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주의란 무엇인가 – 트로츠키의 주요 이론적 가정들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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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클라크(Tony Clark)
번역: 노사과연 편집부

 

예비적 논평

트로츠키는 레닌주의자처럼 사고할 수 없었다. 이것은 당연히 그의 추종자들에게도 해당되는데, 그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의 지혜를 발휘하여 이러저러한 과거의 문제에 대한 레닌의 입장을 옹호할지 모르지만, 현재의 구체적인 발전들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사이비 좌익의 입장을 취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사이비 좌익주의

사이비 좌익주의의 좋은 사례는 상이한 사회체제를 가진 국가들 간의 ‘평화공존’이라는 쟁점에서 드러난다. 대부분의 트로츠키주의 추종자들은, ‘레닌주의적’ 평화공존과 ‘수정주의적’ 평화공존을 구별하지 않은 채, 쏘비에트 수정주의자들에 의해 추구된 평화공존 정책을 비난해왔다.

그 차이는 물론 레닌주의적 평화공존은, ‘수정주의적’ 평화공존과 달리, 제국주의와 평화롭게 살기 위하여 국내의 계급투쟁이나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족해방운동의 투쟁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물론 어떤 사회주의 국가가 착취로부터의 인간해방이라는 대의를 배반하지 않고 제국주의와의 핵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이, 트로츠키주의자들이든 비트로츠키주의자들이든, 사이비 좌익주의 요소들 모두에 의해 간과되거나 무시되고 있는 점이다.

이는 쏘련의 붕괴의 문제와 관계가 있는데, 그 때는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은 냉전을 가열시킬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인류를 핵전쟁이라는 대참화로 몰아넣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명확히 했던 때이자, 스탈린의 사망 후에 곧 권력을 잡은 쏘련의 수정주의적 지도자들이 고르바쵸프 시대에 그 사상적 파산의 최후의 단계에 달해 있던 때였다. 무엇이 수정주의를 발생시켰는가는 다른 문제이다.

이상의 것들은 중요한 점들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맑스-레닌주의와 트로츠키주의의 차이를, 1950년대 초에 수정주의자들이 처음 권력을 잡았을 때 스탈린 지지자들은 숙청되었고, 스탈린 자신은 격하되었으며, 나중에는 공공연히 비난되었고 그의 저작들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반혁명적인 ‘스탈린주의적’ 관료주의의 지도자들 때문에 쏘련이 붕괴되었다고 주장하는 트로츠키주의와 맑스-레닌주의의 차이를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이는 ‘구체적인’ 레닌주의적 추론과 트로츠키주의에 특징적인 ‘추상적인’ 사고 사이에 놓여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가 쏘련의 붕괴를 고려할 때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 쏘련은 스탈린 지지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붕괴된 것인가, 아니면 수정주의 지도자들이 스탈린 지지자들을 숙청했기 때문에 붕괴된 것인가?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쏘련에서 자본주의의 복고를 초래한 것은 ‘스탈린주의적’ 관료주의가 아니라 맑스-레닌주의와 관계를 끊은 수정주의 지도부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그렇게 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대중에 대한 자본주의적 착취의 지지자들인 부르주아 저술가들조차도 어떻게 모든 단계에서 쏘비에트 관료주의가 자본주의와 시장의 야만으로의 복귀를 방해하려 시도했는지 주목한다. 이것은 관료주의는 그 천성에 의해 변화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때문에 예측될 수 있었다. 쏘비에트 관료주의가 이 점에서 달라야만 할 이유는 없다. 단지 최고위의 관료와 특권층(the nomenklatura)의 성원만이 시장으로의 복귀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관료주의는 반혁명적이기 보다는 ‘보수적인’ 경향, 즉 변화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트로츠키의 ‘반혁명적 관료주의’라는 이론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쏘련에서 전개되었던 반혁명 과정을 설명하는 틀을 제공할 수 없다.

 

두 개의 접근들

아래에 우리가 제출하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트로츠키주의의 ‘추상적’ 추론과 대비되는 레닌주의의 ‘구체적’ 추론이라는 두 개의 사고방식에 관한 것이다. 사고 혹은 추론의 수준에서의 이러한 차이, 따라서 방법과 이론의 수준에서의 이러한 차이는, 이 두 개의 조류, 즉 레닌주의와 트로츠키주의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고, 역사의 해석에서만이 아니라 구체적 쟁점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계속 서로 대립하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토대가 된다.

혁명의 문제들에 대한 트로츠키의 추상적 접근을 가장 통렬하게 생각나게 하는 것은 물론 그의 영구혁명론이다. 대부분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러한 언급에 완전히 소스라쳐 놀랄 것이다. 그들은 물을 것이다. 러시아 혁명은 트로츠키의 예측을 확증하지 않았던가? 러시아의 노동계급은 권력을 장악하고 짜르에 반대하는 부르주아 혁명을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변형시키지 않았던가? 이러한 주장 또한 트로츠키주의의 추상적 추론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우리는 아래 글에서 보여줄 것이다.

맑스-레닌주의와 트로츠키주의 사이의 모순은 기본적으로 구체와 추상 간의 대립이라는 이론을 주장의 기초로서 세움으로써, 우리는 맑스-레닌주의에 반대하는 트로츠키주의의 투쟁에서의 이 모순의 운동을 추적할 수 있다. 이는 물론 1917년 이전의 시기에 혁명적 맑스주의와 기회주의 간의 모순을 파악하는 데에서의 트로츠키의 무능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실 레닌이 볼 때는 1917년 이전의 트로츠키주의의 역할은 러시아 혁명운동에서의 기회주의를 위한 가림막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1917년 혁명이 발발하기 불과 5년 전에 레닌은, 트로츠키가 “‘혁명적’ 미사여구를 늘어놓음으로써” 기회주의자들의 행위를 ‘방패막이 해주고’ 있으며, “… 거기에 트로츠키주의적 정책의 본질이 있다”(V. I. Lenin, Collected Works, Vol. 17, pp 242-44)고 언급했다.

그리고 레닌은 그 후 1914년의 “통일의 호소를 빙자한 통일의 파괴”(Disruption of unity under the cover of outcries for unity)라는 글에서는,

“… 우리가 트로츠키주의를 ‘분파주의의 최악의 찌꺼기’의 대표자라고 부른 것은 정당했다”(V. I. Lenin, Collected Works, Vol. 20, pp. 327-47)

고 쓰고 있다.

또한 레닌이 볼 때, 트로츠키의 특징 중의 하나는,

“… 맑스주의의 다양한 분파 사이의 이념적 불일치는 사회민주당의 20년 역사를 관통하고 있고 또 오늘날의 기본적 문제들과 관계가 있는데도, 트로츠키는 그 불일치의 역사적 의의를 설명하고도 있지 않고 이해하고도 있지 않다.”(레닌: 같은 글)

는 것이었다.
이것은 1917년 혁명의 3년 전에 러시아 혁명운동에서 현실의 투쟁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조차 트로츠키는 의식적으로, 즉,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을 입증하는 비판이었다.
그리고 같은 글에서 레닌은 트로츠키주의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한다.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 트로츠키의 공문구에는 반짝임과 요란함이 있지만, 그것들에는 내용이 없다.”(레닌: 같은 글)

트로츠키주의의 바로 이 ‘반짝임’ 효과야말로,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넘어왔지만 정치적으로 순진한 사람들, 즉, 맑스-레닌주의 속에서 훈련되지 못한 사람들을 유혹하는 데에 봉사하고 있다. 그들에게 우리는 단지 맑스-레닌주의의 저작들을 학습하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어느 트로츠키주의자 그룹에서도 이러한 학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필시 레닌의 저작 일부에 담겨 있는 트로츠키에 관한 비판적 기록들 때문에 이들 그룹 속에서는 레닌의 저작들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 학습이 방해받고 있다. 스탈린의 저작들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 그 내용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원컨대, 다음은 맑스-레닌주의의 관점에서 트로츠키주의를 이해하는데 있어 시의적절한 논문이었으면 한다.

런던에서,
2001년 7월 24일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Sep 16th, 2013 | By | Category: 〈노동사회과학 제1호〉 공황과 사회주의 | 조회수: 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