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혁명의 빛깔과 ‘촛불 혁명’의 빛깔―선진 노동자들의 과제와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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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수 | 편집위원

 

 

 

I

 

촛불 혁명에 의한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보면서 새삼 4월 혁명을 상기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선 무엇보다도 강고하게만 보였던 독재정권을 대대적인 인민항쟁을 통해서 무너뜨린 것이 서로 꼭 닮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1961년 5ㆍ16 군사 쿠데타에 의한 4월 혁명의 좌절을 뼈아픈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박근혜 정권의 몰락과 박근혜의 구속ㆍ수감은 유다른 감회를 자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인바, 주지하는 것처럼, 그 쿠데타의 주역이 바로 박근혜의 애비인, 제국주의의 괴뢰 박정희와 4촌 형부 김종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과 구속은 56년 만에 맞는 그들의 종말, 군사 쿠데타로 시작된 박정희 시대의 종언이자 박정희 일가와 그 일당이 받아야 할 심판의 한 자락 아닌가!

그런데 또한,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보면서 4월 혁명을 상기하는 것은, 아니 상기해야 하는 것은 패배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4월 혁명 후 민중은, 정치의 표면에서는 자유당과 대립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 인적 구성에서도 그 계급적 이해관계에서도 타도당한 자유당의 아류에 불과한 당시 야당 민주당이 정치권력을 고스란히 접수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던바,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자 당시 대통령 윤보선이 내뱉었다는 말, 올 것이 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군사 쿠데타의 가능성에 대한 숱한 소문ㆍ정보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권이, 민중의 에너지의 분출을 두려워한 나머지 혁명을 배반하고, 박정희 일당의 쿠데타를 사실상 용인했음을 의미하지 않는가?

그런데, 누가 보더라도, 지금도 역시 4월 혁명 직후와 마찬가지로 권력의 밥상은 그 인적 구성에서도 그 계급적 이해관계에서도 타도된 박근혜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야당들, 민주당과 국민의당 앞에 차려져 있고, 노동자ㆍ인민은 그들이 권력을 고스란히 접수하는 것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 게다가 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은 벌써부터 극우 세력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고, ≪조선일보≫ 같은 극우 언론은 窮與之策…보수 15%가 文ㆍ安 승패 가른다(17. 4. 7.) 운운하며 저들의 그런 친극우 행각을 부채질하고 있다.

여기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민중의 의지가 다시 제국주의의 조종을 받는 극우 반동세력에 의해서 짓밟히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주어져 있다.

 

 

II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보다도 두 혁명의 (잠재적) 빛깔의 차이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즉, 1960년의 4월 혁명과 2017년의 촛불 혁명은, 직접적으로는 양자 모두 민주화 혁명이지만, 그 시대적 배경이 다르고, 따라서 그 투쟁 주체의 계급적 구성이 확연히 다른 점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1960년의 한국은, 그때도 역시 이번 탄핵반대 집회 군중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면서 여실히 입증해 준 것과 같은 대~한미국이긴 했지만, 그 계급적 사회구성은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다. 당시는 생산자 대중, 따라서 인구의 압도적 다수가 농지개혁의 결과 창출된 분할지 소유 농민인 사회였고, 따라서 4월 혁명의 주체였던 청년ㆍ학생들은 주로 그들 농민과 도시 자영업자들의 자식들이었다. 즉, 4월 혁명의 빛깔은 명실공히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다만, 이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이후 민중의 에너지가 넘치는 역동적 혁명으로 전개되고 있었고, 그리하여 그 민중 에너지의 폭발의 결과가 두려운 나머지 그것을 저지하려는 제국주의와 일부 반동적 군부에 의해서 짓밟혔던바, 그 군사 쿠데타는 주로 1947년 이후 1950년대를 통해서 전개된 전쟁과 대량학살 등 당시 대~한미국의 특수하고도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은폐하고 억눌러 두기 위한 것이었다. 이 대~한미국의 특수하고도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들은,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로 상당 부분 밝혀지긴 했지만, 그 전모, 그 진상은 적어도 공적인 담론의 장에서는 아직도 짙은 안개 속에 감추어진 채 있다. 그 전모, 그 진상이 공공연하게 밝혀지기에는 아직도 파쑈적 지배가 너무나 강고한 것이다. 즉, 아직도 그 조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참고로 말하자면, 참으로 오랜 시간의 풍상에 인민 대중과 피해자들, 그 가족들의 분노도, 그 삶ㆍ생명 그 자체도 크게 바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 전모ㆍ진상이 밝혀지더라도 분명 1960년대 당시에 가졌을 폭발력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주의의 사주를 받은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 등의 군사 쿠데타의 목적은 십분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법언(法諺)이 매서운 경구(警句)로서 다가오고 있다.

그건 그렇고, 2017년의 촛불 혁명은 근 60년에 이르는 세월의 흐름을 반영하여 그 주체에서 1960년의 4월 혁명과는 다른 빛깔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다른 빛깔 속에야말로 제국주의와 반동의 반격을 격파하면서 혁명을 진전시켜 갈 힘이 잠재되어 있다.

1960년의 한국이, 앞서 말한 것처럼, 주로 소농민으로 구성된 농업 사회, 즉 농지개혁을 통하여 봉건적 토지소유, 봉건적 지주-소작관계가 해체되어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로 이행하기는 했으나 자본주의 발전은 아직 극히 제한적이고 낮은 단계에 있던 농업 사회였음에 비해서, 2017년의 한국은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이다. 생산자 대중의, 따라서 인구의 압도적 대수는 이제, 농민이 아니라, 도시에 밀집되어 있는 무산의 노동자들이다. 부르주아 통계는 도시의 이른바 자영업자들, 즉 도시의 소생산자들이 인구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의 태반은 불과 3-4년도 그 경영을 유지할 수 없는 그야말로 명의만의, 강제당한 자영업자들, 영세(零細) 자영업자들로서, 실제로는 무산 노동자들의 변형태(變形態), 그것도 그 대부분이 실업상태에 내몰려 있는, 노동자계급의 최하층 침전물인 것이 현실이다.

그리하여 수십만, 많게는 200만 명에 이르렀던, 2017년 촛불 혁명의 주체는 누가 뭐래도 당연히 노동자 대중이다. 그리고 그 주체가 노동자 대중이라는 점이야말로, 앞서 말했듯이, 제국주의와 반동의 반격을 격파하면서 혁명을 진전시켜 갈 잠재력인 것이다.

그러나 이 노동자 대중은 지금 자신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엉뚱한 색깔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 엉뚱한 색깔, 그것은 결코 위장(僞裝)이 아니다. 그것은 강제로 입혀진 남의 옷인데, 노동자 대중은 그것이 남의 옷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재 노동자 대중은 대자적(對自的)이 아니라 즉자적(卽自的)인 노동자 대중으로밖에는, 즉 정치적인 영역에서는 단지 시민의 정체성으로밖에는, 따라서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지휘 하에서밖에는 투쟁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 대중이, 이렇게 실제로는 투쟁의 주체이면서도, 노동자계급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아니라 시민의 정체성으로 광장에 나서고, 그리하여 시민단체라는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지휘 하에 투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난번 글에서도 말했지만, 한국 노동자계급의 기형성ㆍ불구성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사회경제적으로는 거대한 계급으로 성장했으나, 정치적ㆍ이념적으로는, 즉 대자적 계급으로는 성장하지 못한 때문이다.

따라서 구체적으로는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정치적 참모부, 자신의 해방을 이끌 자신의 정당을 획득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 불구성ㆍ기형성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그리하여 노동자들이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서의 자기 색깔에 따라 자신을 정치적으로 조직해 내는 것이야말로 노동자계급 운동의 당면한 과제이자, 촛불 혁명이 짓밟히지 않고 발전할 수 있는 조건으로 되어 있다.

 

 

III

 

그렇다면 당연히, 도대체 무엇이 한국의 노동자계급에게 그러한 정치적 무권리 상태, 그 기형성ㆍ불구성을 강요해 왔는가를 묻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한국 노동자계급의 이 기형성ㆍ불구성은 제국주의와 그 토착동맹세력의 파씨즘에 의해서 강요되어 온 것이다.

이 파씨즘은 1980년대 초까지는 사실상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계급이란 말로는, 군대의 일등병이니, 이등병이니 하는 것들을 가리킬 뿐, 노동자계급이니, 자본가계급이니 하는 말들은 엄중히 금지되어 있어서 누구도, 반공법ㆍ국가보안법에 의한 처벌, 심하면 조직 사건으로 비화하여 여러 사람의 목숨까지도 잃어야 할지 모를 위험성을 감수하지 않고는, 감히 입 밖에 내거나 글로 쓸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것은 계층이라는, 질적이고 절대적인 차이가 아니라 단지 양적이고 상대적인 차이를 의미하는 말로 대체될 수밖에 없었다. 제국주의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여서 외세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그것이 바로 자유세계의 언론과 교육이 찬양해 마지않는 자유민주주의 그것이었다.

그러한 자유민주주의 하에서는 사회과학이 있을 수 없었던 것, 노동자계급의 정치적ㆍ이념적 전진이 전혀 있을 수 없었던 것, 아니 노동자계급에게는 그 어떤 권리도 있을 수 없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광주 학살의 충격에 자극받은 1980년대의 치열한 투쟁과 특히 6월 항쟁 및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로 학문과 사상의 자유 등이 부분적으로 획득되고, 그리하여 압살되었던 사회과학도 다소 부활하는 등, 현재에는 물론 약간의 공간이 열려 있긴 하다. 하지만, 그 공간이란 것도 노동자들에게는 이른바 노동 3권만이 그것도 제한적으로 주어져 있을 뿐, 정치적으로는 아직도 파씨즘, 국가보안법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ㆍ이념적 전진을 완강히 가로막고 있다. 비근하게,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을 합헌 판결하고,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판결한 바로 그 재판소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예컨대, 지난 1월 5일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의 구속처럼,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 아직도 이 사회에서의 민주주의의 실상이다.

이러한 파씨즘의 극복 없이 노동자계급이 전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노동자계급 운동의 대열 내에는 반파씨즘ㆍ민주화 투쟁을 경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태도는 자신들이 전진하고자 하였으나 왜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지난 수십 년간 노동자계급이 왜 자신의 정치적 참모부, 자신의 혁명적 정당을 획득하지 못하고, 숱한 희생자만을 내왔는지를 이해하고 있지 못한 소치이다. 결국, 그들 자신이 인정하든 안 하든, 즉 그들 자신에 대한 자기인식과는 상관없이, 그들이야말로 바로 파씨즘의 희생자들이고, 국가보안법의 포로들일 뿐인 것이다.

노동자계급 운동의 대열 내에는, 특히 좌파임을 자부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현 시기의 전선은 민주 대(對) 반민주여야 하느냐, 아니면 자본 대 반자본이어야 하느냐 하는 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후, 당연히 자본 대 반자본의 전선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바로 반파씨즘ㆍ민주화 투쟁을 경시하는 이론적 근거이다.

그러나 문제를 민주 대(對) 반민주 전선이어야 하느냐, 자본 대 반자본 전선이어야 하느냐 하는 식으로 제기하는 것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민주 대 반민주 전선자본 대 반자본 전선은 서로 대립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논리적이지 않은 것이고, 두 전선의 실천적 결합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현 정세가 절실하게 요구하는 바이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다.

마찬가지 얘기는 계급모순과 이른바 민족모순의 관계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1980년대 초까지는 계급이라는 말도, 제국주의라는 말도 금지되어 있었고, 그 80년대의 투쟁의 성과로 그 말들도 겨우 해금(解禁)되어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계급이라는 말이나 제국주의라는 말이 금지어로 되어 있었다는 것과, 당시의 사회운동, 특히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에 그러한 문제의식,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의식이 없었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비록 갈수록 소수에 한정돼 가고 가느다란 흐름으로 이어져 왔을망정, 계급의식과 제국주의에 대한 인식은 명확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의식의 존재와 계승 때문에 파쑈는 그것들을 금지했던 것이다. 1980년대 운동의 성과는 결코 그것들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 성과는 그 해금, 시민권의 획득이었고, 대중화였다.

그런데도 좌파임을 자부하는 사람들의 일부에서는 특히 계급이란 것을 1980년대에 자신들이 발견이라도 하고, 그리하여 자신들만이 과학적인 것처럼, 근거 없는 우월의식에 젖어서 민족문제를 경시하고 심지어 백안시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마찬가지로 제국주의라는 문제의식을 자신들이 발견하고, 그리하여 자신들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근본모순과 대결하고 있다는 식의, 반제ㆍ민족문제를 중시하는 사람들 중 일부의 계급문제에 대한 경시 혹은 인식의 결여가 대응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 양편은 서로 계급(문제)이냐, 민족(문제)이냐 하고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특히 이 제국주의 시대에 어떻게 노-자 간의 계급모순과 이른바 민족모순,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국주의와 (신)식민지ㆍ종속국의 노동자ㆍ인민 간의 모순이 서로 분리돼 있을 수 있으며, 하물며 대립적일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서로 분리되어 있을 수 없고 대립적일 수 없는 문제를 대립적으로 파악하면서 실천적으로 서로 백안시하는 태도, 이 또한 사실은 파씨즘이 강제해 온 노동자계급의 정치적ㆍ이념적 성장의 지체의 표현 아니겠는가?

 

 

IV

 

한국 사회에서 민주 대 반민주, 자본 대 반자본, 그리고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은, 개념적으로야 당연히 구별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서로 구분할 수 없이 얽혀서 한 덩어리를 이루어 파쑈 지배로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파쑈와의 투쟁, 그것은 단순히 협의의 민주주의 투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허위의식에 근거한 분열을 극복하고, 자신을, 노동자 대중을 정치적ㆍ이념적으로 계발(啓發)하고 조직하는 길, 바로 그것이다. 선진 노동자들이 파쑈와 정면으로 투쟁하지 않는다면, 대중과 더불어 그렇게 투쟁하지 않는다면,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혁명적 정치적 조직을 결코 획득할 수 없고, 정치적 투쟁에 관한 한 노동자 대중은 여전히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 즉 소위 시민단체들의 영향력 하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누군가가 혁명을 아무리 외쳐 본들, 그들과 노동자 대중은 물과 기름처럼 겉돌 수밖에 없고, 노동자계급 운동의 최선의 상태는 기껏해야 전투적 경제주의ㆍ조합주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무능하고 무력한 노동자계급은 그 경제주의ㆍ조합주의의 전투성조차 상실하기 마련이다. 이는, 파씨즘의 희생자인 한국 노동자계급의 현실이, 1990년대 이래 한국 노동자계급 운동의 궤적이, 그리고 제2차 대전 후 이른바 복지국가의 사회보장제도에 안주해 온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노동자계급의 현실이 여실히 웅변하고 있는 바 아닌가?

노동자 대중이 그 어느 때보다도 대규모로, 활발히 정치적 투쟁에 나서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선진 노동자들이 심기일전, 반파쑈 민주화 투쟁을 통해 그들을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대중으로서 조직할 기회이고, 조직해야 할 때이다. 노동자 대중을 계속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영향력 하에 방치한다면, 그것은 선진 노동자들의 직무유기요, 역사적 사명의 방기이다.

선진 노동자들이 노동자계급의 깃발을 들고 반파쑈ㆍ민주화 투쟁을 선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노동자 대중으로 하여금 강요된 남의 옷을 벗어던지고 노동자계급으로서의 자기 색깔을 드러내게끔 하는 길이다. 그것이야말로 노동자계급이 해방을 향해 커다란 걸음을 내딛는 것, 노동자 대중으로 하여금 의식적으로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 자신의 해방을 위해 싸워 나가게끔 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촛불 혁명이 반동에 짓밟히지 않고, 그것을 노동자ㆍ인민의 해방을 향한 혁명다운 혁명으로 역동적으로 전개해 가는 길이다.

 

 

 

* 이 글은 ≪사월혁명회보≫ 제124호(2017. 4.)에 게재된 글입니다.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Apr 28th, 2017 | By | Category: 2017년 05월호 제133호, 자료 | 조회수: 1,016

댓글 한 개 “4월 혁명의 빛깔과 ‘촛불 혁명’의 빛깔―선진 노동자들의 과제와 관련하여*”

  1. 보스코프스키말하길

    자유게시판에 한 번 소개드린 바 있지만 현재 그 유명한 현대사 탄생의 비밀은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이완영 의 도서에 나와 있습니다. 물론 이 도서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다고는 해도 이미 지난 시간만 보더라도 지식의 하나로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봐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나라들에 있는 사회주의 정당들이 부재한 국가들(공화제 국가는 한국 외에는 대만 정도가 이렇다고 볼 수 있는데 대만은 노동당의 일부 파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중 하나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랍 변혁 국면에서도 그리고 포기납법색/부르키나파소 변혁에서도 ML(M) 계열의 정당이 존재합니다. 비록 비합, 제도 법률로는 불법 상황인지는 몰라도 이 정도도 존재하기 불가능했던 이유는 너무나 자명했지요… 그리고 KKE도 거리의 항쟁을 상설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는데 한국에서는 사회변혁노동자당의 정윤광 같은 사람들이 거의 동일하게 상설화를 논의한 바 있습니다. 거리의 투쟁을 상설화만 하는 것으로도 꽤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일단 보고 있고 이것이 일단의 ‘노동자계급 대중’의 조직화의 방법으로 정착하는 방법을 추구할 계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