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1권 쎄미나를 마치고―포도주를 만들 때 효모는 노동수단인가, 노동대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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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 회원

 

 

 

약 1년에 걸쳐서 ≪자본론≫ 1권(비봉출판사, 2015년 개역판)의 쎄미나가 채만수 선생님 지도로 매주 진행됐고 17년 6월 22일 마지막 단원인 시초축적을 마치면서 끝났습니다. 그동안 채만수 선생님께서 꼼꼼하게 번역상의 오류를 교정하시고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하시면서 쎄미나를 지도하셨고 그 덕분에 ≪자본론≫ 1권을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채만수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고 쎄미나를 같이한 멤버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저는 경제학 전문가도 아니고 ≪자본론≫ 1권 쎄미나를 이번에 처음으로 한 입장에서 가볍게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볼 생각이므로 주장의 근거나 문헌상의 출처를 세세히 밝히지 못하는 것을 이해 바랍니다. 읽으시는 분들도 가볍게 읽어주시고 가볍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시고 지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노동과정의 기본 요소들은 (1)인간의 합목적적 활동[노동 그 자체], (2)노동대상, (3)노동수단이다. (≪자본론≫ 1권‒상, p. 238.)

 

여기서 노동이라 함은 생산과정의 2가지 측면인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p. 237) 중에서 노동과정을 의미하며 노동의 2가지 측면(구체적 노동, 추상적 노동) 중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측면(구체적 노동)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목재를 톱으로 잘라서 의자를 만드는 경우 사람은 노동주체인 노동자, 목재는 노동대상, 톱은 노동수단이라고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이 경우 노동과정이라 함은 목재라는 하나의 사용가치를 의자라는 다른 하나의 사용가치로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도를 통에 담아서 발효시켜 포도주를 만드는 경우 포도는 노동대상, 통은 노동수단이겠죠? 그런데 포도에 들어있는 포도당을 알콜로 발효시키는 것은 효모입니다. 효모가 없다면 알콜이 생성되지 않고 포도주가 되질 않으므로 효모는 포도주 제조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효모는 노동과정의 기본 요소 3가지 중 어느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효모가 포도라는 하나의 사용가치를 포도주라는 다른 하나의 사용가치로 바꾸는 주체이므로 효모를 노동자라고 한다면 어이가 없으므로, 효모는 결국 노동대상과 노동수단 둘 중의 하나일 겁니다.

결론을 내리기 전에 여러 가지 경우를 먼저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방적공장에서 면화를 방적기를 사용해서 면사를 만들 때 면화는 노동대상, 방적기는 노동수단, 면사는 생산물이 됩니다. 방직공장에서 면사를 방직기를 사용해서 면포를 만들면 방적공장의 생산물인 면사는 노동대상, 방직기는 노동수단, 면포는 생산물이 됩니다. 여기서 방적기나 방직기는 다른 공장이나 다른 노동과정의 생산물입니다. 마찬가지로 트랙터로 논을 갈 경우 트랙터는 노동수단, 토지(논)는 노동대상이 됩니다. 그 논에 모를 심어서 벼가 자라게 되면 논은 노동수단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소가 쟁기로 논을 갈면 소와 쟁기는 트랙터와 같이 노동수단입니다. 광부가 탄광에서 곡괭이로 석탄을 캘 경우 곡괭이는 노동수단이고 석탄은 노동대상이지만 바로 그 석탄이 증기기관의 연소실로 들어가면 노동수단이 됩니다. (석탄은 노동수단이 아니라 보조재료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보조재료에 관해서는 나중에 따로 논의하기로 하고 일단 노동대상, 노동수단 둘 중의 어느 것인가만 따집니다.)

 

노동수단이란, 노동자가 자기와 노동대상 사이에 끼워 넣어 그 대상에 대한 자기 활동의 전도체로소 이용하는 물건[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의 복합체]이다. (p. 239.)

 

노동자는 여러 물질들의 기계적, 물리적, 화학적 성질들을 이용해 그 물질들을 [자기 힘의 도구로서 자기 목적에 따라] 다른 물질들에 작용하게 한다. (같은 곳.)

 

여기서 여러 물질들그 물질들은 노동수단이고 다른 물질들은 노동대상입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노동자는 석탄의 화학적 성질(석탄을 연소하면 열에너지가 발생)과 증기기관과 동력전달장치와 방적기(물건들의 복합체)의 기계적, 물리적 성질을 이용해 석탄과 증기기관과 동력전달장치와 방적기를 면화에 작용하게 해서 면사로 바꾸므로 석탄과 증기기관과 동력전달장치와 방적기는 노동수단, 면화는 노동대상입니다.

풀을 소가 먹고 논을 갈 경우, 풀은 에너지원으로서 석탄과 마찬가지로 노동수단이 되고 소와 쟁기는 증기기관, 방적기와 마찬가지로 노동수단이고 논(토지)은 노동대상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풀을 비육우(잡아먹기 위해 키우는 소)가 먹을 경우, 소의 소화기관과 물질대사를 이용해 풀을 고기로 바꾸기 때문에 이때 풀은 노동대상입니다.

풀을 소가 먹는다는 겉모습(현상형태)은 동일하지만 풀이 노동수단인 경우도 있고 풀이 노동대상인 경우도 있습니다.

벼농사의 경우를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벼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땅(논) 속의 물을 흡수해서 태양의 빛에너지를 사용해 광합성을 하고 그 밖의 신진대사(생체 내에서 일어나는 물질의 화학적 변화과정)를 해서 나락을 만듭니다. 이때 노동자(농부)는 벼의 화학적 성질을 이용해 벼를 이산화탄소와 물에 작용하게 해서 나락을 만들므로 벼는 노동수단, 이산화탄소와 물과 햇빛은 노동대상입니다.

이제 효모는 노동수단과 노동대상 둘 중의 어느 것인지 확인합시다.

노동자는 효모의 화학적 성질(알콜발효)을 이용해 효모를 포도에 작용하게 해서 포도주를 만들므로 효모는 노동수단이고 포도는 노동대상입니다.

추가로 석탄은 보조재료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석탄이 보조재료라고 하는 것과 석탄이 노동수단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다른 개념범주를 사용했기 때문에 한쪽은 맞고 한쪽은 틀리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노동과정의 측면에서 면화는 노동대상이지만 가치증식과정의 측면에서는 면화가 불변자본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방적기와 면화는 둘 다 불변자본이지만 가치이전의 방식의 측면에서는 방적기는 고정자본이고 면화는 유동자본이 됩니다. (≪자본론≫ 2권, p. 192.) 석탄과 방적기는 둘 다 노동수단이지만 석탄은 면화와 같이 유동자본이므로 석탄을 보조재료라고 분류했다고 봅니다. (유동불변자본, ≪자본론≫ 2권, p. 494:11.) 또는 생산물에 소재적으로 이전되는가라는 측면(p. 242)에서 주요재료와 보조재료 사이의 구별(p. 243)일 수도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같이 풀어 볼 문제가 있는데요.

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워서 전기를 생산할 경우 석탄은 노동수단일까요, 노동대상일까요?  <노/사/과/연>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Aug 28th, 2017 | By | Category: 회원마당 | 조회수: 248

댓글 6개 “≪자본론≫ 1권 쎄미나를 마치고―포도주를 만들 때 효모는 노동수단인가, 노동대상인가?”

  1. 신재길말하길

    위 글에 개념적 혼란이 있는것 같아 의견을 남깁니다.
    생산수단에는 노동수단과 노동대상이 있습니다.
    노동수단에는 인간노동의 전도체로서의 노동도구와
    노동조건으로서의 토지 공장등이 있습니다.
    전자를 좁은 의미의 노동수단이라하고 후자까지 포함하여
    넓은의미의 노동수단이라합니다.
    노동대상에는 주노동대상과 보조노동대상이 있습니다.
    주대상은 노동생산물의 실체를 이루는 대상이고
    보조대상은 생산물의 주된 물적실체를 이루지 못하고
    생산과정에서 소비되는 재료입니다. 예를 들면 윤활제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효모는 보조재로 노동대상에 해당됩니다.

  2. 신재길말하길

    하지만 위의구분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되겠지요.
    노동대상이냐 노동수단이냐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노동과정에서 하는 역할에 따라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기계류는 노동수단이지만 기계수리공에게는
    노동대상이 됩니다.

  3. 신재길말하길

    또 에너지는 노동수단으로 분류되지만 에너지의 원료인
    석탄은 노동대상이 됩니다.벼도 마찬가지이겠지요.

  4. 신재길말하길

    노동대상은 노동수단과 운동양태가 다릅니다.
    노동수단은 오래동안 현물형태를 보존하면서
    점차적으로 가치를 새로운 생산물에 이전하지만
    노동대상은 한번의 생산과정에서 전부 생산물에
    이전합니다.

  5. 신재길말하길

    맑스가 생산수단 그 중에서도 노동수단에 주목한 것은
    노동수단이 한 사회의 생산력(인간능력)의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노동수단은 사회관계와 사회형태를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동수단을 고찰하고자 하는 이는 이런 맥락하에서 사고해야합니다.
    맥락을 떠나 노동수단을 자구적 정의를 기준으로 분류적 사고를
    한다면 개념적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의 정의는 토지와 그 부속물로 정의됩니다.
    그리고 부동산은 등기를 해야합니다. 그러나 비행기나 선박은
    위 정의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도 준 부동산으로 인정해서 등기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사회과학에서는 엄밀한 개념이 한치의 오차없이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사회과학에서는 큰 맥락이 중요합니다.
    개념이 나온 맥락과 문제의식이 중요하게 되는 것이지요.
    맑스가 노동수단에 주목한 맥락은 바로 생산력 즉 인간능력의 발전경향에 주목한 것입니다.
    따라서 노동수단은 노동도구를 주로 말하는 것입니다.
    노동도구는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생산하는가에 주목한 것이고요.
    즉 생산방법입니다.
    생산방법은 지속성과 반복성을 갖습니다.

    선박이나 비행기가 갖는 가격과 크기에 주목하여 동산이지만 부동산으로 취급하듯이
    효모나 윤활제 석탄등은 직접적 생산물의 물적 기초를 형성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 생산과정에서 다 소모되는 일회성과 인간노동의 전도체로서의 기능의 부재로 인해
    노동대상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6. 보스코프스키말하길

    해제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