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26)

 

문영찬 | 연구위원장

 

 

제5장 과학의 발전과 그에 대한 철학적 일반화

 

인간의 지적 발전은 곧 인간의 이 세계에 대한 인식의 심화의 과정이었다. 신앙에 대해 지식이 충돌하면서 철학이 발생하였고 그러한 지식은 이 세계에 대한 과학적 지식에 다름 아니었다. 고대 세계에서 이미 인과성의 원리, 즉, 원인과 결과 관계에 대한 인식이 발생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일률, 모순율은 초보적 과학의 탄생이었다. 또한 고대 세계의 원자론은 세계를 원자와 공허(빈 공간)의 통일로 파악했는데 이는 직관에 기초한 것이지만 이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추구한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이 세계가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로 나뉘어 있고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돈다고 설교하던 성직자들의 세계관, 신학적 세계관을 붕괴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의 혁명을 통해 비로소 근대과학의 출발점이 형성되었고 이후 과학은 가속적으로 발전되었다.

근대과학은 초기에 뉴튼, 갈릴레이에 의해 대표되는 역학을 중심으로 발전되었는데 이는 엥겔스에 따르면 중세 유럽이 중국이나 중세 아랍과 달리 아무것도 남겨놓은 것이 없어서 가장 기초적인 위치이동에 대한 과학 즉 역학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뉴튼 역학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역학적, 기계적 세계관이 철학에서도 지배적이게 되었다. 왜냐하면 뉴튼 역학은 물체의 위치와 속도(운동량)를 알면 그 다음의 결과도 예측가능하다고 보았는데 이는 자연에 대해 기계적인 인과성이 지배적이라는 인식, 그리고 그에 따른 기계적 세계관을 조장하는 것이었다. 또한 뉴튼 역학은 형이상학적이었는데 공간과 시간이 물질과 무관하게 절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역학의 전제로 삼고 있어서 공간과 시간, 그리고 자연의 불변성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자연과학의 발전은 이러한 역학적 사고, 기계론적, 형이상학적 길을 따라 발전하였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사고는 18세기경에 지배적이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것이기도 했다. 즉, 과학의 기본이 되는 사실자료의 수집, 그리고 과학적 대상의 분류는 고정된, 불변의 기준을 요청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생물학에서 종(種)이라는 개념은 여러 생물 중에서 동일한 부류를 모아 공통의 성질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종이라는 개념의 성립에 형이상학적 사고는 적합한 것이었다. 그에 따라 린네의 경우 종의 불변성을 하나의 원리로 수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형이상학적 사고가 당시로서 불가피한 면이 있었을지라도 그것은 명백한 한계를 갖는 것이었고 과학의 발전을 제약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근대적 화학이 수립되기 전에 물체가 불에 타는 현상, 즉, 연소에 대해 과학자들은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었는데 연소라는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모든 물질에 연소를 일으키는 플로지스톤이라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연소 과정에서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가는 것으로 인식했다. 이는 연소라는 과학적 현상에 대해 그것의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연소를 일으키는 물질인 플로지스톤이라는 개념을 세우면 그 현상이 해명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엉터리 같은 형이상학적 접근은 이후 산소의 존재가 발견되면서 교정될 수 있었다.

이렇게 18세기까지 근대과학은 각각의 과학 영역에서 사실자료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각 영역의 뼈대를 (형이상학적 길을 따라) 세우면서 발전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의 자연관은 뉴튼의 역학적 세계상에 따라 형이상학적 자연관이었다. 즉, 영원불변한 자연의 질서라는 관점이었다. 태양계는 뉴튼의 만유인력에 따라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형이상학적 자연관은 서서히 깨져 나가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면 18세기 말 칸트와 라플라스의 가설은 태양계 생성에 대해 가스 덩어리로부터 나선형의 회전의 결과 태양계가 생성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이는 태양계의 영원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며 동시에 태양계의 생성, 발전, 소멸까지 설명하는 것으로서 변증법적 인식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자연관에 대한 도전은 19세기 중반경 세포의 발견, 다윈의 진화론, 에너지 보존 및 전화의 법칙이라는 3대 발견이 이루어지면서 질적인 전환을 한다. 즉, 세포의 발견은 동물계와 식물계 간의 형이상학적 단절, 동물계와 인간계의 형이상학적 단절을 무너뜨리고 생물계의 통일성이라는 관점을 고취시켰다. 또 다윈의 진화론은 한편으로 인간이 신의 창조물이라는 종교적 관점을 무너뜨리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동안 인정되어왔던 종의 불변성이라는 형이상학적 관점을 타파하고 종의 변화를 통한 진화라는 관점을 수립한 것이었다. 이러한 발견은 단순한 과학적 성취를 넘어 전 사회에 세계관적 충격을 주는 것이었고 자연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면서 자연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 발전하는 통일된 전체라는 인식, 즉, 변증법적 자연관을 고취시켰다.

에너지 보존 및 전화의 법칙의 발견은 한편으로 물질과 운동의 불멸성을 말하는 것이다. 물질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물질로 전화될 뿐이라는 것, 그리고 물질의 본질적 속성인 운동 또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운동으로 전화될 뿐이라는 것을 에너지 보존 및 전화의 법칙은 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 이러한 인식, 물질과 운동의 불멸성이라는 인식은 일거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근대과학의 점진적인 발전과정에 기초하는데 예를 들면 데카르트는 이미 운동량 보존이라는 사상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은 이 세계가 물질의 운동에 다름 아니며 하나의 물질의 운동이 끊임없이 다른 물질의 운동으로 전화되는 것이 이 세계의 모습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세포, 진화론, 에너지 보존 및 전화의 법칙이라는 3대 발견은 결정적으로 뉴튼 이래의 형이상학적 자연관을 무너뜨리고 변증법적 자연관을 수립하였고 자연과학에서 이러한 발전은 철학에서 헤겔에 의한 변증법의 정립, 그리고 맑스, 엥겔스에 의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전개와 맞물려 있었다.

엥겔스는 ≪반듀링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끝으로 나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변증법적 법칙을 구성하여 자연 속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 법칙을 자연 속에서 찾아내어 자연으로부터 전개하는 것이었다.1) 이 언급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훌륭히 설명하고 있다. 변증법적 법칙을 구성하여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헤겔적인 관념론적 접근이다. 그러나 엥겔스는 정반대로 자연에서 변증법적 법칙을 찾아내는 것, 즉, 유물론적으로 접근하여 자연으로부터 전개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변증법적 법칙으로 상정되는 인간정신보다 자연이 일차적이라는 유물론적 접근과 자연 자체가 변증법적이라는 인식이 통일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인식은 맑스, 엥겔스에 의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총체적인 세계관으로 발전하여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이 될 수 있었다.

엥겔스의 당시의 과학에 대한 고찰은 과학의 발전을 철학적으로 일반화하는 것의 성공적인 사례이다. 여기서 다소 길지만 과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엥겔스의 정식화된 입장을 인용해 보자. 현대 유물론은 자연과학이 이룬 근대의 진보를 총괄하는 바, 거기에 따르면 자연도 시간상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천체들이나 조건이 양호한 경우에 그 천체에 살고 있을 유기체 종들이나 모두 발생하고 소멸하며, 순환이라는 것이 도대체 있을 법한 한에서 그 순환은 엄청나게 거대한 규모를 취한다고 한다. 두 경우 모두에 있어서 현대 유물론은 본질적으로 변증법적이며, 더 이상 다른 과학 위에 군림하는 철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각각의 개별 과학이 사물과 사물에 관한 지식의 전체적 연관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를 확실히 이해하라는 요구를 받자마자, 전체적 연관을 취급하는 특수한 과학은 불필요하게 된다. 그럴 경우 지금까지의 철학 전체에서 여전히 독자적으로 존속하는 것은 사유와 사유의 법칙들에 관한 학설이다―형식논리학과 변증법, 그 밖의 것은 모두 해체되어 자연과 역사에 대한 실증 과학이 된다.2) 변증법적인 현대 유물론은 근대과학의 진보를 총괄한다는 것, 그리고 기존에 철학이라 불렸던 것들은 개별 과학으로 해소되고 남는 것은 형식논리학과 변증법이라는 사유에 대한 학설뿐이라는 것이 엥겔스의 인식이다. 여기서 엥겔스의 언급에 대해 덧붙인다면 형식논리학과 변증법 또한 과학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사고에 대한 과학으로서 추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은 19세기 당시의 자연과학의 발전을 총괄하면서 그것을 철학적으로 일반화한 대표적인 저작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근본적인 범주는 물질과 운동인데 이는 맑스와 엥겔스가 창안한 것이 아니며 근대과학 발전의 산물로서 물질과 운동이라는 범주가 갖는 의미를 변증법적 유물론이 철학적으로 수용하고 일반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물질과 운동이라는 범주는 물질과 운동의 불멸성을 전제하는데 이에 대해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근대 자연과학은 운동의 불멸성이라는 명제를 철학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했다. 이 명제 없이는 근대 자연과학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물질의 운동이란 단순히 조야한 역학적 운동이나 위치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열과 빛, 전기적, 자기적 장력, 화학적 결합과 분해, 생명 나아가 의식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 운동의 불멸성은 단지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파악되어야 한다. 어떤 물질의 순수한 역학적 위치변화가 적합한 조건 하에서는 열, 전기, 화학적 작용, 생명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이 조건을 산출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러한 물질은 운동을 상실한 것이다. 자신에 속하는 다양한 형태들로 전화할 능력을 상실한 운동은 여전히 운동의 잠재력은 지닐지라도 활동성은 잃어버릴 것이며, 이에 따라 부분적으로 파괴될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경우 모두 있을 수 없는 일이다.3)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엥겔스가 운동의 불멸성을 운동량 보존이라는 양적 차원만이 아니라 질적으로 전화하는 능력 자체, 질적인 불멸성을 말하고 있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위치이동이라는 역학적 변화가 화학적 변화, 생물학적 변화, 나아가 의식이라는 운동으로까지 전화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는 충분히 추론 가능한데 태양계가 생성될 당시 그것은 가스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고 가스 분자 상호 간의 견인과 반발 운동이 지배적이었다. 그 뒤 태양계가 회전운동에 의해 생성되고 지구가 만들어졌을 때 뜨거운 지구상에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구가 식으면서 적당한 조건이 만들어졌을 때 무기물의 화학적 작용을 통해 단백질이 만들어지면서 생명체가 탄생하고 생명체의 진화와 발전은 의식을 가진 인간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전 과정은 엥겔스가 말한 운동의 질적인 불멸성, 운동의 상호전화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물질과 운동이라는 근본 범주에 대한 엥겔스의 이러한 깊이 있는 천착은 과학의 철학적 일반화의 전형이다.

여기서 물질과 운동에 대한 엥겔스의 견해를 조금 더 살펴보자. 엥겔스는 물질과 운동의 불멸성을 말할 뿐만 아니라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에 대해서도 천착한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전체 자연은 제 물체의 하나의 체계, 하나의 총체적 연관을 구성하며, 이때 제 물체란 천체로부터 원자까지, 나아가 에테르 입자까지 그 존재가 인정되는 한에서는 그 모두를 포함하는 모든 물질적 존재자들을 의미한다. 이 물체들이 하나의 연관을 이루고 있음은 그들이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내포하며, 이러한 물체들의 상호작용이 바로 운동이다. 여기서 이미 운동 없는 물질을 생각할 수 없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만약 물질이 우리에게 어떤 주어진 것,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무로부터 창조될 수 없는 것, 소멸시킬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이로부터 운동 또한 창조될 수 없고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4) 여기서는 운동의 본질이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물질들의 상호작용!이 곧 운동이다. 그리고 물질의 불멸성과 물질의 상호연관성이 이러한 결론의 전제들이다. 이는 그동안의 과학적 성과에 기초하여 운동의 본질에 대한 해명이라는 철학적 과제를 엥겔스가 해결한 대목이다.

엥겔스는 당시 화학의 발전의 산물인 멘델레예프의 주기율과 헤겔의 양ㆍ질 전화의 법칙의 관계를 해명하고 있다. 헤겔의 법칙은 최종적으로 화합물뿐만 아니라 화학적 원소 자체에도 적용된다. … 원소의 화학적 성질은 원자량의 주기적 기능이라는 것 … 그리고 이에 따라 원소의 질은 그 원소량에 의해 조건 지어져 있다는 것을. 이의 검증은 훌륭하게 이루어졌다. 멘델레예프는 원자량에 따라 배열된 계열 내부의 동류의 원소들에서도 서로 다른 비어 있는 자리가 존재하며, 이는 여기서도 여전히 새로운 원소가 발견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5) 멘델레예프의 주기율은 화학원소의 성질이 원소의 원자량에 의해 규정된다는 원리에 따라 원소들을 체계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그 결과 동일한 성질을 갖는 원소들이 주기성을 갖고 배치되었는데 이를 통하여 원소의 세계, 즉, 물질의 세계에 일정한 통일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멘델레예프가 작성한 주기율표에는 빈자리도 있었는데 멘델레예프는 이 빈자리의 원소의 성질을 예측하였고 이후 빈자리의 원소가 발견됨에 따라 주기율표의 과학성이 입증되었다. 이러한 주기율(표)은 원자량이라는 양이 원소의 성질이라는 질을 규정하는 전형적인 사례인데 이는 헤겔의 양ㆍ질 전화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확증하는 것이었다.

엥겔스 이후 레닌에 이르는 시기 즉,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자연과학에서 새로운 최신의 혁명이 준비되고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새로운 사실의 발견, 새로운 이론의 발생에 대해 당시 자연과학자들은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종합할지를 몰라 물질은 소멸하였다고 주장하거나 과학의 위기를 외쳤다. 이러한 상황은 이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라는 최신의 과학혁명을 통해 해소되었다. 그러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전제가 되는 과학적 발견과 이 과정에서 과학의 위기, 그리고 그에 대한 레닌의 해석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19세기 말이 되면서 기존의 뉴튼 역학으로는 해명이 되지 않는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패러데이, 맥스웰에 의한 전자기 역학의 발전이었다. 영국의 물리학자 패러데이는 전자기학에 관한 일반적 학설의 기초를 다졌다. 그 연구에서 그는 자연의 여러 힘들과 제 현상의 통일성의 보편적 관련이라는 변증법적 사상을 지침으로 삼았다.6) 패러데이는 자기와 전기, 열에너지, 화학작용, 빛 등의 여러 힘들이 깊은 연관 속에 통일되어 있다는 인식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패러데이의 성과를 바탕으로 맥스웰은 전자기장의 제 법칙을 연구하여 전기역학을 정립했다. 이러한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성과는 뉴튼 역학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이어졌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특수상대성 이론이 맥스웰의 전기역학을 정제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7)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전환기에 최신의 과학혁명이 발생했는데 이 최신 혁명은 우선 물리학이 원자 내부의 현상(극미현상)에까지 침투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혁명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로 말미암아 물질의 구조와 성질에 관한 낡은 견해는 뿌리째 흔들렸다.8) 이 시기에 3가지의 주요한 발견이 있었는데 첫째, 물질 속으로, 즉 원자의 전자껍질 속으로 깊이 침투해 들어가는 능력을 지닌 뢴트겐선의 발견(1895년). 둘째, 방사능의 발견(1896년), 이 발견으로 방사능의 물질적 담당자인 라듐이 발견되었다(1898년). 셋째, 이 모든 원자의 일반적인 구성부분인 전자의 발견(1898년)이다. … 이후 20세기 물리학의 모든 발전은 실제로는 이 세 가지 발견의 연속이자 심화이며, 이 발견 속에는 자연과학에서 시작된 혁명의 본질이 드러나 있다. 즉 원자의 전자층에 대한 연구는 양자역학을 창설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핵 연구는 핵물리학을 발전시켰다. 과학 발전의 이 두 가지 방향은 (素)립자 물리학에서 하나로 일치되었다.9) 전자의 발견은 기존의 더 이상 분할되지 않는 원자라는 개념을 최종적으로 분쇄하였고 이제는 원자의 내부가 물리학의 대상이 되는 단계를 열었다. 또한 방사능의 발견은 물질의 붕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물질이 소멸한다고 사고하게 하면서 이른바 과학의 위기를 불러왔다. 그런데 이러한 발견을 해석하고 계승, 발전시키면서 원자 내부의 세계에 대한 양자역학과 물질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형태인 시간과 공간에 대한 혁명(상대성 이론)이 이루어지면서 20세기는 물리학의 시대가 되었고 물리학은 전체 과학을 선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 즉, 새로운 발견들이 이루어졌으나 그에 대한 해석의 실패로 인한 과학의 위기, 인식론상의 위기에 대해 레닌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이러한 상황에서 레닌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당시의 과학적 발전을 총괄하면서 철학적 일반화를 이루었다. 레닌은 물질이 소멸하였다라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물질은 소멸한다는 말은 우리가 물질에 대하여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인식의 한계가 소멸한다는 뜻이고, 이것은 우리의 인식이 더 깊이 들어간다는 뜻이며; 이전에는 절대적, 불변적, 근원적으로 여겨지던 물질의 성질(불가입성, 관성, 질량 등)이 마찬가지로 소멸하고 이제는 그것이 상대적이며 오직 물질의 일정한 상태에서만 특징적임이 밝혀진다는 뜻이다.10) 과학자들은 원자의 붕괴라는 사태에 대해 망연자실하며 물질이 소멸한다고 외쳤지만 레닌은 그것은 물질의 소멸이 아니라 물질에 대한 우리 자신의 기존의 인식의 한계의 소멸이라고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원자라는 기존의 우리 자신의 인식은 소멸하지만 무궁하고 무한한 물질의 내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확장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레닌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일반화하여 물질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물질이란 인간의 감각에 의해 주어지고, 우리의 감각에 의해 복사되고 촬영되고 모사되지만, 그것과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를 표현하기 위한 철학적 범주이다.11) 이러한 물질에 대한 레닌의 정의는 방사능, 전자 등의 발견을 반영하고 있는데 우리의 감각, 의식으로부터 독립한 객관적 실재라는 개념을 통하여 방사능도 물질적 현상으로 포괄되고 전자 또한 물질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레닌의 개념은 기존의 물질에 대한 인식이었던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원자라는 물질 개념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당시 과학의 발전을 철학적으로 일반화하고 나아가 과학의 위기에 대한 철학상의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20세기 초의 과학의 최신혁명이 원자의 내부를 대상으로 함에 따라 기존의 과학상의 성과인 멘델레예프의 주기율도 재해석되게 되었다. 과거에는 원자량이라는 양적 측면이 원소의 성질을 규정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이제는 원자핵과 전자와 연관 지워 주기율을 해석하게 되었다. 즉, 원소의 순위번호(즉 멘델레예프의 주기계에서 그 위치번호)는 원자핵의 전하의 수치, 곧 중성원자의 껍질 속에 있는 전자의 총수를 가리킨다는 결론이 나왔다.12) 이러한 해석은 기존에 화학상의 구조였던 멘델레예프의 주기율을 물리학상의 총체적인 법칙으로 전화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원자핵의 양전하의 양적 증가에 따라 다른 원소로의 이행이 일어난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이는 하나의 원소의 다른 원소로의 전화라는 변증법적 과정을 말해주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멘델레예프의 주기율은 물리적 세계의 (물리학상 그리고 화학상의) 가장 근본적인 변증법을 표현하는 것으로 위치 지워졌다.13)

그러면 20세기 초반의 과학혁명의 하나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접근해 보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운동의 상대성의 문제를 철저히 천착한 결과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인식에서 혁명을 가져오고 그에 따라 뉴튼 역학의 절대성을 붕괴시키고 물질의 운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왔다.

그러면 먼저 아인슈타인 이론의 출발점인 운동의 상대성을 고찰해 보자. 근대과학에서 운동의 상대성은 갈릴레이에 의해 먼저 파악되었다. 정박해 있는 배의 선실에 매달려 있는 전등은 배가 출발하여 같은 속도로 등속운동을 하면 여전히 동일하게 매달려 있다. 즉, 정지해 있을 때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일 때나 선실 내의 운동상태는 동일하다. 이것이 운동의 상대성 원리의 기본적인 모습이다. 지구가 빠른 속도로 운동하지만 지상의 사람이 그 운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 또한 지구가 같은 속도로 등속운동을 하기 때문인데 이 또한 운동의 상대성 원리의 예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운동의 상대성 원리와 맥스웰의 전기역학 그리고 빛의 속도가 언제나 동일하다는 광학의 원리를 결합시켜 특수상대성 이론을 제출했다.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빠르게 운동하는 물체는 길이가 수축되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데 이는 물질의 운동에 의해 공간과 시간이 규정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인식은 뉴튼 역학과 충돌하는 것인데 뉴튼 역학의 대전제는 공간과 시간은 절대적인 것으로서 물질의 운동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공간, 절대시간이라 불린 뉴튼의 이론은 철학적으로 보면 형이상학적 유물론이었는데 이 관점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붕괴되고 물질의 운동에 상대적으로 의존하는 시간과 공간 개념으로 변환된 것이었다.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시, 공간 개념은 시간과 공간이 물질의 존재형식이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념을 확증하는 것이었고 자연과학에서 형이상학의 붕괴와 변증법의 자연발생적인 침투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이러한 특수상대성 이론의 성과를 조금 더 들어 보면 대표적인 것이 동시성의 상대성이다. 어떤 두 지점에서 번개가 동시에 치는 것이 A지점에서 관찰되었지만 그와 다른 B지점에서 관찰하면 번개가 동시에 치지 않은 것으로 관찰된다. 이는 시간의 동시성의 상대성을 말하는 것인데 뉴튼적인 시간의 절대성을 무너뜨리고 시간의 상대성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운동하는 물체는 각각 자신의 고유한 시간을 갖고 있다는 인식이 성립되었다.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기준체(좌표계)는 각각 그 자신의 특수한 시간을 갖고 있다.14) 이 말은 운동하는 각각의 물체는 각각 서로 다른 시간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차가 지나가고 그 주변 도로를 버스가 지나간다면 기차에서의 시계와 버스에서의 시계는 가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생활에서 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 차가 매우 적기 때문인데 빛의 속도에 가깝게 운동하는 물체에서는 그 차가 매우 클 수 있다.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발견은 공간과 시간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의 운동에 근거하고 의존한다는 것으로서 공간과 시간 관념의 혁명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뉴튼 역학은 그 절대성이 붕괴되고 단지 특정한 조건과 상황에서만 관철되는 이론으로 상대적으로 위치 지워졌다.

특수상대성 이론에서 밝혀진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질량과 에너지의 연관성이다. 기존의 뉴튼 역학에서는 질량은 불변이며 에너지와 독립적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특수상대성 이론은 운동하는 물체에 에너지가 가해지면 그 물체의 질량이 증가함을 밝혀냈다. 이는 질량과 에너지의 연관성을 수립하는 것인데 이 결과 E=mc2(에너지는 질량에 빛의 속도를 제곱한 것과 같다는 원리)라는 유명한 공식이 탄생했다. 이 공식에 따르면 에너지가 질량의 증감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거꾸로 일정한 질량은 일정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 표현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 공식에 근거하여 핵물질의 분열로 발생하는 거대한 에너지를 예견하고 2차 대전 당시 핵무기의 등장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이론이 특수상대성 이론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 이론이 전제하는 물질의 운동이 갈릴레이, 뉴튼 당시와 동일한 좌표계, 등속운동하는 좌표계에 대해서만 성립하는 운동으로 전제되었기 때문이다(여기서 좌표계라는 개념은 물질의 운동에 객관성을 부여하는 기준이라는 의미이다). 즉, 특수상대성 이론은 등속운동하는 물체의 운동에 대한 고찰의 결과였다. 그러나 현실의 물체, 물질의 운동에서 동일한 속도의 운동, 등속운동은 예외적인 것이고 대부분의 물질의 운동은 속도가 변하는 가속도운동이다. 따라서 특수상대성 이론은 그 적용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인슈타인은 물질이 등속의 운동을 하는 경우만이 아니라 가속도운동, 나아가 중력에 의한 운동까지 포함하여 모든 운동형태에 있어서 상대성 원리를 수립했는데 그것이 일반상대성 이론이다.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장에서의 물체의 가속도운동은 중력이 없는 공간에서 물체에 힘을 가하여 가속도운동을 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중력장에서의 운동, 가속도운동에서도 물체의 운동에 있어서 상대성 원리가 성립함을 입증했다. 그런데 이렇게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나아갔을 때 공간과 시간의 개념은 더욱더 변화했는데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중력장에서 공간은 휘어져 있다고 한다. 중력장에서 공간의 휘어짐은 실제 관측에 의해 입증되었는데 이 관측의 성공으로 일반상대성 이론의 타당성이 승인되었다. 그런데 휘어지는 공간이라는 개념은 기존의 공간 개념인 유클리드적 공간 관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존의 공간을 표현하는 데카르트적 3차원 좌표 또한 시간을 포함하는 4차원의 가우스 좌표로 변화되었는데 이러한 공간 개념의 변화는 유클리드적 공간을 넘어서는 비유클리드적 공간 개념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력장에서 멀어질수록 중력의 세기는 감소하고, 중력장에 센 곳에서는 시간이 느려진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이는 빠른 속도로 운동하는 물체에서 시간이 느려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종합되면서 공간과 시간의 관계 또한 변화되었는데 시간과 독립된 공간 개념이 사라지고 시간과 통일된 공간 개념으로 정립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기존의 철학에서 논의되던 시, 공간 개념을 변혁하는 것이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주장하는 물질의 존재형식으로서 시간과 공간 개념에 더해 시간과 공간의 관계라는 어려운 문제를 해명해야 하는 과제가 제기된 것이다.

그리고 일반상대성 이론은 기존의 중력이론이던 뉴튼의 중력 개념을 변혁하는 것이었는데 뉴튼은 중력을 빛의 속도를 능가하는 순간적인 원격작용으로 설명했는데 아인슈타인은 그러한 원격작용은 존재하지 않으며 중력은 중력장이라는 물질적 성격을 갖고 있고 이 중력장에 의해 물체는 가속도운동을 함을 밝혔다.

이와 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뉴튼 역학과 별도로 존재하던 전기역학을 수렴하면서도 뉴튼 역학을 지양한 이론으로 성립했고 그 결과 물질의 존재형식으로서 공간과 시간이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시, 공간 개념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함께 20세기 물리학의 또 하나의 흐름인 양자역학에 대해 접근해 보자. 양자역학은 원자의 세계 내부를 다루는 학문이다. 앞서 발견된 전자, 방사능, 뢴트겐선이 양자역학의 흐름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그런데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이라는 한 인물에 의해 완성되었다면 양자역학은 많은 과학자들의 발견이 축적되면서 완성된 것이었다. 양자역학에서 사용되는 양자(量子)라는 개념은 플랑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물체가 에너지를 방출 혹은 흡수할 때 그 에너지의 흐름은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으로 주파수에 비례하는 최소량의 양자로 방출 혹은 흡수된다는 이론이다.15)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의 발견에 기초하여 빛이 파동의 성질만 갖는 것이 아니라 입자의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이러한 빛의 입자적 성질을 광양자(광자, 光子)라고 불렀다. 이러한 발견, 즉, 빛이 파동의 성질과 입자의 성질이라는 이중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많은 과학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는데 이는 변증법적인 모순 개념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빛의 이중적 성질이 밝혀지는 가운데 과학자들은 원자 내부의 세계를 심도 깊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톰슨은 1904년에 원자모형을 제출했는데 원자 내부를 양전하와 전자의 배분으로 된 구조로 파악했다. 이 모형에서 톰슨은 원자 내에서 전자의 배분을 멘델레예프의 주기계의 화학원소의 주기성과 비교했다. 또한 전자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었는데 전자의 질량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도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원자 내부의 세계는 뉴튼적인 역학이 아니라 전자기 이론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이 과정에서 낡은 역학적 세계상 대신에 전자론에 부합하는 물리적 세계상이 형성되었으며 이는 물질의 전자적(電磁的) 세계상이라고 할 수 있다.16)

1911년에 러더퍼드가 원자의 중심에 있는 실재하는 물질입자인 원자핵을 실험적으로 발견17)하였는데 이를 통해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운동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미시세계와 태양계 등 거시세계의 운동의 유사성이 주목받았다. 그리고 원자핵의 양전하의 양의 변화에 따라 원소가 다른 원소로 변한다는 것, 즉 원소의 질이 변한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변증법의 양ㆍ질 전화의 법칙을 뒷받침하였다.18)

이후 빛이 입자적 성질과 파동적 성질이라는 모순된 이중성이 있다는 것에 기초하여 전자 또한 입자적 성질만 있는 것이 아니라 파동적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실험 결과 전자 또한 파동적 성질을 갖고 있음이 입증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이 세계의 근본적 구성요소라 할 빛과 전자(모든 원자의 구성요소) 모두가 입자적 성질과 파동적 성질이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물질파로 불린 전자의 파동성은 이후 과학자들 내부의 인식론상의 격렬한 대립을 가져오게 된다.

한편 하이젠베르크는 원자 내부의 세계에서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했는데 전자와 같은 원자 내부의 소립자는 뉴튼 역학과 달리 위치와 운동량이 동시에 확정될 수 없음을 밝혔다. 예컨대 어떤 전자의 위치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측정하려면 이 전자에 파장이 극도로 짧은 빛을 입사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전자의 운동량이 변한다. 반대로 에너지가 적고 파장이 긴 빛을 입사하면, 운동량은 영향을 적게 받지만 위치는 불확정적으로 된다.19) 뉴튼 역학에서는 위치와 운동량을 파악하면 그 다음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보았고 이러한 결정론(기계적 결정론)이 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원자 내부의 미시세계는 뉴튼과 같은 결정론이 관철될 수 없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리하여 원자 내부의 세계는 결정론, 인과관계가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이 지배한다는 사고가 싹트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슈뢰딩거는 전자의 파동이 고전역학과 같은 파동이 아니라 확률적으로만 파악 가능한 성질을 갖고 있음을 밝혔고 이를 확률파라 불렀다. 전자가 운동할 때 그 상태가 파동인지 아니면 입자인지가 확률적으로만 규정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불확정성 원리와 마찬가지로 원자 내부의 세계는 결정론이 지배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강화되었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발전하여 오던 양자역학은 1920년대가 되면서 그 성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두고 철학상의 격렬한 인식론적인 대립을 낳았다. 1927년 코펜하겐에 모인 물리학자들은 대립지점을 두고 토론을 하였는데 대표적인 인물은 유물론 진영의 아인슈타인과 관념론 진영의 보어였다. 논쟁의 쟁점은 전자의 입자와 파동성의 이중성이라는 모순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인가, 모순 개념을 인정할 것인가의 여부, 그리고 불확정성의 원리, 확률파에 대해 결정론을 승인할 것인가, 부정할 것인가, 나아가 미시세계에서 작동하는 우연적 요소를 어떻게 볼 것인가 등이었다. 이 논쟁에서 아인슈타인은 유물론의 입장에 서서 보어 등을 반박했지만 보어는 불확정성의 원리, 확률파 등 미시세계의 특징에 근거하여 아인슈타인을 재반박했는데, 실험적 검증에서 아인슈타인은 패배했고 이 논쟁에서 다수가 된 입장이 코펜하겐 해석이라 불리며 이후 양자역학의 주류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이 유물론의 입장, 즉 과학적 입장이었지만 패배한 이유는 그가 변증법적이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미시세계에서 우연의 요소, 확률적 성격을 부정하였다. 그러나 재차 실험했음에도 불확정성의 원리와 확률파(우연의 요소)라는 것은 미시세계의 객관적 성질임이 입증되어 아인슈타인은 패배하게 되었고 이후 양자역학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러면 코펜하겐 논쟁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들을 정리하면서 그것들을 변증법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분석해 보자.

첫째, 빛과 전자의 입자-파동 이중성에 대하여. 빛과 전자의 입자-파동 이중성의 성질은 물리학자들 특히 관념론적 물리학자들을 당혹하게 했는데 이는 변증법적 관점의 결여 때문이다. 즉 모순 개념,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면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다. 빛과 전자의 운동은 입자적 성질(불연속성)과 파동적 성질(연속성)의 통일이다. 다만 그것이 고전역학이 관철되는 일상세계에서와 같이 기계적으로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미시적 세계의 특성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관철된다. 그럼에도 그것은 모순임이 분명하고 모순의 운동이며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통일로서 운동이다. 이미 이전에 변증법의 입장에서는 운동의 본질을 모순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화살이 날아가는 간단한 역학적 운동조차 운동의 본질은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통일이다. 즉, 화살이 특정시점에 그 지점에 있으면서(불연속성) 동시에 그 지점에 있지 않다(연속성)는 성질의 통일이 역학적 운동의 본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시세계, 전자의 운동의 파동성과 입자성의 모순은 인식론적으로 모순 개념의 승인을 통해 적절히 해석된다. 그러나 양자역학 주류, 변증법을 모르거나 거부하는 입장에서는 모순이라는 현실이 최대의 난제가 되었고 그들은 결국 코펜하겐 해석을 통해 모순 개념을 부정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양자역학 주류의 대표적 인물인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아인슈타인: 필자]는 파장가설과 입자가설 간의 해소될 수 없는 모순이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었다. 그는 이 해석의 내적 모순을 거부하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모순을 먼 훗날 완전히 새로운 사고과정을 통해 이해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무엇이라고 받아들였다.20) 그리하여 결국 1927년 초에 학자들은 모순 없는 양자론의 해석에 도달했는데, 이는 흔히 코펜하겐 해석이라 일컬어졌다.21) 이들이 모순 개념을 부정하는 방식은 주관적 관념론의 방식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라 불리는 예는 이들이 대표적으로 드는 사고실험의 사례이다. 상자 안에 고양이가 있는데 상자 안에는 독극물이 든 병이 있고 그 병은 방사성 물질의 붕괴에 의해 깨어지게 되어 있고 언제 방사성 물질이 붕괴될지는 모른다. 상자 밖의 관찰자의 입장에서 고양이는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이며 상자를 열었을 때 비로소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의 객관적 상태가 확정된다. 이들이 모순 개념을 부정하는 것은 고양이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라는 상태로 규정하는 것 즉, 모순의 객관적 실재성을 주관적으로 부정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상자를 여는 것, 즉 관측행위라는 주관에 의해 비로소 객관적 실재성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인데 이는 전형적인 주관적 관념론이다. 모순 개념에 대한 부정이 이렇듯 과학자들을 엉터리 같은 입장으로 내몬 것이다.

둘째, 확률파에 대한 해석에 대하여. 여기서 최대의 쟁점은 우연의 문제이다. 확률파는 원자 내부의 전자의 운동에 우연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점을 부정하였기에 실험적 검증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변증법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우연적 현상은 아인슈타인과 달리 전면적으로 승인된다. 전자의 운동이 고전역학을 따르지 않는 전자적 운동이라고 할 때 뉴튼의 고전역학과 같이 위치와 운동량이 동시에 확정될 수 없고 나아가 입자적 상태와 파동적 상태가 확률적으로만 파악 가능하다는 것은 변증법적 인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우연과 필연의 통일을 승인하고 있으며 확률이라는 개념 또한 우연 속에 관철되는 필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미시세계에서 관철되는 확률의 개념을 부정한 것은 오류였다. 따라서 미시세계의 이러한 우연적 현상에 대한 해석은 변증법을 전면적으로 적용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코펜하겐 해석, 양자역학 주류는 확률의 요소, 우연의 요소를 들어 미시세계에서는 결정론이 관철되지 않고 우연이 지배한다는 엉터리 결론으로 나아갔다. 이 점을 좀 더 살펴보자.

셋째, 미시세계에서는 원인과 결과 관계, 결정론이 관철되지 않는가 여부. 코펜하겐 해석은 우연의 요소를 비변증법적으로 해석한다. 즉, 우연은 원인이 아니라고 본다. 그에 따라 이들은 우연이 지배하므로 원자 내부의 세계는 원인과 결과 관계, 결정론이 지배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변증법적 유물론의 입장에서는 우연 또한 원인의 한 종류이다. 뉴튼과 같은 입장에서는 필연만이 원인이다. 그런 점에서 뉴튼의 고전역학의 결정론은 기계적 결정론이다. 이러한 기계적 결정론이 미시세계에서 관철되지 않기 때문에 확률파라는 개념이 제출된 것이다. 그러나 전자의 운동이 원인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것이다. 전자가 궤도상에서 비약적으로 이동을 할 때, 예를 들어 바깥 궤도에서 안쪽 궤도로 이동하거나 반대로 안쪽 궤도에서 바깥 궤도로 이동을 할 때 그 현상은 에너지의 증감에 따른 것이다. 즉, 전자의 운동 또한 에너지의 증감이라는 원인이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우연 또한 그것을 일으키는 원인이 반드시 존재한다. 다만 필연과 다른 것은 우연적 원인은 필연적 원인과 달리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코펜하겐 해석이 불확정성의 원리와 확률파라는 개념을 통해 원자 내부의 세계에서 뉴튼과 같은 기계적 결정론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맞지만 결정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즉, 원자 내부의 세계에서는 우연과 필연의 통일로서 변증법적 결정론이 관철된다. 우연과 필연이 정확히 어떻게 통일된 관계로 나타나는가는 과학적 실험과 연구의 몫이지만 원자 내부의 운동을 우연과 필연의 통일로서 규정하는 것은 철학상의, 인식론상의 문제이다.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자신이 관념론의 길을 걷고 있음을 천명한다. 현대 물리학은 분명 피타고라스학파와 플라톤이 걸었던 길과 동일한 정신적 행로를 걷고 있다.22) 그러면서 그는 양자론은 자연에 대한 완전히 객관적인 서술을 허용하지 않는다23)고 하고 있다. 불확정성의 원리, 확률파 등의 개념이 완전히 객관적이지는 못한, 불완전한 서술이라는 의미라면 그것은 맞는 것이지만 문제는 이들이 그 개념들을 근거로 미시세계의 객관성은 측정행위(주관)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하고 나아가 미시세계는 결정론이 지배하지 않고 우연이 지배한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원자의 세계 내부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원자의 세계 내부를 전면적으로 변증법적으로 조망할 때만 코펜하겐 해석을 넘어서는 새로운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철학적 일반화를 통하여 기존의 철학을 정교하게 다듬고 풍부하게 발전시키는 토대가 된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은 그것이 철학적으로 정확하게 일반화되지 못하면 질곡에 처한다. 양자역학 진영 내부의 논쟁과 상황이 보여주듯이 과학은 무당파적인 영역이 아니다.

근대과학의 발전, 뉴튼 역학의 붕괴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한 새로운 시, 공간의 관점 정립은 과학의 발전이 유물론을 강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자역학 또한 객관적으로는 원자의 세계 내부에 대해 변증법적 유물론적인 접근이 전면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주체적으로는 아직까지는 양자역학이 관념론의 도피처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과학의 영역에 대한 철학적 일반화가 하나의 당파적 투쟁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제6장 철학과 종교

 

철학은 고대세계에서 지식이 축적되면서 지식이 신앙과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이는 종교는 철학의 발생 이전에 발생했다는 것을 말한다. 고대세계에서 종교의 최초의 모습은 자연물에 대한 숭배였다. 산신령, 호랑이, 곰에 대한 숭배, 나아가 태양신에 대한 숭배 등이 그러하다. 그러면 이러한 종교는 최초에 어떻게 발생한 것인가?

그것은 한편으로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초라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무력감에 근거한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이러한 공포가 신앙으로 전화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한데 즉, 자연에 대한 공포가 신 개념으로 전화하기 위해서는 인간 자체의 사고에서 자연물을 추상화시켜서 신으로 규정짓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원시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연에 대한 무수한 관찰을 하면서 일반화 능력을 발전시켜 왔다. 많은 산들을 보면서 그것들을 보편적 명사인 으로 규정하고 산에 존재하는 많은 동물들을 보면서 그것들을 아울러 짐승이라 부르는 일반화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화 능력은 일반적 개념이 공상으로 전화할 가능성을 갖는 것이었다.24) 즉, 일반적 개념이 실제 대상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사고될 가능성이 일반화 과정 자체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반화 과정이 자연에 대한 공포와 결합되었을 때 특별한 자연물을 숭배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최초의 신앙은 자연물에 대한 신앙이었다.

그런데 인간 사회가 노예주와 노예라는 계급으로 분열된 계급사회로 진입하면서 자연물에 대한 숭배는 사회적 힘에 대한 숭배로 변형되었다. 계급사회의 발생과 발전에 따라 원시적인 신화적 관념들은 본질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전에는 자연의 힘이 인격화된 것이었던 신들이, 이제는 사회적 속성을 가지게 되어,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힘만큼이나 가공스럽게 불가사의한 사회의 여러 힘들이 인격화되었다.25) 대표적인 것이 왕권에 대한 신성시이다. 인류 최초의 문명인 이집트의 경우 파라오가 신의 아들로 여겨졌다. 또 그리스 신화를 보면 신의 모습은 인간 사회의 여러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것들은 사회적 힘이 신앙의 대상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각 종족마다 자신의 신을 갖게 되었는데 그러한 종족신은 각 종족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각 종족 혹은 민족의 신은 로마라는 세계 제국이 만들어지면서 세계 종교로 탈바꿈한다. 기독교라는 세계 종교의 탄생에 대해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대 민족 신들은 멸망하였고 도시 로마의 협소한 테두리에만 알맞게 편성되어 있던 로마의 민족 신 또한 멸망했다; 세계 제국을 세계 종교로 보충하려는 욕구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간에 존경할 만한 모든 외국의 신들을 로마의 토착 신들과 나란히 인정하고 그들을 위한 제단을 마련하려는 노력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새로운 종교는 황제의 명령에 의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세계 종교, 기독교는 일반화된 근동 신학 특히 유태인 신학과 통속화된 그리스 철학 특히 스토아 철학의 혼합으로 이미 조용히 생겨나고 있었다. 기독교가 본래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알자면 우리는 면밀한 연구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전해진 기독교의 공인된 형태는 국교이고, 니케아 회의에 의해 이 목적에 알맞게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독교가 250년 후에 벌써 국교가 되었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시대 상황에 상응하는 종교라는 것을 증명한다.26) 세계 제국인 로마에 요구되는 세계 종교로서 기독교가 형성되었는데 그것은 유태인의 민족 신앙과 스토아 철학의 혼합물이며 나아가 니케아 회의에 의해 하나의 국교로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렇듯 기독교라는 세계 종교는 로마라는 세계 제국의 산물이다. 그리고 로마가 멸망했을 때, 봉건제가 시작되면서 기독교는 그에 알맞게 변형된다. 중세에 봉건제가 발전함에 따라 기독교는, 정확히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봉건적 교권 제도를 갖춘 종교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시민층이 성장했을 때 봉건적 카톨릭에 대립하여 프로테스탄트 이교가 발전하였는데, 그것은 처음에는 프랑스 남부 도시들의 최고 전성기에 그곳의 알비 파 사이에서 발전하였다. 중세는 그 밖의 모든 이데올로기 형식들, 즉 철학, 정치학, 법학을 신학에 합병하여 신학의 하위 분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모든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은 신학적 형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27) 중세 기독교에서 교황권은 각 민족의 왕권보다 우월하였다. 또한 철학은 신학의 시녀로 전락되었고 사람들의 지적 발전은 신학의 한계 내에서만 인정되었다. 그리하여 엥겔스의 언급처럼 민중들의 반란 혹은 정치운동은 신학적 형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중세 말의 많은 종교개혁이 그러하다.

네덜란드가 스페인에서 독립하게 된 발단도 종교개혁운동의 영향 때문이었다. 유럽 최초의 부르주아 혁명이라 할 네덜란드 혁명은 발흥하는 부르주아지를 역사의 전면에 대두하게 했는데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그러한 부르주아지의 진취성을 반영하여 종교비판을 감행하였고 신학으로부터 철학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스피노자는 예언(즉, 종교적 신앙)이 자연적 인식(측 철학적 인식)보다 하위라고 선언한다. 표상은 본질적으로 모든 의심할 여지없이 명확한 관념들과 같지 않게, 단독으로는 확실성을 지니지 못한다. 우리가 표상한 것의 확실성을 얻기 위해서는, 표상에 더한 어떤 것, 즉, 추리[논증]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언은, 내가 밝혔듯이, 전적으로 표상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스스로 확실성을 지닐 수 없다. … 그렇기 때문에, 이 점에서, 예언은 자연적 인식보다 하위인데, 자연적 인식은 징표를 필요로 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확실성을 지닌다.28) 자연적 인식은 철학적 인식 혹은 과학적 인식을 말하는데 스피노자는 예언에 징표만 있을 뿐 논증이 없다는 점에서 예언 즉 신학적 인식이 자연적 인식보다 하위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스피노자는 신학으로부터 철학의 분리를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이제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한편에 있는 신앙 및 신학과 다른 편에 있는 철학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유사함이 없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인데 … 철학의 목적은, 아주 간단히, 진리이고, 반면에 신앙의 목적은, 우리가 풍부하게 제시했듯이, 순종과 경건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또 철학은 일반적으로 타당한 공리들의 기초 위에 놓여 있고 오로지 자연만을 연구하는 것으로 구성되어야 하지만, 그와 달리 신앙은 역사와 언어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 오로지 성서와 계시에만 의거해서 이끌어내져야 한다.29) 철학은 진리를, 신앙은 순종과 경건을 목적으로 하다는 것은 철학과 신앙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는 것, 즉, 신앙으로부터 철학의 분리를 선언하는 것이다. 17세기 당시에 아무리 부르주아 혁명이 이루어진 네덜란드의 정치적 상황이었지만 기독교의 영향이 전 유럽을 압도하던 당시에 이러한 선언을 하는 것은 목숨을 거는 행위였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신앙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즉, 스피노자는 자연이 곧 신이라고 보는 범신론자였는데 이러한 범신론은 종교를 탈피하여 유물론과 과학의 길로 가는 중간 다리였다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혁명에 이어 영국에서 17세기에 두 차례의 부르주아 혁명이 일어나고 18세기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서 종교와 정치의 분리가 공식화되었다. 흔히 정교분리라 일컬어지는 이러한 상황은 부르주아 혁명의 성과였는데 기독교는 더 이상 국교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자발성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즉, 기독교를 믿고 안 믿고는 더 이상 강제사항이 아니라 시민들의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으로 기독교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했는데 이러한 기독교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타격을 가한 인물이 바로 포이에르바하이다.

포이에르바하는 인간의 본질이 곧 신이라는 주장을 했는데 이는 기존의 카톨릭의 종교 교리를 전복하는 것이었다. 종교는 인간이 자기의 본질, 곧 유한하고 제한된 본질이 아니라 무한한 본질에 대해 갖고 있는 의식에 불과하다.30) 우리의 과제는 바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대립은 착각이라는 것, 그것은 일반적인 인간의 본성과 인간 개인의 본성 사이의 대립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므로 기독교의 대상과 내용은 모두 인간적인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다.31)

나아가 포이에르바하는 광신의 문제가 사실은 종교에 내포되어 있는 문제라고 밝힌다. 종교는 자기 자신의 본질에 대한 인간의 관계다. 여기에 종교의 진리와 도덕적 치료의 힘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종교에서 자기 자신의 본질로서의 자신의 본질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과 구별되는 또는 상반되는 다른 본질로서의 자신의 본질과 관계한다. 여기에 종교의 비진리, 종교의 제한성, 이성이나 도덕과의 모순이 들어 있고 또 여기에 화를 잉태하고 있는 종교적 광신의 근원이 들어 있으며 여기에 피비린내 나는 인간희생의 최상의 형이상학적인 원리가 들어 있다.32) 포이에르바하가 파악하기에 종교는 인간의 본질의 문제인데 현실에서 종교는 인간이 자신과 구분되는 자신의 본질과 관계하는 것이기에 비진리이며 광신의 싹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본질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종교의 것, 신의 것이 되는 것에 광신의 싹이 있다는 것을 포이에르바하는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포이에르바하는 이렇게 기독교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지만 그것은 무신론으로 고양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참된 종교라 일컫는 인간학의 창설로 이어진다. 포이에르바하는 위계화된, 소외된 형태의 기독교가 아니라 사랑을 매개로 하는 인간학을 세워서 참된 종교를 설립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 맑스와 엥겔스는 철저히 비판하며 포이에르바하와 분리를 통해 과학적 사회주의의 길을 간다. 그러면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엥겔스의 언급을 살펴보자. 종교는 포이에르바하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 관계, 마음 관계이며, 이 관계는 지금까지 현실의 환상적 영상 속에서 ―인간의 속성들의 환상적 영상인 하나의 신 혹은 여러 신을 매개로 하여― 자신의 진리를 구했지만 이제는 나와 너의 사랑 속에서 매개 없이 직접 진리를 찾는다. 따라서 포이에르바하의 경우 결국 성애가 그의 새로운 종교를 실행하는 최고 형식은 아니지만 최고 형식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33) 기존의 종교는 현실의 환상적 파악이었지만 포이에르바하는 그러한 환상의 매개 없이 직접 인간 사이의 관계를 사랑을 통해 파악한다는 것이다.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 비판의 결론은 무신론이 아니라 참된 종교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가 본질적으로 유물론적인 자연관을 토대로 진정한 종교를 세우려 한 것은 현대 화학을 참다운 연금술로 파악하는 것과 유사하다34)고 비판한다.

포이에르바하가 기독교의 교리를 전복시키고 종교 비판을 감행한 것은 당시의 기독교의 억압적 성격에 대한 고발이었다. 그러나 포이에르바하는 유물론적 자연관 즉, 자연에 대해서는 유물론이었지만 사회에 대해서는 관념론적이었다. 이러한 한계, 불철저함이 그를 무신론으로 고양시키지 못하고 참다운 종교라는 인간학의 길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 이러한 포이에르바하의 한계를 넘어서서 종교에 대한 근본적 비판 그리고 그러한 비판의 무신론으로의 고양은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맑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설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유명한 비판을 수행한다. 종교는, 인간적 본질이 아무런 진정한 현실성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인간적 본질의 환상적 현실화인 것이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투쟁은 간접적으로, 그 정신적 향료가 종교인 저 세계에 대한 투쟁이다. 종교적 비참은 현실적 비참의 표현이자 현실적 비참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또 정신 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인간의 환상적 행복인 종교의 지양은 인민의 현실적 행복의 요구이다. 그들의 상태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라는 요구는 그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태를 포기하라는 요구이다. 따라서 종교의 비판은 맹아적으로, 그 신성한 후광이 종교인 통곡의 골짜기에 대한 비판이다. … 그러므로 진리의 피안이 사라진 뒤에, 차안의 진리를 확립하는 것은 역사의 임무이다. 인간의 자기 소외의 신성한 형태가 폭로된 뒤에, 그 신성하지 않은 형태들 속의 자기 소외를 폭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역사에 봉사하는 철학의 임무이다. 이리하여 천상의 비판은 지상의 비판으로, 종교의 비판은 법의 비판으로, 신학의 비판은 정치의 비판으로 전환된다.35) 종교는 인간적 본질의 환상적 현실화라고 맑스는 규정한다. 즉, 종교에서 신성하다고 하는 것, 신의 섭리라고 하는 것이 실은 인간의 본질을 추상화한 것이고 인간적 바람을 신학으로 전환시킨 것에 다름 아니라고 맑스는 보고 있다. 여기까지는 맑스의 종교비판이 포이에르바하와 유사하다. 그러나 맑스는 종교비판을 무신론으로 고양시키면서 천상의 비판을 지상의 비판으로 전환시킨다. 포이에르바하가 종교비판을 하고 나서도 시골로 물러앉아 관조적 삶을 살았다면 맑스는 종교적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태에 대한 비판, 지상의 비판으로 나아가고 있다. 종교비판이 그 자체로 끝난다면 그 종교를 낳았던 사회적 관계는 변화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낳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관계의 변혁, 지상의 비판을 맑스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종교가 최초에는 자연에 대한 공포로부터 출발했지만 계급사회가 되면서 사회적 힘에 대한 공포가 종교를 낳고 육성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이 사회적 힘의 실체들을 까발리고 그 힘들을 인간적 힘으로 전화시키는 것이 맑스에 의해 정식화되고 있다.

그러면 종교의 소멸에 대한 엥겔스의 언급을 들어 보자. 엥겔스는 종교가 인간의 일상적인 현존을 지배하는 외적인 힘이 인간의 머릿속에 환상적으로 반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면서 논리를 전개하는데 그것을 종교의 소멸에 대한 전망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인간이 생각하고 신(요컨대,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외적인 지배)이 조종한다. 아무리 부르주아 경제학의 인식보다 더 넓고 깊은 인식이라 하더라도, 단순히 인식만으로는 사회적 힘을 사회의 지배에 복종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행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행동이 완수될 때, 즉 사회가 일체의 생산수단을 점유 획득하고 그것을 계획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사회 자신과 그 성원 모두를 그들이 현재 빠져 있는 예속으로부터 해방시킬 때, 그들 자신이 생산하였으나 극복할 수 없는 외적인 힘으로서 그들과 대립하고 있는 생산수단 때문에 야기된 예속으로부터 해방시킬 때, 따라서 인간이 생각할 뿐만 아니라 조종하게 될 때, 그때에야 비로소 아직까지도 종교에 반영되고 있는 최후의 외적인 힘이 소멸할 것이며, 그와 함께 종교적 반영 그 자체도 소멸할 것인데, 이는 그때에는 이미 아무것도 반영할 것이 없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36) 종교는 인간을 지배하는 외적인 힘이 환상적으로 머릿속에 반영된 것인데 자본주의에서 그것은 자본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며 따라서 자본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사회 자체가 생산수단을 장악하여 계획적으로 운영하면, 더 이상 종교적 환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실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종교는 서서히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자연에 대한 공포가, 그리고 계급사회에서는 사회적 힘에 대한 공포가 종교를 낳는다고 볼 때 자본의 지배가 종식되고 이후 사회가 연합의 원리에 의해 구성되고 운영된다면 종교는 그 토대를 상실하고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 또한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현상인데 이데올로기는 그 물적 토대와 운명을 함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종교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서 사회주의 당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레닌의 언급을 살펴보도록 하자. 레닌은 맑스주의와 수정주의라는 글에서 수정주의자들이 부르주아적 교수들의 과학의 뒤를 좇아가는 것을 비판한다. 레닌은, 부르주아 교수들이 칸트로 돌아가자고 하면서 헤겔을 죽은 개 취급하고 변증법을 진부한 진화적 관점으로 대체하고 그 교수들이 자신들의 관념론을 지배적인 신학에 적합하게 맞추고 있다는 것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리고 수정주의자들은 그들[교수들: 필자]에게 가깝게 다가서는데, 종교를 현대국가와의 관계에서 있어서가 아니라 선진 계급의 당과 관련하여 사적인 일로 만들려 시도하고 있다37)고 비판한다. 이러한 레닌의 언급은 종교에 대한 사회주의 당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 혁명은 종교를 국가와 분리시켜 종교를 사적인 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기존의 종교는 더 이상 국교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영역에 포괄되게 되었다. 그러나 종교는 여전히 사회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이고 광범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닌은 사회주의 당에 있어서, 당원들 간의 관계에서 종교는 사적인 일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즉, 사회주의 당 차원에서 종교는 당원 개인의 사적인 차원의 일이 아니라 당적 차원에서 비판해야 할 대상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 당은 사회 전 영역에 있어서 정교분리를 지지해야 한다. 즉, 종교는 국가적 영역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영역임을 지지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도 종교는 국가 차원에서는(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서) 그 자유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 차원에서는 정력적인 무신론적인 선전을 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국가의 영역, 그리고 시민사회의 영역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당의 영역과 종교가 관련되는 내용이고 방식이다.

맑스의 말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현실의 비참함에 대한 항의이고 비판이다. 종교의 지양은 현실적 행복의 쟁취의 요구이다. 한국사회에서 종교비판은 그동안 금기시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은 이제 바로잡혀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사회에서 종교에 대한 비판까지도 바탕에 까는 정치비판이 수행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종교와 정치를 포함하는 일체의 억압, 통곡의 골짜기에 대한 비판이 전면적으로, 포괄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노/사/과/연>

 

 

 


1) 엥겔스, ≪반듀링론≫(≪맑스-엥겔스 저작선집≫ 제5권), 박종철출판사, p. 14.

 

2) 같은 책, pp. 27-28.

 

3) 엥겔스, ≪자연변증법≫, 중원문화, pp. 31-32.

 

4) 같은 책, p. 66.

 

5) 같은 책, p. 63.

 

6) 러시아과학아카데미연구소, ≪세계철학사≫ 제7권, 중원문화, p. 390.

7) 아인슈타인, ≪상대성의 특수이론과 일반이론≫, 필맥, p. 66.

8) 러시아과학아카데미연구소, ≪세계철학사≫ 제10권, p. 46.

9) 같은 책, pp. 46-47.

10) 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아침, pp. 277-278.

11) 같은 책, p. 135.

12)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연구소, ≪세계철학사≫ 제10권, p. 387.

13) 같은 책, p. 393.

14) 아인슈타인, 앞의 책, p. 42.

15)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편, ≪철학대사전≫, 동녘. p. 844.

16) 러시아과학아카데미연구소, ≪세계철학사≫ 제10권, p. 379.

17) 같은 책, p. 384.

18) 같은 책, p. 387.

19)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편, 앞의 책, p. 577.

20) 하이젠베르크, ≪물리학과 철학≫, 온누리, p. 19.

21) 같은 책, p. 29.

22) 같은 책, p. 61.

23) 같은 책, p. 96.

24) 러시아과학아카데미연구소, ≪세계철학사≫ 제1권, p. 46.

25) 같은 책, p. 56.

26) 엥겔스,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하 그리고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맑스-엥겔스 저작선집≫ 제6권), pp. 285-286.

27) 같은 책, p. 286.

28) 스피노자, ≪신학정치론≫, 신아출판사, p. 44.

29) 같은 책, pp. 243-244.

30) 포이에르바하, ≪기독교의 본질≫, 한길사, p. 62.

31) 같은 책, p. 77.

32) 같은 책, p. 323.

33) 엥겔스,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 철학의 종말≫(앞의 책), p. 263.

34) 같은 책, p. 264.

35) 맑스,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설”,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제1권, pp. 1-2.

36) 엥겔스, ≪반듀링론≫(앞의 책), p. 347.

37) 레닌, “맑스주의와 수정주의”, Lenin Collected Works, Vol. 1, progress, p.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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