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혁명과 민족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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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편집위원)

 

 

 

민족문제를 어떤 자족적인 것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민족문제는 현 제도를 개혁하는 일반적 문제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민족문제는 전적으로 사회정세의 제반 조건과 국내 정권의 성격에 의하여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사회발전의 전반적인 진행 과정에 의해 규정된다. 이것은 러시아 혁명 시기에 특히 뚜렷이 나타났다. 당시 러시아 국경 지역의 민족문제와 민족운동은 혁명 과정과 그 결과에 따라 급속하고 눈에 띄게 내용이 변해 갔다.

 

 

Ⅰ. 2월 혁명과 민족문제

 

러시아의 부르주아 혁명 시기(1917년 2월)에는 변경 지대의 민족운동이 부르주아 해방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수 세기에 걸쳐 낡은 제도하에서 탄압과 착취를 받아 온 러시아의 여러 민족은 처음으로 자기의 힘을 자각하고 압제자를 반대하는 투쟁에 뛰어들었다. 민족 탄압의 청산 ― 이것이 이 운동의 구호였다. 러시아 변경 지대는 순식간에 전(全) 민족 기관들로 뒤덮였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민족 지식인이 운동을 지도했다. 민족 부르주아지의 여러 세력은 전(全) 민족 기관에 결집하였다. 이러한 전(全) 민족 기관으로는 라뜨비야, 에스또니야 지방, 리뚜아니아, 그루지야, 아르메니야, 아제르바이쟌, 북까프까쓰, 끼르기지야, 볼가 중류 지역의 민족 평의회가 있고, 우끄라이나와 백러시아의 라다, 베싸라비야의 스파뚤-쩨리, 끄림과 바슈끼리야의 꾸룰따이, 뚜르께쓰딴의 자치정부가 있다. 민족 억압의 근본 원인인 짜리즘에서 해방되어 부르주아 민족 국가들이 수립된 것이다. 국경 지역의 민족 부르주아지는 민족자결권을 자신들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권리로 해석하고 2월 혁명을 자신들의 민족 국가 수립에 이용하였다. 전(全) 민족 기관들은 혁명을 더한층 발전시킨다는 생각은 없었으며 할 수도 없었다. 짜리즘을 대신하여 가면을 벗은 노골적인 제국주의가 나타난다는 것, 이 제국주의는 더 강하고 더 위험한 민족의 원수라는 것, 그것은 새로운 민족적 탄압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짜리즘이 전복되고 부르주아지가 정권을 장악하였지만 민족 억압은 청산되지 않았다. 낡고 조잡한 민족 억압 형태는 새롭고 세련된, 그러나 더욱 위험한 억압 형태로 바뀌었다. 리보프-밀류꼬프-께렌쓰끼 정부는 민족 억압 정책을 버리지 않고 핀란드(1917년 여름에 국회를 해산)와 우끄라이나(우끄라이나 문화 기관 파괴)에 대한 새로운 공세를 취했다. 게다가 제국주의 본성을 가진 께렌쓰끼 정부는 새로운 영토, 새로운 식민지, 새로운 민족을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계속할 것을 주민에게 호소하였다. 께렌쓰끼 정부의 이런 조치는 비단 제국주의로서의 내적 본성에만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서구의 구제국주의 국가들이 새로운 영토와 새로운 민족을 정복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어 러시아 정부의 세력권이 축소될 위험 때문이기도 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기의 존립 조건이 되는 약소민족을 정복하는 투쟁 ― 이것이 제국주의 전쟁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상황이다. 짜리즘이 타도되고 밀류꼬프-께렌쓰끼 정부가 등장하였지만 추잡한 이 상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변경 지대에 있는 전(全) 민족 기관들이 국가적 독립을 지향할 경우 러시아 제국주의 정부는 단호하게 공격하였다. 다른 한편 이 전(全) 민족 기관들은 민족 부르주아 정권은 설립하고자 하지만 자국의 노동자 농민의 근본적 이익에는 귀를 막고 있었다. 때문에 노동자 농민들 속에서는 불평불만이 고조되었다. 이른바 민족 군대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전(全) 민족 기관들은 위에서 오는 위험에는 무력하였으며 밑에서 오는 위험도 증대시키고 격화시켰다. 외부의 공격과 내부의 폭발을 막아내지 못하고 갓 태어난 부르주아 민족 국가들은 꽃도 피기 전에 시들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자결 원칙에 대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낡은 해석은 허구로 되었고 그 혁명적 의의도 상실하였다. 이런 조건에서 민족 억압이 철폐되고 소수민족이 독립 국가를 수립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음이 명백해졌다. 피억압민족 노동대중의 해방과 민족적 억압의 제거는 제국주의 지배를 분쇄하고 자국 민족 부르주아지를 타도하여 노동대중이 스스로 정권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것은 10월 혁명 이후 특히 분명하게 드러났다.

 

 

Ⅱ. 10월 혁명과 민족문제

 

2월 혁명은 양립할 수 없는 내적 모순을 품고 있었다. 혁명은 노동자 농민(병사)의 노력으로 수행되었으나 혁명의 결과는 노동자 농민이 아니라 부르주아지가 정권을 차지했다. 노동자 농민은 혁명을 수행하여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실현하려 하였다. 그러나 부르주아는 정권을 장악하고는 대중의 혁명적 열의를 이용하여 전쟁을 계속하고 평화 실현을 막으려 하였다. 경제 파탄과 식량 위기로 인해 노동자에게는 자본과 기업에 대한 징발이 필요하였고 농민에게는 지주 토지의 몰수가 요구되었다. 하지만 밀류꼬프-께렌쓰끼 부르주아 정부는 지주와 자본가의 이익을 옹호하여 노동자 농민의 공격으로부터 그들을 결연하게 보호하였다. 2월 혁명은 힘은 노동자 농민이 쓰고 열매는 착취자가 차지하게 된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당시 나라는 제국주의 전쟁과 경제 파탄, 식량 위기의 중압에 끊임없이 신음하고 있었다. 전선은 파괴되고 와해되었다. 공장과 제분소들은 조업을 중단하였다. 국내에서는 기근이 날로 심각해졌다. 2월 혁명은 내적 모순으로 인해 나라를 구원하기에는 확실히 부족하였다. 밀류꼬프-께렌쓰끼 정부가 혁명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나라를 제국주의 전쟁과 경제적 파탄의 막다른 골목에서 구출하자면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10월 혁명이 일어났다.

10월 혁명은 지주와 부르주아지의 정권을 전복하고 노동자 농민의 정부를 수립하여 2월 혁명의 모순을 단번에 해결하였다. 지주와 부농(kulaks)의 전제 정권을 폐지하고 토지는 농촌 노동대중에게 나눠 주어 경작하게 하였다. 공장과 제분소는 몰수하여 노동자가 관리하도록 하였다. 제국주의와는 관계를 끊었고 약탈 전쟁은 종식시켰다. 비밀조약을 공개하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정책을 폭로하였다. 끝으로 피억압민족 노동대중의 자결을 선포하고 핀란드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이것이 쏘비에트 정권이 혁명 초기에 실시한 기본 조치들이다.

이것은 참으로 사회주의적인 혁명이었다.

중앙에서 시작된 혁명은 중앙의 좁은 지역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혁명은 중앙에서 승리한 후 지방으로 번져 나갔다. 혁명의 물결은 혁명 첫날부터 북부 지방을 시작으로 각 지방을 연달아 휩쓸면서 전 러시아로 퍼졌다. 그러나 변경 지대에 이르자 혁명의 물결은 이미 10월 전에 수립된 민족 쏘비에트나 지방 정부(돈, 꾸반, 씨베리아)와 같은 제방에 부딪쳤다. 이 민족 정부들은 사회주의 혁명에 귀도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본성상 부르주아적인 민족 정부들은 결코 낡은 부르주아 제도를 파괴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력을 다하여 부르주아 제도를 보존하고 강화하는 것을 자기의 의무로 여겼다. 본질상 제국주의적인 민족 정부들은 결코 제국주의와 관계를 끊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만 있으면 다른 민족의 영토를 한 조각이라도 더 약탈하고 정복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변경 지대 민족 정부들이 중앙의 사회주의 정부에 선전포고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민족 정부들이 선전포고를 하자 민족 정부들은 반동의 소굴이 되어 러시아의 모든 반혁명 세력들이 몰려들었다. 러시아에서 추방당한 반혁명 분자들도 이 소굴에 뛰어들어 백군의 민족 군대를 조직하였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변경 지대에는 민족 정부만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도 있다. 노동자 농민은 10월 혁명 이전에 이미 러시아 중앙의 쏘비에트를 본받아 쏘비에트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북방에 있는 형제들과 연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도 역시 부르주아지를 쳐부수고자 싸웠고, 사회주의 승리를 위해 투쟁하였다. 자연히 자기 민족 정부와의 충돌은 날로 격화되었다. 10월 혁명으로 변경 지대의 노동자 농민은 사회주의 승리의 신념으로 더욱 고무되었고, 러시아 중앙의 노동자 농민과 동맹을 한층 공고히 하였다. 민족 정부들이 쏘비에트 정권에 반대하는 전쟁을 감행하자 각 민족 대중은 민족 정부들에 대항하는 투쟁에 나섰다. 대중과 정부는 완전히 갈라졌고, 대중들은 공공연히 반란을 일으켰다.

러시아 변경 지대 민족 부르주아 정부들의 반혁명 동맹에 반대하는 전(全) 러시아 노동자 농민 사회주의 동맹은 이와 같이 하여 형성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변경 지대 정부들의 투쟁을 쏘비에트 정권의 냉혹한 중앙집권제를 반대하는 민족해방 투쟁인 듯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거짓말이다. 전 세계 어떤 정권도 러시아의 쏘비에트 정권만큼 광범위한 지방분권을 허용한 정권은 없다. 또 전 세계 어떤 정부도 인민에게 그처럼 완전한 민족적 자유를 준 정부는 없다. 변경 지대 정부들의 투쟁은 부르주아 반혁명 세력의 반사회주의 투쟁이었으며 현재도 그렇다. 민족 부르주아지가 민족이라는 깃발을 내거는 것은 그것이 자기들의 반혁명적 기도를 감추는 데 편리한 대중적 깃발이기 때문이다. 민족 부르주아지는 민족 깃발을 이용하여 대중을 기만할 뿐이다.

그러나 민족 정부나 지방 정부들의 투쟁은 승산이 없었다. 두 방면 즉 밖으로는 러시아 쏘비에트 정권에 의해, 안으로는 자국의 노동자 농민에 의해 공격을 받은 민족 정부들은 첫 교전 후 기가 꺾여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핀란드에서는 노동자와 또르빠리1)가 봉기하자 부르주아 원로원은 싸움에서 지고 달아났다. 우끄라이나에서도 노동자 농민이 봉기하자 부르주아 최고의회 라다는 냅다 도망쳤다. 돈 지방과 꾸반, 씨베리아에서도 노동자 농민이 봉기하자 깔레진과 꼬르닐로프, 씨베리아 정부는 맥없이 무너졌다. 뚜르께쓰딴에서는 빈민들이 봉기하여 자치 정부를 패주시켰다. 까프까쓰에서는 토지혁명이 일어났고 그루지야, 아르메니야 및 아제르바이쟌에서는 민족 쏘비에트가 고립무원이 되었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이 모든 것은 변경 지대 정부들자국의 노동대중과 완전히 유리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여지없이 패배한 민족 정부들자국의 노동자 농민에 맞서기 위해 전 세계 민족들의 세기적 억압자이자 착취자인 서방 제국주의자들에게 어쩔 수 없이 구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이리하여 외국이 간섭하여 변경 지대를 점령하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 동안 민족 정부와 지방 정부들은 반혁명적 성격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이제 모든 사람에게 명백해졌다. 민족 부르주아지는 자기 인민을 민족적 억압에서 해방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 인민에게서 이윤을 짜낼 자유, 특권과 자본을 보존할 자유를 얻으려 했던 것이다.

이제 분명해졌다. 피억압민족들의 해방은 제국주의와 관계를 끊어 버리고 피억압민족의 부르주아지를 전복하여 노 대중이 권력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혁명 과정에서 모든 권력은 민족 부르주아지에게라는 구호를 내건 부르주아적 낡은 자결 원칙은 가면이 벗겨지고 폐기되었다. 모든 권력은 피억압민족의 노동대중에게라는 구호를 내건 사회주의적 자결 원칙은 전면적으로 승인되었고 적용할 가능성을 얻었다.

이리하여 10월 혁명은 낡은 부르주아 민족해방 운동에 종지부를 찍었고 피억압민족의 노동자 농민이 주체로 나서는 새로운 사회주의 운동의 새 시대를 열어 놓았다. 이 운동은 민족적 억압을 포함한 온갖 억압을 반대한다. 자국과 타국의 부르주아 정권을 반대한다. 제국주의 일반을 반대한다.

 

 

Ⅲ. 10월 혁명의 세계적 의의

 

10월 혁명은 러시아의 중앙에서 승리하고 여러 변경 지대를 휩쓸었다. 하지만 러시아 영토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제국주의 세계대전이 지속되고 대중의 불만이 팽배한 분위기 속에서 인근 국가로 파급되었다. 제국주의와 관계를 끊어 버리고 약탈 전쟁에서 러시아가 벗어난 것, 비밀 조약을 공개하고 타국 영토에 대한 약탈 정책을 정식으로 폐기한 것, 민족적 자유를 선언하고 핀란드의 독립을 승인한 것, 러시아를 각 민족 쏘비에트 공화국 연방으로 선포한 것, 그리고 제국주의와 결정적으로 투쟁하라는 전투적 호소를 쏘비에트 정권이 전 세계에 보낸 것 ― 이 모든 것은 노예로 전락한 동방과 피를 흘리고 있는 서방에 거대한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사실상 10월 혁명은 동방 피억압 노동 인민대중을 세기적인 잠에서 깨워 세계 제국주의와의 투쟁에 나서게 한 세계 역사 최초의 혁명이다. 러시아 쏘비에트를 본받아 페르시아와 중국, 인도에서 노동자 농민 쏘비에트가 수립된 사실이 이것을 잘 말해 준다.

10월 혁명은 서방 노동자와 병사들에게 해방의 희망을 준 산 모범이 되었으며, 전쟁과 제국주의 억압으로부터 실제 해방되는 길로 그들을 추동한 세계 최초의 혁명이다. 이것은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독일에서 노동자와 병사의 봉기가 일어나 노동자 병사 대표자 쏘비에트가 수립되고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피지배민족들이 민족적 억압을 반대하는 혁명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문제는 동방이나 심지어 서방에서 진행되는 투쟁이 부르주아 민족주의 성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데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핵심은 제국주의와의 투쟁이 시작되었다는 데 있으며 그 투쟁이 계속되어 마침내는 그 논리적 귀결에 반드시 도달하리라는 점이다.

외국의 간섭과 외부 제국주의자들의 점령 정책은 혁명적 위기를 첨예화시켰다. 새로운 민족들이 혁명 투쟁에 참가하고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혁명적 격전지를 넓혔다.

10월 혁명으로 낙후한 동방 인민들과 선진적인 서방 인민들이 연계하고 반제국주의 공동 투쟁 진영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민족문제는 민족적 억압에 반대하는 투쟁이라는 특수한 문제로부터 민족과 식민지, 반식민지를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키는 일반적 문제로 발전했다.

제2 인터내셔널과 그 지도자 카우츠키의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은 민족자결 문제를 언제나 부르주아적으로 해석하는 데 있다. 제2 인터내셔널과 카우츠키는 민족자결 문제의 혁명적 의의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민족문제가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공공연히 투쟁하는 혁명적 지위를 갖는다는 것을 모르거나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즉 민족문제를 식민지 해방 문제와 연결시킬 줄 모르거나 연결시키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바우어와 레너 따위의 오스트리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우둔하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있다. 이들은 분리할 수 없는 민족문제와 권력문제의 연관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정치에서 민족문제를 굳이 분리하여 문화와 교육문제에 국한시키는 것이다. 또 이들은 제국주의와 제국주의가 노예로 만든 식민지 같은 사소한 존재는 아예 무시한다.

사람들은 자결 원칙과 조국 방위의 원칙이 사회주의 혁명이 고양되는 정세 하에서 사건의 경과 추이에 따라 무효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무효로 된 것은 자결 원칙과 조국 방위의 원칙이 아니라 그에 대한 부르주아적 해석이다. 이것은 제국주의의 억압에 견디다 못해 해방에 궐기하는 점령 지역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제국주의 야수들로부터 사회주의 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혁명전쟁을 진행하는 러시아를 봐도 알 수 있다. 또 현재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미 자기 나라에 쏘비에트를 조직한 식민지와 반식민지(인도, 페르시아, 중국)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이상의 모든 사실을 보면 사회주의적으로 해석된 자결 원칙의 혁명적 의의가 충분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10월 혁명의 위대한 세계적 의의는 주로 다음과 같은 점에 있다. 즉 10월 혁명은

1) 민족문제의 범위를 확장하였다. 민족문제를 유럽에서의 민족적 억압에 대한 투쟁이라는 특수한 문제로부터 피억압민족과 식민지, 반식민지를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일반적 문제로 전화시켰다.

2) 동방과 서방의 피억압민족들이 해방될 광범한 가능성과 현실적인 길을 열어 놓았다. 동서방의 피억압민족들이 제국주의와의 투쟁에서 승리를 위한 단결된 흐름을 형성하여 해방운동을 매우 용이하게 만들었다.

3) 이리하여 사회주의적 서방과 노예로 전락한 동방 간에 다리를 놓았다. 러시아 혁명을 통해 서방의 노동계급으로부터 동방의 피억압민족들에 이르는 세계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새로운 혁명 전선이 만들어졌다.

동방과 서방의 피착취대중이 지금 러시아의 노동계급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열광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전 세계의 제국주의 강도들이 오늘 쏘비에트 러시아에 대해 그렇듯 격분하는 것도 주로 이 때문이다.  [노/사/과/연]

 

≪쁘라브다≫ 241호와 250호

1918년 10월 6일과 19일

서명: J. Stalin

 

 

 


1) [편집부] 또르빠리는 핀란드의 토지 없는 농민이다. 이들은 노예적 조건으로 토지 소유자들의 토지를 소작하였다.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Apr 28th, 2017 | By | Category: 2017년 05월호 제133호, 번역 | 조회수: 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