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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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부가 그물을 던지다 탐조등에 눈이 먼 바다에도 있고

나무꾼이 더는 오르지 못하는 입산금지의 팻말에도 있고

동백꽃 까맣게 멍드는 남쪽 마을 하늘에도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든 길에도 있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말에도 있고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신고하는

이웃집 아저씨의 거동에도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뜨는 해와 함께 일어나고

지는 달과 함께 자며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팍팍한 가슴에도 있고

제 노동으로 하루를 살고 이틀을 살고

한사람의 평등한 인간이고자 고개를 쳐들면

결정적으로 꺾이고 마는 노동자의 허리에도 있다

어디 그뿐이랴 삼팔선은

농부의 가슴에만 노동자의 허리에만 있으랴

그 가슴 그 허리 위에 거재(巨財)를 쌓아올리고

아무도 얼씬 못하게 철가시를 꽂아놓는 부자들의 담에도 있고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자유를 혼란으로 바꿔치기하는

패자(覇者)들의 남침 위협 공갈 협박에도 있다

 

나라가 온통 피 묻은 자유로 몸부림치는 창살

삼팔선은 나라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 밖에도 있다

바다 건너 마천루의 나라 미국에도 있고

살인과 약탈과 방화로 달러를 긁어모으는 그들의 군수산업에도 있고

그들이 북으로 날리는 위장된 평화의 비둘기에도 있다

 

 

* ≪김남주 시전집≫, 창비, 2014, pp. 354-355.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Jun 30th, 2017 | By | Category: 2017년 06월호 제134호, 권두시 | 조회수: 492

댓글 4개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1. 변순영말하길

    캬~
    멋진 시네요. 시인은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았는데 와닿은 이 느낌 뭐지?

  2. 보스코프스키말하길

    제법 알송달송한 느낌…???^^^^^^

  3. 류중근말하길

    아주 오래전에 한 친구가 김남주 시인이 남기신 멋진 말 ‘전사’를 모두가 볼 수가 있게끔 광장에 내걸었던 적 있습니다.

    그 친구 훗날 제가 지향하는 정치 노선과는 다른 길로 접어들었지만, 그분이 내걸었던 시 ‘전사’로부터 받은 감동 두고두고 잊히지 않더라고요.

    대략 7년쯤 전에 어느 대학병원 병실에서 서로의 지인을 병구완하느라고 지내는 사이 만난 한 아주머니는 또 어땠었고요.

    시인 김남주가 자기 고향 마을 주민이었음을 또 얼마나 자랑스러워했었던지를…

    그 시절 몇 년 병실 휴게소에서 만난 여럿 중 그분만큼 진솔한 분 뵙기도 난생처음이었답니다.

    젊은 사람도 아니고 영락없이 치골 촌부 할머니였는데도 열정적으로 고향 땅이 낳은 민주적 역량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했으니까요.

    오늘 어쩌다가 제 블로그 즐겨찾기에 걸린 몇몇 링크에 들어가 봅니다.

    이것이 두 번째로 들어온 링크인데 그 처음에 봤던 링크는 폐간했는지 잠적했는지 아주 오래전(2008년)에 올렸던 글이 최신 글에 있는 걸 보고는 그 사정도 모른 채 쭉 읽어내리다가 그것 너무도 길기에 중간에 멈추고 그 정보를 확인하고서야 더 읽는 것 마저 멈췄답니다.
    괜스레 사기당한 거 같아 괘씸해지기까지 했었으니까.

    어쨌든 좋은 글 올려주시어 매우 고맙습니다.

    또 뭔지도 모르면서 무척 즐겁습니다.

  4. 보스코프스키말하길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무한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