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혁명의 세계사적 의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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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키사카 이쯔로(向坂逸郞)

번역: 편집부

 

 

* 이 글은 사키사카 이쯔로(向坂逸郞)의 十月革命の世界史的意義(≪唯物史觀≫ 제5호, 1967년)를, 向坂逸郞 ≪資本論と現代≫(法政大學出版局, 1970년)에서 번역한 것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역자의 간단한 보충 등은 각괄호([ ]) 속에 넣었다. 필자 사키사카 이쯔로(向坂逸郞, 1897-1985)는 노농파 맑스주의자로서 일본 사회당 좌파의 핵심적인 이론적 지도자였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오류랄까, 동의하기 어려운 점들도 없지 않으나, 10월 혁명 100주년을 맞아 참고 자료의 하나로 번역한다. 2번에 걸친 연재 중 지난 호에서의 계속이다.

 

 

4. 제국주의 하의 농민

 

제국주의 시대의 농민계급의 지위를 명백히 한 것도 역시 레닌이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는 노농동맹론이다.

일본 경제의 이중구조라는 이론이 있다. 이것은 잘못된 이론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그 사회 자체를 이중구조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단순히 지배적 자본(독점자본) 외에 중소자본ㆍ영세기업이 있고, 농민계급이 있으며, 노동자계급 중에 거대자본의 고임금 노동자가 있고, 중소자본ㆍ영세기업의 노동자가 있을 뿐이다.

이중구조라는 말은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에 의해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자본주의를 전체적으로, 즉 일본의 경제구조를 전체적으로 보면, 그것은 이중이 아니라 일중(一重)이다. 독점자본에 의한 착취의 기구이다. 각 계급이나 계층이 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모두 다 독점자본에 의해서 착취되고 있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의 착취기구에 의한 착취와 독점가격 메커니즘ㆍ조세ㆍ인플레이션으로 4중으로 착취당하면서 자본축적을 촉진한다.

중소기업도 독점자본에 의해서 착취당하는 기구 속에 있다. 독점자본이 계열 기업화하는 것도 있고, 외견상으로는 독립기업이지만 독점자본과의 거래에 의해서 착취당하고 있는 것도 있다. 중(中)자본이 독점자본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입장에 있는가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농민들의 경우, 그들의 생산물의 가격은 독점자본과의 경쟁에 의해서 낮게 결정되고, 그들이 소비하는 생산수단과 소비수단은 원칙적으로 독점가격을 강요당하고 있다. 지식계급도 독점자본의 사상 억압과 그 소비재의 독점가격에 의한 착취를 면할 수 없다.

제국주의 단계는 이렇게 독점자본에 의해서 다른 모든 계급이 착취ㆍ억압당하는 체제이다. 사회에서 생산된 모든 잉여가치가 직접적ㆍ간접적으로 사자(獅子)의 몫을 독점자본에게 빼앗기면서 독점자본의 중압(重壓)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사회체제인 것이다. 따라서 제국주의 단계는 다른 모든 계급 및 사회계층이 독점자본의 지배에 모순을 느끼는 일중의 사회체제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계급처럼 기본적으로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계급이 중핵이 되는 데에 성공하면, 상대적으로 독점자본에 대립하는 다른 모든 계급 및 사회계층을 이끌고 통일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사회체제이다. 따라서 제국주의 단계는 중자본처럼 두 계급의 적대적 대립의 중간에 있어 동요하는 요소도 있지만, 성공한 통일전선이 독점자본을 고립시킬 수 있는 사회체제이다. 물론 각 계급, 각 사회계층은 상호 상대적으로 대립하지만, 독점자본의 억압과 착취가 기본적인 모순을 이루고 있는 사회체제이다.

앞 절에서 말한 것처럼, 제국주의에 의해서 착취ㆍ억압당하는 민족들의 독립운동은, 레닌이 보여준 것과 같은, 분리할 권리를 포함한 민족자결권을 주장함으로써 제국주의 국가들에서의 노동자계급을 핵심으로 한 통일전선 운동과 연대할 수 있다. 즉, 제국주의 국가의 세계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제국주의 국가 내의 노동자계급도 스스로를 해방하기 위해서는 피억압 민족의 해방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민족은 스스로를 해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국주의의 본질을 분석하고, 이 시대의 사회주의 혁명의 본연의 모습을 명백히 한 것은 레닌의 ≪자본주의의 최후의 단계로서의 제국주의≫[≪제국주의론≫](1916년)이다.

러시아 혁명은 인구의 압도적 다수(82%)가 농민인 나라에서 일어났다. 따라서 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가 어떻게 동맹을 맺을 것인가가 사회주의 혁명의 승패를 결정하는 최대의 문제였다. 레닌은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의 발달≫[(1899년)] 이후, 자본주의 하에서의 농업문제에 관해서, 농민의 역사적 성격과 자본주의 하에서의 그 발전을 구명(究明)하는 수많은 논문과 소책자를 쓰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제국주의 하의 농민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농민과의 동맹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에 관해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풍부한 지침이 되고 있는 것은 ≪러시아 제1혁명에서의 사회민주당의 농업 강령≫(1907년 11월‒12월)과 10월 혁명에서의 농업정책의 실천이다.

영국처럼 취업인구의 90% 이상을 봉급생활자나 노동자계급이 점하고 있는 나라의 사회주의 혁명에서 농민이 점하는 중요성은 러시아와는 다르다. 또한 일본처럼 농민이 취업인구의 30% 정도로 되어 있고, 그중에서도 프롤레타리아화(化)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곳에서도 사회주의 혁명에서의 농민의 중요성은 러시아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렇지만, 일본의 사회주의 혁명에서 농민의 중요성이 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일본의 사회주의 혁명에서도 노동자와 농민의 동맹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소시민이나 근대적 인텔리겐차의 역할도 크다. 그리하여, 혁명의 핵심이 될 노동자계급이 소시민이나 인텔리겐차와 어떻게 결합하고 이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는 극히 중대한 문제이다.

일본에서 독점자본을 고립화시키기 위하여 일본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취해야 할 통일전선 형성을 위한 전술은, 레닌이 러시아 혁명에서의 농민의 역할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말하고 실천에서 적용한 방식으로부터, 즉 쏘비에트 혁명과 레닌의 이론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각 사회계층의 실리(實利)를 존중하면서 그들을 사회주의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예컨대, 레닌은 농민에게 토지를 주라는 슬로건을 철저하게 수행했다. 이 자체는 사회주의의 실현이 아니다. 그러나 농민을 콜호즈[협동농장]로 이끄는 것은 사회주의 정책이다. 사회주의로 …라는 역사의 흐름은 모든 근로자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농민도 소시민도 일정 기간의 실천과 경험이 없이는 그들의 소소유(小所有) 그것이 그들의 보다 높은 실리에 장애로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역사의 흐름은 제국주의 시대에, 특히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에 독점자본 고립화의 필연적 법칙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시작하고 있다. 이 [독점자본의] 경제와 노동착취는, 우리의 주체 확립에 적확(的確)하게 활용되고, 동시에 광범한 반독점 통일전선의 성립에서 실천되어야 할 객관적인 역사적 조건이다. 레닌의 정책은 언제나 역사의 중심적 담당자인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 목표를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그 토대로서 고려되고 있는 것은 그 사회계층의 물질적 실리이다. 이것은 유물사관을 충분히 터득하고 있는 사람의 당연한 사고(思考)이다. 추상적ㆍ관념적인 모럴[moral]은 공소(空疏)하다. 모럴은 반드시 물질적 토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일본경제 이중구조론이라는 안이한 사고방식에 반대하여 독점자본의 지배를 중심으로 일본경제를 통일된 유기적 체제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반독점자본 통일전선론의 토대에 물질적 근거가 있다는 것, 즉 잉여노동의 직접적ㆍ간접적 착취라는 토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대하여 주체적으로 적응하고 구체적이고 적확한 투쟁 목표를 수립하는 것에 있다.

10월 혁명에서의 레닌의 태도를 연구하면 할수록, 어떤 나라의 사회주의 혁명가에게나 불가결한 일반적 지침이 있음을 알게 된다.

 

 

5. 국가와 혁명

 

사회주의 혁명은 일본에서는 독점자본의 지배체제를 파괴하고 그 권력을 노동자계급이 탈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언제나 그렇다.

엥엘스는 맑스의 ≪프랑스의 내전≫[1871년] 서문[1891년]의 말미에 이렇게 부기(付記)하고 있다. 독일의 속물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말에 요즈음 유익한 공포에 빠져 있다. 좋다, 신사 여러분, 당신들은 이 독재란 어떤 모습인가를 알고 싶은가? 빠리 꼬뮌을 보라. 그것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였다. ([빠리 꼬뮌 20주년에. 런던에서] 1891년 3월 18일.) [MEW, Bd. 22. S. 199.]

엥엘스의 이 서문은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국가 형태를1),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빠리 꼬뮌에서의 실천을 통해서 명백히 하고 있는 것으로서 실로 귀중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란 무엇인가? 그 실물을 빠리 꼬뮌에서 보라!고 한다. 빠리 꼬뮌이란 무엇인가? 프롤레타리아트가 낡은 국가형태를 파괴하고 철저하게 민주주의를 실현시켜 보여준 것이다. 빠리 꼬뮌에서 볼 수 있었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란, 프롤레타리아트를 중심으로 한 근로시민의 민주주의이다. 맑스가 ≪프랑스의 내전≫ 속에서 빠리 꼬뮌의 결함을 지적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의 언제나 민주주의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란 부르주아지의 독재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란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주의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독점자본을 중심으로 한 지배계급의 민주주의이다. 따라서 소수자를 위한 민주주의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란 사회의 압도적 다수자의 민주주의이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의 반동적인 기도나 반혁명을 억압하기 위한 정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명확히 독재라고 말하는 것이다.

≪공산당 선언≫에서 맑스[와 엥엘스]근대적 국가권력은 단지 부르주아계급 전체의 공통의 사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공통의 사무의 핵심은 잉여가치의 착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 간의 관계는] 계급 간의 적대적 대립인, 피착취자와 착취자 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공통의 사무는 피착취자의 착취자에 대한 저항을 억눌러 자본주의라고 하는 착취자의 사회를 수호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독재는, 민주주의라고 이름이 붙여지든 아니든, 억압기구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도, 사회주의 혁명이 계급투쟁의 정점이기 때문에, 당연히 또한 억압기구이다.

우리도 ≪승리의 전망(勝利の展望)≫2)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혁명적 사회주의 정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 이 독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형태로 수행되는 소수자의 부르주아 독재보다도 훨씬 광범하게 확충된 민주주의이다. 인구의 압도적 다수의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충실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이 생겨나고,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확대ㆍ심화된다.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즉 사회주의가 실현된다.

이렇게 하여 사회발전을 규정하는 물질적 생산력은 그 기본적 질곡이 제거되어, 새로운 사회질서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순을 의식적ㆍ계획적으로 해결하면서, 혁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발전을 필연적이게끔 한다. 이러한 사회질서를 토대로 해서만, 의식적ㆍ계획적으로 인간의 경제생활과 문화는 무한한 발전의 전망을 얻는다. 고도의 지성과 덕성의 전개가 기대된다. 국가권력은 서서히 사멸하여, 맑스가 각자는 능력에 따라서 노동하고, 필요에 따라서 주어진다고 한 보다 높은 공산주의의 단계3)에 접근한다라고. 서서히 사멸한다(absterben)고 하는 것은 엥엘스의 말이다.

맑스는, 앞에서 인용한 바이데마이어 앞으로의 편지 속에서, 내가 새롭게 한 것은, 1. 계급들의 존재는 생산의 일정한 역사적 발전단계와 결부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 2.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로 귀결된다는 것, 3. 이 독재 자체는 모든 계급을 폐지하고 계급 없는 사회로 가는 이행기를 형성할 뿐이라는 것을 입증한 것이었다(칼 맑스, 맑스가 뉴욕의 요제프 바이데마이어에게(新潮社 판 ≪맑스-엥엘스 선집≫ 제4권, p. 40.; [MEW, Bd. 28. S. 508.;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2권, p. 497.])라고 말하고 있다.

제2 인터내셔날 시대에는 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의의가 차츰 잊혀지고 있었다. 이것을 레닌은 10월 혁명의 도상에서 재차 명확히 했다. ≪국가와 혁명 ― 맑스주의 국가 이론과 혁명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1917년 8월‒9월 집필. 1918년 발행),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교자 카우츠키≫(1918년 10월‒11월 집필. 1918년 발행), 기타 많은 문헌.

맑스주의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성격은 독재 그 자체를 소멸로 이끌기 위한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는 그 자신의 존재의 의의를 없애는 것을 그 역사적 사명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10월 혁명 이후 50년의 발전은 이 탄압기구로서의 국가를 서서히 사멸시키고 있었다. 오늘날 쏘련의 인구는 노동자계급(봉급생활자를 포함) 약 68.3%, 콜호즈 [및 소포즈(국영농장)] 농민 31.4%, 개별농민 및 협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수공업자 0.3%이다. 절대수로 말하면, 총인구 2억880만 가운데 노동자ㆍ봉급생활자 1억4,270만, 콜호즈 농민 6,550만, 개별농민 및 협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수공업자 60만이다.

노동자ㆍ봉급생활자는 거의 전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다. 농민도 거의 전부 콜호즈[ 및 소포즈(국영농장)]로 조직되어 있다. 결국, 극히 적은 부분을 제외하곤, 모두가 사회주의적으로 조직된 노동자계급 및 일반 근로자계급이다. 거기에 계급의 차이는 있다. 이 차이를 대립이라고 한다면, 계급의 대립은 있다. 그러나 이들 계급 간에는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적대적 대립은 없다. 따라서 또 억압기구로서의 국가권력은 차츰 필요하지 않게 되고 있다. 국가는 엥엘스가 말하는 것처럼 사멸할(absterben)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사멸하고 있다.

≪쏘비에트 연방 공산당 강령≫은 쏘비에트 연방이라는 국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회주의 혁명에 의해서 태어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쏘련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보장하고, 세계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와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자체가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변화했다. 착취자계급이 근절되었기 때문에 착취자의 반항을 억압한다고 하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하나의 기능은 소멸했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의 주요 기능―경제적ㆍ조직적 기능과 문화적ㆍ교육적 기능―이 전면적으로 발전했다. 사회주의 국가는 그 발전의 새로운 시기에 들어왔다. 국가가 사회주의 사회의 근로자의 전 인민적 조직으로 성장ㆍ전화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는 더욱더 전 인민적ㆍ사회주의적 민주주의로 전화해 왔다.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권력을 영구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은 역사상 유일한 계급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공산주의의 제1 단계인 사회주의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승리와 공산주의의 전면적 건설로의 사회의 이행을 보장함으로써 그 역사적 사명을 다 수행하여, 국내적 발전이라는 임무로 보아 쏘련에서는 필요가 없어졌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국가로서 태어난 국가는, 오늘날의 새로운 단계에서는 전 인민의 국가, 전 인민의 이익과 의지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변했다. 노동자계급은 쏘비에트 사회의 가장 선진적이고 조직된 세력이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시기에도 지도적 역할을 수행한다. 노동자계급이 사회의 지도자로서의 그 기능을 다 수행하는 것은 공산주의가 건설되어 계급이 소멸하는 때이다.

당은 노동자계급의 독재가 국가의 사멸 이전에 필요하지 않게 된다는 입장에 서 있다. 전 인민의 조직으로서의 국가는 공산주의가 완전히 승리할 때까지 존속할 것이다. 국민의 의지를 대표하는 이 국가의 사명은, 공산주의의 물질적ㆍ기술적 기초를 만들고, 사회주의적 관계들로의 개조를 조직하며, 노동과 소비의 척도에 대하여 통제하고, 국민의 복지 향상을 보장하며, 쏘비에트 시민의 권리와 자유, 사회주의적 재산을 보호하고, 지각적인 규율과 공산주의적 노동태도의 정신으로 인민대중을 교육하며, 나라의 방위와 안전을 확보하고,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형제적 협력을 왕성히 하며, 세계평화의 대업을 지켜내고, 모든 나라와의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쏘비에트 러시아 연방을 통해서 국가권력의 역사적 운명을 이렇게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맑스ㆍ엥엘스는 사회주의 사회를 빠리 꼬뮌의 짧은 생애 속에서 골라내 보여 주었다. 이 작은 생명은, 50년이 되어 세계 최강의 사회주의 국가로 늠름하게 성장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계급국가라는 성격을 서서히 사멸시켜 가고 있다. 적대적인 계급대립을 제거하는 데에 성공한 국가는 계급적 억압의 기관으로부터 전 인민적 국가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상 최초로 성립된 사회이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그 성격을 상실하고 있는 역사 과정이다. 맑스ㆍ엥엘스의 천재성은 이것을 100년도 더 전에 예언했다. 그들은 국가의 이 사멸과정을 역사상의 현실로서 볼 수는 없었다. 10월 혁명의 발전은 이것을 쏘비에트 연방에서 실증해 보여주었다. 세계 역사상 전적으로 새로운 사회현상이다.

전 인민적 국가 따위는 없다고 우겨대는 외국인이 있다. 나는 오히려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적대적 계급대립이 실제로 없어진 국가를, 따라서 국가권력의 억압적 기능이 사라진 사회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서서히 그 역사적 역할을 다하고 있어서 이제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을 지도하고, 그와 더불어 주로 문화적ㆍ도덕적 지도, 사회의 조직적 질서를 추진ㆍ지도하는 것을 그 임무로 하는 기능만이 남는 국가를 전 인민적 국가라고 부른다고 하는 이 발전은, 맑스ㆍ엥엘스가 예상하지 않은, 혹은 적어도, 충분히는 예상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라 하더라도, 역사상 현실적으로 나타난 단계이기 때문에, 계급의 적대적 대립이 사라진 이 사회를 전 인민적 국가라고 부르는 데에 이의를 제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은 노동자계급의 독재가 국가의 사멸 이전에 필요하지 않게 된다는 입장에 서 있다. 전 인민의 조직으로서의 국가는 공산주의가 완전히 승리할 때까지 존속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고도로 발전한 공산주의 사회로 다가간다. ≪쏘비에트 연방 공산당 강령≫의 중심 문제는 고도로 발전한 공산주의 사회로 들어가는 전제인 경제건설, 요컨대, 공산주의의 물질적ㆍ기술적 기초를 완성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제국주의의 강제를 가진 독점자본의 국가들이 있고, 피억압 민족들이 완전히 독립해 있지 않다. 따라서 쏘비에트 연방에서는 아직 고도로 발달한 무기의 생산이 사회생활이 직접적으로 필요로 하는 생산물의 생산의 발달을 지체시키고 있다. 나아가, 군대는 명령과 군대적 조직과 군대적 규율 위에 성립되어 있다. 아무리 민주주의적인 군대라 하더라도 전쟁터에서 생사의 투쟁을 하는 역할로부터 오는 특수한 요소 없이는 군대일 수 없다.

그 때문에, 역사의 발전은 불가피하게 국가를 사멸시킨다. 국가가 완전히 사멸하기 위해서는, 내적조건―발전한 공산주의사회의 건설―뿐만이 아니라, 외적조건―국제무대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와 확립―도 충족되는 것이 필요(같은 책)하게 된다. 국제관계에서 전쟁의 위험이 없어지는 것은 발달한 공산주의에 도달하기 위한 긴요한 조건이다.

레닌은 사회주의 혁명이 구체적으로 현실적 문제로 된 시대에 맑스주의의 기본적 이론을 명확히 하였다. 그것은 제국주의 시대에 적용된 맑스주의이다. 레닌주의는 맑스ㆍ엥엘스의 정통의 계승자이다. 10월 혁명은 물론 제국주의 시대에 러시아가 처한 특수한 역사적ㆍ객관적 조건 하에서 수행되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이라고 하는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 나아가, 19세기의 러시아 사회의 모순은 이를 설명하고 극복할 이론과 운동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맑스와 엥엘스가 생존했던 시대에 맑스주의의 체계에 접근할 수 있는 때와 장소(유럽)에 있어,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론적 수련을 용이하게 할 수 있었다. ≪공산당 선언≫은 바꾸닌[(Mikhail Aleksandrovich Bakunin, 1814‒1876)]에 의해서 1860년대에 러시아어로 번역되고 있다. ≪자본론≫ 제1권은 다니엘손[(Nikolai Franzewitsch Dan-ielson, 1844‒1918)]에 의해서 일찍이 러시아어로 옮겨졌다. 다니엘손은 맑스ㆍ엥엘스에게 직접 질문하여 회답을 구하는 행운도 누렸다. 쁠레하노프[(Georgit Valentinovich Plekfanov, 1856-1918)]는 엥엘스와 직접 접촉할 수 있었다. 레닌은 1870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맑스ㆍ엥엘스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지는 않았겠지만, 유럽에서 망명생활을 보내 유럽의 맑스주의 운동과 직접적으로 접촉했다. 레닌은 그 이전에 이미 젊은 날부터 놀랍게 근면한 학습에 의해서 맑스ㆍ엥엘스의 이론을 깊이 연구하고 있었다. 1899년, 옥중생활이 낳은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의 발달≫이라는 방대하고 엄밀하게 맑스주의적인 이론의 산물은 레닌이 어떻게 맑스의 이론을 구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나중의 유럽에서의 망명생활은 그의 이론체계를 완성하는 시기가 되었다.

 

 

6. 유물론

 

물질의 유일한 특성은 객관적인 실재(實在)라는 성질, 우리 의식의 외부에 존재한다는 성질이다는 레닌의 말을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9년)]에서 알았을 때는 춤을 추고 나서고 싶을 정도로 기쁨을 느꼈다.

학창 시절부터, 다소라도 역사적 유물론을 공부하기 시작한 후 가장 궁금했던 것은 맑스주의의 유물론에서 말하는 물질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경제학부에 다니고 있었지만, 문학부의 철학 강의도 들었다. [그런데] 맑스의 유물론 등을 강의하는 선생은 없었다.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von Feuerbach, 1804‒1872)]는 철학사 강의 중에 나오기는 했지만, 거의 한마디, 5분 정도 그에 관해서 말하고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영국이나 미국의 경험론 철학책들을 찾아 읽었다. 실용주의(pragmatism) 속에 유물론이 숨어 있지나 않을까 생각하여 읽어본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었다.

제1차 대전이 끝나고서 독일 책들이 싼값에 들어 왔다. 그중에는 특히 독일공산당계의 책들이나 독일사민당계의 책들이 많았다. 돈이 있는 대로 샀다. 그 중에는 막스 아들러[(Max Adler, 1873‒1937)]의 ≪맑스주의의 제문제(マルクス主義の諸問題)≫가 있었다. 이것은 칸트와 맑스[(Kant und der Marxismus. Berlin 1925)?]여서, 칸트의 관념론과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은 모순되는 이론이 아니라는 논의가 쓰여 있었다. 한참 후에 그의 ≪인과론과 목적론(因果論と目的論)≫을 흥미진진하게 읽었지만, 이 역시 유물론 책은 아니었다.

프리드리히 아들러[(Friedrich Wolfgang Adler. 1879‒1960)]의 마흐주의에 관한 책도 읽었다. 마흐[(Ernst Waldfried Josef Wenzel Mach, 1838‒1916)]의 책 ≪인식과 오류(認識と誤謬, Erkenntnis und Irrtum)≫(1905년)는 샀지만, 읽지는 않았다. 오스트발트[(Friedrich Wilhelm Ostwald, 1853‒1932)]의 유물론이나 에네르기론도 찾아 읽었다. 엥엘스의 ≪반뒤링론(Anti-Dühring, 정식 명칭은 Herrn Eugen Dührings Umwälzung der Wissenschaft)≫을 영역(英譯)으로 읽었다. 초역(抄譯)된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 영역자가 서툴렀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독일어 원본으로 읽자 영역본만큼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칼 카우츠키[(Karl Johann Kautsky, 1854‒1938)]의 ≪윤리와 유물사관(倫理と唯物史觀, [Ethik Und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도 읽었다. 프란츠 메링[(Franz Erdmann Mehring, 1846‒1919)]의 철학 논문들도 몇 개 읽었다. 쁠레하노프가 독일사회민주당의 이론잡지 ≪노이에 짜이트(Neue Zeit)≫에 썼던, 수정주의자 비판논문 몇몇은 대단히 재미가 있었다. 맑스주의 유물론에서의 포이어바흐의 지위 등도 독일어로 번역된 쁠레하노프의 저서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포이어바흐의 평가도 다소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물론에 관해서 나에게 결정적인 확신을 준 것은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9년)이었다. 이 책을 읽고 물질이란 우리의 감각에 주어지는 객관적인 현실성임을 배웠을 때, 나에서는 맑스의 유물론에서 말하는 물질이 마흐나 아베나리우스[(Richard Ludwig Heinrich Avenarius, 1843‒1896)]나 오스트발트와 같은 자연과학적 유물론에서의 에네르기 등등이 자연과학적 내용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자연과학의 진보를 가져오는 일체(一切)의 자연적 성질의 인식을 포함하여 우리의 인식에 주어진 객관적인 성질이라는 레닌의 유물론이 비로소 일체의 자연과학의 발전을 예상한 진정한 유물론임을 알았다. 나로 하여금 당당하게 유물론자라고 칭할 수 있기에 이른 것은 이 책 덕분이었다.

나는 엥엘스의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년)을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철학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가르쳐준 것도 레닌의 위의 책이었다.

제2 인터내셔날 시대의 독일에서 맑스주의자들은 철학에 약했다. 칼 카우츠키도, 프란츠 메링도 철학에 약했다. 요제프 디츠겐[(Peter Josef Dietzgen, 1828‒1888)]의 유물론에도 결함이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게오르기 쁠레하노프, 레닌에 의해서 맑스ㆍ엥엘스의 유물론이 계승되었다. 여기에서도 레닌은 맑스ㆍ엥엘스의 정통의 계승자였다.

내가 이 논문에서 꾀한 의도는 여기에서 달성되지 못했다. 나는 처음부터 10월 혁명의 세계사적 의의로서 당연히 서술되어야 할 구체적인 경제적ㆍ정치적 성과에 관해서 서술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10월 대혁명으로의 과정과 대혁명 후에 전개된 레닌주의가 러시아의 특수한 산물일 뿐 아니라, 그 특수성은 현대에 있어서의, 사회주의 혁명의 시대에 있어서의 맑스주의의 일반성을 포함하고 있음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금후 일어나는 몇몇 나라의 사회주의 혁명에 관해서 말하더라도, [그것들은] 러시아 대혁명이라는 특수한 방식 하에서 그 토대를 이루고 있는 맑스ㆍ레닌주의의 일반성의 특수한 적용형태이다. 10월 혁명이 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돌파구였다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사/과/연>

 

 

 


1) [역자 주] 보다 정확하게는,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고도의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기의 국가형태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는 전자로부터 후자로의 혁명적 전환의 시기가 있다. 그에 대응하여 역시 정치적 이행기가 있고, 그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 이외의 다른 것일 수 없다.” (“고타강령 비판”, MEW, Bd. 19. S. 28.; 이수흔 역, “…”,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4권, pp. 385-386.)

2) [역자 주] ≪승리의 전망(勝利の展望)≫: 일본의 사회주의협회(社會主義協會)가 제7차 대회(1966년 2월)에서 채택한 동 협회의 강령적 문헌. 맑스-레닌주의를 동 협회의 기본이념으로 선언하고 있고, 정식 명칭은 ≪勝利の展望 ― 日本資本主義とわれらの闘い≫.

3) “공산주의 사회의 보다 고도한 단계에서, 즉 개인이 분업에 노예적으로 종속되는 일이 없어지고, 그와 더불어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없어진 후에, 노동이 단지 삶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제일의 삶의 욕구가 된 후에, 개인의 전면적인 발전과 함께 그의 생산력도 증대하고 그리고 협동조합적 부의 모든 원천이 더욱 완전히 넘치게 된 후에 ― 그때에야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협소한 지평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고, 사회는 그 깃발에 이렇게 쓸 수 있다. 각자는 그 능력에 따라서, 각자에게는 그 필요에 따라서!” (“고타강령 비판”, MEW, Bd. 19, S. 21.; 이수흔 역, p. 377.)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Aug 28th, 2017 | By | Category: 번역 | 조회수: 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