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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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수 |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소장

착취와 억압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향한 인류의 염원은 아주 오래다. 그러한 염원은 수많은 전설, 설화, 동화, 그리고 의적(義賊) 이야기 등을 통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을 뿐 아니라, 예컨대 ≪홍길동전≫의 ‘율도국’처럼 저항적 문학을 통해서 기록되어 오기도 했다. 그리고 또 실제로 여러 인민반란을 통해서도 표출되어 왔다.
하지만, 그렇게 꿈꾸어온 ‘이상사회’는,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경로의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짐이 없이 그야말로 유토피아적, 즉 공상적이었다. 그뿐 아니라, 예컨대 홍길동이 율도국의 ‘왕’이 되는 것처럼, ‘이상사회’ 그 자체의 상(像) 속에 계급사회의 여러 모습, 여러 모순, 위계(位階)가 무비판적으로 투영되어 있기도 했다. 이는 물론 무계급 평등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물질적인 조건과 기초가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었고, 사회의 구성 원리와 그 발전법칙을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없었던 데에서 오는 당연한 역사적 한계였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해온 노동생산력과 그에 따라 심화돼온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격화되고 있는 계급투쟁은, 그리고 특히 19세기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사회과학, 즉 사회구성과 그 발전법칙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무계급 평등사회를 공상적 염원에서 실현 가능한 현실의 문제로 전화시켰다. 그것을 현실적으로 전망할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또 실제로 실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주의 혁명과 그 건설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해오면서도 귀중한 성과와 교훈을 남겨오고 있다.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주체적 원인은 물론 경험의 부재, 즉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것이 전인미답의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사회의 건설, 그것도 인류사 최초로 이성과 의지에 기초해서 의식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거대한 사업에서 시행착오와 실패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사고 자체가 비이성적이고 공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에,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1871년의 빠리 꼬뮌의 실패처럼 19세기에 인류가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에 실패한 최대의 원인은 결코 그 건설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의 경험의 부재ㆍ부족이라는 주체적인 그것이 아니었다. 그 최대 원인은 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있었던 자본, 특히 독점자본, 즉 제국주의의 여러 형태의 공격과 파괴공작 그것이었다. “하나의 사회구성은 모든 생산력이 완전히 한계에 달하도록 발전해버리기 전까지는 결코 몰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제국주의는 그 완강한 생명력과 거대한 경제적ㆍ국제정치적ㆍ군사적 위력으로, 그리고 또한 조작된 이데올로기의 압도적 위력으로 파괴적 압박과 공작을 가해 왔고, 바로 그 때문에 20세기 사회주의는, 귀중한 교훈과 거대한 성과를 남기면서, 그 대부분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얼치기 변증법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제국주의의 압력이나 파괴공작 등등은 ‘외적 모순’에 불과하다”고. 그리하여 그것을 20세기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와 붕괴의 최대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은 변증법적이지 못한 잘못된 주장이라고.
그들은 변증법을 얘기하고 ‘내적 모순’이니 ‘외적 모순’이니 하는 변증법적 용어를 구사하면서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언설, 그들의 논설은 전혀 변증법적이지 않다. 그들은 제국주의의 압력과 파괴공작, 이데올로기적 허위선전과 중상모략이, 그러한 ‘외적 모순들’이 어떻게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내부에, 그리고 전세계 노동자계급과 그 운동의 내부에, 따라서 반제국주의 노동자 투쟁의 국제적 전선에 어떤 ‘내적 모순들’을 생성ㆍ발전ㆍ소멸시켜왔는가를 구체적인 현실에 입각해서, 구체적인 현실의 발전상(發展像)에 근거해서 고찰하고 거기에서 판단과 결론을 이끌어내는 대신에 ‘내적 모순’이니 ‘외적 모순’이니 하는 앙상한 관념에 매달려 형이상학적 사고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국가ㆍ사회 내부에 어떻게 계급투쟁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왜곡시켜 왔으며, 제국주의의 경제적, 특히 군사적 압력이 사회주의 건설에 매진해야 할 20세기 사회주의 국가ㆍ사회 내부의 인적ㆍ물적 자원의 배분을 어떻게 왜곡시켜왔는가 등등에 대해서는 저들은 조그마한 관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저들은 자신들의 반쏘 책동이 반제국주의 노동자 투쟁 전선을 어떻게 분열시켰으며,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등등에 대해서는 조금도 반성적으로 사고할 능력이 없는 자들이다.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제국주의의 압력이나 파괴공작 등등은 ‘외적 모순’에 불과하다”며, 20세기 사회주의의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혹은 적어도 주로 스탈린이나 ‘스탈린주의’에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제국주의의 선전도구로 전락해 있으면서도 스스로 ‘사회주의자’니, ‘공산주의자’니, “꼬뮌주의자”니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결정적으로 인류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처럼 보였던 1917년의 러시아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을 기점으로 했던 20세기 사회주의가, 주지하는 것처럼, 소수의 지역과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20세기 마지막 10년을 남겨두고 실패로 끝난 마당에 ‘귀중한 교훈’과 특히 ‘거대한 성과’를 거론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 할지 모른다. 특히 1990-91년에 발생한 쏘련의 해체와 그에 따른 역사의 대반전은 그 충격과 반향이 참으로 엄청난 것이어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역사의 종언”, 즉 ‘자본주의 체제의 최종적 승리’를 선언했고, 그들의 주장처럼 정말 “역사는 끝났다”는 듯이 수많은 ‘투사들’이 좌절하며 전향해갔다. 그리고 장기간의 반동기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간 생활의 모든 면에서 이룩한 성과는 여기에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나다. 그리고 특히 “쏘비에트연방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의 공헌과 우월성은 참혹한 파괴와 계속적인 방해 및 협박을 수반했던 제국주의자들의 전략 및 포위와 관련해서 판단해야 한다. 제국주의자들의 전략은 혁명적 노동자 정권의 여러 시기에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하면서 나타났다(1918년과 1941년에는 제국주의자들의 직접 공격, 1946년에는 냉전의 선언, 중부유럽 및 동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관한 개개 차별화된 정치외교관계).”
그리고 쏘련이 해체된 후 그렇게 “역사의 종언”, 즉 그 최종적인 승리를 주장했던 자본주의 그 자체, 계급사회로서의 자본주의의 발전 그 자체가, 그 모순의 격화 자체가 수백만, 수천만, 수억의 노동자ㆍ인민을 실업과 빈곤,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으면서 이제 21세기 전반기야말로 인류사회가 불가역적(不可逆的)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할 수밖에 없는 시대로 되었음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인류는 지금 착취와 억압의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무계급 평등사회로 이행해 나아가느냐, 아니면 사실상 절멸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서 발전한 생산력이 이미 자본주의라는 생산관계와는 더 이상 양립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지 오래임을 여러 사태가 확연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종언”이니, “자본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니 하는 저들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의 주장이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자본주의가 계급사회사의 최종적인 단계이며, 자본주의를 끝으로 인류의 계급사회사(階級社會史), 즉 “인간 사회의 전사(前史)”는 그 종언을 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일 뿐일 것이다.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맑스는 일찍이 이렇게 쓰지 않았던가!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는 사회적 생산과정의 최후의 적대적 형태인 바, 개인적 적대라고 하는 의미에서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사회적 생활조건들로부터 발생하는 적대라는 의미에서 적대적인 것인데, 그러나 부르주아적 사회의 태내(胎內)에서 발전하는 생산력들은 동시에 이 적대의 해결을 위한 물질적 조건들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이 사회구성과 더불어 인간 사회의 전사(前史)는 끝난다.

이제 자본주의의 현 단계를 점검하는 것으로부터 21세기의 사회주의를 전망하면서, 그 혁명과 건설에 있어서의 조건과 과제를 간단히 보기로 하자.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Sep 16th, 2013 | By | Category: 〈노동사회과학 제2호〉 사회주의 20세기와 21세기 | 조회수: 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