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과 노동자계급의 건강 ― 맑스시대와 현대자본주의시대에서 노동자계급 건강악화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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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아 ∣ 노동사회과학연구소 편집위원

1. 서론

자본주의가 탄생하자마자 인민(people)의 생명력이 얼마나 소진되었는가? 맑스는 자본론에서 말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바로 어제 태어났을 뿐인 자본주의생산이 얼마나 급속하고 확고하게 인민의 생명력의 근원을 장악했는가.” 우리는 자본론을 읽으면서 맑스보다 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50년이 지난 현대 자본주의는 노동자 건강황폐화를 더 깊게, 더 광범위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시대를 걸쳐서 자본가계급에 의한 노동자계급의 노동력과 생명력의 소진은 인류의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생명력의 연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불건강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맑스는 ≪자본론≫에서 노동자의 불건강의 원인들이 바로 자본가계급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 글은 맑스가 ≪자본론≫ 전 권을 통해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생산관계 전체와 관련하여 다루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건강문제를 쫒아가면서, 현대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계급의 건강문제를 맑스 시대와 비교해보고, 맑스가 ≪자본론≫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노동자 건강문제의 본질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글은 특히 맑스가 ≪자본론≫에서 보여주고 있는 인민, 즉 노동자계급의 불건강의 문제는 단지 현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본질적으로 기원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에 주목한다. 맑스는 노동자계급의 불건강의 원인이 바로 잉여노동을 착취하는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생산관계에 그 본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노동자계급의 불건강은 이러한 착취적 생산관계의 결과물이며, 점차 사회적 생산력에 조응하지 못하는 낡은 생산관계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계급의 불건강에 대한 맑스의 해결방법은 바로 이 낡은 착취적 생산관계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다. 이 글은 맑스가 ≪자본론≫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건강문제를 통하여 말하고자 했던 본질을 변증법적 유물론의 차원에서 논의해보고, 노동자계급의 불건강문제의 해결하는 길이 왜 혁명으로 향한 길이어야 하는가를 논의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글은 우선 맑스가 자본축적의 과정에서 노동자 건강의 황폐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고 현대자본주의에서 이것의 함의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볼 것이다. 그 다음에 이 글은 맑스가 자본의 생산과정 전 과정을 통해서 자본가계급이 어떻게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잉여가치를 착취하는가, 그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건강은 어떻게 황폐화 되는가를 다룬다. 우리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증대기전과 상대적 잉여가치의 증대기전, 가변자본의 절약, 즉 노동력의 가격을 저하시키는 임금체계와 불변자본의 절약으로 인한 인간재료의 낭비가 어떻게 노동자의 불건강을 가져오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또한 기계의 발전 자체가 노동생산성을 향상시켜 상대적 잉여가치를 증대시키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가계급은 이러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만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을 통하여 인간을 기계보다 더 낮은 상태로 하락시키고 있는가를 보고자 한다. 맑스시대에 자본가계급은 기계를 자본주의적으로 사용하여 노동자들에게 노동일의 연장을 통한 절대적 잉여가치의 증대, 가장 천한 일에 인간의 노동력의 낭비, 여성과 아동의 남용, 봉사자 계급의 증대, 자본주의적 분업과 협업으로 인한 노동자의 불구화를 낳게 하였는데, 이것이 현 자본주의시대에는 어떻게 변했는가? 이 글은 자본주의의 생산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자본의 유통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거대한 상업자본의 일개미가 되어 산업자본가로부터 상업자본가에게 잉여가치를 이전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만, 값싼 노동력과 단순업무, 대인서비스근무로 인한 정신과 육체가 황폐화되고 있는 점을 다룬다. 한편, 자본주의의 모순, 즉 사회적 생산력의 발달과 사적 소유관계의 모순의 끊임없는 충돌이 외화되는 경제공황의 시기에, 노동자계급은 상대적 과잉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실업상태로 거리로 내몰리게 되고, 급격한 건강의 황폐화를 경험하게 된다. 자본의 수탈은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맑스가 자본주의 시초축적은 자본가계급에 의한 폭력적인 토지수탈과정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 것처럼, 토지의 수탈은 농민들을 거주지에서 쫓아내고, 무일푼의 노동자로 만들어 버렸으며, 남아있는 농민들과 농업노동자들을 빈농화하였고, 농업을 피폐화해버림으로써, 농민들을 낮은 수준의 생산수단과 물질적 결핍상태로 내몰았고, 결과적으로 빈농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자본가계급의 자본주의적 토지의 이용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유발하는 엄청난 양의 폐물을 낳았고, 그 결과 자연환경의 황폐화와 인간의 삶의 피폐화를 낳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자본주적 생산관계 속에서 어떻게 착취관계를 강화시켜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고, 또한 착취당하는 계급이 어떻게 그 착취로 인하여 그들이 가진 단하나의 것인 노동력의 소진, 즉 생명의 단축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가를 살펴보고, 노동자의 건강의 문제도 바로 생산관계의 문제, 착취의 문제, 생산의 사회화에 조응하지 못하는 낡은 생산관계를 철폐할 때만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맑스의 ≪자본론≫에서 노동자계급의 불건강 문제의 현상만을 보는 편협함에서 벗어나 그것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통찰력을 배우고자 한다. 또한 단지 노동자계급의 불건강의 문제 자체에만 매몰되지 않고, 노동자 계급의 불건강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배우고자 한다. 이 점이 우리가 바로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도 배우지 못했던 것을 맑스의 ≪자본론≫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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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Sep 16th, 2013 | By | Category: 〈노동사회과학 제3호〉 맑스 레닌주의와 사회주의의 쟁점 | 조회수: 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