호담당제, 더 나아가서는 조합원 간 상호감시체계의 구축(첩자)하여 고발케 함으로써 노조와 회사에 불만을 토로하지 못하는 현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③ 노조활동에 대한 노골적인 지배개입이다.

④ 산재 요양자에 대한 불이익처우를 통해 근골격계로 고통을 받거나 산재사고가 나도 산재신청을 기피하거나 포기하게 만든다.

⑤ N/W코드(No Work no pay) 적용을 강화해 왔다.

현장 관리자들에 대한 교육과 인터넷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활동가들보다 먼저 노조정보를 신속하게 공급한다. 이를 통해 내용의 정확성과 무관하게 보다 깊이 있는 내용들을 알려줌으로써 대소위원과 활동가를 바보로 만든다.

⑦ 후견인제도를 통한 활동차단과 고용안정 심리를 이용한 단결투쟁 저지

 

2) 사회적 합의주의

한국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는 93년 김영삼 정권의 노・경총 협약이란 이름을 시작으로 다양한 이름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또한 이름이 다르더라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의 참여를 전제로 했다는 점과 함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하고, 사회적 합의 이후 곧바로 법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투쟁 사업장 탄압이라는 공통분모를 보였다.

 

<한국형 사회적 합의주의의 진행 과정>

▶ 1993년 노・경총 임금 합의

▶ 1994년 노・경총 임금 합의

▶ 1996년 4월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

▶ 1998년 1월 제1기 노사정위원회

▶ 1998년 2월 6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90개항) 체결

▶ 1998년 6월 제2기 노사정위원회

▶ 1999년 6월 노정합의

▶ 1999년 9월 제3기 노사정위원회 출범

▶ 2004년 2월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55개항) 체결

▶ 2007년 4월 제4기 노사정위원회 출범

▶ 2009년 2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문 체결

▶ 2017년 5월 일자리위원회

 

노・경총 임금협약

한국형 사회적 합의주의는 김영삼 정권 시절인 1993년 경제회생, 고통분담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 한국노총이 참여한 노・경총 임금협약이다. 당시 노동운동 진영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전국적 조직 건설의 결의를 모아 90년 전노협을 건설하고 95년 민주노총 건설을 앞두고 있던 시기다. 93년 노・경총은 노동조합 임금 요구율을 5% 가이드라인에서 합의를 했다. 그러나 한국노총 가맹 조직들의 반발로 무산이 되었고 곧이어 1994년에도 한 자릿수로 임금 요구율을 노・경총이 합의를 했는데 대다수의 노동조합에서 10% 이상의 두 자릿수 임금 요구안 제시와 전해투의 노총 점거 투쟁 및 노총 가맹 조직의 광범위한 어용노총 탈퇴로 이어지면서 실질적으로 93-94년 노・경총 임금 가이드라인 합의는 밑으로부터의 투쟁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노개위

김영삼 정권은 1996년 4월 21세기 세계 일류국가로의 도약을 위한 신 노사관계 구상을 발표한 뒤 한 달 후인 5월 9일 민주노총이 참여한 상태에서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이하 노개위)를 출범시켰다. 노개위에서는 공무원, 교원 노동조합 합법화, 복수노조 인정, 3자 개입 금지 철폐 및 정리해고제, 파견제, 변형 근로제 도입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노동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에 민주노총은 자본과 정권의 노동법 개악 움직임에 경고를 보내면서 10월 노개위 철수를 결정하게 된다. 이후 민주노총은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노동법 개악이 진행되면 전면적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한다. 12월 26일 새벽, 김영삼 정권은 당시의 여당인 신한국당을 통해, 날치기로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 이에 민주노총은 날치기 노동악법에 반대하는 총파업 투쟁(96-97 노동법 총파업 투쟁)을, 96년 12월 26일부터 97년 1월 18일까지 24일 동안, 총 528개 노동조합 403,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전개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유연화 전술 지침에 의한 수요파업으로 전환이 되고, 이후 투쟁력을 상실하면서 결국 3월 노동악법 재개정이 입법화되었다.

 

1기 노사정위원회

IMF 구제금융 신청 이후 경제파탄과 대량해고라는 상황에 직면한 민주노총은 노사정 사회협약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97년 3월 정리해고 법제화 이후 민주노총은 98년 1월 중앙위원회에서 노사정 중앙교섭과 총력투쟁 병행을 포함한 98년 투방을 결정했다. 이후 김대중 정권은 98년 1월 제1기 노사정위원회를 발족하여 2월 6일 민주노총이 참여한 상황에서 정리해고제 개악과 근로자파견법 제정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노사정 잠정합의(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 90개항)를 하게 된다. 이에 2월 9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노사정 잠정합의안 부결을 결정하고 집행부가 총 사퇴한 상황에서 비대위를 구성한다. 이후 1기 노사정위원회는 종결되고, 2월 국회에서 정리해고제 2년 유예 조항 삭제, M&A에 의한 정리해고제 등 근기법개악과 근로자파견제를 중심으로 한 노동악법을 입법화한다.

 

2기 노사정위원회

98년 6월 10일 김대중 정권은 방미를 앞두고 외자유치의 여건을 만들고자 민주노총의 참여 없이 6월 3일 2기 노사정위원회를 발족한다. 한편 민주노총은 정리해고제 철폐 등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위한 선결 4대 과제를 제시하고 대정부 직접 협상을 요구하며 5.27 총파업 투쟁에 돌입했다. 이후 민주노총은 6.10 총파업 투쟁을 철회하고 대신 6.5일 노정 교섭(구조조정의 충분한 사전협의)을 통해 민주노총 대대에서 노정합의안 수용과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결정하면서 1기 때 탈퇴했던 노사정위원회에 재참여 결정을 한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재참여 결정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권은 6.5 노정합의 내용을 집행하기는커녕 일방적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단행하게 된다. 6월 18일 55개 퇴출기업 발표, 6월 29일 5개 퇴출은행 발표, 6월 30일 현대차 정리해고 신고, 7월 3일 11개 공기업 민영화 계획안 발표 등 일방적 구조조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로 인해 민주노총은 다시금 7월 10일 한국노총과 함께 노사정위원회 4가지 선결과제를 발표하며 불참 선언을 하게 된다. 이후 민주노총은 7월 14‒15 총력 투쟁을 전개하고 7월 23‒24 총파업 투쟁을 선언한다. 그러나 7월 23‒24 총파업 투쟁 직전인 7월 23일 청문회 개최, 퇴출기업(은행) 고용보장, 삼미 특수강 문제, 이후 진행될 구조조정 사전 협의 등을 합의하면서 7월 23‒24 총파업 투쟁을 철회하고, 7월 27일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결정한다.

 

일자리 위원회

2017년 5월 문재인 정권은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 직속 기구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노동적폐 청산과 노동부문의 촛불개혁 요구를 실현하고, 더 많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이라는 취지로 6월 21일, 1차 회의부터 참석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문재인 정권은 전노협 사무처장과 전국 노운협 공동의장 그리고 금속연맹 위원장, 민주노동당 대표를 역임했던 문성현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하면서 향후 문재인식 사회적 합의주의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3) 노동운동 내 기회・개량주의를 동원한 노사 협력 체제 구축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과정에서 획득한 민주성, 자주성, 연대성 그리고 노동해방이라는 변혁지향성에 대한 자본과 정권의 노골적 대응은 독점이윤에 의해 배양된 노동운동 내 기회・개량주의자들을 동원한 노사협조체제 구축이었다. 노동운동 내 기회・개량주의자들의 모습은 ①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인 민주성, 자주성, 노동해방의 변혁지향성이라는 노동운동의 이념을 부정하는 형태와 ② 자본과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에 적극적 찬동, ③ 재정 및 성폭력 등 비리로 인한 노동운동 위기 자초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91‒92 전노협 위기론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로 90년 1월 전노협이 출범하였다. 동시에 노태우의 민정당과 김영삼의 민주당 그리고 김종필의 공화당이 합당한 민주자유당이 창당한다. 이후 노태우 정권을 앞세운 민자당은 전노협 가입 사업장을 상대로 한 업무조사와 전노협 탈퇴강요, 무노동 무임금,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노조에 대한 손배 청구, 노조 지도부 구속, 파업 사업장 공권력 투입 등 전노협에 대한 전방위적 탄압을 전개했다. 그러나 전노협은 90년 현중 골리앗 투쟁과 5월 총파업 투쟁, 91년 박창수 열사 옥중 살인 규탄 투쟁 및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면서 업종회의와 함께 ILO 공대위 구성, 11월 전국노동자대회 등을 통해 자본과 정권의 살인적 탄압에 대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해방, 전투적 노동운동론이라는 전노협의 이념이 전노협 탄압이라는 전노협 위기의 원인이라고 하는 노동운동 위기론이 노동운동 내부 기회・개량주의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노조 활동 작풍을 개선, 과도한 임투를 지양하고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발전적 노동운동으로의 전환, 경영참가를 받아들이고 생산성 향상에 협력하는 진보적 사회적 합의주의 지향, 퇴조기에 전투적 노동운동론보다는 진보정당운동론으로의 전환 등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들의 모습은 바로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과정에서 확보된 노동운동의 이념인 민주성 자주성 그리고 노동해방의 변혁지향성을 포기할 것을 강요하는 형태였다.

 

민주노총 건설과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론

기회・개량주의자들의 책동은 민주노총 건설 과정에서도 지속되었다. 전노협 내부의 민주노총 건설 계획안(전노협 중심의 민주노총 건설론)과는 전혀 다른 전노협과 대기업 노조 그리고 업종회의로 구성된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이하 전노대) 중심의 민주노총 건설론(1993년 2월 김영대 안)이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이견은 1994년 1월 전노협 위원장 선거에서 최초로 경선이 진행되면서 공식화되었다. 이후 민주노총의 건설 시점, 건설될 민주노총의 구성 원리(산별 노조/업종별 노조), 민주노총 권영길 초대 위원장의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론, 김영삼 정권의 노개위 참여 여부,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창당과 배타적지지 방침1) 관련 논쟁 등으로 이어졌다.

 

사회적 합의주의를 통한 교란 책동

한국사회 최초의 사회적 합의주의라 할 수 있는 93, 94 김영삼 정권의 노・경총 임금 협약은 민주노총이 출범하지 않았고 또한 87년 투쟁의 성과로 90년 건설된 전노협 중심의 투쟁 과정이었기에 노・경총 임금 협약 참여 여부가 쟁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을 주창한 권영길 민주노총 1기 집행부 등장 이후, 96년 김영삼 정권의 정리해고제과 비정규직 관련 법 개정을 위한 노개위 참여와 관련한 논쟁이 있었고, 권영길 지도부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와 불참을 반복하면서 실제적으로 노동법 개악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98년 1월 김대중 정권의 1기 노사정위원회에 대해 민주노총 배석범 집행부는 참여와 함께 정리해고 제 도입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노사정 잠정 합의의 행보를 보였고, 민주노총 2월 대대에서 국민파의 수용과 현장파의 저지가 폭력적으로 대립되면서 잠정 합의는 부결되었다.

이후에도, 민주노총 4기 이수호 집행부는 대의원대회에서 집행부 용퇴를 걸고 노사정위원회 참여 안건을 제출했고, 이에 반대하는 현장 대의원들과 폭력적 대립까지 발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노사정위원회 불참으로 결정이 났지만 사퇴를 하지 않았던 이수호 집행부는 강승규 수석 부위원장의 비리 사건으로 총사퇴를 하게 된다.

 

재정 비리 및 성폭력

▶ 기아차 노조, 근로자 채용 관련 금품 수수(2005.1)

▶ 항운노조, 근로자 채용 관련 금품 수수(2005.2)

▶ 현대자동차 노조, 채용 관련 비리(2005.5)

▶ 현대차 노조, 노조간부 납품 관련 뇌물(2005.7)

▶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택시사업자 단체로부터 금품 수수(2005.10)

▶ 민주노총 조직강화특위장 김** 성폭력, 강간미수 사건(2008.12)

 

2001년 민주노총 일부 연맹위원장들이 벽제(소위 벽제파)에 모여 강승규(민주택시 위원장)를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로 추대를 한다. 2001년 벽제파의 강승규와 전국회의의 이석행 후보조가 민주노총 3기 임원 선거(3월)에 출마를 했으나 낙선을 하게 된다. 낙선 이후 벽제파는 노동운동전략연구소(이하 노연)로 이름을 바꾸고 4기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를 또다시 준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노연의 강승규는 2001년 8월부터 사측에게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 출마 비용 명목으로 2003년 10월까지, 그리고 이수호-강승규-이석행 후보조로 당선되어 수석 부위원장으로 재직 중인 2005년 9월까지 수차례의 자금을 지원받는다. 결국 노연의 강승규는 사측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에 출마를 하게 된 꼴이며 전국회의 또한 이러한 기회・개량주의와 연대・연합을 통해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 출마한 셈이다. 사측으로부터 선거 자금을 받고 당선된 노연의 이수호와 강승규 그리고 전국회의의 이석행 집행부는 2004년 5월 노사정위원회의 참여를 전격적으로 결정하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결국에는 부결되었지만, 2005년 민주노총 대대에서 수차례 노사정위원회 참여안 통과를 시키려 하였다. 이후 노연과 전국회의는 지속적으로 연대ㆍ연합을 통해,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출마하고, 계속 당선되어 임기를 집행하게 된다.

 

민주노총 임원 선거와 현장조직

위원장

임기

비고

 

현장파

중앙파

국민파

1

1

권영길

95.1.~97.2

 

후보

통합

당선

통합

 

배석범

97.2~

98.2

직무대행

 

 

 

 

 

단병호

98.2~

98.3

비대위장

 

 

 

 

2

2

이갑용

98.3~

99.9

 

후보

이갑용(범좌파), 정갑득(국민파)

당선

범좌파

 

 

 

3

단병호

99.9~

01.1

 

후보

단병호(중앙파+국민파)

당선

 

중앙파-국민파 연합후보

3

4

단병호

01.1~

01.8

 

후보

유덕상(현장파), 단병호(중앙파), 강승규(국민파)

당선

 

전진

 

 

 

허영구

01.8~

02.4

직무대행

후보

 

 

 

당선

 

 

 

 

 

백순환

02.5~

02.8

비대위

후보

 

 

 

당선

 

 

 

 

 

유덕상

02.8~

04.1

직무대행

후보

 

 

 

당선

 

 

 

4

5

이수호

04.2~

05.10

 

후보

유덕상(현장파+중앙파), 

이수호

(국민파)

당선

 

 

노연-

전국회의

 

전재환

05.10~

06.2

비대위

후보

 

 

 

당선

 

 

 

 

남궁현

06.2~

06.2

비대위

후보

 

 

 

당선

 

 

 

6

조준호

06.2~

07.2

 

후보

 

 

조준호

당선

 

 

노연-

전국회의

5기

7

이석행

07.2~

08.9

 

후보

 

 

이석행

당선

 

 

노연-

전국회의

 

진영옥

08.9~

09.2

직무대행

후보

 

 

 

당선

 

 

 

 

임성규

09.2~

09.3

비대위

후보

 

 

 

당선

 

 

 

8

임성규

09.3~

10.1

 

후보

 

 

임성규

당선

 

 

노연-

전국회의

6

9

김영훈

10.1~

12.11

 

후보

허영구

 

김영훈

당선

 

 

노연-

전국회의

 

 

백석근

12.11~

13.3

비대위

후보

이갑용(좌파노동자회)

채규정

(전국회의), 신승철

(노연)

당선

 

 

신승철

7

10

신승철

13.7~

14.12

 

후보

 

 

 

당선

 

 

신승철

8

11

한상균

14.12~

현재

직선제

후보

한상균(노동전선)

허영구(좌파노동자회)

전재환(국민파-중앙파연합), 정용건(기타)

당선

한상균

 

 

 

 

8.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30년

 

시기별 노동통제, 노조운동, 현장운동의 변천사

시기

노동통제, 기타

노동조합운동

현장조직운동

1987

권위적 노동통제→ 신자유주의적 노동통제

한국노총 개혁,

단사별 민주노조 건설

노민추, 민주노조 건설을 주된 임무로 기업별 현장 활동가 모임

현장

좌파

1990

사회주의권 붕괴

전노협 건설

 

 

기업별 현장조직

1993

김영삼 정권의

신노사관계

전노대 구성

1994

 

전노협 선거

3파 형성

1995

 

민주노총 건설

1996

정리해고제 날치기 통과

 

전국

현장

조직

대표자

회의

1997

IMF 외환위기

노동법 관련 총파업, 노개위-정리해고제 관련 대의원대회 파행

2001

 

 

 

 

2002

 

 

 

2003

 

 

2005

사회적 합의주의

1기 노사정위원회 관련 민주노총 대대 파행

2007

 

 

노동전선

2008

미국금융위기

 

2010

유럽재정위기

 

2012

 

 

 

좌파

노동

자회

 

2013

중국 경제위기

 

2014

 

임원 직선제

2015

 

 

 

 

9. 87년부터 30년 무엇을 배울 것인가?

 

87년 이후 30년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는 1989년, 1997년, 2009년, 2014년 경제위기 이후 항상적 경제위기 공황 시대로 돌입했다. 경제위기의 매 순간 자본과 정권은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야기되는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했다. 광범위한 실업과 임금삭감,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중심의 노동의 유연화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자본과 정권은 경제위기로 인한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기 위하여 노사정위원회 등 사회적 합의주의를 추진했으며 사회적 합의라는 미명하에 노동을 유연화하는 각종 법제화를 추진하였다. 물론 이를 거부하는, 생존권과 고용을 위한 노동자 대중의 자연발생적 현장 투쟁을 공권력과 사법부 등 국가폭력기구를 동원하여 파괴했다.

또한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과정에서 획득한 노동해방을 지향하는 노동운동의 변혁지향성을 거세하기 위한 자본과 정권의 다양한 파괴 책동이 전개되었다. 국가 살리기, 경제 살리기 등 국가주의 중심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국가폭력기구를 동원한 물리적 탄압 그리고 노동운동 내부의 기회・개량주의자들을 동원한 교란 작전 등 전방위적으로 노동운동의 노동해방・변혁지향성을 거세해 왔다.

따라서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지난 30년은, 오늘의 우리에게 다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위기(공황)는 지속될 것이라는 것과 함께, 이러한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기 위한 자본의 공격이 문재인 정권 임기 동안의 기본적 사회 토대라는 점이다. 그리고 자본의 위기와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는 작태는 ① 국가주의 중심의 나라 경제 살리기 이데올로기와 ② 비정규직 확대 중심의 노동유연화, ③ 노동자 민중의 처절한 생존권 투쟁에 대한 국가폭력기구를 동원한 탄압, ④ 노동운동 내 기회・개량주의를 동원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 ⑤ 노동법 개악 등 노동유연화를 법 제도화하는 방안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결국 지난 30년의 역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나라 경제 살리기 등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노동해방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명확한 상을 정립하는 것, 그리고 노동운동 내부에서 준동하는 기회・개량주의자들과의 비타협적 투쟁을 통해 민주노총의 계급성을 강화하는 것, 노동유연화를 분쇄하기 위한 현장 투쟁과 이를 제도화 하는 각종 부르주아 법 제도를 포함한 국가폭력기구와의 전면적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다.

경제위기(공황) 시대의 자본과 정권의 폭압적인 위기 전가는 노동자 대중에게 자발적 투쟁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발적 노동자 대중의 투쟁이 곧바로 승리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위에서도 지적을 했듯이 노동자 대중의 자발적 투쟁이 승리를 안아오는 투쟁이 되려면 지도자의 올바른 투쟁 지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선진 활동가들의 올바른 투쟁 지도를 형성하기 위한 선진 활동가 확대 재생산 그리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에서의 올바른 지도력 구축은 향후 투쟁의 승리를 위한 절대적 필요조건이다.

 

 

10. 이것을 위해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선진 활동가 조직 강화 및 확대 재생산

지금 현재 현장 좌파 선진 활동가들은 노동전선을 필두로 해서 전국 각지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변증법적 연산에 의해 두 사람이 모여 세 사람 또는 세 사람 이상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조합과 정당 이외의 조직 형태를 가지고 있는 전국의 현장 좌파 선진 활동가들의 조직적 힘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직적 틀이 필요하다. 항상적 공투체 또는 일상적 조직체 등 다양한 형태의 모색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리고 또한 농담 삼아 87년 투쟁 때 짱돌 던져봤던 활동가가 아직도 대걸레 잡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을 하듯이 선진 활동가의 확대 재생산은커녕 재생산조차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장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새로운 선진 활동가들을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학습 소모임 운영 등 여러 고민과 모색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9기(직선 2기) 임원 선거

민주노총 중앙에서부터 현장까지 기회・개량주의자들이 준동을 하고 있다. 1995년 민주노총 출범 이후 권영길 초대 위원장의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론으로 인해 노동운동 내 수많은 영역에서 혼란이 있었다. 이러한 기회・개량주의의 준동은, 좌파 이갑용 위원장이 직선제를 요구하면서 당선되었던 98년 1년의 기간을 제외하면, 계속되었다.

이후 민주노총은 대의원 간선제를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인 중앙파 위원장, 그리고 2004년 노연의 이수호 집행부를 시작으로 2014년 한상균 집행부 직전까지 10년 동안은, 비리집단 노연과 전국회의의 연합 집행부가 들어섰다.

민주노총은 오는 12월이면 3년의 직선 1기 집행부 임기가 만료되면서 제2기 직선 집행부를 선출하게 된다. 2018년부터 시작되는 민주노총 제2기 직선 집행부 3년의 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2014년부터 몰아닥친 한국 자본주의 경제위기 속에서, 비정규직이 넘쳐 나는 현장의 조건 그리고 살인적인 실업,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사회적 합의주의(일자리 위원회) 그리고 촛불항쟁의 적자를 자임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 등등…

따라서 선진 활동가들이라면, 경제위기 책임을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려는 국가와 자본에 맞서, 그리고 그들과 보조를 맞춰 노동운동 내부에서 운동을 공격하고 있는 기회・개량주의자들에 맞서,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게 전개될 민주노총 직선 2기 선거에, 다음과 같은 기조와 목표를 가지고, 복무해야 할 것이다.

 

 

▷ 비정규직ㆍ정규직 연대라는 6.30 총파업의 기본 정신 계승과 비정규직 철폐 투쟁

▷ 민주노조운동의 변혁성 강화

▷ 민주노총 혁신 및 내셔널센터로서의 위상 재구축

▷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사회적 합의주의)에 맞선 총노동 계급투쟁 강화

▷ 노동자 연대투쟁의 복원

▷ 변혁적 노동자정치세력화와 정치ㆍ사상의 자유 쟁취

 

* 제도정당을 포함한 진보정당 관련한 사업 및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관련한 내용은 빠져 있습니다. 대략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기조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고민이 필요할 듯합니다.

▷ 민주노총 주도의 정당 건설 사업은 민주노동당 한 번으로 족하다.

▷ 민주노총의 투표방침은 최대한 자유롭게 열어 두어야 한다.

▷ 제도정치 이외 노동자 현장 정치의 전형을 세워내야 한다.

  <노/사/과/연>

 

 


1) 1991년 12월 전노협 중앙위는 ‘개인의 정치활동(정당참여)은 직위여하를 막론하고 규제하지 않으며 전노협 및 지노협 임원은 정치(정당)활동을 함에 있어 직책 사용을 하지 않고 개인자격으로 참여한다’고 결정함.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Sep 28th, 2017 | By | Category: 현장 | 조회수: 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