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증오와 살육을 부르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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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 회원, 건설 노동자

 

 

 

들어가며

 

언어의 범람 속에 전쟁이라는 단어와 일상에서 자주 마주친다. 전쟁 같은 삶, 전쟁터 같은 직장, 문화나 역사에서는 수많은 영웅이라는 자들의 낭만적인 싸움에 빠져들고, 오락 역시 전쟁터를 재현해 놓고 즐긴다. 일상의 직장생활부터 즐기기 위한 오락거리까지 전쟁에 매몰되어 산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상대방과 경쟁이 붙으면 이를 전쟁으로 규정짓고 이기기 위해 우아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상대방을 무너뜨릴 생각을 열심히 한다. 명분을 만들어 내고 확보하는 것부터 해당사항에 타당하고 정당한 이유가 있나 등등, 전쟁 통도 아닌 상황에서 전쟁이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보면 잔인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온갖 병법서적에서 배운 것을 전쟁터에서 써먹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일상에서 빗대어 내 이웃을 동료를 옆에 회사 사람을 전략적으로 짓밟기 위한 행동을 아름다운 경쟁이라고 포장하고 다닌다.

개인적으로 한 편의 지옥도를 보는 것 같다. 도무지 끝이 안 보이는 경쟁. 그래서 계급지배 사회의 삶을 너도나도 전쟁이라고 떠들어 대나?

진짜 전쟁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일상에서 전쟁을 언급하는 얘기를 해 봤다. 이 글은 역사 속의 실제 전쟁은 무슨 이유로 벌어졌나 살펴보고자 한다. 주변 사람들과 싸움을 벌일 때 합리적인 이유를 따져가며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데, 과연 국가의 지배자들이 이웃 나라들을 침략할 때는 얼마나 합리적인 이유로 선동을 하고 전쟁을 벌였나?

 

 

세상이 민중에게 보여 주는 위대한 전쟁

 

교과서와 온갖 소설, 만화, 드라마, 영화, 뉴스, 언론 등등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전쟁은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이나 내가 속한 조직과 국가의 전쟁은 정의롭고 명분이 타당하며 생존을 위한 것이고, 그들의 침략 정복 전쟁은 그게 무슨 이유에서건 위대한 역사로 포장되고, 나아가 여기는 이렇게 위대한 자들과 국가가 존재했던 곳, 즉 찬란한 역사를 가진 곳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라와 민족을 위한 위대한 영웅들의 서사시가 펼쳐진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럼 상대방은? 정복욕에 미쳐 잔인하며 우리에게 도전을 해 오는 나쁜 놈들 단순 명료하게 야만적인 절대악으로 포장되어 그냥 나쁜 놈들이 된다.

세상에 모든 전쟁이 실제로 저런 식이었으면 이 세상은 벌써 판타지 소설마냥 모두들 오래오래 영원히 행복했답니다! 끝~이겠지만, 우리는 역사에서 배우지 않았나? 원시 공산제가 끝난 후부터 시작된 계급지배의 발전과정!

가진 게 없는 자들은 지배계급의 사병이 되어 전쟁터로 끌려 나가 개죽음을 당했다. 아니면 생존을 위해 스스로 약탈자의 길을 가거나. 막말로 일반 백성들은 사병이 돼서 적의 모가지를 따고 사지가 멀쩡하게 살아남든가 해야 뭐라도 받아 가는데, 지배계급은 뒤에서 삿대질 몇 번 하고 전쟁에서 이기면 몇몇 백성들에게 몇 푼 던져주고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토지와 노예를 차지했다. 패배한 군인들을 노예로 낙인찍고 하대하고 으스대며 온갖 사치를 다 누리는.

교과서에서는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일단 이때 영토가 광활하고 넓고 강국이네 어쩌네 하면서 열심히 포장한다. 민중의 삶이 실제로 어쨌는가는 정말 대충 설명하고 이 나라 조상님 만세 일색이다.

고대의 전쟁은 전장에서 싸우는 군인들로 사상자가 대부분 한정되고 살상무기도 지금처럼 무지막지하지 않고 잉여생산물도 별로 안 나던 초창기였으니 서로 잡아먹기 위해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은 그렇다 치자. 문제는 생산력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기술적 지적 교육 수준은 말할 것도 없는 오늘날에도 전쟁의 이유가 저 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전쟁을 벌이는 강대국은 오로지 절대선으로 포장되고 영웅이 꼭 등장하며 교전 방식만 달라졌을 뿐 더욱 잔인하게 상대방을 짓밟고 기어이 영토며 자원이며 모든 것을 약탈하고 억압한다. 표현 방식의 차이라면 유치한 영웅담이 그럴싸한 다큐멘터리로 바뀌었다고 해야 되려나?

결국 오늘날까지 수천 년 동안 벌어진 대부분의 전쟁을 표현한다면 아래 문구와 같을 것이다.

 

전쟁이란 서로 알면서 서로 해치지 않는 사람들의 이득을 위해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벌이는 살상이다. ― 폴 발레리

 

 

정작 진짜 전쟁을 시작하면 이성을 잃어버리는 사람들

 

평소 모든 말은 양날의 검과 같다고 생각하는 게 필자의 생각인데, 이번에도 수많은 글들을 인용하면서 그렇게 느꼈다. 상대방에게 너는 절대악이야라고 날렸던 말 한마디가 알고 보니 자기가 믿고 있었던 것이나 자신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평화로운 삶을 원한다. 사고나 분쟁이 없고 평범한 일상에서의 행복한 삶. 그러나 무슨 테러가 발생하고 대량 학살무기나 핵무기가 어쩌고 분쟁지역에 교전이 벌어졌다고 나오기만 하면, 언론에서 던져주는 대로 일단 화부터 내면서 피의 보복을 부르짖는다.

위에서 말한 대로 선과 악은 너무나 분명하다는 교육과 훈육 때문일 수도 있고, 세상을 그저 던져주는 대로만 봐도 심적 물적으로 별다른 변화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언론이 다채로워질수록 오히려 이러한 경향이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한데… 이성적인 판단과는 거리가 먼 언변을 자신의 한정된 지식으로 너도나도 쏟아내기 시작하는 경우를 쉽게 목격하게 된다.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쿠바와 생존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핵을 개발하는 이북,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중동과 아프리카, IS나 기타 단체가 언급되는 분쟁지역에서의 온갖 무기들과 교전, 이 틈을 타 평화와 명분 있는 전쟁만 수행하는 듯 보이는 미국과 UN 등 그 외 국가들.

일단 무슨 테러나 사건만 터지면 사람들은 미국, UN,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하루속히 지상군까지 투입해서 피의 보복을 해서 싹 쓸어버려야 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 절대악으로 지명된 나라와 단체에 자기들의 무기를 신나게 쏟아붓긴 하는데, 지들이 그렇게 정의의 사도라면서 그 지역을 황폐화시켜 놓고 산업 폐기물 버리고 튀듯이 평화를 위해 분쟁을 끝내기 위한 행동은 이후 하나도 하지 않는 이중적인 자세를 매번 보여 준다.

정작 파괴를 부르짖던 사람들은 그 이후에 대해서는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언론 역시 묻어버리거나 별다른 소식이 없다. 그러다 다시 보복성 공격이나 테러가 발생하면 저런 막돼먹은 놈들은 다 죽이고 봐야 돼!를 또 외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러한 경향은 한반도에서 특히 심한데 남의 나라(제국주의 국가들) 항공모함과 전함들이 훈련이건 무슨 이유로든 간에 들어와서 온갖 군사훈련이나 무력시위를 하면, 정세를 분석하면서 연구하기 전에 그것을 불안해하고 꺼려하는 게 아니라 심지어 몇몇은 지옥의 불놀이를 구경 못해서 환장한 정신병자마냥 환호하고 무력통일 운운하고 정의의 응징을 기대한다며 박수를 쳐 주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뭔가 잘못됐다. 특히 미국 군대에 대한 별다른 감정이 없었던 사람들도 군대에 입대하고 나서 미군의 필요성에 대해 떠드는 경우나 별다른 의심 없이 미군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경우를, 가까운 지인이나 필자의 현역 시절 예비군한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들 제국주의 군대가 특정 국가에 주둔하는 함으로써 세계 평화에 공헌하는 것이 전무하다시피 함에도, 언론의 포장과 교육으로 망가진 민중의 이성은 우리 사회에서 그런 소리를 떠드는 것을 감히 허락하지 못하게 한다.

이북이 통상적으로 (이유가 어찌 되었건)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미사일을 만들고 핵실험을 하는 것을 가지고, 분쟁을 조장하고 세계 평화를 해친다며 사람들이 너도나도 게거품을 무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미국의 미사일과 핵무기는?

 

미사일방위는 테러와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인을 위험에서 지킨다는 명분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더 위험한 세계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은 언제라도 적의 미사일을 격추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한편으로 자신들의 나라가 미국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이미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돌파할 수 있는 고성능 미사일을 개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아시아 지역에서 핵무기 개발경쟁이 불붙게 될 것이다.

1972년 미국과 소련은 이런 의미 없는 군비확장 경쟁을 피하기 위해 ABM 조약(탄도미사일 방어에 관한 조약)에 조인했다. 그러나 그 후 미국은 미사일방위를 추진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이 조약을 파기해 버렸다. 미사일방위를 추진하는 사람에게 이런 조약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이러한 정신으로 미 국방부는 공격받기 쉬운 지상설치형 미사일은 줄이는 한편, 잠수함 발사형 미사일을 생산하기 위해 몇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또 미 의회는 이미 세계 164개국이 조인한 핵실험금지조약(CTBT)의 비준을 거부했다.1)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박세길 저, 돌베개)를 보면, 미국이 6.25 한반도 전쟁 당시에 세균전 병기를 쏟아부었다고 하는데, 과연 오늘날에 벌이는 온갖 세균 화학무기 실험 또한 세계 평화를 위해서 하는 거란 말인가?

 

냉전이 끝난 세계 체제 속에서 미국은 군비에 관한 어떤 조약에도 구속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생물무기 연구시설에 대한 국제적인 사찰을 피하기 위해, 미국은 1972년의 생물무기조약을 개정한 신의정서(新議定書) 조인을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연구시설에는 맹독 분말 탄저균을 포함한 치명적인 신종 병원균이 개발되고 있다. 고위급 정부관리는 세균무기의 개발이 그러한 무기로부터 방어할 방법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2001년의 탄저균 살포사건을 통해 세균무기가 미국 내에서 제조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하지만 그전에는 개발이 공식적으로 부정되었다.

하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베트남과 쿠바에 천연두나 그 밖의 생물무기 사용계획을 세운 적이 있는 나라를 다른 나라들이 신뢰할 수 있을까?2)

 

 

전 세계 민중의 희생과 피로 얼룩진 미국 경제의 역사

 

헐리우드의 대체 현실 역사물이나 영웅물을 보면 하나같이 무슨 놈의 악당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별별 괴상한 이유로 계속 나온다. 역사를 알고 나서 보면, 세계에서 식민지를 꽤나 거느리고 타국민의 피로 살쪄 온 국가와 단체들이 죄다 선으로 나오는 황당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문화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던가? 그럼 현실에서는 어떤가 한번 살펴보자.

전쟁은 사기다. 언제나 그랬다. 전쟁은 아마 가장 오래된 사기일 것이다. 또 쉽게 가장 큰 이득을 남길 수 있는 사기이며, 확실히 가장 사악한 사기이기도 하다. 규모로 볼 것 같으면 독보적인 국제적 사기다. 이득은 달러로 계산하고 손실은 인명으로 계산하는 유일한 사기이기도 하다.3)

 

놈 촘스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국에게 전쟁이란 국민을 속여 대기업을 배불리는 수단이다.

 

왜 전쟁 얘기가 나오면 저런 말들이 나오는 걸까? 조국을 위한 전쟁은 성스러움 그 자체 아니던가? 그런데 어째서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인지, 오늘날 제국주의의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는 미국의 역사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 같은 사람이 백날 떠들어 봐야 역사적 사실조차 부정당하는 마당에) 제국주의의 산증인들의 말을 들어보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을 것이니까.

 

자본주의 기억들의 전시 부당이득 취득에 관한 그의 관점은 1935년 11월에 발행된 ≪커먼 센스(Common Sense)≫에 실린 글에 다음과 같이 잘 요약되어 있다(그가 1933년에 한 연설의 일부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보다 해안선에서의 적절한 방어가 옳다고 본다. 다른 나라가 싸우러 오면 당연히 우리도 싸우면 된다. 그런데 미국은 이런 문제를 지니고 있다. 기업들이 우리나라 안에서는 이득을 6퍼센트밖에 올리지 못하자 외국으로 진출해 100퍼센트의 이득을 올리려고 한다. 그러면 정부가 기업을 따르게 되고 군인은 정부를 따르게 된다.

나는 다시는 은행의 비열한 투자를 보호하는 전쟁 따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조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헌법상의 기본 원칙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다른 이유로 벌이는 전쟁은 모두 사기다.

물론 무슨 이유가 됐건 장군님의 바람과는 다르게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는 법 따위는 고치면 그만이고 조국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수행하겠지만.

 

나는 33년 4개월 동안 가장 역동적인 군대인 해병대에서 현역으로 복무했다. 소위부터 소장까지 해병대의 모든 지휘관 계급을 거쳤다. 그런데 나는 그 기간의 대부분을 빅 비즈니스(지금의 대기업)와 월스트리트와 은행을 위해 일하는 고위 폭력배로 보냈다. 요컨대 나는 자본주의를 위해 일한 사기꾼이자 폭력배였다.

나는 그 시절 내가 사기꾼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 내가 사기꾼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모든 직업 군인들처럼 나도 현역을 떠나기 전까지는 자신만의 생각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 상부의 지시에 복종하는 동안 내 정신 능력이 정체되어 있었다. 이것은 모든 현역 직업 군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마치 현역 시절 다른 생각은 할 겨를도 없는 군인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오로지 출세와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온갖 억압적인 복종 역시 그대로고.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정신 능력이 정체되어 있었다고 저렇게 고백할 수 있을까?

 

… 돌아보면, 내가 알 카포네(1899‒1947, 갱 두목)에게 몇 가지 힌트를 줬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3개 구역(시카고 내)을 누비며 사기를 쳤다면, 나는 3개 대륙을 누비며 사기를 쳤다.

미국 인디언, 필리핀인, 멕시코인에 대한 우리의 약취는 칭기즈 칸(1162‒1227)과 일본인들이 만주에서 벌인 군사 행위나, 무솔리니의 아프리카 공격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그들 중 어느 나라도 우리에게 선전 포고를 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먼저 강압적인 제스처를 취했을 뿐이다. 우리의 역사를 보라. 방어를 위한 전쟁은 치른 적이 없지 않은가.4)

미국 자본을 위해 전쟁을 했다고 저리 열심히 열변을 토하시는데, 비꼬아서 말한다면 방어를 위한 전쟁을 열심히 하긴 했다. 자본주의가 망하는 걸 방어하는 전쟁.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의와 자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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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고등학교 선생님께 갚을 게 있어 뵈러 가는 길에, 바로 옆 인덕대학 한가운데에 해병대 부사관 모집 현수막이 터줏대감마냥 걸려 있었다. 그중 조그만 글자의 첫 문구가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징집당한 한국 남자들의 군 얘기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어봐도 정의는커녕 자유조차 없는 삭막한 환경에서 원치 않는 이유로 서로가 학대하다가 미쳐버리기 직전에 전역하던데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문구 같다.

앞서 미국의 예를 들었지만, 이 땅에서도 박정희 군사 정권에 의해 아무것도 모른 채 오로지 반공 하나만으로, 내 삶의 자유도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남의 자유를 지킨다는 핑계로, 한국 근로대중의 자식들이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 대신 저질러야만 했던 끔찍한 만행들은 자유를 위한 거였다고 하는데, 그것이 누구를 위한 자유였기에 베트남 민중들을 잔인하게 학살까지 해야 했냐고 묻는다면 저들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위해? 자유세계 수호를 위한 전쟁? 공산주의는 이상과 달리 안 좋은 것이고, 독재를 부추겨서 나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막말로 남베트남이 진정 민중을 위한 국가였고, 또 베트남을 위한다는 명분이 사실이었으면, 수많은 파병군인들의 희생은 물론이오 미국의 온갖 군사원조를 수년 동안 받은 나라가 막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미 제국주의가 철수하고 북베트남의 선전 선동에 민중들이 동조하면서, 무장 수준이 한참 뒤처지는 북베트남에 무기력하게 패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들의 논리대로라면 쿠바는 독재국가라서 20세기 말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와중에 민중들이 자유를 찾아 (자본가를 위한 자유겠지만) 반란을 일으켜 새로운 나라가 세워졌어야 정상인데 왜 그렇지 않은 건가?

요즘 거리에는 꿈과 희망, 국가와 민족 돈벌이를 위해서 군으로 오라는 부사관과 장교 모집 천막과 포스터가 여기저기 덕지덕지 걸려 있다. 그 대상은 공부 좀 한다는 대학생이고 배움이 좀 부족한 저학력층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모병에 응한 이들을 데려다가 그들의 머리에 개똥같은 철학을 한가득 채워 넣어주며, 누구를 위한 건지 모를 국가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열렬한 찬양을 하게 만든다. 저들 장성급 군인과 자본주의에 지배자들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자유가 민중을 위한 자유가 맞긴 한 것인가? 베트남에 파병된 미군들이 진정 민중의 자유 수호를 위한 전쟁을 수행했다면 저리 비참하게 미쳐서 죽어 가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

 

게다가 살아남은 병사들조차도 머릿속에서 전쟁의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50만 명에 이르는 베트남전 귀환병들은 무서운 전쟁의 기억으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자살한 미군의 숫자가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보다 많다.

수십만에 이르는 귀환병들이 홈리스로 살아가고 있다.5)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월터리트 군병원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군인이 양팔을 잃은 군인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며 담배를 나눠 피는 저 모습을 보면서 저분들을 무작정 동정하고 싶지 않다.

 

hec.11308     1918       Harris & Ewing          Walter Reed

hec.11308 1918 Harris & Ewing Walter Reed

 

진정 그들을 위한다면 무슨 이유로 어떤 자들이 저들이 저런 꼴이 되게 몰아갔냐며 분명하게 따져야 할 일일 것이다.

우리는 불쌍한 이웃들에게 동정심을 가지도록 교육받았으면서 정작 이웃을 불쌍하게 만드는 자들에게 분노하고 그들을 용서하지 말라고 배우지는 않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대중은 말도 안 되는 불의나 자신이 존재하는 체제 내부의 부당한 억압을 보고도 분노하면 안 되는 것인가? 그것이 설령 폭력적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민중에게 무언가를 시키는 내지 강요하려는 자들은, 가장 합법적인 방식으로 또는 필요하면 마음대로 법을 어기면서 가장 잔혹한 수준의 폭력을 정작 아무렇지도 않게 지시하고 휘두르는 데 말이다.

얼마 전에 죽은 세계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베트남전 징병에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알리가 징집을 거부하면서 난 베트공과 다툼이 없다, 왜 그들은 내게 제복을 입고 고향에서 수십만 마일 떨어진 곳에다 폭탄을 투하하고 베트남의 유색인종에게 총알을 박으라고 하나. 지금도 루이빌에서 소위 니그로(미국에서 흑인을 낮춰 부르는, 검둥이라는 뜻의 비속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개처럼 취급받고 기본적 인권도 거부당하고 있는데 말이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 백인 청년이 알리의 참전 거부를 비난하자 알리는 나의 적은 베트공이나 중국인, 일본인이 아닌 백인이다. 내가 자유를 원할 때 당신이 나의 반대자다. 내가 정의를 원할 때 당신이 나의 반대자다. 내가 평등을 원할 때 당신이 나의 반대자다. 미국에 있는 당신은 나의 종교적 믿음조차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내가 어딜 가서 싸우길 바란다. 여기 고향에서도 당신은 나를 위해 싸워주지 않으면서 말이다라고 말해 반전 활동가들의 칭송을 받았다.6)

 

무하마드 알리와 다른 이유지만 내가 그러한 문구를 보고 한숨을 내쉬고 욕설을 내뱉게 되는 이유는, 군대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이 고통받고 부조리가 있어도 침묵해야만 하고 일이 잘못되거나 아프고 힘든 게 있어도 내색 한 번 못하고 그저 참는 것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것을 수도 없이 봤으며 젊은이들의 육신을 의무라는 이유로 헐값에 착취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노동자로서 과로에 시달리지 않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부르짖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자본과 그를 감싸기 바쁜 국가권력에 억눌려 헌법에 형식적으로 써 놓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시민으로서의 기본권도 피 터지게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단 하나도 보장받지 못하고 오히려 소멸당하는 나라이고, 매번 제국주의자들이 선전 선동하는 추악하기 짝이 없는 정책과 전쟁에 동맹국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열렬히 동참하는 나라인데, 왜 이 나라에 세금을 순순히 바치고 이 나라를 위해 육신을 희생해야 하는가?

이제 이유도 역사도 알았으니, 난 뭐라고 따지던 그들의 자유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가진 게 적은 민중의 아들딸이라서, 근로대중의 처절한 희생으로 유지되는 국가권력임에도 보상 하나 없이 봉사하라고 하시는데… 그 잘난 의무 때문에 보상 하나 못 받고 육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것, 남들도 똑같이 그러는 것을 보는 것도 서러운데, 누구를 위한 건지도 모르는 자유를 수호하라고 하는 것이 나중에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인지 알았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는 한 줌의 자유와 권리마저 자발적으로 양보하고 싶지 않으니, 우리보고 시키지 말고 당신들이 직접 지키면 될 일 아닙니까?

노동자 민중이 소모품이 아닌 진정 인간답게 살기 위해 직접 주인이 되는 나라가 아니라면, 어느 당 어느 누가 권력을 가지고 있든 내 알 바 아닙니다. 이 나라를 위한 애국은 권력을 가진 당신들이 직접 하십시오. 당신들만의 우리나라이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노/사/과/연>

 

 

 


1) 조엘 안드레아스 지음, 평화 네트워크 옮김, ≪전쟁중독―미국이 군사주의를 차버리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 도서출판 창해, 2003, p. 46.

2) 같은 책, p. 47.

3) 스메들리 버틀러 지음, 권민 옮김, ≪전쟁은 사기다≫, 공존, 2013, p. 70.

4) 같은 책, pp. 52-54.

5) 조엘 안드레아스, 앞의 책, p. 55.

6) 김지은 기자, “알리는 민권운동가ㆍ양심적 병역거부자ㆍ인도주의자였다”, ≪한겨례≫, 2016. 6. 6. <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747053.html>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Aug 28th, 2017 | By | Category: 회원마당 | 조회수: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