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련국가자본주의론’ 비판을 위한 시론(始論)

공유하기

김해인 | 노동사회과학연구소 편집출판위원

들어가며

1917년 10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민중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이 체제는 인민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끊임없이 성장했으나, 그 전진의 과정은 때때로 오류를 범하기도 했던, 따라서 후퇴를 포함한 과정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체제가 사회주의의 이상이 순결하게 구현된 사회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순수한 사회주의 사회는 공상가들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반면 현실의 그 사회는, 존재하는 온갖 난관들을 헤쳐 가야했던, 그러한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발 한발 전진해야했던 사회였다.
그것의 이름은 ‘쏘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었다! 74년 동안 온갖 난관들을 헤쳐 가며 인민의 힘으로 전진했던 그 사회는 1992년 1월 1일,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혁명의 시대’라고 불리는 20세기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다! 20세기 쏘련의 성립과 전진은,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해 우리 인류가 연주했던, 거대한 전주곡 같은 것이었다. 역사의 발전은 직선이 아니다. 역사는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지그재그로 발전한다. 역사의 막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지금 격화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순은, 인민들로 하여금 역사의 새 행진곡을 연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전진하는 역사의 다음 연주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쏘비에트 인민들의 위대한 경험을 배우는 것이다. 그들은 어떠한 시행착오들을 겪었고, 어떻게 그러한 현실을 극복해 나갔던가, 그러한 과정들을 배워야 한다. 동시에 그들이 어떤 오류들을 범했는지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연주자로서 우리는, 그들보다 한 단계 더 전진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 이러한 과정 없이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쏘련은 자본주의를 극복한 새로운 사회가 아니었다. 그 곳에는 여전히 ‘관료’라는 착취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악랄하게 착취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보기에 그 착취계급은 나찌 히틀러보다 더 사악한 존재였다. 동시에 그들은 거기에서 자본주의와 완전히 동일한 원리와 법칙들이 지배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 사회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그리고 그 사회의 인민들은 사회의 모순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 나갔는지, 전혀 배울 필요가 없다. 그들은 이야기한다.

… 소련이 사회주의 사회의 실례이거나 또는 적어도 사회주의로 가고 있는 사회라는 … 그들의 생각이 맞다면, 우리는 아예 마르크스주의를 내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소련의 성장률 저하와 노동자에 대한 계속되는 억압을 고려해 볼 때, 소련이 사회주의라면 일반 근로 인민대중의 해방 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신뢰를 잃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했던 쏘비에트 인민들의 땀과 열정은 내팽개쳐버리고, 즉 그들의 경험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배울 필요 없이, 반대로 그것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었다고 주장하기만 하면, 그것의 모든 오류와 시행착오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소련은 사회주의 또는 사회주의로 가고 있는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한 형태, 즉 국가자본주의이다. 그런데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라는 점을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에 바탕을 두고 소련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소련의 사회체제는 서방 사회 체제들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소련은 서방 제국주의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이며 자본주의 열강이다. 그래서 소련도 서방 자본주의 발전의 기본 법칙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1947~8년 이래 이미, 그들의 스승 토니 클리프가 이와 같은 사실을 밝혀놓았다. 그들에 따르면, 토니 클리프는 “소련을 노동자 계급의 이해관계라는 관점에서 고발”했으며, 동시에 “바로 그 체제의 근원적 동력을 찾아내어 이를 세계사적 견지에서 규명”했다. 그것이 바로, 소련이 “관료제적 국가자본주의”라는 이론이다. 따라서 자칭 ‘국제사회주의자’들, 혹은‘혁명적 맑스주의자’들께서는, 이것으로 무장했기에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국가들이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이렇게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한 사건들[쏘련과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과정: 인용자] 때문에 동과 서에서 행세하고 있던 기존의 정치 분석들 대부분은 도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상황은 혼란스러운 것으로 가다왔다. … 불행하게도 좌익의 대다수는 이러한 도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즉, 그들이 보기에, 자신들을 제외한 모두는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국가들이 붕괴를 설명할 수 없어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1947~8년 이래로 쏘련을 자본주의로 보아왔던 자신들만은 그러한 혼란을 피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크리스 하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인용자]… 언제나 동유럽 사회들을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해 왔다. 이러한 관점은, 동유럽 사회들이 서방의 생산양식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생산양식을 체현했다는 ‘상식적’ 편견과 충돌했다. 우리가 좌익 속에서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오직 이 이론만이 지난 수개월간의 사건들―다른 관점을 통해서 보면 단지 혼란스럽기만 할 뿐인 사건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한 문제들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토니 클리프가 발전시킨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들에 의하면, 토니 클리프의 이 이론은 다른 쏘련 비판 이론들과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이론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국가자본주의론의 아버지”는 카우츠키이다. 하지만 카우츠키의 국가자본주의론은 1917년 10월혁명을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자본주의 혁명이라고 주장하고, 소련에서 국가자본주의의 기원을 1917년까지 소급한다는 점에서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 미국의 제임스와 두나예프스카야도 1940~50년대 국가자본주의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캘리니코스에 따르면, 이들의 국가자본주의론은 “국가자본주의를 생산과정 자체에만 전적으로 위치”지웠기 때문에, “왜 소련 관료가 작업장에서 전제주의를 강제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공장관리자 간의 의지의 충돌로 환원되고 말았다. … 이와는 대조적으로 클리프는 군사적 경쟁에 지배되는 국제적 국가체제라는 범세계적 맥락 속에서 스탈린주의 체제를 위치지움으로써 소련에서 노동자계급이 자본축적의 동학에 예속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또 클리프 이후에 국가자본주의론을 주장하는 주요 논자로는 베틀레임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소련에서 ‘자본주의의 부활’의 원인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힘에서 찾고, 국가자본주의의 역사가 1928년이 아니라, 1956년 제20차 당대회(혹은 최근에는 아예 1917년 혁명)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점에서, 마오주의적 혹은 카우츠키적 소련 비판의 아류일 뿐이다.(강조는 인용자)

이와 관련하여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이 최근에 주장된 것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 전인, ‘현존 사회주의’의 극성기라고 할 수 있는 2차 대전 직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히틀러를 패퇴시키고 동유럽 전역에 ‘현존 사회주의’ 체제를 확산시켰던 그 당시 소련을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라고 비판하고, 서방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노동자 혁명에 의해 타도되어야 한다고 선언한 클리프의 혁명적 용기와 예언자적 통찰은 요즈음 ‘사회주의의 몰락’ 정세에 편승하여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각종의 ‘현존 사회주의’ 비판 이론(예컨대 ‘국가사회주의론’ 따위)과는 아예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강조는 인용자)

또한 그들에 의하면, 이 이론은 쏘련과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를 통해 역사적 시험에서 검증된 이론이다.

… 클리프가 발전시킨 그 이론―소련 체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맹목적 낙관주의와 그 체제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1984년≫식 암울한 비관주의 이 모두를 40년 전에 거부할 수 있었던―은 그 때 이후 일어난 일들에 의해 그 타당성이 입증되었다. … 이 책은 오늘날 혁명적 사회주의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 보야 할 마르크스주의 고전이다.

혁명 이론이 정치적 실천을 지도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실제 세계의 변화에 맞추어 발전해야만 한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강점은 이 이론이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쏘련과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과정: 인용자]을 해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났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자본주의 발전의 경향들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역동적인 이론이다. 따라서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모든 종류의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시험을 통과한 셈이다. 즉, 그것은 우리가 세계를 분석할 뿐더러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이제 그들은 위대한 스승이 밝혀놓은 길을 따라, 쏘련과 현실사회주의가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었으며, 사실은 자본주의였다는 증거를 더욱 구체적으로 찾아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승의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발전시키면 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제4인터내셔널의 만델 등 수많은 뜨로쯔끼주의자들이 그들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반박했다. 지금 한국에서도 정통 뜨로쯔끼주의자들에게 의해서, 또는 맑스-레닌주의자들에게 의해서 그들의 이론은 계속적으로 반박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들은 그들에게 소용없다. 그들에게는 강철 같은 신념이 있다; 쏘련은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이다! 이것을 믿을지어다. 이것이 그들의 계명이며, 사도신경이다.
1980년대 초,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내에서 ‘쏘련에서의 임금노동’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피터 빈즈와 마이크 헤인즈는 자신들의 스승의 교리에 따라, 쏘련에서의 임금노동의 존재를 부정했다. 하지만 캘리니코스는 이를 반박하며, 쏘련에는 노동시장이 존재하며, 임금노동도 실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의 스승 토니 클리프가 “트로츠키의 한 사도(使徒)”를 자처하며, “스탈린주의 체제에 대한 트로츠키의 분석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데 대단히 커다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트로츠키가 주장하는 “타락한 노동자 국가”는 결국 트로츠키 자신의 말을 통해서도 오류로 드러나며, 이는 그가 쏘련의 국유화라는 “과거의 경험”에 사로잡혀, 쏘련이 관료적 자본주의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하며 그를 비판했던 것처럼, 이제 자신도 ‘쏘련에서 임금노동의 부재’를 주장하는 스승 토니 클리프의 논지는 스스로 모순에 있다고 말하며, ‘쏘련에서 임금 노동이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그들에게는 어떠한 비판도 소용없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쏘련에서 임노동이 있든 없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쏘련은 언제나 국가자본주의이다!
예언의 핵심은 하나뿐이다; 쏘련은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이다! 이것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쏘련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도, 심지어 예언자의 오류도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쏘련이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근거로 추가되어, 예언에 대한 믿음은 강화되어 간다. 그들은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의 경험을 배우기 위해 그 사회를 연구할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는 단지,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가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였다는 국가자본주의론을 더욱더 발전시키기 위해 그 사회를 연구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캘리니코스는 이렇게 말한다.

클리프는 국가자본주의의 세밀한 구조에 대한 분석을 발전시킬 틀을 제공하였지만, 그러한 분석 자체는 아직 이루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발전시키려는 빈즈-헤인즈의 시도는 따라서 환영되어야 한다. 비록 그들 자신의 혼동이 그들을 결국 애통스럽게도 잘못된 길로 인도하였지만 말이다.

이제 그들이 “혁명적 용기”와 “예언자적 통찰”을 가졌다고 극찬해마지 않는, 그 예언자께서는 스스로 자신의 이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들어보자.

… 전세계의 사회주의자들은 지금 막중한 임무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이제 스탈린주의에 대해 체계적인 비판을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이제 1917년의 혁명을 패퇴시킨 반혁명에 대해 아주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이제 스탈린주의라는 기나긴 어두운 밤에 의해 그 의미가 모호해져 버린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리들을 재차 삼차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소비에트 혁명과 스탈린주의 반혁명, 그리고 그 모든 결과들에 대해 대단히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다름 아닌 국가자본주의 이론에 의해 가능할 것이다.
이 이론으로 무장한다면, 우리는 1917년의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이었고, 이 혁명이 1920년대 후반에 패배 당했으며,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이 새로운 지배계급한테 권력을 상실해 버렸다는 사실을 쉽게 설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해방이 노동자 계급 자신의 행동에 의해 이룩될 것이라고 주장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이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필수불가결한 무기인 것이다.

예언자께서는 아직 진리의 세례를 받지 못하고, 스딸린주의라는 ‘악마’의 꼬임에 빠져있는 한국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자신의 교리를 다리로 천국으로 가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교리는 쏘련 사회를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리들”로,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스탈린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을 제공”하고 있다. “이 이론으로 무장한다면” 우리는 쏘련에 대한 진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이론은 노동자계급 해방의 “필수불가결한 무기”이다.
이 어마어마한 교리를 ‘스딸린주의’라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불신자의 입으로 어떻게 감히 비판할 수 있겠는가?
이 글도 그들에게는 이전의 모든 비판들처럼, 한낱 불신자의 견성(犬聲)으로 들릴 것임에 분명하다; 아직 진리의 세례를 받지 못한 불쌍한 불신자여! 하지만 이 글도, 저들을 비판한 이전의 무수히 많은 글들처럼, 쏘련에 대한 진실을 탐구하려는 이들에게, 그리고 쏘련과 현실사회주의의 경험들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교훈을 배우고자하는 사람들에게, 미력하지만 조금의 도움이 되고자 쓰는 것이다.

* * *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Sep 16th, 2013 | By | Category: 〈노동사회과학 제2호〉 사회주의 20세기와 21세기 | 조회수: 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