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민족 국가 이스라엘: 유대인, 불쾌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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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이따르

 

 

* 이 글은 슐로모 산드 지음, 알이따르 옮김, ≪유대인 불쾌한 진실≫, 훗, 2017. 7.에 실린 역자 후기이다. 이 책을 번역한 알이따르는 글 속에 담긴 다양한 맥락을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며,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제시하고자 하는 기획/번역집단이다. 알이따르는 , 구조를 뜻하는 아랍어이다. 현재까지 ≪밧다위≫, ≪유대인의 불쾌한 진실≫, ≪이슬람의 잊혀진 여왕들≫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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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유대민족 국가다

 

이스라엘에는 성문 헌법이 없다. 1948년 국가설립을 선포하면서 1950년까지 정하기로 했던 헌법은 이스라엘 국가의 목적과 정체성에 대한 내부적 이견으로 인해 무기한 연기되었다. 대신 성문 헌법의 초안으로 작성된 이스라엘 기본법들(Basic Laws of Israel)을 기반으로 국가 운영을 하고 있다.

2011년에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유대 민족의 국가로 정의하는 기본법 개정이 제안되었다. 이 법안은 유대 민족만이 이스라엘의 자결권 주체가 되며 히브리어를 공식 언어로, 히브리력을 공식 달력으로 제정하고 히브리 율법의 위상을 높이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2017년, 같은 내용의 법안이 이스라엘 의회를 통과했다. 불과 70년 전에 토착민을 인종청소로 제거하고 세운 나라가 이스라엘을 유대 민족을 위한 민족 국가로 정의하면서 전 세계 유대인의 귀환권을 법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치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에 새로운 우파적 도전처럼 보이는 이 법안은 실제로는 이스라엘 설립 기획 당시부터 유지했던 일관성의 구체적인 표현일 뿐이다.

1948년 5월,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당시 팔레스타인 땅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마을과 도시를 이루어 살고 있었고 아랍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스라엘 시오니스트들은 유대 민족의 국가를 이곳에 새로 건설하겠다고 선언한 이후로 1940년대에서 가장 최근의 국경이 정해지는 1967년 전쟁에 이르는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마을과 도시들에서 아랍인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인종 청소를 자행했다. 이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살던 집에 들어가 살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쓰던 가구들을 쓰고, 파괴된 팔레스타인 마을들 위 혹은 그 근처에 히브루 이름을 붙인 마을을 짓고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먹는 음식인 홈무스와 팔라펠을 자신들의 음식과 문화라고 주장하며 그 땅에 눌러앉았다. 이렇듯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청소와 문화 탈취를 기반으로 건설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스라엘 시오니스트들이 원했던 것이 아랍인과의 공존이 아닌 유대 민족만의 국가 건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애초부터 유대인의 민족 국가를 만들기 위해 기획되고 세워진 국가이다. 즉, 아랍인인 팔레스타인인들의 땅과 문화를 탈취하고도 그들과 공존할 수 없는 원칙을 국가의 정체성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정책과 교육, 프로파간다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반이 바로 이 유대 민족의 국가이다. 이스라엘은 2005년까지도 신분증에 민족을 표기해야 했으며 이 표기를 없앤 2005년 이후에도 유대인들이 고수하는 히브리력 표기법과 이름을 보면 의도적인 인종 구분이 가능하다. 또한 전 세계 유대인이라면 이스라엘 국민이 될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알리야(Aliyah)는 (디아스포라 상태로 간주되는) 전 세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귀환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정의하는 유대인이란 누구인가? 이론상 유대교는 모계 전통을 따르기 때문에 어머니의 종교가 유대교인 사람들이 유대교인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개종자와 부계 전통을 물려받은 사람들을 유대교인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이스라엘 법이 정하는 유대인 규정과 정통파 유대교가 규정하는 범위에는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은 모계 전통을 이어받은 유대교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에게 이스라엘 귀환권을 보장했다. 이 유대인 귀환권은 유대교인 조부모를 가진 사람들 및 유대교인과 결혼한 비유대교인에게도 허용되지만 그들은 유대교도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민족과 종교가 별개인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이지만, 이 유대교인들을 또 다른 말로 가리켜 유대 민족이라고 부른다. 저자 슐로모 산드(Shlomo Sand)는 바로 이 지점의 비틀린 연결고리를 짚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각국의 국민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새로운 국민이 아닌 기존의 민족으로 돌아온다는 개념이 가진 모순 말이다.

민족을 기반으로 한 국가의 정체성 확립이 위험한 이유는 그 국가가 시민들에게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를 설립하면서 동시에 그 성격이 유대적임을 독립선언서에 명시했으며, 민주적이라는 성격은 추후 1985년에 첨가되었을 뿐이다. 유대적민주적이라는 이 두 성격은 양립할 수 없다.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지고 이스라엘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아랍 인구는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약 20%가량으로, 이들은 대개 1948년 이스라엘이 생겨나면서 점령된 영토에 남아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다. 이스라엘은 이들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들에게 온전한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1948년 이후 도시 단위의 유대 공동체가 600개 이상 만들어졌지만, 아랍 마을이나 도시는 단 한 개도 건설되거나 인정받지 못했다. 또한 이스라엘에서는 마을 단위의 공동체가 종교와 성별, 사회경제적 상태에 근거해서 공동체의 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주민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법이 있다. 이스라엘 내의 풀뿌리 집단에서 아랍 인구를 퇴출시키는 법안이다.

즉,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아랍인과 유대인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국민들을 주체로 하는 이스라엘성이 아니라 자국의 특정 국민들인 아랍인을 배제하고 유대 민족을 주체로 하는 유대성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고대의 성서적 신화에서부터 홀로코스트의 산업화까지를 정치적으로 독점할 수 있는 결정이며, 동시에 유대인이 아닌 자국민의 지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는 팔레스타인 땅 위에서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지우려는 모든 시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이스라엘의 유대 국가 선언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는 바로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1국가 해결안에 대한 확고한 부정이다. 점령으로 유지되고 있는 영토를 포기하거나 평화적 해결책을 찾을 의지가 없다는 표명이기도 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1국가 해결안과 2국가 해결안

 

2국가 해결안은 팔레스타인 땅 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두 공동체의 공존을 가능한 방향으로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주장이다. 애초에 이 두 집단이 생기게 된 것도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집단 이주에 의한 것이고 이 두 집단이 이질적이게 된 것 역시 유대 민족국가를 내세우는 이스라엘에 의한 것이다. 그러한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국제사회에서 동등한 주체로 함께 가자는 것이 바로 2국가 해결안으로, 그 첫걸음이 바로 1994년의 오슬로 협정이었다. 오슬로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은 무장 투쟁을 포기하고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인정하고 일부 점령지를 반환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예루살렘의 지위, 유대인 정착촌 등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에 대한 결정은 보류되었다. 오슬로 협정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에 평화적 협상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희망을 주기도 했지만,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자신을 점령한 자의 존재와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굴욕적인 쓰라림도 있었다. 게다가 협정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 내에서 불법 유대인 정착촌 건설은 오히려 가속화되었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과 탄압 또한 그치지 않았다. 2006년에는 이스라엘과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세력이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하마스가 당선되자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하마스 정부를 테러 집단으로 규정했다. 결국 오슬로 협정 이후의 현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두 집단의 공존 가능성이 아닌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이 점점 공고해지는 과정만을 드러냈다. 실제로 팔레스타인이 유네스코와 UN에 회원국 신청을 할 때마다 이스라엘은 완고한 반대를 보였다.

2국가안의 가장 큰 매력은 유일하게 현실적으로 보이는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두 집단이 가지고 있는 권력 관계와 힘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데다가 서로에 대한 증오와 비타협을 기반으로 하는 해결책 아닌 해결책이라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 한쪽이 식민지적, 인종차별적, 분리배타적 성격의 점령자라는 사실을 감추고 정상적인 여느 국가인 듯 보이게 하는 것(normalization)이라는 실질적인 문제가 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점령하고 있다는 이 관계의 근본을 캐지 않는다면 2국가 안은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점령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피점령자인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오슬로 협정 이후 이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유일하게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장되었던 2국가 해결안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그러나 그 현실성이라는 환상은 계속되고 있다. 2국가 안을 부정하는 사람이라면 1국가 안을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전쟁을 주장할 것이다. 끝없는 피투성이 전쟁 말이다.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스, 2009.)

사실 정치적 해결책으로 무시되었던 1국가 해결안에 대한 목소리는 그동안 꾸준히 높아져 왔다. 물론 이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절대적으로 배제하는 이스라엘식의 통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모든 시민들을 아우르는 세속적이고 민주적인 다문화 이중국어(아랍어와 히브리어) 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이 독점하고 있는 군사와 국경 문제 역시 1국가의 정부가 주재하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의 지위에 대해서 분쟁할 필요도 없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권도 자연스럽게 보장된다. 이질적인 국민들의 결합은 이미 이스라엘 자체 안에서도 존재하는 문제이자 현실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이질적인 결합 역시 시민들 차원에서는 현실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국가 해결안은 비현실적인 것, 불가능한 것, 이상적인 것으로만 비춰진다. 그러나 그 비현실적인 이상은 내부의 저항과 외부의 압박이 더해진다면 기득권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순식간에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1994년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차별 철폐가 이루어지기 직전까지 대부분의 점령자 즉 백인들은 1국가 체제가 가능할 거라고 믿지 않았다. 1985년에서 1986년에 걸쳐 일어났던 대규모 봉기에도 불구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굳건했다. 1989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마지막 아파르트헤이트 대통령인 F. W. 데 클레르크는 (1국가 해결안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조종(death knell)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이는 위의 시몬 페레스의 발언과 다르지 않다. 1990년 전국적인 조사에서도 백인들의 2.2%만이 다수결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1국가 체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그러한 완고한 체제를 전복시킨 것은 바로 내부적인 저항과 국제사회의 고립이었다. 국제사회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고립시키면서 압박을 가하는 데 동의한 것은 그 구체제가 인종 차별에 근거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역시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2005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있는 모든 유대인 정착촌을 철수시킨 적이 있다. 이스라엘 내에서 엄청난 저항과 시위가 있었지만, 수천 명이 철수하는 데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는 정치권의 단호한 결정과 정책 시행이 실제로 현실을 바꿀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동기가 가자지구의 고립이 아닌 1국가 안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러한 정착촌 철수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았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1국가 안에 대한 유일한 장애물이 바로 이스라엘이 내세우는 유대 국가 정체성이다. 그리고 2017년, 올해 제정된 이 정체성 법안은 바로 1국가 안에 대한 싹을 잘라버리는 행보이며, 보편적, 민주적 원칙에 따른 국제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자신들만을 위한 독보적인 선민 국가를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유대 민족의 재탄생과 민족중심주의

 

현대에는 시나고그에 나가지 않고,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고, 유대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세속적 유대인들 역시 유대 민족이라고 스스로 느끼는 데 전혀 문제가 없게 되었다. 슐로모 산드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정체성 역시 이 세속적 유대인들에 대한 것이다. 유대교를 믿지 않는 이 유대인들은 누구인가? 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성이 아닌 유대성을 정체성으로 내세워 왔으며 법안을 통해 다시 한 번 이를 재확인하고 있는 걸까?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유대 민족은 성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허구적 연결고리에 기대고 있지만, 현실 속의 이스라엘 유대인의 시작은 나치가 규정한 유대인에서 시작된다. 폴란드인, 프랑스인, 독일인 중에서 유대인이 분리된 후, 그것을 기반으로 차별, 모욕, 약탈, 살해가 체제 차원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경험이 홀로코스트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이 실존적인 경험으로부터 (개종으로 그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유대 종교인, (문화적으로 습득될 수 있는) 유대 관습, (속한 종교나 문화와 상관없이 집안에서 내려오는) 유대 이름 등 유대교의 흔적이 남아있는 모든 것이 유대 민족으로 재탄생했다. 이스라엘이 만들어지고 서구의 지원으로 작지만 강한 이미지의 국가로 재탄생하면서, 홀로코스트 직후에는 두려움과 자괴감으로 침묵했던 유대인들은 다시 입을 열고 홀로코스트의 경험을 독점적인 무고한 희생자이자 피해자 정체성으로 가공했다. 민족 전체에 대한 면죄부가 발행된 것이다.

그 결과 특히 서구에서 유대 민족에 대한 부정은 반유대주의(antisemitism)으로 정의되며, 이는 어떤 국민성이나 민족성, 그리고 종교성에 대한 부정이나 비난보다 강한 실체적 성격을 갖는다. 홀로코스트라는 죽음의 기억과 그러한 혐오범죄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단호한 의지 혹은 강박의 결과이다. 이스라엘의 점령과 반인권적 행태에 대한 비판 역시 얼마든지 반유대주의에 포함되어 오히려 비판대에 오른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점령에 대해 합리화를 하고 시오니즘에 대한 비판을 향해 오히려 비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근거도 이 반유대주의에 대한 강박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탄생을 합리화하고 이스라엘의 존재에 스스로 타당성을 부여하는 것도 이 반유대주의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피해자 정체성은 유대 민족에게 안전한 단 하나의 장소인 이스라엘의 존재에 대한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너희 아랍인들에게는 갈 곳이 많잖아. (영화 ≪뮌헨, 2005≫의 대사.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인에게 하는 말.)

하지만 이러한 가공의 정서에 기대어 형성된 유대 민족의 허상을 드러내는 요소들은 많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세계 각지에서 살아온 서로 다른 유대인들이 고유의 민족적 특색을 유지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아서 코슬러(Arthur Koestler)가 쓴 ≪열세 번째 부족(The Thirteenth Tribe)≫에서는 서기 7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서부의 그리스도교 세력과 동부의 이슬람 세력 중간에 위치했던 카자르 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들은 8세기경 가장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유대교로 대량 개종을 한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 민족과는 다른, 민족적으로 이질적인 유대인 집단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책의 신뢰성을 의심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이스라엘 내의 유대 민족은 다양한 인종으로 나눠진다. 그중에서도 동유럽 출신으로 후에 서유럽으로 대량 이주하는 집단을 아쉬케나짐이라고 부르고, 스페인 유대인 출신을 세파르딤, 에티오피아 출신의 유대인들은 베타 이스라엘, 예멘 등 가장 뿌리 깊지만 가장 차별받는 중동의 유대인들은 미즈라히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내에서 이 집단들 사이의 차별은 보통 민족들 간에 있을 수 있는 차별과 다르지 않다. 한나 아렌트조차도 아쉬케나짐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렌트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계의 유대인들은 유대인이 겪은 고통에서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던 이들이라고 부르며 비유대인 취급을 한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2006.)

이렇듯 문화와 정서뿐만 아니라 외모와 출신 지역조차 서로 다른 이 다양한 유대인들을 이스라엘이라는 공간 속에서 묶어주는 요소는 무엇일까? 현대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에게는 성경 속의 이야기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공감을 제외하고는 실질적으로 민족을 형성하는 공통된 과거의 기억이 없으며, 자신들의 생존만을 강조한 점령 외에는 세상 다른 공동체와 공유하는 미래지향적인 비전이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스라엘은 히브리어를 만들어 냈다. 이 히브리어는 고대 이스라엘의 히브리어와는 다른 인공어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성서 속 상속자로 만들어주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더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역사보다 더 먼저 존재했던 사람들과 집단을 난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이를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지게끔 만들었다. 즉, 유대 민족은 공고한 실체적 역사와 자기긍정이 아니라 성경에서 세계대전으로 곧장 이어지는 억압의 기억과 적대시 당하는 피해자 정서로 민족정체성을 형성한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유대 민족의 이단적이고 예외적 집단이 아니라 전 세계 유대인들의 보금자리이자 뿌리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성서적 신화를 역사로 인식하고, 홀로코스트를 공동의 기억으로 체화하고, 이스라엘 군대에서 복무하며, 주변 아랍 민족과 스스로를 구별하는 공통점이 반세기가 넘게 공유되고 있다.

 

 

슐로모 산드가 제시하는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

 

학계 역시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대계 지식인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이민족의 공존, 특히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의 공존을 역설하면서 그 근거로 성서적 인물인 모세를 비유럽인, 유대인을 정초한 이집트인으로서 불러내고 있다. 그러고 나서 이를 세계는 오직 모세와 아론의 덕을 통해서만 존속한다고 주장한 윤리학자 레비나스와 연결시킨다. 버틀러는 레비나스가 유대인 랍비로서 윤리적 반응성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을 팔레스타인인에게는 허용하지 않았던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으면서도, 스스로 인종주의자로 부르는 그 레비나스의 반쪽짜리 가르침을 따르라는 모순적인 설교를 계속하고 있다. 즉, 주디스 버틀러는 민족 개념으로서의 유대인을 인정하고 긍정하며,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이 추방이라는 실존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유대 민족은 팔레스타인인과 연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주디스 버틀러,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2016.)

하지만 홀로코스트의 결과로 나타난 현실에서 그러한 이상적 연대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가상적 정체성이 확고해지자 적극적으로 침략의 대상을 선택했으며 홀로코스트 이후 채 십 년도 지나지 않아 팔레스타인인들을 인종 청소했다. 전형적인 제국주의 방식으로 말이다. 게다가 다시 한 번 유대 국가 정체성을 입법화한 이스라엘의 행보에서는 오히려 비판적 지지라는 기만을 버리고 침략과 점령을 통해서라도 자민족의 생존권을 지키겠다는 노골적인 민족중심주의가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현재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법적, 비인도적인 점령은 점령자의 공감을 기반으로 이해를 요구할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을 바탕으로 한 당위성에 따라 당장 종식되어야 하는 일이다.

억압받는 유대인이라는 신화를 중심으로 묶인 현실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해서 주디스 버틀러가 권하는 방식으로 공감하지 않는다. 1956년 이스라엘의 전쟁 영웅인 모세 다얀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에게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키부츠의 일원을 추모하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향한 그 무서운 증오를 뭐라고 비난할까요? 그들은 지금까지 8년 동안 가자에 난민 캠프를 지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그들이 조상 때부터 살아오던 땅과 마을을 우리의 집으로 바꾸는 일도 목격했습니다. 국경을 넘어서 증오와 복수의 바닷물이 밀려옵니다. 잠잠해서 우리가 경계를 늦추면 그들은 보복할 때라 여깁니다. 우리가 총을 거두라는 사악하고 위선적인 외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 우리 주변 아랍인들의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증오를 바로 보는 일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게 우리 세대의 운명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택입니다. 준비하고 무장하여 강하고 맹렬하게 그렇지 않으면 칼이 우리 손에서 떨어져 우리 삶을 동강낼 것입니다. (조 사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2012.) 여기에서 모세 다얀은 점령자인 이스라엘뿐 아니라 점령을 당하는 팔레스타인의 행동 원인도 언급하고 있다. 이런 모세 다얀의 입장이 현재 이스라엘 국가의 입장이다. 그럼 이스라엘 국가가 총을 내려야 한다는 주디스 버틀러의 주장은 사악하고 위선적인 외세의 말일 것일까? 그렇지 않다. 유대인성 논의를 통해 이스라엘이 평화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이런 유의 학계 주장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학살이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고 증폭된다. 결국 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통해서 이스라엘 국가의 야만성을 가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반면에 슐로모 산드는 이스라엘이 이렇듯 파시즘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민족중심주의를 버리고, 세속적 민주주의를 내세운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택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주디스 버틀러에게 있어 출애굽기의 모세는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이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근거로 소환되지만, 슐로모 산드는 딸의 입을 통해 하느님은 맏이라면 조그만 아기들도 죽였나요?라는 충격적인 질문으로 출애굽기를 해석한다(9장 터키인을 위한 휴식). 그가 스스로 유대인이기를 그만둔 것은 개종이나 상징적인 선언의 문제가 아니라 유대교를 믿지 않는 세속인으로서 유대인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민족으로서 세상과 공유하는 건설적인 문화나 가치가 있는가?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긍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공동체와 문화를 지향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스라엘은 현재의 점령 상태를 유지한 채로 어떤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로서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부정이다. 슐로모 산드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유대 민족성이 아닌 이스라엘 국민성을 얘기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체되어야 할 유대 민족이라는 신화를 이 책에서 하나씩 파헤쳐 간다.

슐로모 산드에게는 이스라엘 국적이 주는 한계, 즉 팔레스타인 땅에서의 이스라엘 존립을 주장한다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여느 진보적인 이스라엘인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팔레스타인 땅 위의 하나의 국가를 주장하는 1국가 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인종차별주의적인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 결코 1국가 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다분히 현실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비슷한 목소리를 1994년 이전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백인들에게서도 들은 바 있다. 또한, 슐로모 산드는 1948년 이스라엘이 생겨나면서 존재하게 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 문제에도 역시 난색을 표한다. 그는 이스라엘이 부정하는 1948년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존재 자체는 인정한다. 하지만 이미 이스라엘은 존재하는 공동체이므로 다시 한 번 그 공동체의 탄생을 부정하고 일상을 뒤바꾸는 난민 귀환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 역시 피점령자와 실존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입장의 입장이 아니라 점령을 덮고 싶어 하는 유약한 점령자의 목소리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중대한 이스라엘식 사고라는 오류에도 불구하고 슐로모 산드가 쓴 일련의 저서들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의 절대적인 기반이 되는 유대인성에 물음표를 단다는 점에서 현대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의 첫 단계를 제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제시하는 유대인성의 허구를 이스라엘인의 입으로 직접 듣는다는 최소한의 의미를 취하는 것은 의미 있는 행보가 될 것이다.  <노/사/과/연>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Aug 28th, 2017 | By | Category: 회원마당 | 조회수: 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