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역사, 거짓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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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 회원

 

 

하루가 저물어 가고 내일을 향해서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로 넘어가고 있는 지금 어느 날 갑자기 나의 과거를 돌아본다면 내가 이렇게 변해 버렸나? 하는 것을 문득 느낄 때가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너무 많은 생각들이 바뀌어 버려서 문득 과거 생각에 잠기면 어 이게 아닌데? 혹은 이런 것을 좋다고 봤다니 동시에 사람이 중점을 두는 지식이 달라지니 생각이 바뀌는구나 하게 된다.

영상매체, 지식, 역사, 상식, 학문 등 최근은 물론 과거에 위대하다고 혹은 좋은 시절이었다고 느끼고 훈육받고 학습했던 것들이 당시에 내가 일부밖에 보지 못한 건 생각 못 하고 그때가 좋았어라고 생각했다거나 또 다른 사실과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면서 생기는 자괴감과 분노 또한 그렇다.

새해를 맞아 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한번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인터넷이 비교적 덜 활성화됐던 2000년대 초중반 시절 TV를 열심히 보던 나에게 그때는 재미있는 게 참 많던 시절이었다. 다큐멘터리부터 드라마 등등. 초등학교 때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SBS 드라마 ≪야인시대≫는 당시에 인기 있던 드라마였다. 방송에서 너도나도 고전 깡패들에 대한 낭만과 의리를 자극해 댔다. 나도 거기에 편승해서 재밌다고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같은 민족을 사랑하고 굳이 아버지(?)처럼 만주에 가지 않아도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는 조폭이라. 나 같은 어린이들의 눈에는 너무나 낭만적이다 못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던 때였다. 하지만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신마적, 구마적 같은 애들 몰아내고 좀 더 친절한 모습으로 상인들 갈취하고 다니는 김두한 패거리는 만주 가서 독립운동 안 해도 된다더니 일본 경찰들한테 찍혀 깨갱하고 자빠져 있고… 이어지는 불쌍한 모습의 조폭들 감성팔이. 이렇게 보는 시각이 달라지니 영웅담 따위는 안 보인다.

그 다음은 MBC 드라마 ≪영웅시대≫ 이건 정말 하하…. 지금 본다면 너무나도 역겨워서 위산이 역류하다 못해서 중환자실로 여럿 실려 보낼 드라마이다. 초중반부 이후 박정희, 차지철과 측근들이 앉아서 잘 살아보자며 훈훈한 연출로 새마을 운동 노래를 부르는 부분이 있다. 저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태일이 분신하는 장면에서 박정희가 타고 가던 차가 멈추더니 우리 젊은이들이 저래 불쌍하게 산다고 가엾어 하는 장면은…. 역겹다.

이처럼 완벽한 박정희와 대기업 미화 드라마인지라, 박정희가 독일에 간 광부와 자기보다 배는 무거운 환자들 돌본다고 몸이 안 남아 난다며 간호사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장면은… 지금 드라마 작가한테 물어본다면… 저기요, 작가 양반, 민중들을 그렇게 가엾게 여기던 대통령이 지 권력 유지한다고 민중들 개 패듯이 때려잡고 억압하고 측근들이랑 당시 최고급 술인 로얄샬루트 처먹다 아깝다고 지만 더 먹겠다고 도로 침실로 넣어 놓으라는 얘기가 나오고 젊은 여자들 불러서 허구한 날 술 먹다 측근들 권력 다툼 끝에 총 맞아 죽고 그럽니까?

지배계급이 극중 떠들던 잘~살아보세~에 근로인민대중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본격 재벌 지배계급 깡패 미화 홍보 드라마 ≪야인시대≫, ≪영웅시대≫! 도탄에 빠진 민중을 때려잡고 사업 확장을 위해 수많은 인간들을 자기 자식이고 동료고 나발이고 죄다 사지로 몰아붙이는 이들이 펼치는 눈물겨운 사기 드라마. 아무리 대중매체에 픽션이 많이 들어간다지만 이건 진짜 사기 수준이 아니라 그냥 사기 그 자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두 곱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후에 나온 ≪제5 공화국≫에서는 뭔가 좀 찔렸는지 10.26 당일 술 먹다 중앙정보부장이 일을 그렇게 온건하게 하려고 하니 학생들이고 뭐고 저 난리를 친다강하게 밀어붙이라고 닦달하는 박정희의 모습이 보인다. 캄보디아는 3백만 명 죽였다고 우리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고 거드는 차지철은 덤.

드라마 말고 현실로 나와서 어린 시절의 상황을 회상해 보면 조선업은 10년 치 일감이 밀려 있다고 잡지나 신문에 나온 그대로 수많은 사람들은 허구한 날 미래가 창창하다고 외쳐 댔으며, 사람들은 복지만 강화되면 우리나라 살기 좋은 나라를 연신 떠들고 다니고, 기업이나 국가 운영에 있어서는 대통령이나 최고 경영자만 좋은 사람 앉혀 놓으면 그 좋은 나라 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인 양 얘기하고 다녔으며, 과거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회에 아이콘이었던 문양들과 체 게바라나 수많은 혁명가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순진한 대중과 평론가들에 의해 낭만과 소비의 상징으로 온갖 상품에 그들의 모습과 상징이 박혀 이윤추구를 위해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사람들은 이제야말로 자유의 시대가 왔다며 과거의 부조리한 모습들은 과거의 일일 뿐이라며 해야 될 이야기, 못 했던 이야기보따리들을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MBC에서 방영하던 한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였으니.

스타크래프트 게임 리그에는 10만 명이 넘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억대 연봉을 바라보는 하나의 직업으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새로운 전망과 직업적 다양성이 인정되고 능력에 따라 일하는 사회가 될 거라는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교단과 TV를 가득 메웠고 김대중 노무현은 허구한 날 까이기는 했지만 그 어떤 대통령보다 훌륭한 사람으로 보였다. 포켓몬스터의 악당 로켓단의 대사처럼, 아름다운 미래 밝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랄까…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위대한 대통령에 대한 동정이 절정에 달한 것은 노무현이 죽고 나서 순교자가 되었을 때였다. 그냥 한나라당과 이명박만 나쁜 놈인 것 같았다. 나는 뭔가 해결되지 못한 약간의 부조리가 있는 정도라고밖에 이해 못 했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오늘로 돌아와서 그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둘러보고 학습으로 생각이 바뀌고 드는 생각은?

첫 회사에 나가서 석 달은 임금의 70%만 받고 임금 주기로 한 날짜에서 한 달 후에 지급한다는 건, 그 전 정권이 그렇게 훌륭했으면 내가 왜 저딴 대우를 받으면서 일했어야 했지? 조선업이 희망찬 직업이라면 김주익 열사의 추도문을 읽던 김진숙 동지가 2003년 외쳤던 전 자본주의가 정말 싫습니다라는 외침. 이것이 한 개인과 집단의 투정인가? 살기 위해 처절하게 기어 다니던 우리가 고작 한 푼 달라고 노동하는 게 얼마나 우스웠겠냐고 하는 그 울부짖음.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김대중과 진보를 외치던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하나도 개선된 것이 없는 장시간 저임금 살인적인 노동 강도. 세계화라는 이름의 가진 자들을 위한 온갖 정책과 특혜. 훌륭한 민주주의 아래 혁신과 경쟁, 개혁이라는 이유로 자살 행렬로 몰리던 노동자들,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데 멀뚱멀뚱 바라만 보던 정치인과 대통령. 그 10년의 쓰레기는 질 좋은 재활용 쓰레기(?)이고, 이명박 박근혜의 쓰레기는 그들의 쓰레기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들인데 저 쓰레기들은 핵폐기물이라는 투로 비아냥대는, 똥 묻은 개를 겨 묻은 개가 나무라는 격의 졸렬한 진보. 일감 많다던 10년이 지나자 경영상의 혁신 운운하며 노동자들 내치는 조선업. 수십 년 전에 나온 노동자 만평 모음집과 책에 나오던 부조리들이 현실 그대로 반영되는 아름다운(?!) 세상.

나와 같이 지내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때가 그립다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나요?라고 말한다. 딱 한 가지 좋다고 느끼는 건 있다. 한 살이라도 젊은 것…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냐 묻는다면? 아니오! (특히 군필자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 같지만 군 복무 시절도 그립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건 정말 삶이 얼마나 안 풀리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영화 ≪변호인≫, 드라마 ≪응답하라≫ 씨리즈 등 과거의 정의나 추억을 회상하는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난 오히려 슬프다. 괴로웠던 기억조차 사실 그때가 행복했다고 과거에만 매달리는 것이 정상은 아닌 것 같아서.

학창시절이 그립다고 막상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과연 행복할는지? 오히려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에 눈을 떠서 더 괴롭거나 애써서 고통과 부조리들을 외면하려 하지는 않을는지? 다들 미래의 기억이 없기 때문에 과거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안 해서 그런가?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굳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지배계급을 위한 국가보안법, 징집병을 꼴통으로 보고 행하는 저질 안보교육, 예의범절 용모단정 어쩌고 학생 두발규제… 먹고살기 힘들다고 외치는 사람들, 더 높이 올라가는 아파트… 달라진 것 하나 없는 것 같은 이 세상.

최근의 일이다. 지난 12월 24일, 매년 하던 크리스마스 몰래 산타를 했는데 이번엔 중계 본동 백사마을로 갔다. 도심 아파트 사이로 외롭게 남은 몇 안 되는 달동네. 집 앞에서 부모와 사람들이 기다리고 아이들을 불러내기 전에 혼자 주변을 둘러보고 문득 드는 생각은, 처음 2013년 산타가 돼서부터 매년 겨울 선물을 주던 기분이 예전 같지 않달까. 우리가 돌아다니는 집안 이웃들에게 필요한 것은 장난감이나 다른 선물보다 그런 것 없이도 평소에 여유로울 수 있고 행복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평상시에 당연하게 그러기에 느낄 수 없는 눈에 띄지 않는 일상의 행복이 아닐까 했다.

동네 멀리 꼭대기에 십자가와 몰래 숨어 있는 산타. 그 어떤 종교적 믿음이나 일개 산타에게 삶의 희망과 행복을 떠넘겨 버리는 이 세상의 국가라는 존재는 그저 지배도구일 뿐 공허한 하나의 잉여 세금도둑 집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비밀(?)을 밝히자면 여기 나오는 산타도 직장 다니느라 바쁜 우리 이웃이다. 물론 나도 히히.)

왜 그 좋았던 세월에, 좋으신 분들 치하 아래에서도 빈민가와 빈민이 존재했고, 지금도 아직까지 존재하는가? 나와는 상관없는 재개발과 발전이라는 녀석이 나타나서 삶의 마지막 의지마저 짓밟고 생존의 처절함이 지구촌 곳곳을 물들이는데, 사람들이 과거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영광과 떡고물에 매달리는 것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고통과 속임수를 망각하게 하기 위함이 아닐는지 생각된다. 돼지들을 섬기다 또 새로운 돼지를 섬기면서 부스러기나 주워 먹으며 느끼는 행복은 언제나 일시적이었고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민중들은 이제 자기 자신을 위한 진정한 행복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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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중계 본동 백사마을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와 자본주의가 어린 시절(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화두이다. 내가 알기로는 따뜻하고 마음씨 좋은 얼굴을 한 지배체제를 말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인간의 얼굴을 하라는 것인지 이미 증명되지 않았나 싶다. 2017년 이후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지금 살아가는 이 세상이야말로 바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와 자본주의이다. (착취하고 억압하지 않으면 체제 자체가 견디지를 못하는데 착하게 살라니 무슨 조폭도 아니고) 인간 얼굴이 문제가 아니다. 이미 수 세기 역사를 거치면서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인간들이 말하는 얼굴 뜯어고칠 만큼 다 뜯어고쳤다.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다! 여기서 얼마나 더 잘 생겨지라는 거냐!라며 인증을 하고 있지 않나.

자본주의라는 놈의 성형수술 비용 청구서는 오늘도 전 세계 근로인민대중에게 열심히 날아든다. 그러니 성형한 자본주의의 겉모습과 감언이설에 혹하지 맙시다 여러분! [노/사/과/연]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Feb 22nd, 2017 | By | Category: 2017년 02월호 제130호, 회원마당 | 조회수: 298